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초전, 도를 아시나요. |
“아, 뜨뜨.” 입에 물고 있던 핫바에 혀가 데였다. 자리에서 펄쩍 뛴 성열은 혀를 삐죽 내밀며 손부채질을 했다. 잠깐 지갑 좀 빼려고 물었는데 그 짧은 새에. 아이고, 이 머저리.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핫바를 노려보다시피한 성열은 이내 지갑 안에서 돈을 꺼냈다. 스타일 한 번 신기한 아르바이트생을 흘깃 보며 조심히 핫바를 입에 넣어본다. 아, 맛있다. 어차피 뜨거운 건 한순간이지. 한껏 풀린 얼굴로 핫바를 먹던 성열은 계산을 마친 후 몸을 돌렸다. 어우, 씨. 몸을 돌리기 무섭게 있는 남자에 순간 흠칫한 성열은 얼굴을 팍 일그러뜨렸다. 여자였다면 놀랐다가도 어머, 하고 얼굴을 붉혔겠지만 아쉽게도 성열은 어머, 하고 얼굴을 붉힐 여자가 아니였다. 잘 난 면상을 어따 들이밀어? 잠시 불퉁한 시선으로 남자를 흘겨보던 성열은 옆으로 움직였다. 하여튼 심장 내려앉을 뻔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핫바를 앙 문 성열은 편의점 문을 열었다. 어우, 씨! 이번에는 문 열기 무섭게 또 앞에 누가 있다. 짜증이 잔뜩 묻어나온 표정으로 맞은편 남자를 응시하던 성열은 이내 표정을 미묘하게 일그러뜨렸다. “아, 우현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안면이 있는 사이인가보다. 옆으로 몸을 비킨 성열은 찬찬히 우현이라 불린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르바이트생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띤 남자는 어느 누가 봐도 아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련함? 이런 감정을 성열이 느낄 줄은 죽어도 몰랐다. 성열 스르로도 놀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옆으로 지나가는 남자에게서는 상당히 좋지 않은 것들이 둥둥 떠다녔다. 성열은 핫바를 우적 씹었다. 얼굴이 말이 아니야. 잘 먹고 다니는 거야? 아르바이트생의 걱정어린 말에 우현이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남자는 성열을 깜짝 놀라게 했던 잘상긴 상판떼기 남자한테도 인사를 건넸다. 분명히 편의점 문을 밀기는 했지만 차마 밖으로는 나가지 못한 성열이 세 명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머리색깔 바뀌었네. 응, 조금 특이한가? 얼핏 보라색과 분홍빛이 섞여보이는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수줍게 웃는 아르바이트생의 우웩, 구토하던 시늉을 내 보이던 성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경 쓸 것이 뭐가 있담. 핫바나 먹으며 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편의점 문을 민 성열은 찬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날씨 한 번 엿 같다. 저 길을 뚫고 갈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고 생각하던 성열이였지만, 그는 제자리에 있을 뿐이였다. 꼭 다리가 묶인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성열은 편의점 문에서 손을 거두웠다. 그러자 문이 스르르 제 자리로 돌아가 닫힌다. 가만히 제 핫바만 바라보던 성열은 거칠게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뒤로 돌았다. 성열의 행동이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던지라 편의점 안에 있던 세 명의 시선이 그대로 향했다. 뭘 봐, 꼽냐? 전투적인 시선으로 마주하던 성열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 저기? 성열에게서 손목이 꽉 잡힌 남자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성열을 쳐다보았다. 옆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뭐가 좋다고 휘파람이야? 퉁명스런 얼굴의 사내를 흘깃 노려보던 성열은 입 안에 있던 핫바를 마저 씹어먹고는 막대기를 계산대 위에 쿵 올렸다. 그 행동이 짐짓 패기가 넘쳐 아르바이트 생은 멀거니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였다. 이봐요, 당신. 안에 있던 음식물들을 다 삼킨 성열은 우현이라 불린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네?” 당황스러울 법한데, 남자는 용케도 친절히 답한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남자를 천천히 가늠 해 보던 성열은 이내 눈썹을 꿈틀거렸다. “주변에 완전 마가 꼈어.” “도를 아시나요.” 뭐, 그런건가. 아까 성열을 깜짝 놀라게 한 남자가 빈정거렸다. 명수야. 아르바이트 생이 질책하듯 그의 이름을 부르자 불만스럽게 입술을 씰룩인다. 성열은 생각했다. 미친놈 취급 당하겠구만.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다짜고짜 마가 꼈다고 그러면 기분이 나쁘겠지. 가볍게 생각하던 성열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요 며칠 무슨 일이 있나봐. 아니, 무슨 일이 아니야. 이건 뭐라고 해야하지.” 음, 미간을 잔뜩 굳히며 잠시 고민에 빠지자 우현이라 불린 남자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고민에 빠진 터라 변화를 느끼지 못한 성열은 중얼거리다시피 했다. “무언가가 막아버린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을 겪었어? 가령 재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거나. 아니면 뭔가가 바뀌었다거나.” 뭐, 있잖아. 자잘한 실수가 많아졌거나 아니면 알고 있던 사람이 안면 싹 갈아엎었다거나. 그렇게 말을 덧붙이던 성열은 눈을 둥글게 떴다. 아, 분명히 손목을 잡았던 것은 성열이였는데 어느새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손목을 부러질 것 같다. 성열은 제 손목을 부러뜨릴 것 마냥 잡고 있는 남자를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 시선도 오래가지 못했다. 남자의 얼굴과 분위기는 확연하게 바뀌어 있었다. 오랜만에 온 회사는 여전했다. 사람들이 몇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또 이상하게도 없다. 그건 아마 죽돌이 마냥 자리를 죽 치고 있던 성열의 부재 덕분인 것 같았다. 사무실 내를 느리게 주욱 둘러보던 성규는 제 자리를 찾아갔다. 확실히 자리 주인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자리는 약간의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것을 보며 성규는 입술을 씰룩였다. 어떻게 청소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냐. 그런 생각을 하며 성규는 성열의 자리에 있는 휴지를 들었다. “어머, 성규 씨네.” 휴지로 책상을 닦고 있던 성규가 빼꼼히 고개를 틀자 커피잔을 들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반가운 듯 환히 웃으며 다가오는 여자에게 목례를 해 보인 성규는 마저 닦았다. 어느새 옆에 바짝 다가온 여자는 후후,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안 보여서 꽤 걱정했어.” “고맙네요.” 어머, 퉁명한 반응도 꽤나 그리웠다고. 여자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은 성규 씨가 부서 내에 보이지 않아서 이번 달 완전 꽝이였다니까?” 가뜩이나 우리 부서는 이상한 능력들만 모여서 원래 실적이 저조하잖아. 여자는 제 뺨에 손을 올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왜 오지 않냐고 성열 씨한테 물어봤는 데도 답이 없더라. 여간 깐깐해서는. 아, 성규 씨 무슨 문제 있으면 나한테 찾아오라고. 내 능력은 나름 도움이 되니까.” 무우처억 고맙네요. 성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성규의 태도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여자는 성규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치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얼핏 정리가 다 된 것 같다. 성규는 후,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 풀썩 앉았다. 성열과 호원의 말이 있어서 이렇게 다시 회사에 오기는 했다. 하지만 와서 뭘 해? 솔직히 이 회사가 특이한 구석이 강해서 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데. 그래도 성열이 들고온 서류들이 있고하니 약간의 압박은 느껴졌다. 일 안 하고서는 절대 월급을 받을 수 없겠지. 성규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와서는 꿈을 통해 얻은 것을 제출이나 할까 싶었다. 그런데, 뭐. 막상 오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기회가 생겨서? 성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제 책상을 응시했다. 여승우에게서 사랑은 지워졌다. 여승우에게서 그 남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은? 남자는 그래서 없어진 것도 아니잖아. 성규는 미간을 좁혔다. 성규가 생각하기에는 남자는 아직도 여승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실ㅡ, 기회랄 것도 없다. 그냥 다가갈 수도 없지. 성규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 있을 바에 일을 하는 게 어때.” 정수리 위로 들리는 목소리에 아아, 성규는 작게 반응했다. 숙였던 고개를 위로 젖히자 보이는 것은 검은색 라이더 자켓을 입고 있는 호원이였다. 검은 색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양반이다. 크게 드러나지 않은 표정을 응시하던 성규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래, 일을 해야지.” “너 많이 밀렸다.” 나지막한 그 목소리에 어영부영 대답하자 후, 작은 한숨소리가 들린다. 어머, 호원 씨. 저한테 온 일 있어요? 암, 있고 말고.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었어. 등뒤로 들리는 대화소리를 의미 없이 듣고 있던 성규는 으,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가방 안에서 서류를 꺼냈다. 서류 봉투를 열고 안에 있던 내용을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처음은 젊은 여자였다. 여러모로 쓸모 없는 일이였다. 쯧, 작게 혀를 차 보이던 성규는 회사에서 받은 핸드폰으로 느리게 여자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사실 성규의 능력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였다. 원래 능력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신기하다고 들을만한 능력이지만 정작 능력자들한테서는 그렇게 신기하게 취급 받는 능력도 아니였다. 어떤 의미로는 강한 덕분에 성규를 향한 경계가 대단했지만 성규에 대해 며칠 알아내면 그 경계도 말끔히 없어지고만다. 선천적으로 귀찮은 것을 피하는 성격의 성규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게으름 가득한 성격이였다. 뭐, 딱히 아니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성규 스스로도 자신은 게으름 많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잠을 자고 산다. 더구나 잠을 자면 어떤 사람이라도 무방비 해진다. 그 때를 노리는 것이 바로 성규의 능력이다. 깊게 숨겨 놓았던 비밀,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진실. 그리고, 기억. 물론 대가가 있는 편이지만 그건 회사 방침이고 성규 능력은 대가 없이도 잘만 사용할 수 있었다. 어느 누가 자신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어할까. 성규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대부분 성규에게 의뢰를 하는 사람들은 믿지도 않으면서 한 번 도박 삼아 연락을 준다. 그리고 막상 만나면 경계가 가득하다. 그러면 어쩌라고. 독심수를 갖고 있지 않아서 남의 마음을 한 번에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겨우 경계를 풀었다 싶으면 이것저것 부탁한다. 지우고 싶은 기억, 원하는 꿈 등등. 아니라면 정말 독기 가득하게 저주를 부탁하기도 한다. 그건 이성열 전문인데. 그런 생각을 하던 성규는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그래도 한 건 했다. 정말 자잘한 의뢰였기에 질질 늘어뜨리기 귀찮은 성규로서는 연락이 닿기 무섭게 모든 걸 마무리 지었다. 이제는 밤에 꿈만 꾸면 되겠지. 꿈이라는 것은 정말 귀찮을 따름이지만 그게 성규의 능력인 이상은 평생 갈 수 밖에 없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성규는 자신의 능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은 의뢰를 해야하는데 망할 능력은 또 저절로 다른 꿈 속으로 들어오고 만다. 여승우의 꿈속 마냥 넓은 들판으로 가득한 공간을 멀거니 바라보던 성규는 눈꼬리를 사악 올렸다. 또 마음대로 다른 공간으로 오게 될 줄이야. 어휴, 한숨을 길게 늘어뜨리던 성규는 눈을 깜박였다. 이 귀찮은 공간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그렇게 팔을 공중에 젓자 신기하게도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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