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알이 빠질 듯 핸드폰 화면만 응시하던 여주가 재생바를 당겨 다시 차분한 강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다시, 또 다시. …짜증나. 이미 다 외우고도 남을 만큼 몇 번이고 반복되는 화면에도 좀처럼 머릿속에 자리잡히지 않는다. 마른 세수를 하던 여주가 눈에 힘을 주고 앞에 앉아있는 정국을 노려보았다. 그래, 이건 다 전정국 쟤 때문이야. 정국 탓을 하며 이어폰을 귀에서 빼내고선 듣던 강의를 종료시켰다. 턱을 괴고 가만히 지켜보던 정국이 저를 째리는 여주의 시선에 뭐가 문제냐는 듯 뻔뻔한 얼굴로 계속 하라고 손짓해보였다.…저렇게 대놓고 쳐다보는데 어떻게 집중을 하냐고.
강의는 집에 가서 마저 듣기로 하고 다음주에 있을 전공과목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책이랑 필기구를 꺼내는데 집요하게 따라붙는 시선에 괜히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한 십 분쯤 그렇게 지났을까, 손가락으로 팔꿈치를 꾹 누르며 슬슬 여주를 건드리기 시작하는 정국이다. 아무것도 펼쳐놓지 않은 채로 여주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국이 그녀가 저를 째리자 짖궂게 웃어보였다. 그런 그의 행동에 불편한 티를 내던 여주가 정국과 눈빛을 교환하다가 문 쪽으로 턱짓을 했다. 밖으로 나오라는 뜻이었다.
"너 자꾸 공부 안 하고 딴 짓 할래?"
1층 로비로 내려오자마자 여주는 정국을 나무랐다. 너도 다음주에 시험 아니냐는 물음에 대충 '네에,네 맞아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국을 여주가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누나가 뭐랬어, 정국아. 학점은 1학년 때부터 꼬박꼬박 잘 챙겨야한다고 누누이 말했지? 한 번 시작한 잔소리는 끝을 볼 줄 몰랐다. 들은 체 만 체 하던 정국은 '이제 그만 올라가자' 하는 여주의 말에 그제서야 관심을 보인다.
"…벌써?"
"뭔 벌써야. 네가 하도 집중 못 하길래 잠깐 내려온거야."
아니, 이건 잠깐도 아니고 그냥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데. 뚱한 표정으로 다시 계단을 오르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던 정국이 아하, 하며 그녀를 다시 불러세웠다. 잠깐만요, 누나.
"이 부분은 나도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여주는 밑줄까지 그어가면 열정적으로 정국을 가르쳤다. 모르는 내용이 있다며, 마침 여주도 배웠던 책이니 가르쳐달라는 정국의 말에 휴게실까지 그를 데려온 그녀였다. 근데 그럼 뭐하나, 정국은 여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엔 무관심한 듯 하다. 음…. 아무도 듣지 않는 강의에 열을 올리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귀여워 속으로만 끅끅대며 웃고 있었다. 여주의 옆모습을 관찰하다가 얼굴을 가리는 긴 머리칼이 거슬려 그것을 귀 뒤로 다정히 넘겨주자, 책만 보던 여주가 고개를 돌려 정국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곧 무서운 얼굴을 하며 으르렁댄다. 야, 너 안 듣고 있지. 최대한 엄한 목소리로 말했건만 그 모습마저 정국에겐 웃긴지 그가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나 말고 책에 집중하라고!"
"알겠어요 알겠어. 계속해요. 열심히 들을게."
정국을 미덥지 못한 눈빛으로 훑던 여주가 다시 펜을 집어들었다. 사전까지 열심히 뒤적여가는 여주는 얼마나 집중한 건지 정국이 대놓고 저를 감상하고 있어도 모르는 듯 하다. 이 부분 이해됐어? 그러다 정국이 잘 듣고 있나 싶어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역시나,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저를 응시하는 정국이 보인다. 얘가 진짜. 답답함에 볼펜으로 그의 머리를 가볍게 치려고 팔을 높이 들었더니 정국이 한 손으로 가볍게 제압했다. 자유로운 다른 한 손으론 펼쳐져있던 책들을 덮는다. 재미없다. 우리 다른 거 해요. …다른 거 뭐? 정국이 눈알을 또륵또륵 굴리고 있는 여주에게로 가까이가며 거리를 좁혔다.
"지금 누나 얼굴 되게 빨간 거 알아요?"
"…."
"도서관이 너무 덥죠."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는 여주에게 손부채질을 해주며 정국이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사실 원래 쓰려던 글은 이게 아니었지만...
회귀가 내용이 느어무 딥하고 어두워서 쓰는데 제가 기가 빨리더라구요ㅋㅋ
그래서 밝은물 하나 쓰고싶어서 씁니다
그리고 정국이 연하물도 꼭 한 번 써보고 싶었어서ㅋㅋ
이건 스토리가 있다기보다 쓰고 싶은 주제에 맞게 윤기랑 정국이 버전으로 나눠쓸 생각이에요
소재가 있으면 연재가 빠르고 없으면 느려지겠죠...
와 근데 이건 진짜 빨리 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