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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비가 몇방울씩 툭툭 떨어지는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회색 시멘트로 칠해진 길에 물방울이 선명하게 남는다. 곧 비가 쏟아져 내릴 것같은 빛이 없는 하늘.
나는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기에는 아직 멀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내리는게 아니라 쏟아져 내렸다.
천이 얇은 단화를 신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커피숍에서 잠깐 비를 피했다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기다릴 그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그에게,비를 잠시 피하느랴 조금 늦었다고 말한다면 화를 낼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에 "택시를 타고 오면 됐잖아."라고 덧 붙일 사람이다.
지금처럼 무작정 비를 맞고 뛰어 온다면 미련하다면서 "택시를 타고오지 그랬어."라고 말할 사람이 그 사람이다.
신발에 조금씩 물이 새어 들어와 양말이 젖는게 느껴졌다.
비를 맞는건 괜찮아도 양말이 젖는건 정말 싫었다.
어짜피 비를 맞으면 양말이 젖는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싫었다.
젖은 양말을 신고있는건 드라마의 열린결말 보다도 찝찝하다.
집에도 많은 우산을 살바에야 택시를 타는게 나에게도, 그에게도 득이라고 생각한 나는 재빨리 택시를 잡았다.
택시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오노은?"
나는 뒤를 돌아봤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검은색 우산을 쓰고 있는 남자.
그 남자는 나인걸 확인하고는 반가운 듯이 빗물을 탁탁 튀기며 걸어왔다.
그 남자는 우산을 내쪽으로 씌어주며 말했다.
"역시 오노은 맞네?"
그 남자는 여전히 반가운 듯이 씨익 웃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남자의 볼이 핑크빛으로 달아 올랐다.
나는 당황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약간 벌리며 멍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입을 다물었다.
"오랜만.... 전정국."
"우리 엄청 오랜만이다. 졸업하고 못만났으니까... 한 5년만인가 보네."
"그러게."
"그러게라니! 그게 다야? 너는 나 안반가운가 보다?"
"그럴리가 있겠냐."
나는 약간 웃으며 받아쳤다.
웃는게 어색하진 않았는지 마음에 걸린다.
내 볼이 후끈해진게 느껴졌다. 그 남자에게 이 모습이 보일까봐 고개를 살짝 숙였다.
-2-
나와 그 남자는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집에 있는 그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4년만에 재회인데. 그도 이해 해주지 않을까?
"뭐 마실래?"
정국이 나에게 물었다.
"아무거나."
말하고 나니 대답이 너무 쌀쌀맞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30분쯤 전에 커피를 마셔서 음료가 당기지 않아서기도 했다.
"쌀쌀맞기는."
혹시나가 역시나다.
그가 장난투로 말했지만,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평소에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나인데 정작 이럴때만 말을 안듣는다.
"너 단거 좋아하지? 아메키라노 한잔이랑 코코아 한잔 주세요."
-3-
커피숍의 구석에 앉고 난 후 1,2분동안 정적이 흘렀지만 별로 어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 지냈어?"
정국이의 목소리가 고르게 쉬고 있던 내 숨을 잠깐 멈추게 만들었다.
'표정관리하자.....'
"그냥 뭐... 취직준비하면서 지냈지. 지금은 번역일 해."
"그래? 재밌는 책 있으면 추천좀 해줘라."
"요즘엔 뭐... '처음이에요' 이게 재밌더라. 한번 읽어봐."
"야한거 아니야?"
"아,아니거든?"
정국은 킥킥 웃으면서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너는? 잘 지냈어?"
내가 말을 꺼냈다.
"나도... 거기로 유학가서 영어 배우고 온거지 뭐. 잘 지냈어."
"재밌었겠네."
"재밌긴 무슨, 내집이 최고라는 말을 실감하고 왔어.
홈스테이 주인집 딸이 얼마나 나를 싫어했는데!"
"나중에는 그게 다 추억이고 경험인거지..."
"늙은이 같은 소리하네. 우리 아직 20대야! 노은아!"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그맣게 웃었다.
평소대로 였다면 입을 가리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혹시 이에 뭐가 꼈을까봐.
나도 모르게 이런 제스처가 나왔다. 나 진짜 가지가지 한다 정말.
"유학 가 있으면서 고등학교 때 애들 엄청 생각났어."
"나도?"
나는 약간 장난투로 물었다. 이 한마디에 내가 물어보고 싶은 여러말이 들어있다.
내가 보고 싶었는지. 가끔 졸업 앨범 보면서 내 생각은 해줬을지. 나만 그런건 아닌지......
"아니."
정국이가 정색을하며 대답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네가 들어올 틈음 0.0001mm도 없다는 의미를 담은 표정이였다.
평소에 표정관리를 잘하던 나였지만, 지금 내 표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지금 표정은 정말 최악일 것이다.
"장난이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건 아니지?"
정국이도 내 표정을 읽었는지 능글맞게 장난이라고 방긋 웃으며 말한다.
"알아."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차갑게 대답해 버렸다.
-4-
"넌 남친은 있냐?"
정국이 물었다.
"남친은 무슨... 너야말로 여친 있어?"
"나야 뭐, 한국 들어온지도 얼마 안지났고, 만들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어."
"그러셔?"
정국이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쓴 웃음을 지었다.
"나 너한테 뭐 물어볼거 있어."
"뭔데?"
그 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기대하고 있는 내가 싫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별것도 아닌거 물어보겠지.'
"여자 마음은 여자가 안다잖아.
내가 유학가기 전부터 좋아하던 애가 있었는데
걔하고 다시 연락하고 친해지려면 어떡해야 돼?"
연애 상담 이였구나. 진짜로 친구한테만 한다는 연애 상담.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짜증나.......'
이젠 표정 숨기기도 포기한 나는 죽어가는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 걔 번호를 알아야겠지..."
"그 다음엔?"
"밥 한번 먹자고 해 봐."
"아, 오케이 오케이."
전정국 얘는 눈치도 없나? 내 표정이 이따군데 이런 얘기가 하고 싶을까?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있으니까 비참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바쁜척 시간을 확인하려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커피숍에 들어오고 20분 정도 지난 시각이였다.
"나 이제 그만 가봐야 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일어나자 정국이도 따라 일어섰다.
"벌써 가게? 나 아직 다 못 마셨는데."
"다 마시고 나와. 나 먼저 갈게. 일이 있어서."
문쪽으로 걸어 나가려고 할 때였다.
"야, 잠깐만!"
그 남자가 내 손목을 잡고 돌아세웠다.
"번호는 주고가야지!"
"나 진짜 빨리 가봐야 되거든? 좀 놔줘"
뿌리치고 나가려는 나를 정국이 다시한번 붙잡는다.
"야 오노은!! 우리 밥 한 번 먹자고."
거의 반사적으로 뒤돌아보는 나였다.
"번호 다음이 밥인데 네가 번호를 안주니까
바로 말한거다 뭐......"
나는 내 표정을 완전히 숨길 수 없었다.
내 볼은 멈추지 않고 계속 뜨거워졌고 심장도 누가 주먹으로
치는듯 크게 쿵쾅 커렸다.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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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예~전에 써놨던건데요 인티에 올리네요!
처음인데 재밌게 봐주셨다면 저느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