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Cards
06. 죽은 사람들
“형, 나 꿈 꿨다.”
“꿈?”
응. 우진이 고갤 끄덕였다. 채 젖살도 다 안 빠진 얼굴이 수면 부족으로 인해 더욱 더 팅팅 부어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한 우진의 목을 꽉 묶인 넥타이가 졸랐다. 겨우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엉망진창으로 챙겨 입은 정장이 이질적이었다.
“원장님이 나왔다.”
“……”
“내한테 살려달라카대.”
부루퉁한 사투리가 귓전을 때렸다. 형, 원장님 진짜 죽었나? 우리 다시 집으로 못 돌아가나? 형의 표정이 묘했다. 제 손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우진아.”
“……”
“우리 강해져야 된다. 그제?”
“……”
“맞제?”
“……맞다.”
그래. 그가 우진의 어깨를 다잡는다. 맘 단디 먹자. 우리 강해져야 된다. 강해져서, 돈 마이 벌어서, 나쁜 놈들 다 때려잡을 꺼다. 원장 선생님 죽인 그 놈들도, 우릴 이렇게 만든 그 새끼들도, 싹 다 잡아 족칠 꺼다.
“우진아.”
“……”
“형은 너 믿는다.”
근데 형, 강해지려면 꼭 사람을 죽여야 돼?
우진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10살의 우진은 입을 다물었다. 그건 형이라도 대답하기 힘들 것이라는 암묵적인 이해였다. 형, 강해지고 나면 사람을 안 죽여도 돼? 강해지면 형이랑 나랑 진영이랑 아무도 안 건드릴까? 사람을 죽이면 강해지나? 그럼 우린 은제 강해지는데?
“우리 조금만 더 참자.”
“……”
“나중에, 나중에 우리가 진짜 강해져서, 돈 마이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게 되면-“
“……”
“그땐 우리 놀이공원 가자. 형이랑, 우진이랑, 진영이랑 셋이서.”
“……”
“응?”
“……응.”
그게 10살의 박우진을 살인자로 만들기엔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유였음을 우진은 몰랐다.
훌쩍, 우진이 제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냈다. 갑자기? 울어? 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나는 엉거주춤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축축히 젖은 눈가를 눌러 비비고 나서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고마워요.”
“……”
“저한테 필요했던 말이에요.”
여전히 풀려있는 눈과, 쉽사리 혈색이 돌아오지 않는 얼굴과, 힘없이 처진 어깨와. 나는 그에게서 명백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겨우 몇 방울의 눈물을 흘린 것답지 않게 한바탕 울고 나서 지쳐버린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꿈을 꾼 지 십 년이 다 되가는데.”
“……”
“한 번도 중간에 깨어난 적 없거든요.”
지친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아, 그건 언제나 ‘괜찮아, 그건 꿈이니까.’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내 것과 퍽 닮아있었다.
“저도 그래요.”
“……”
“저도 십 년 동안 악몽을 꿨어요.”
“……”
“아무도 깨워주지 않았죠.”
원래 꿈이란 건 그런 거에요. 날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초점 없이 깊다. 맞아요. 내가 백날 설명해봤자 아무도 그 고통을 이해 못하죠.
“꿈 하나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사람들이 알 턱이 없죠.”
“……”
“그저 하룻밤의 꿈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난 십 년 동안 그 악몽을 봐왔는데,”
언제나 꾸준한 게 가장 잔인하죠, 익숙해지지도 못하니까. 그는 마치 책을 읽어내려 가듯 말했다. 담담한 그의 말 한 마디가 묵직하게 바닥에 내려앉는다.
“횟수는 관계없어요, 어차피 매번 새로운 고통이었으니.”
“……”
“현실에선 구면이지만 꿈 속에선 늘 초면이었죠.”
까무잡잡한 그의 볼 위로 텁텁한 그림지가 진다. 이렇게까지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나? 그는 흡사 작가처럼, 마치 시인처럼 말을 했다. 누군가 자기연민에 도취된 채 썼을 법한 수필을 그는 혓바닥으로 술술 써내려 간다. 중간 맥락이 뚝 끊긴 문장들과, 감상에 도취된 채 툭툭 튀어나오는 스스로를 향한 동정들.
“책에서 읽었어요, 꿈은 내 무의식이라고. 꿈 속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다 내가 언젠가 한 번씩 스쳐 지나간 것들이라고.”
“……”
“날 스쳐간 모든 것들이 날 싫어했나,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그냥 되는 대로 뱉은 말들이 무더기처럼 쌓였다. 한 번도 남 앞에서는 해본 적이 없는 얘기들이 술술 튀어나왔다. 마치 그 동안 쓰지 않아 녹이 잔뜩 슨 수도꼭지를 그녀가 억지로 틀어버린 것 같았다. 여과되지 않은 녹물이 줄줄 쏟아져 나온다. 그녀는 기다린다. 깨끗한 물이 나오기를.
아니야, 기다리지 마. 썩은 물만 가득하니까.
“……갑자기 왜 이 얘기를 하고 있지?”
이젠 머릿속 생각들마저도 거침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웃기네, 별 같잖은 얘기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미친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빌어먹을 이 놈의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아. 어떻게 좀 해봐. 나는 이런 말을 하는 게 처음이고, 아니, 대화를 하는 것도 익숙지 않고, 이 모든 게 다 어색하고, 도와줘. 수도꼭지를 틀었으면 물이 넘치기 전에 잠글 줄도 알아야지.
“……어쩌다 이런 얘기가 나왔죠?”
“……”
“……그만, 미안해요. 잠이 덜 깨서……”
“괜찮아요. 전 좋은데.”
제발,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물이 넘치기 전에 수도꼭지를 잠가. 나는 녹슬고 썩은 물밖에 뱉을 수 없어. 기다려도, 아무리 기다려도 깨끗한 물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단 말이야. 그만해. 더는 썩은 물을, 썩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십 년 동안 악몽을 꾼 사람들이잖아요, 우리.”
“……”
“어디 가서 못할 얘기죠, 다 큰 성인 둘이서.”
그만해.
“……우진 씨 악몽에는 뭐가 나와요?”
아니야, 싫어. 입 다물어 제발. 닥쳐.
“……죽은 사람들.”
썩은 물이 흘러 넘쳐.
“죽은 사람들.”
늦은 오전, 서로 눈을 뜨자마자 나눌 얘기는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죽은 사람들’이란 말이 나오자 더 확실해졌다. 우진은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는 제가 질려버린 건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야기하기 싫어, 적나라했다. 따뜻했던 분위기는 한 순간에 식어버렸다. 아, 그가 고개를 떨군다. 그 뒤통수에 후회와 자책이 그득했다.
“……그것도 우연이네요.”
“네?”
“제 악몽에도 죽은 사람들이 나오거든요.”
“……”
“악몽은 언제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만 잔뜩이죠.”
그러니까 악몽이지만. 동그란 눈동자 두 개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처럼 볼 건 아니지 않을까……? 갑자기 어색해져 버린 분위기에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큼, 아무튼, 그냥 그렇다고요.”
“……”
“……아, 배 안 고파요? 집에서 이것저것 가져왔는데. 급해서 제대로는 못 챙겨왔지만.”
아니면 우리 뭐 시켜먹을까요? 아, 아침부터 배달음식은 좀 그런가? 어때요? 오히려 조금 더 과장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나를, 그는 조용히 침묵을 유지한 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얌전한 얼굴로 지내는 그의 시선이 내게 닿으면, 덩달아 나도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우진 씨, 내가 그렇게 부르려고 할 때였다.
“고마워요.”
“……”
“……이름 씨는 꼭 소설처럼 말을 하네요.”
“……”
“……고마워요.”
내가 그를 보고 생각했던 문장을,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작가……니까요.”
“……그렇네요.”
그리고 그는, 지난 3일간 내가 본 그의 얼굴 중 가장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 난대요, 그렇게 놀려주고 싶을 만큼 느슨하게.
“……오늘이 며칠이지?”
“오늘? 21일.”
왜? 공책에 못생긴 공룡 따위를 끄적이던 진영이 물었다. 늦어. ‘그’가 중얼거렸다. 우진이 형?
“간 지 한 3일 됐지?”
“……”
“하긴, 늦어도 아침에는 왔었어야 했는데.”
“내 명령은 그날 밤까지 였어.”
“에이- 뭘 또. 일하다 보면 좀 늦어질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안 그래?”
아니야, 그가 입술을 짓씹었다. 느낌이 안 좋아. 내가 요구한 데드라인은 그 다음날 해가 뜨기 전까지였어. 그가 습관처럼 혀를 찼다.
“보안국 뚫는 게 뉘 집 애 이름인 줄 알아? 알아서 잘 하겠지.”
“……”
“애초에 요구한 건 보안망에 혼선을 주는 거였잖아. 아직 스페이드 경보도 해지 안됐다며?”
“……”
“걱정 마, 우진이 형이잖아.”
진영이 가벼운 투로 말했다. 박우진. 그가 입 안에서 혓바닥을 굴렸다. 하지만 어째서 경보가 해지되지 않는 거지? 우진을 잡았으면 그거대로 경보가 해지되었어야 하고, 놓쳤으면 우진이 무사히 이쪽으로 귀환했을 터이다. 성가시게 하는군.
“아 참, 내일 회담이라며. 나도 가?”
“가야지, 박우진이 내일 아침까지 안 온다면.”
“……그럼 가서 물어 봐, 스페이드한테.”
“……”
“우리 애 어디 있냐, 우리 애 내놔라-“
임마, 남의 도시에서 깽판치고 다닌다고 광고할 일 있나? 아님 말고. 진영이 듣는 둥 마는 둥 대답하고는 다시 제 공책으로 신경을 쏟는다.
“……우리, 애.”
다니엘의 눈 밑으로 탁한 그림자가 졌다.
*
안녕하세요 부기옹앤옹입니다!
이 놈의 꿈 얘기......제가 쓰면서도 지긋지긋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빠른 전개로 달리도록 할게요
언제나 읽어주시고, 피드백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도 내일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얄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