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고작 그 한 마디에, 나는 너라는 봄에 녹아들고 말았다.
그 해 3월, 어영부영 수험생 타이틀을 넘겨받은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대형 학원에 입성했다. ㅇㅇ도 이제 고3인데 동네 작은 학원 가지고 되겠냐는 의견이었다. 가족 중 누구도 하 여사의 강력한 주장에 반항할 허무맹랑한 생각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무난하게 레벨 테스트를 보고, 무난한 B반으로 배정받았다.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공부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진 못하는, 다시 말하자면 나와 같은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이 뻔했다.
한 마디로 나는 그저 학원 근처 여고에 재학 중인 평범한 수험생.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평범함에 딱히 반감을 가지진 않았다. 열아홉이면 제 분수는 알아야지. 속마음을 숨기는 것이 익숙해진 나는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여러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간혹 들리는 책상 끄는 소리들. 소음과 함께 시작된 나의 고3이었다.
혈기왕성한 남학생들만이 득실한 교실에서 다른 성별의 등장은 꽤나 큰 파장을 이루기 마련이다. 내게 던져지는 직접적인 질문이나 시선은 없었지만, 이따금 느껴지는 간접적인 시선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마저도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말씀 하나에 무너져 내렸기에 그냥 그렇게 지내게 될 줄 알았다. 그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교실 문을 열어 재끼기 전까진.
그 아이의 등장은 수업이 시작된 지 30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목이 터져라 미분을 설명하던 선생님의 안타까운 목소리는 벌컥 문을 열어버린 남학생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아, 쌔앰- 죄송해요. 독서실에서 잠이 들어버려서..”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그의 얼굴은 딱 자다 일어난 모양새였다. 살짝 부은 눈하며 잔뜩 눌린 머리카락하며 더불어 해맑게 지어보이는 미소까지. 그 미소를 보고 과연 어떤 사람이 그에게 해코지를 할까. 선생님 또한 다를 바는 없는 것 같았다. 잠시 흘겨보다 이내 고갯짓으로 자리를 가리키는 걸 보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적당히 낮은 목소리가 작은 교실 안을 맴돌았다. 그 아이는 말꼬리를 늘리는 습관을 가진 듯 했다.
내 짧은 다리론 열 걸음 정도인 책상까지의 거리가 그의 큰 보폭으론 대략 다섯 걸음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다섯 걸음의 정착지는, 딱 하나 남은 빈자리. 나의 옆자리였다. 발걸음을 좇아 자연스레 돌아간 내 고개에 예고 없이 마주쳐버린 그의 깊은 눈은 나로 하여금 아주 깊은 어딘가로 빠져들게 만든 듯 했다. 아, 그 아이의 눈이 예쁘게 접힌다.
“안녕.”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나는 고작 그 한 마디에, 너라는 봄에 발을 담구고말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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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요란한 등장 이후 수업에 방해 될 만한 요소는 없었다. 문제는 그 후, 장장 3시간의 수업이 끝난 후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을 맨 채 마주한 건물 밖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제 모습을 숨긴 해는 먹구름 깊숙이 빠졌고 그 밖은 얇은 빗줄기가 덮어가고 있었다. 그칠 기미가 없어 보이는 빗줄기에 급히 가방을 뒤져보았지만.
“....아.”
등교할 때 본 베란다에 활짝 펴져 있던 우산이 머리를 스쳤다. 분홍빛 우산은 내 것이 분명했으니 지금 내 가방엔 비를 막아 줄 무언가가 존재할리 만무했다. 비 맞는 거 싫은데. 하늘만큼이나 우중충해진 입꼬리는 올라갈 힘조차 없었다. 요즘 들어 자주 느끼는 우울을 곱씹는 새 더욱 거세진 빗줄기는 바람 때문인지 건물 입구에 서 있는 내 운동화의 위를 촉촉이 적셨다. 얼른 뛰어가서 씻든지 해야지, 뭐. 집까지 뛰어갈 생각을 마친 나는 대충 후드집업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곤 건물 밖을 다시 확인했다. 기분 탓일까 조금 전보다 더 세진 것 같아 급히 발을 내딛은 순간.
“저기.”
듣기 좋은 톤의 낮은 목소리가 손가락과 함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톡톡. 마치 어깨 위가 건반인 듯 부드러운 손길에 젖어버린 운동화는 방향을 틀어 그를 마주했다. 운동화 코가 서로 맞닿는다. 그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에 머물던 내 고개는 조금 올라가 눈과 만났다. 서로의 눈동자에 다른 모습의 서로가 비추자 그의 눈이 다시 한 번 예쁘게 접혔다. 그가 어색한 듯 제 머리를 괜히 한 번 헝클이곤 입을 연다.
“우산, 없어?”
툭 던진 물음에 그를 닮은 새하얀 운동화가 때 탄 내 운동화를 물들였다. 비록 맞닿은 아주 작은 부분 일 지라 해도 천에 스며든 무언가는 손쉽게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나재민. 교복 자켓에 파란 실로 곱게 수놓아져 있는 세 글자가 이와 같았다. 그 날은, 아주 미성숙한 첫사랑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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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남주는 재민이!!!!!우리 재민이 떡밥 실환가요!!!!! 나나야ㅜㅜㅜㅜㅜㅜㅜㅜㅜ
본편 아닌 점..죄송합니다ㅏ..저를 치세요 독자님들ㅜㅜㅜㅜㅜㅜㅜ제가 아직 실기를 보러 다니는 중인지라 제 글을 쓸 짬이 잘 나지 않네요..맛보기 보시고 용서해주세용헤헿 얼른 이거 마무리해서 들고 올게요!! 저 장면은 완전 초반이라 여주랑 재민이랑 서먹서먹하죠 허허 점점 친해진답니당! 이거 올리고 나면 마첫 다시 재가동입니닷 그럼 독자님들 굿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