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삐삐삐. 어둠을 가르고 울리는 알람시계에 굳게 닫혀있던 눈꺼풀이 떠졌다. 술을 먹지도 않았는데 숙취가 느껴졌다. 지호는 두통이 이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아직까지도 시끄럽게 구는 알람을 껐다.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사방으로 밀려드는 수압에 깡통처럼 찌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지호는 그것에 저항이라도 하듯 팔다리를 힘차게 뻗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커튼을 치자 저 멀리 희미하게 동이 터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호는 차가운 유리창에 떨리는 속눈썹을 가져다 대었다. 태양빛은 조금씩, 조금씩 어둠을 핥아 먹으며 밤을 부시고 아침을 창조했다. 세상이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 지호의 동공에 한줄기 햇살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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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중 통화가 세 단위를 넘어섰다. 대충 액정을 넘기며 확인해보니 전부 모르는 번호였다. 문자함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틀림없이 피라냐 떼 같은 기자들 짓이었다. 지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빠!”
택시에서 내린 젊은 여성이 손을 흔들며 지호에게 다가왔다. 지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구겼던 인상을 서둘러 폈다. 신호에 걸렸지만 차가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 여자는 재빠르게 무단횡단을 했다.
“오빠도 폰 테러 당했구나? 난 그래서 아예 배터리를 뽑아버렸지이.”
여자가 분리된 배터리를 흔들며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웃었다. 지호는 그 말을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고 청명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하게 맑았다. 사계절 중 가을하늘을 제일 높이 친다지만 여름하늘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여기서 한 블럭만 내려가면 차 주차해 놓은 곳 있어.”
지호는 여자에게 차키를 내밀었다.
“왜? 나 먼저 가있어?”
“어. 편의점에 들려서 뭐 좀 사고 갈게.”
그렇다면야. 여자는 차키를 냉큼 건네받고 오렌지 빛으로 염색한 머리만큼이나 상큼한 발걸음으로 통통 튕기듯이 멀어져갔다. 잠시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호는 여자와는 반대편으로 걸었다. 일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스피린을 세알이나 먹었는데도 차도가 없다.
유리문을 밀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니 알바생이 DMB에 푹 빠져 본체 만체다. 오전 10시. 손님 없이 한가할 시간이다. 던힐 한 갑, 라이트로 ㅡ라고 내뱉으려던 지호는 알바생 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동작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다음은 희대의 성폭행범 박진철 사건의 희생자 박모군이 드디어 사회로 복귀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양 부모를 잃은 박모군의 나이는 만 18세로 내년이면 성인이지만 지하실에 갇혀 사회화 과정이 부족해 아직 부모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어제 날짜인 7월 8일 입양 절차가 끝나 박모군은 더 이상 보육원에 남지 않아도…….>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딱딱한 앵커의 음성 위로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알바생은 큼지막한 눈동자를 끔벅이며 낯선 손님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지호는 원래 하려던 말을 목구멍 아래로 꿀꺽 삼키고 대신 이렇게 물었다.
“아무래도 담배는 아이에게 좋지 않겠죠?”
***
차 안에 들어서니 독한 향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지호는 시동을 걸자마자 창문을 내렸다.
“어디 클럽 가? 최대한 수수하고 깔끔하게 차려 입으랬잖아.”
못마땅하다는 지호의 어조에 여자는 퉁명스레 입술을 내밀었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잘 보이고 싶어서. 지호는 여자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차를 몰았다. 시내에서 빠져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나니 바깥 풍경도 비슷비슷해서 볼거리도 없었다. 여자는 묵묵히 운전만 하는 지호를 곁눈질로 흘끔거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나 첨에 오빠 말 듣고 없는 애가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오빤 절대 충동적인 사람 아니잖아. 그래서 더 놀랐어. 뜬금없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고.”
“…….”
“아무렴 우지호 씨 마음이지만.”
“그럼 이대로 차 돌리는 게 좋겠어?”
지호의 말에 여자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입술을 오므렸다.
“센터에서 입양 교육까지 다 받아 놓고는 이제 와서? 내가 거길 왜 갔는데. 오빠 아니었음 나…….”
“알아. 그냥 물어 본 거야.”
도로에 차가 없어 제한 속도를 웃돌며 목적지까지 무리 없이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에어컨이 나와 차 안은 쾌적했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여자는 가슴 아래까지 오는 머리칼을 한손으로 움켜쥐고 몸을 지호에게 틀었다.
“날씨도 좋은데 우리 뚜껑 열자!”
뭐? 창틀에 팔꿈치를 올린 채 운전하던 지호가 눈을 치떴다. 여자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을 하고는 차 지붕을 가리켰다. 시속 80km가 넘는 속도에 문을 열면 바람 때문에 정신없을게 뻔했지만, 여자의 부추김과 계속되는 두통을 물리기 위한 기분전환으로 지호는 쿨하게 버튼을 눌렀다.
“꺄아 시원해!”
차 지붕이 열리자 쏟아지는 바람에 날려 앞머리가 춤을 췄다. 대시보드에 올려둔 인형도 바람에 못 이겨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까짓 인형 좀 날아가면 어떠랴. 지호는 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게 까르르 웃는 여자를 보며 미소를 띠었다. 저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불알친구인 표지훈의 여동생 표지희. 지희는 친동생만큼 소중한,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생이었다.
***
충청남도 보령시. 지호가 시동을 끄는 동안 지희는 쏜살같이 내려 선글라스를 벗었다. 사방은 온통 논이었고 그나마 보이는 건물도 1층짜리 낮은 단독주택이었다. 길까지 비포장 도로였으면 더 대박이었을 것이다. 두 시간을 꼬박 달려 도착한 곳은 서울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깡촌이네, 깡촌!”
공기 깨끗한 건 하나 마음에 들어. 외국에 놀러간 관광객인 양 구경하기 바쁜 지희의 등 뒤에 대고 지호가 외쳤다. 표지희! 얼른 와. 이런 길바닥에서 시간을 버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지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두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여기서는 학교 가려면 아마 한 시간도 넘을 거야.”
언덕길을 오르며 지희가 질린 듯 중얼거렸다. 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좌우로 울창하게 뻗어있었다. 이런 산기슭에 보육원이 있다니 아이들의 문화생활에 심히 염려가 된다. 지희는 턱을 까닥였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몇 걸음 더 가니 대문 옆에 비스듬하게 걸린 나무패가 나타났다. '하나 보육원' 이라 쓰여 있는 낡은 나무패를 보자 제대로 길을 찾아왔음을 확신했다. 지호는 뒤따라오는 지희에게 물었다.
“여기서 기다릴래?”
“으응. 아니야. 기왕 온 거 끝장을 봐야지.”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서자 카메라맨들과 기자들로 앞마당이 잔뜩 붐벼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주차된 차가 어쩐지 많다 했다. 저들끼리 떠들던 기자들이 지호와 지희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와-하고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는 풍경은 과연 장관이었다. 시궁창에 빠진 것처럼 있는 대로 찡그려진 지호의 얼굴은 아랑곳 않는 태도. 한적했던 보육원이 시장 통인 양 시끌벅적 아비규환으로 변하자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신경 줄기, 줄기마다 불꽃으로 타들어가는 통증에 지호는 볼 안을 까득 씹었다.
“저기요, 잠시만요!”
지희가 열심히 의사표현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안으로 들이지 못하도록 작정했는지 기자와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모여 카메라와 마이크를 무기처럼 휘둘렀다. 무자비로 질문을 퍼붓는 통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귀가 멍멍하니 아파왔다. 각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나온 이기적인 기자들은 저 좋을 대로 굴었다. 작지 않은 소동에 보육원 선생님과 고아들까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인파에 밀려 쓰러질 뻔한 지희를 지호가 겨우겨우 붙잡았다.
“그만! 그만 해!”
쨍! 대포 소리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가 터졌다. 굶주린 거지처럼 몰려들던 기자들도 차마 무시하지 못하겠는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보육원 선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두 손을 허리춤에 얹어놓고 버티고 있었다.
“남의 사유지에서 이게 무슨 행패입니까? 갓 잠들었던 아가들이 모두 당신네들 때문에 깨버렸어요! 더 소란을 피우면 전부 고소하겠습니다.”
학생들을 훈계하듯 엄격한 어조였다. 남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진 기자들을 보고 만족스럽게 코웃음 치다가 지호를 향해 검지를 까닥였다.
“용무마저 보셔야죠. 그리고 기자 양반들은 여기서 닥치고 기다리세요. 저 사람 어디 안 도망가니까 질서정연하게 준비해서 인터뷰하라구요. 인간들이 시민의식이 없어!”
남자는 할 말만 내뱉고 보육원 안으로 사라졌다. 서로 마주보고 있던 지호와 지희도 남자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허름한 건물 외관과 달리 내부는 아기자기하게 제법 잘 꾸며져 있었다. 지호는 천장에 달린 프릴을 만지며 구두를 벗었다.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들이 헌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낯선 손님의 방문에 지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순수해서 더 불쌍했다.
“오늘 7월 9일이지?”
“응. 왜?”
“아니, 그냥.”
생뚱맞은 지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던 지희는 앞서가던 남자가 멈추자 따라 발걸음을 정지했다. 우드판에 사랑방이라고 써진 곳이었다. 방문에 작은 리스가 달려있었는데 어린 아이가 만든 건지 조잡하고 단순했다.
“여기에 있어요. 어색할 텐데 서로 인사라도 하고 있으세요. 아무래도 제 3자는 빠지는 게 낫죠?”
남자가 사람 좋게 웃으며 자리를 비켰다. 지희는 지호와 남자를 번갈아 보더니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물었다. 제 3자는 빠지는 것이 좋으니까.
“화장실이 어디에 있나요?”
“아 그건…….”
지희가 남자와 함께 멀어지자 지호는 손잡이를 쥐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두통 때문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안을 살피니, 아이가 있다는 남자의 말과 달리 아주 깜깜했다. 잘못 알려준 건가. 눈을 게슴츠레 뜨는데 저기 커튼 아래에 거무스름한 형체가 얼핏 보였다. 꼴깍. 침이 넘어갔다. 어느새 깨질듯한 두통이 마법처럼 사라져 있었다.
어두운 실내 환경에 있으니 눈이 익어 전보다 잘 보였다. 틀림없이 누군가가 벽에 기대고 쭈그려 앉아있었다. 아마, 그 아이일 것이었다. 반도를 뒤집은 미친 강간마 박진철과 그에게 성폭행 당한 딸의 아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아들이 될 아이. 박 경. 한 번도 긴장할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손에 땀이 고였다. 지호는 우선 어둑한 방 안을 밝히기 위해 커튼으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
잘못 본 건가. 분명 커튼을 치려는 저를 향해 고개를 저었는데. 열지 마? 지호가 입모양으로 물으니 경이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지호는 몸만 큰 어린이의 취향을 존중하자는 뜻에서 커튼에서 물러섰다. 경은 무릎으로 바닥을 걸어 열린 방문을 닫아 틈새까지 완전 봉합했다. 손톱만큼 들어오던 빛도 전부 차단됐다.
야생적인 본능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둠이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컴컴해서 윤곽선만 간신히 구분될 뿐 생김새는 전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미 뉴스와 사진으로 보긴 했다만. 지호는 한숨을 쉬고 경의 옆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도 대낮 못지않게 경의 매끄러운 눈동자가 또렷이 지호를 직시했다. 그 시선을 받으니 가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울렁였다. 지구가 아닌 어느 다른 외행성에 와있는 것만 같았다.
“내 이름은 우지호야.”
“…….”
“이제부터 내가 네 아버지가 될 거다.”
“그럼 나는 아버지가 두 명인 건가요?”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경의 입술이 벙긋 열렸다. 종달새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음성이라 거세당한 성악가 카스트라토가 떠올랐다.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듯한 목소리. 때 묻지 않은 순수함……, 하얀 팬지꽃. 보육원에 들어오면서 봤던 고아들처럼 경 역시 순수해서 불쌍했다. 어두워서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울을 보고 수없이 외우고 연습했던 대사는 깡그리 잊어버렸지만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은 분명했다. 지호는 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가능한 한 가장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19년 동안 알고 있던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야.”
“…….”
“박 경. 앞으로 내가 아버지가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