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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 잡아줘 (Music Box Edition ver.)
← 태형아
← 오늘도 늦어?
문자를 보내고 홀더키를 누르니 검은 화면에 기다림에 지쳐 시무룩한 얼굴이 비친다. 오늘도 회식이 있다고 언뜻 들었던거 같은데 많이 늦는건가? 뱌뺘도 답장 좀 해주지. 무릎을 두 팔로 감싸고 그 위에 고개를 파뭍었다. 똑딱똑딱. 일정하게 울리는 초침 소리에 맞춰 천천히 몸을 앞 뒤로 움직였다. 혹시라도 잠이 들면 안되니까.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답장이 왔을까 싶어서 홀더키를 눌렀다. 환한 빛때문에 가늘게 눈을 떠서 화면을 바라봤지만 아무런 알람이 뜨지 않았다. 새벽 2시. 평소라면 잠이 들고도 훨씬 넘는 시간.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느라 뻑뻑해진 눈커풀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아아, 자면 안돼. 태형의 잦은 회식때문에 요즘들어 늦게 자는 날이 많아졌다. 잠이 많은 편이라 기다리는게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매번 힘들게 일하고 온 태형을 반기기 위해 기다린다. 언제부턴가 기다림이 익숙해졌다.
"... 안 자고 있었네."
"왔어?"
도어락 풀리는 소리에 몽롱했던 정신이 점차 돌아온다. 정적 속에 나직히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현관 쪽으로 돌리니 아침과는 달리 흐트러진 모습의 태형이 눈에 들어온다. 반듯하게 매어졌던 넥타이는 반쯤 풀려있고,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려놓은 셔츠는 구겨져있다.
"많이 피곤하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고 있지. 내가 늦는다고 했잖아."
소파에서 내려와 태형에게 한 걸음에 달려가니 그에게서 담배냄새와 술냄새, 그리고 태형의 것이 아닌 낯선 사람의 희미한 향수냄새가 뒤섞여 나는 쾌쾌한 냄새가 코 끝을 찌른다. 살짝 비틀거리는 걸음이기에 그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말하니 조금 날이 선 예민한 말투로 답했다. 아마 늦은 시간까지 자신을 기다린 내게 미안해서 그런듯싶다.
"너가 안 들어오는데 어떻게... , 어떻게 내가 마음 편히 자..."
내 말에 태형은 자신의 팔을 붙잡은 손을 놓으며 한숨을 쉰다. 깊고 긴 한숨에서 느껴지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 허공을 배회하는 팔을 움츠렸다.
"여주야."
"... 응."
"제발... 나 기다리지마. 어? 피곤하면 자라고."
빨갛게 충혈된 눈을 보고 태형은 오히려 화를 낸다. 속상한지 표정이 한껏 구겨져있다. 답답한듯 머리를 쓸어넘기는 그에게 내가 한마디 했다간 싸움으로 번질거 같아서 일단 씻고 오라는 말을 하니,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보다가 추욱, 힘이 빠지는 몸을 이끌고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 이럴려고 나는 태형을 기다린게 아니다. 내가, 내가 잘못한걸까? 침대에 몸을 던져 천장을 바라봤다. 꿈뻑꿈뻑. 자려고 누웠는데 어쩐지 잠이 다 달아난거같다. 원래 잘 싸우는 편이 아니었는데, 태형이가 화를 내는 편이 아니었는데 요즘 부딪히기만하면 끝이 없는 감정싸움으로 이어진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걸까? 아니면... 아니면... 울적해진 기분에 눈커풀을 내리고 몸을 움츠렸다. 우린... 권태기인걸까?
씻고 나온 태형은 침대에 누웠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감은 눈을 떴다. 눈에 가득 담긴 태형의 등. 언제부턴가 태형의 등을 보며 자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한 침대에 누운 우리 둘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게 느껴진다.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며 파고 들었다.
"자?"
"... 아니."
"태형아"
"어."
"사랑해."
그러자 등을 통해 웅웅, 울리는 태형의 목소리.
"피곤해서, 예민해서 그랬어. 언성 높여서"
요즘 너에게서 '사랑해' 보다 더 많이 듣는 말.
"미안해."
잔열의 연애
애인발견 씀.
자그마치 8년. 스무 살에 만나서 지금까지 태형과 함께 한지 8년이다. 우린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본의 아니게 선배고 동기고 내게 다가오는 남자들마다 철벽을 쳤고, 나를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14학번 철옹성이었다. 그런 나에게 봄바람을 타고 온 한 사람.
"괜찮아?"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들이 따라준 술을 연거푸 마신 탓에 띵해진 머리를 부여잡고 잠깐 술집을 나와 계단에 앉아있었다. 술도 잘 못 마시는데 자리가 자리인지라 좀 무리했던게 문제였는지 속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끙끙대며 계단에 앉아있던 중에 불쑥 머리 넘어로 들리는 나에게 한 듯한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초코우유를 건내고 있는 태형이 보였다.
김태형.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 쯤 태형의 얼굴을 보려고 했을거다. 잘생겼으니까. 우리 과 뿐만 아니라 소문은 널리 퍼졌고, 태형은 학교에서 꽤나 알아주는 유명인사였다. 어찌나 잘생겼는지 나도 가끔 수업을 듣다가 살짝 보이는 태형의 얼굴을 보고 감탄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성격도 활발해서 그의 주위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딱히 태형과 친해질 기회도 없었고, 그냥 얼굴만 아는 같은 과 동기일뿐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태형이라 조금 놀랐다.
"힘들어보이는데 더 마실 수 있겠어? 힘들면 집에 데려다 줄게."
"아... , 아니야. 조금 쉬면 괜찮아져."
갑자기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 태형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혼자있으면 외롭잖아."
라고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아무 말이 없는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흘렀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신기했다. 태형의 옆에서 낯을 가리지 않는 내가.
그 이후로 우리는 수업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자연스레 서로의 옆자리를 맡아 같이 수업도 듣고, 도서관에서 같이 시험공부를 하고, 손을 잡고 같이 영화를 봤다.
"주야."
"어?"
"사랑해."
"... 나, 나는 별... 로."
"그래도 나는 사랑해."
표현이 서툰 나와는 다르게 태형은 끊임없이 나를 보며 표현해줬다. 사랑한다는 말에 싫다고 튕기니 없던 귀가 보이는 마냥 추욱 접힌다. 툭툭, 건들이면 반응하기에 태형은 놀리는 맛이 솔솔하다. 자신이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을 베푸는 그런 사람이었다. 태형은.
나는 그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사랑받는 법을 익혔다.
"야아... , 좀 나, 나와봐 ...!"
불쑥 나를 품에 가두었다. 등을 툭툭 쳐보지만 오히려 더 빈틈없이 바짝, 나를 안는다. 주먹을 말아 쥔 손을 풀고 나도 태형의 허리를 감쌌다. 품에 쏙 들어가는게 기분이 묘하게 좋다. 마치 태형의 품이 나를 위한 것인거 같아서. 두근두근. 빠르게 들려오는 심장 소리도 좋고, 내 허리를 감싸는 팔도 좋고, 그냥 다 좋다.
우리는 태형이가 제대하는 데로 동거를 시작했다. 2년이라는 비어버린 시간을 채우려고 우리는 더욱 불타는 사랑을 나누었다. 뜨거웠고, 또 뜨거웠다. 서로가 없이 흐르는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태형아 과일 먹을래?"
"웬 과일?"
"아까 장보다가 맛있어보이길래 좀 사왔어. 너 자두 좋아하잖아."
설거지를 하고 있는 태형의 허리를 감싸며 말하니 좋다는듯 씨익, 웃어보인다. 얼마 안 남았으니까 다 하고 먹자. 먹기 좋게 자두를 접시에 담아서 가져가자 바닥을 탕탕, 치며 앉으라고 하기에 태형의 다리 사이를 비집어 내 조그만 엉덩이를 그 사이에 안착시켰다.
"아구 편하다."
씨익, 웃어보이니 못말린다는 듯이 코를 살짝 툭 치던 태형이 자두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어준다.
"맛있어?"
"응. 엄청 달다."
오물오물 자두를 씹고 있으니 다정스레 나에게 물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를 바라보는 태형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달다. 자두보다 더. 역시 저녁을 먹고 먹어서 그런지 금방 배가 불렀다. 태형도 마찬가지인듯 접시에 남은 자두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시 자리에 앉자 태형은 빈 손이 된 내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같이 사니까 너무 좋다. 매일 눈뜨면 보이는게 주야, 너라서 너무너무 좋아!"
"나도. 너무 좋아. 태형아."
따뜻하다. 태형의 품은 따뜻했고, 포근했다.
침대에 누워 태형이 해준 팔베개를 베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잘조잘 얘기하다가 고개를 올려 천천히 태형의 얼굴을 눈에 담기 시작한다. 내가 봐도 잘생겼는데 남들은 오죽할까. 새삼 또 한번 느끼는 태형의 잘생김에 손을 들어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보들보들. 피부도 좋아.
"안되겠어."
"뭐가?"
"우리 결혼할까?"
볼을 쓰담던 손을 잡고는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태형이 말했다.
"태형아."
"... 응?"
"너랑 나랑 어느정도 자리잡히면 그 때 우리 결혼하자."
그 때가서 해도 안 늦어.
"알았어. 내가 더 멋있는 사람이 되서 그 때 다시 청혼할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이 때로 되돌리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와 버린걸까.
"... 안 갈래. 가기 싫어."
"이러다가 비행기 시간 늦어. 얼른 일어나."
"그래두..."
"1년 금방이야. 2년도 기다렸는데 1년이라고 내가 못 기다릴거같아? 1년은 진짜 더 금방이야."
다시 함께하는 것도 잠시, 태형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큰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입사 하기 전에 외국에 나가 커리어를 쌓고오라는 권유에 파리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공항에 가기 전, 씻으러 가라는 말에 화장실에 안 가고 팔로 내 허리를 감싸고 안 놔주는 태형의 팔을 놓으며 말했다. 우리는 견뎌낼 수 있잖아, 그치?
"못 기다려... 내가 힘들어 주야."
"... ..."
"보고있어도 보고싶은데 이제 겨우 이렇게 행복한데. 어떻게 또 1년을 버텨..."
그렇게 드문드문 오는 연락을 기다리길 1년. 태형의 1년 부재 동안에 나는 회사에 취직해서 조금씩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서 취직한 곳은 광고기획. 내 생활을 하다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고, 태형이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에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공항으로 달려갔다. 게이트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태형을 놓칠까봐 이리저리 바삐 눈을 굴렸다.
"... 임여주."
"태형아!"
"나 왔어."
"보고싶었어. 정말 많이."
"... 나도"
거의 1년만에 안긴 태형의 품은 뭐랄까 조금 달라졌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예전보다 식었다는걸.
잔
열
의
연
애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고 문자를 보냈는데 태형에게서 연락이 없다. 회사 일이 바쁘다고 듣긴했는데 중간에 연락 한 통 못 할 정도로 바쁜걸까? 집에 오면 대화는 커녕 피곤해서 잠들기 일쑤였다. 회사 일이 바빠지고, 태형이가 승진하게 된건 참 좋은건데 어째서 나는 예전이 더 좋은걸까. 태형이가 돌아오면 우린 다시 예전처럼 행복해질거라 생각했다.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내 곁에 태형이 있는데도 태형을 기다린 1년보다 더 외롭다.
"네, 어머님."
전화를 받았다. 수신자 태형이 어머님. 오랜만에 듣는 어머님의 목소리는 조금 무거웠다. 수화기로 넘어로 들려오는 그만 우리 태형이를 놓아달라는 말. 내가 언제부터 태형이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거지. 끊긴 전화기를 잡고 멍한 정신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태형이가 선을 봤고, 지금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 태형의 앞 날을 위해 헤어져라. 분명 태형의 의지가 아닐거다. 나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날 태형이가 아니다.
컴퓨터 앞에 앉은지 2시간째, 머릿 속이 복잡해진 탓에 도통 작업이 진전되지 않는다. 금요일까지 마감해야되는 작업이라 빠듯한데.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 조금 안된 시간.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 할게 분명해서 나갈 준비하려고 의자에서 몸을 뗐다. 며칠 전에 태형이에게 주려고 백화점에서 산 넥타이가 든 쇼핑백을 잊지 않고 챙기고서야 집을 나섰다. 태형에게로 가는 발걸음이 점차 빨라진다. 당장이라도 태형이가 보고싶어서. 태형의 얼굴을 보면 복잡한 머릿 속이 좀 나아질까 싶어서.
"태형씨, 오늘 부모님이 보자고 하시는데 저녁에 시간 돼?"
"시간? 어... , 아마 될거같아."
회사에 가까워지자 때마침 들어오는 익숙한 뒷모습에 발걸음을 조금 천천히 했다. 오늘 아침에 다려준 개나리색 와이셔츠를 입고있는 사람은 분명 태형이가 맞다. 입을 열어 그의 이름을 부를려고 할 때, 불쑥, 그의 팔을 잡으며 해사하게 웃고 있는 낯선 여자가 보인다. 아무래도 선을 본 여자가 저 여자인듯싶다. 어깨에 닿는 웨이브 진 단발머리, 몸에 딱 맞는 원피스. 나와는 비교되는 그런 고급짐이었다. 누가 봐도 태형의 옆에 선 여자는 예뻤다. 그런 여자를 굉장히 익숙한듯 받아주는 태형에게서 예전의 모습이 보인다. 나만을 바라봐주던 태형의 다정한 눈빛은 지금 저 여자를 향해 있고, 나를 어루만져주던 따뜻했던 손길 또한 내가 아닌 저 여자을 향해 있다.
← 태형아
← 오늘도 늦어?
← 오랜만에 외식할까?
→ 미안 나 야근이니까. 먼저 저녁 먹어.
울리는 진동에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태형에게서 답장이 왔다. 야근이라...야근... 내게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태형이가 지금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임여주?"
"... 아."
"태형씨 보러온거야?"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기에 돌아보니 정국이었다. 내 고등학교 동창이자, 태형의 직장돌료. 각자의 생활을 하다보니 연락이 끊겼다가 저번에 한번 빠트린 태형의 서류를 챙겨주느라 회사에 갔을 때 본 이후로 다시 연락이 됐다.
"태형씨 나간지 얼마 안되서 지금 가면 만..."
"아... , 아니. 그게 ... 어디가던 길에 잠깐 들린거라 좀 있다 봐도 돼."
"어쨰 저번에 봤을 때보다 살이 더 빠진거같다. 태형씨가 굶겨?"
아니. 나 다이어트중이야. 라고 말하며 고개를 세게 저으니 농담이라고 웃는 정국이다.
"다이어트하다가 몸 상해. 다음에 태형씨랑 같이 보자."
"그래. 연락할게."
잘 올라가지도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정국은 태형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는듯하다. 회사사람이 아닌건가.
인사를 하고 몸을 돌아섰다. 나는 오늘 태형이의 회사를 안 갔다. 나는 오늘 태형이를... 못 봤다. 한 걸음 한 걸음. 부들부들 떨리는 발을 내딛는게 얼마나 힘든지. 몇 걸음 채 못 가서 그만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임여주!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너무, 너무 힘들어.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집어삼켰다. 내가 주저 앉은걸 봤는지 조금 커진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헐레벌떡 오는 정국. 혹시라도 내 이름을 부르는 정국의 목소리가 태형의 귀에 들어갈까 부축을 받으며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 멀리 갔을테니 듣지 못했겠지.
"여주야."
아아, 결국 들었구나. 머리 넘어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앞에 태형이 서있었다.
"태형아."
"... ..."
"왜 말 안했어?"
우리는 가까운 카페에 들어왔다.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에는 어느새 송글송글 물기가 맺혔다. 긴 침묵 속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날이 선 말투가 아니었다. 그저 담담히 뱉어 냈다.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떨구는 태형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있다. 왜 내가 오해하고 있는거라고 말을 못 해. 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거야.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응? 그저 태형은 미안하다는 말만 할 뿐, 아무 말도 내게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변명도.
"정말 미치게 사랑했어. 철없이 예뻤던 순간들, 우리가 뜨거웠던 순간들, 나는 아직도 다 생생히 기억해."
"... ..."
"나만, 나만 그대로였던거 같아. 태형아."
"... 미안해."
"아니. 미안해 하지마. 있잖아 태형아."
나 없이 행복하란 말 못하겠어. 우리가 함께한 추억들이 너를 평생 괴롭혔으면 좋겠어. 꼭 그러길 바라.
"우리... , 그만하자 이제."
마지막을 고하는, 물기 젖은 내 목소리는 너의 눈에 고인 눈물보다 먼저 흘러나왔다.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에 태형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 가득 담기는 태형의 모습은 마치 비에 젖은 강아지 같았다. 옆에 놔두었던 가방과 쇼핑백을 들고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떠났다.
길 가에 놓인 쓰레기통에 쇼핑백을 구겨 넣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 들어오는 처참히 버려진 쇼핑백이 마치 나인거 같아서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훔쳤다. 혹시라도 내게 뒤늦게 올까싶어서 카페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8년간의 긴 연애의 종지부를 찍었다. 나만 놓으면 됐던 연애의 끈을 드디어 놓았다.
난 너를 지울 수 있을까
우린 남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못 할 수도 있다. 아니, 못 하겠지. 남은 미미한 잔열이 나를 괴롭히겠지.
結
&
쌈, 마이웨이에 나오는 주만설희 커플을 보고 권태기 커플에 대해 써보고싶어서 쓴 글이에요!
드디어 연애 시리즈가 완결되었네요. ㅎㅅㅎ
신알신을 하신 분이 벌써 50분이래요! 넘모 행복해여.ㅎㅅㅎ
도짜님덜 충성충성 ^^77 애정함다 ♥
COMING SOON!
BATTLE LOVE
또라이 재벌 2세 김태형 X 또라이 직업미정 여주
시놉 : 또라이와 또라이의 만남. 재벌 2세인 태형이는 모든 걸 다 가졌다. 그래서 무서운 것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싸가지도 없는 안하무인. 외모가 너무 비범해서 팬카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 태형의 앞에 이제껏 본 적 없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태형 못지 않게 또라이인 여주. 첫만남에서 깽판치면서 싸웠다면 말 다 했지. 그런 이 둘의 정략결혼 기사가 터졌다? 둘은 과연 순순히 받아들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