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찬백] Fashion, Passion
W. 레녹
그냥, 아무 이유없이 민석에게 홍차를 주기 싫었다. 그건 박찬열이 나 먹으라고 준 거니까. 백현이 탁탁, 소리나게 종이뭉치들을 정리해 서류철에 끼웠다. 박찬열이 나 먹으라고 준 걸 아무한테나 줄 수는 없지. 백현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서류철을 가방 안에 넣었다.
"나도 루한보고 사달라고 그래야지."
민석이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며 루한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밥 살게, 뭐 먹을래?"
백현이 점퍼를 껴입고 털모자를 쓰며 민석에게 물었다. 민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루한이랑 약속있어. 민석의 말에 백현의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아무리 동성애 커플이라도 커플은 커플이지. 커플지옥 솔로천국!
"루한이랑은 아직도 잘 지내?"
"아직도라니, 우린 영원할거야. 포에버."
"지랄."
백현이 아니꼽게 민석을 노려보고서 소파에서 일어섰다. 사귄지 삼년이 넘어가는 루한과 민석이였지만 아직도 깨가 쏟아졌다. 루한과 카톡을 하며 싱글벙글 웃는 민석을 보자니 괜히 찬열이 생각났다. 나쁜 놈.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져 왔지만 메세지 하나 없었다. 백현이 메세지 하나 없는 제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신경질적으로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그럼 나 먼저 갈게. 나중에 우리 작업실에도 놀러와."
민석은 그 말만을 남긴채 쌩, 하니 가버렸다. 이래서 친구 다 소용없다니까. 백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나쁜 박찬열. 뽀뽀를 했음 책임을 져야지."
백현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근데 정말로 내일도 안 오면 어떡하지? 백현이 한숨을 폭, 쉬었다. 찬열이 보고싶었다. 그 사마귀처럼 웃는 얼굴도 보고싶었고, 그 듣기좋게 낮은 목소리도 듣고싶었다. 백현이 연신 한숨을 쉬다 수정을 불렀다. 수정이 힘이 없이 축, 처진 백현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홍차 좀 내와봐."
"홍차요?"
난데없이 홍차를 내오라는 백현의 말에 수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싫다고 하셨으면서…. 수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현이 고개를 들어 수정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그냥 내와."
"네."
수정이 곧장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백현은 맸던 가방을 벗어 소파 옆에 놓았다. 홍차라도 마셔야지, 뭐. 백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
찬열은 고속도로에서 달리듯이 차를 몰아 금새 백현의 사무실과 작업실이 딸린 빌딩 앞에 도착했다. 간간이 있는 고속 감시카메라에 찍힌 것 같았지만 뭐 상관없었다. 짙게 썬팅이 되어있지만 혹시나 백현이 차 안에 앉아있는 저를 알아볼까싶어 패딩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쓰고 지퍼를 턱 끝까지 올렸다. 고개를 잔뜩 움츠려 옷 안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 분쯤 기다렸을까, 아직도 보이지않는 백현의 모습에 찬열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내가 좀 늦었나? 찬열의 얼굴이 단번에 찌그러졌다. 허겁지겁 수정에게 메세지를 찍어 보냈다.
'디자이너님 퇴근하셨나요?'
찬열의 메세지에, 수정이 한숨을 쉬며 답장했다. '아뇨, 아직이요.' 수정이 메세지를 보내고는 한숨을 쉬었다. 사귈꺼면 좀 빨리 사귀던가! 수정이 신경질적으로 제 핸드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렇게 답답한 커플은 또 처음이네. 수정이 작게 중얼거렸다. 늘 찬열과 백현을 지켜봐왔던 수정으로써는,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연애 처음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말이야. 수정이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박수를 짝, 쳤다.
"디자이너님은 연애가 처음인가?"
수정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도 있겠어…. 저 성격 견뎌낼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수정이 꾹 닫힌 백현의 사무실 문을 흘끔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
뭘 하고 앉았는지 삼십 분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백현의 모습에 찬열이 결국 차 밖으로 나왔다. 허리를 굽혀 살금살금 빌딩의 문 옆에 붙어섰다.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건물 안을 들여다봐도 건물 안은 조용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찬열이 인상을 찌푸렸다. 빨간 패딩 후드를 뒤집어쓰고 회색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인 찬열을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찬열은 그 시선들이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백현이 언제쯤 나오는지에만 온 말초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왜 안 나오지? 찬열이 작게 중얼거렸다. 초조한 듯 연신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숨기를 반복했다. 그 때, 조용한 복도에 일층으로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뒤따라 들리는 작은 한숨소리. 찬열은 이제야 백현이 나타났나, 싶어서 제 차 쪽으로 다시 살금살금 걸어가는데,
"1127, 차 빼세요. 92 가 1127, 차 빼세요."
주차단속반이 나타났다. 찬열이 눈을 크게 뜨고 허겁지겁 제 차 쪽으로 뛰어갔다. 아저씨, 차 뺄게요! 딱지만 끊지 마세요! 찬열이 그렇게 소리치며 긴 두 팔을 휘적거렸다. 야박하신 단속반 아저씨는 찬열이 차 문을 열 때까지 확성기에다가 찬열의 차 번호를 읊어댔다.
"1127. 92 가 1127."
지금 나를 놀리나, 찬열이 잔뜩 울상을 지었다.
"박찬열?"
단속반 아저씨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도, 찬열의 귀에 백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차 문을 열던 찬열의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너 못 온다며."
백현이 그렇게 말하며 찬열의 쪽으로 걸어왔다. 찬열이 아무 대꾸도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뭐라고 그러지. 찬열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백현은 차 문을 반쯤 연 채 그대로 얼어붙은 찬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 옷은 또 저게 뭐야. 백현이 백수가 따로없는 찬열의 옷차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모델이라는 게 옷을 저따위로 입다니. Passion B의 치욕이다.
그 와중에도 단속반 아저씨는 찬열의 차 번호를 읊어댔다. 찬열이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창을 열고 찬열이 고개를 내밀어 백현에게 소리쳤다.
"다음에, 다음에요!"
그렇게 말하고는 찬열이 허둥지둥 차를 빠르게 몰아 사라졌다. 백현이 한참동안 눈만 뻐끔거리다 찬열의 차가 쌩, 하니 사라지는 뒷꽁무니를 쳐다봤다. 뭐지, 이 불쾌함? 백현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내일 오기만 해봐, 진짜! 백현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생각했다.
레녹 |
안녕하세요! 레녹입니다!
브금이 질리기 시작했어요.. 어디 달달한 브금 없나여... 브금이 필요해! 으엉
암호닉은 정리후에 다음편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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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금 일곱시 연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