훼손
김주영이 가장 일을 많이 하던 때였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전망이 보이지 않던 대학 강사직을 그만두고 인쇄편집 사무실을 낼 때, 대부분의 기기들을 리스로 샀기에 다달이 돈을 갚느라 허덕인 때이기도 했다. 인쇄물들을 제 날짜에 맞추기 위해서 한 달에 대여섯 번은 사무실에서 밤을 새워야 했고 어쩌다 집에서 쉬는 일요일이면 열한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텔레비전의 정오 뉴스를 보다가 소파 위에서 다시 잠들어버리곤 하던 때.
크리스마스 날이였다.그 전날 김주영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문해준 오븐이 배달되어 왔다. 날씨가 너무나 청명했다. 아침에 베란다 문을 열자 따뜻한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개천절 같아 ”
김주영은 농담을 했었다.
“ 엄마, 눈도 오지 않았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어떻게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나에게 선물을 주고 갔을까? ”
다섯 살 된 후는 로봇 선물을 끌어안은 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의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김주영과 후는 잠깐 목욕을 다녀왔고 나는 오후 내내 요리책을 펴놓고 계란과 밀가루와 초콜릿과 베이킹 파우더와 설탕과 버터와 크고 작은 채와 계란 스푼 따위를 부엌 바닥에 늘어놓고 가장 간단한 쿠키와 카스테라를 굽는 실습을 하면서 보냈다. 전화가 온 건 아홉시의 텔레비전 뉴스가 시작될 때였다. 실패한 카스테라를 잔뜩 먹은 후는 지쳤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이내 잠들었고 김주영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막 세수를 하고 나오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 김주영 사장님 댁이죠? ’
앳된 여자의 음성이었다.
“ 그런데요? ”
‘ 저는 김주혜라고 해요. 제가 근처에 와 있는데, 좀 들러도 될까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
나는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채 김주영을 쳐다보았다. 김주영은눈으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나는 수화기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말했다.
“ 어떤 여자가, 주혜라고 하는 여자가 지금 우리집에 오겠대. ”
나의 입에서 주혜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김주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대응조차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소파에서 천천히 일서서서 다가왔다. 영문을 모르는 나도 긴장되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전화기에대고 말했다.
“ 그래요. 들르세요. ”
내 말이 떨어지자 김주영이 갑자기 수화기를 붙들려고 팔을 번쩍 뻗었다. 나는 몸을 돌려 그의 손을 피하며 재빨리 수화기를 놓아버렸다.
“ 왜 오라고 하는 거야. 늦은 시간이잖아. ”
김주영의 언성이 높아졌다. 시계를 보니 아홉시 사분이었다. 그다지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 할 이야기가 있대. ”
“ 너한테? ”
김주영은 담배를 거꾸로 물었다가 고쳐 물었다. 주혜라는 여자의 전화가 온 뒤로 안절부절 못했다.
“ 몰라. 누구에게든 마찬가지겠지. 집으로 온다는 걸 보면…. 그런데, 오빠 지금 이상하다는 거 알아? 주혜라는 여잔 대체 누구야? ”
“ 여직원이야. 우리 사무실 근처 지업사에서 일했던. ”
김주영은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하고는 완강하게 입을 다물었다. 나는 더이상 묻기를 단념했다. 방으로 들어가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얼굴이 창백하고 손끝이 떨렸다. 나는 옷도 갈아입었다. 전화가 오고 정확하게 십 분 뒤에 현관 벨이 울렸다. 나는 그의 뒤를 천천히 따라나갔다. 문이 열렸을 때, 주혜라는 여직원은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비밀스러운 농담이라도 거는 듯이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김주영을 말끄러미 보더니 눈동자를 내 쪽으로 굴렸다. 그리고 성큼 들어섰다. 까만 앞머리를 일본 여자애처럼 눈 위까지 가지런히 내리고 뒷머리는 붉은색 핀으로 올려 묶었는데 피부가 생크림처럼 희고 부드럽고 통통했다. 키가 작은 편이였다. 스무살 쯤 되었을까…. 엉덩이까지 덮히는 붉은색 스웨터를 입었고 아래엔 짙은 색의 진 바지 차림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 전 사장님 거래처에서 일했던 김주혜라고 해요. 신세진 일이 많아서요. 인사 드리러 왔어요. ”
여직원은 맥주가 든 쇼핑 봉지를 내밀었다. 맥주는 차가웠고 병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는 손님을 주방으로 안내해 식탁에 앉혔다. 김주영은 담배를 하나 피워물고 재떨이를 챙겨들고는 그 곁에 엉거주춤 앉았다.
“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어요? ”
나는 냉장고에서 이것저것을 꺼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등을 돌린 채 햄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아무 말도 없는 순간이 이어졌다. 옥수수 캔을 따며 뒤돌아보자 여직원은 김주영을 향해 입모양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심술궂고 교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에 비해 김주영은 조금 전보다 더 경직된 얼굴이었다. 그들의 엇갈리는 표정을 보자 무슨 비밀스러운 장면이라도 엿본 것처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겨자를 넣은 햄 샐러드와 오징어채, 땅콩 따위를 내놓고 나도 식탁에 앉았다. 여직원과 나는 맥주를 좀 빠르게 마셨고 김주영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여직원은 추파춥스 사탕 때문에 약혼한 연인들이 헤어진 이야기를 했다.
“ 그날은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였어요. 사 년 전이였어요. 우리는 도심 한가운데의 이층 맥주집에 앉아 있었어요. 굉장히 추운 날이었어요. 내 친구의 약혼자가 즉석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바치겠다면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친구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어요. 자기는 지금 바로 추파춥스 사탕을 선물받고 싶다고. 오늘 밤 안에 추파춥스 사탕을 먹고 싶다고. 시간은 새벽 두시였어요. 키스나 포옹 혹은 무슨 언약 같은 것을 기대했던 친구의 약혼자는 당황해하며 잠시 망설이다가 나갔어요. 그런데 세 시간 뒤에 빈손으로 돌아온 거예요. 두 사람은 그 뒤로 만나지 않았어요. 물론 결혼도 하지 못했죠. ”
“ …… ”
“ 그러다가 올 해 봄에 다시 만났는데 둘 다 아직 미혼이었어요. 그날 남자는 내 친구를 집에 데리고 갔어요. 그 남자애의 방에 추파춥스 사탕이 가득 담긴 유리 향아리가 네 개나 있더래요. 그 남자애 말이 헤어져 지내는 동안 매일 한 알씩 모았다고 하더래요. 둘은 곧 결혼했죠.”
“ 주혜씬 몇 살이예요?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짐작보다 나이가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불쑥 말했다.
“ 스물여덟이요. ”
너무 앳된 모습이라 나이가 믿어지지가 않았다. 여직원은 나이보다 자신이 퍽 어려 보인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즐겼다. 그녀는 어디선가 이미 술을 마시고 온 것 같았다. 거침없이 술잔을 비웠고 잔이 빌 때마다 급작스럽게 취해갔다.
“ 난 곧 떠날 거예요. 9월부터는 인천에 가서 애육원 보모가 될거예요. 장애자 어린이 수용소죠. ”
“ 왜 그런 일을? 몹시 힘들 텐데 ”
내가 묻자 여직원은 입술을 안으로 말듯이 오므리며 웃었다.
“ 해보고 싶었던 일이예요. 아주 힘든 일을 태연하게 해보고 싶어요. 난 죄가 많으니까. 할 수 있을 거야. ”
여직원은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 보며 말했다. 이것이 그녀가 일부러 이곳까지 와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가?
“ 결혼은 안 해요? ”
“ …… ”
여직원은 김주영의 담배를 유연하게 뽑아 입에 물었다. 김주영이 망설이더니 불을 붙여주었다.
“ 사랑하는 오빠가 있어요. 아주 매력적인 남자, 나를 죽이는 남자…. 그런데 그에겐 이미 예쁜 아내가 있죠. ”
“ 그 오빠는 아직 소식 없어? ”
김주영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 카이로에 간 오빠 말이야. ”
여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주영을 마주 보더니 갑자기 깔깔 웃었다. 그리고는 김주영이 아닌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 이종사촌 오빠가 카이로로 갔어요. 이 년 전이었죠. ”
“ 그만 나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
“ …… ”
여직원은 대답 대신 나를 잠시 보더니 눈을 돌려 부엌 너머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얼굴이 이상스럽도록 서늘했다. 거실 창 아래엔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앵무새가 이쪽을 향해 서 있었다. 크림색 천 소파 세트 곁에 설치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 전구가 반짝였다. 집은 단순하고 큼직큼직한 오크 가구들로 꾸며졌고, 잘 청소되어 반짝거리며 오후에 구운 쿠키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따스하고 안정되어 보였다.
“ 행복하세요? ”
여직원이 묻자 나는 짧게 웃었다. 그러나 나의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직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 행복이란, 무지한 상태의 다른 말이죠. 행복하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과 같아. ”
여직원은 찬장 위 화병에 꽂혀 있던 종이 태극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이 커다랗게 흔들렸다. 후가 유치원에서 색종이를 오려붙여 만들어 온 첫 작품이어서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
“ 이상했어. 처음 볼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방향이 바뀌었어요. 나무젓가락 깃대를 반대편으로 붙여야 맞아요. ”
나와 김주영은 동그래진 눈으로 종이 태극기를 쳐다보았다. 맞는 지적이였다. 여직원은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칠 것 같지 않은 공격적인 웃음이었다. 그러자 나는 마음이 참담해지면서 수치심과 맹렬한 적의감이 치솟았다. 그녀는 어떤 전체, 이 집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전체를 비웃고 나의 인생 전부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웃고 있는 여직원의 눈은 그런 예리한 지적을 했다는 것의 의아할 정도로 풀려 있었다. 나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 넌, 아무것도 몰라…. ”
그 말은 귀가 아니라 피부로 스며든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여직원은 갑자기 희고 통통한 손을 들어 올리더니 김주영의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새하얀 손의 움직임이 너무 부드러워서 따뜻한 연기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당황한 김주영은 뒤늦게 통증이라도 느끼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황망하게 뿌리쳤다.
“ 오빠… ”
나는 김주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직원이 분명 오빠라고 불렀던 것이다. 내 눈에 얼음이 박히는 듯 했다. 여직원은 김주영의 눈과 코와 입술과 턱을 그 긴 속눈썹으로 빗는 듯이 은은하게 바라보며 혼미하게 속삭였다.
“ 오빠… 나 좀 재워줘… 잠을 못 잔 채 몇 날이 흘러갔는지 몰라… ”
여직원이 김주영의 몸 쪽으로 기울어졌다. 김주영은 고개를 뒤로 빼며 재빠르게 의자에서 몸을 뺐다. 그 바람에 여직원은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그 조잡하고 어처구니없는 동작들을 멍하니 관찰하고 있었다.
“ 오빠. 나, 떠날거야. 먼 곳으로. 이번엔 정말이야. 그러니까 오늘밤은 나랑 있어…. ”
더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안간힘을 다해 일어섰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주영이 나를 붙잡았다.
“ 먼저 자야겠어. 둘이서 이야기해. ”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아냐, 얘 곧 같거야. ”
김주영은 바닥에 앉아 식탁 다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여직원을 돌아보며 빠르게 말했다.
“ 주혜야, 그만 나가자. ”
여직원의 눈이 불빛에 부딪혀 번쩍 빛났다.
“ 싫어, 나 오늘 안 가. 오빠랑 있을래. 여기서 재워 줘. 안 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