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 많이 벌어서, 우리 가족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줄게.
우리 가족이라 하면 그 자신과 여주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교통 사고로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잃고 소년가장이 된 오빠는 그런 진부한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막노동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는 주제에, 그 포부만큼은 꽤나 진지해서 여주는 오빠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입을 꾹 다물고 애꿎은 노란 장판 바닥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야, 우냐? 한 번은 오빠가 몸을 잘게 떨며 도무지 고개를 들 생각을 않는 여주에 당황해서 그녀의 고개를 억지로 들어올렸다. 아 뭘 이런 걸 가지고 감동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며 눈에 고인 눈물 때문에 처음에는 정말 우는 줄 알고 안절부절 못해하던 오빠는 이내 들리는 킬킬거리는 웃음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들고있던 젓가락을 내팽겨쳤다.
야 죽을래?
그리고서 오빠는 여주를 보고 그렇게 소리쳤다. 부엌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있던 여주는 문득 오빠의 목소리를 듣고 어깨를 움찔했다. 그 병신, 약해 빠져가지고 할 줄 아는 제일 심한 욕이 야, 죽을래였지 아마. 떠오르는 옛 생각에 여주는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대체 어디서 찾아온건지 부모님이 즐겨 쓰시던 회초리를 들고 여주를 쫒아오던 오빠와 그때까지도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미친년처럼 피해다니던 여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달동네라 둘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골목을 타고 퍼져 주민들의 잠을 깨웠고 결국 머리가 하얗게 센 옆집 아저씨가 쌍욕을 하며 현관을 쾅- 치고 가서야 남매의 싸움은 일단락 되었다. 이불 속에 숨어 옆집아저씨의 성질머리를 씹으며 낄낄대다 잠에 든 여름밤. 그래, 그런 날도 있었다고.
여주는 웃으며 추억을 곱씹다가, 결국 무미건조하게 끝을 더듬는다.
오빠는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문을 박차고 나섰다. 빳빳한 경첩이 내는 듣기싫은 마찰음 뒤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바닥에는 초록색 소주병이 나뒹굴고, 부엌에는 라면을 끓이려고 물을 받혀둔 양은냄비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타고 있을 뿐이었다. 어린 여주는 모든 것이 엉망으로 꼬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한참을 멍청하게 굳어있던 여주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움켜쥐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오빠가 자살할 것 같아요. 여주는 제가 누른 번호가 119인지 112인지도 모르고 앵무새처럼 그 말만 반복했다. 오빠가 집을 나갔어요. 걔 곧 죽어요. 살려주세요. 두서없는 신고전화에 통화 안내원은 한숨을 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아니 오빠분이 어디로 가신 건데요 대체.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 여주의 머리가 새하얗게 꼬여갔다. 난 걔의 하나 뿐인 혈육이니까, 걔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거야. 여주는 전화를 끊고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막상 나와보니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어서 여주는 그냥 발이 닿는대로 뛰었다. 한참을 헤메이다 좁은 골목 어귀를 도는데,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빠의 파란 트럭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여주는 순간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섰다.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피실피실 나왔다. 이 미친 새끼.
여주는 상념에서 빠져나오려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발바닥 긁힌 상처에서 난 피가 아스팔트를 적시는 장면 대신 방바닥을 놔뒹구는 주황색 라면봉지가 보였다. 오빠가 제일 좋아하던 삼양라면 봉지가. 그렇게 갈 줄 알았으면 돈 안 준다고 지랄하지 말고 이거나 먹이고 보낼걸. 여주는 면발을 집다말고 은회색 젓가락을 빨간 국물 속으로 쳐박아넣었다. 째깍. 약이 닳아 잘 움직이지 않는 작은 바늘이 힘겹게 12시를 가리켰다.
오빠의 기일이었다.
순환고리
w. 악어새
열 여섯. 여름.
3일장을 치뤘다. 장례지도사는 어린 여주가 상처받을까 기를 쓰고 만류했으나, 여주는 꿋꿋하게 오빠의 마지막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오빠의 시신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특히 얼굴쪽은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욱, 여주는 헛구역질을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 될 것이다. 그래도 여주는 후회하지 않았다. 저 마저도 외면한다면 오빠를 기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여주 오빠가 김태형네 차 트럭으로 들이받았대.
헐 진짜?
그래서 김태형 다리 작살나고 여동생은 거의 죽기 직전이라는데.
미쳤다. 김태형 육상부잖아.
며칠만에 발걸음한 학교는 온통 그 일로 소란스러웠다. 여주는 입술을 꾹 깨물고 교실 뒷문을 열었다. 수십개의 시선이 작은 몸에 박혔다. 뉴스에서는 몇 십 년 만의 폭염이라고 한창 떠들어대던데 여주의 몸에는 시린 오한만 들었다. 여주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간신히 제 자리를 찾아갔다. 제가 숨 쉬는 것도 고깝게 보는 판에, 행동 하나하나에 미움을 사는 것이 뻔해 여주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자연스럽게 굳혔다.
존나 뻔뻔하다. 어떻게 학교 나올 생각을 하지.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여주는 점차 그런 냉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건데. 그런 뻔뻔한 마음도 슬그머니 여주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 당당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여주를 보며 아이들은 제 화풀이 할 곳을 찾았다는 듯 여주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그래도 여주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저에겐 고개 빳빳히 쳐들고 다닐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난 다 괜찮아. 여주는 대체 뭐가 괜찮은지도 모르면서 속으로 그 문장을 수천 수만번씩 외우고 다녔다. 그러니까 정말 괜찮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로, 다 좋아질거라 생각했다.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내려간 탓에 텅텅 빈 학교엔 여주 밖에 남지 않은 듯 싶었다. 입맛도 없고 해서 혼자 교실에서 문제집이나 끄적이려고 가방을 뒤적거리던 여주의 눈에 지민의 체육복이 들어왔다. 아 맞다, 체육복. 여주는 멍청하게 입을 벙긋댔다. 돌려줘야지, 돌려줘야지. 속으로만 생각하다가 벌써 2주가 흘렀다. 지민과 태형은 같은 반이라 그 곳을 제 발로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가방 안쪽에 쳐박아 둔 것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여주는 체육복을 들고 복도를 나섰다. 아 박지민 자리 어딘지 모르는데. 체육복을 어디다 두고와야 할지를 고민하는데, 별안간 복도 끝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여주는 헛숨을 들이켰다. 반으로 가는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김태형."
태형은 빈 교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 미련한.. 여주는 속으로 욕을 짓껄였다. 괜찮은 척 애들을 보내고 여태까지 끙끙댔을 것이 눈에 선했다. 아무리 흔들어도 태형은 앓는 소리만 낼 뿐,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여주는 손으로 태형의 머리를 받쳐 올렸다. 이마에 닿는 차가운 손에 태형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바닥에 고정된 풀린 동공에 조금씩 이채가 돌았다. 아. 태형은 그제야 제게 닿은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팔을 들어 가볍게 뿌리쳤다. 여주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순간 허벅지에 타는듯한 통증이 일었다. 태형은 옅게 신음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여주는 놀라서 태형의 허리를 받혀들었다. 체구 차이 탓에 거의 안긴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태형아 병원가자. 너 병원 가야 해."
"닥쳐."
말은 밉게 하면서 몸이 점점 제 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니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여주는 덜컥 겁을 먹었다. 귓가에 태형이 앓는 소리가 윙윙 울렸다. 김태형. 정신차려. 김태형. 태형아.. 태형의 이름을 부르는 여주의 목소리에 점차 물기가 서렸다. 한참을 휘청이던 태형은 힘겹게 여주를 밀쳐냈다. 여주의 두 눈이 토끼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보였다. 태형은 저도 모르게 여주의 눈가를 살살 쓸어올리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가녀린 여주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흑. 여주는 갑작스레 막힌 숨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니가 다 망쳤어."
태형이 악에 받친 눈동자를 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주는 그 순간에도 잘못 움직였다가 태형의 다리를 건들일까봐 목을 움켜쥔 손만 손톱으로 긁으며 아둥바둥거렸다. 태형은 손에 생기는 생채기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한 번 더 세뇌시키듯 내뱉었다. 니가 다 망친거야. 잔뜩 오른 체온 때문에 태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겁에 질려서 계속해서 무의미한 반항을 반복하던 여주는, 마지막 태형의 한마디에 두 팔을 바닥에 힘 없이 떨구고 말았다.
"..대체 왜 날 살렸어."
오늘은 오빠의 기일이고,
오빠의 기일이자 태형의 일상이 처참하게 부서진,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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