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젊은 사람이 참 착하네."
"아니에요. 할아버지."
김상균은 허리를 굽혀 할아버지의 머리에 이고 있던 것과 손에 꿰고 있던 짐을 자신이 들어주었다. 그는 다정한 남자였다. 남자 여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부 다. 그것이 청년층과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한테까지도. 할아버지는 집까지 바래다 주는 김상균의 인성에 감동하신 듯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취하셨다. 이제는 노인분한테도 꽃미소를 날리는 걸 보면 확실히 저 미소가 여자들을 꼬시기 위한 도구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럼 좋은 남자인가? 확실히 좋은 '성격'의 남자이다. 다만 내 남자로 둘 때가 엿같을 뿐이오, 지금도 어쩌다 졸졸 따라가는데 이미 내 뒤로 수십명의 여자들의 꼬리를 물었으니.
"와, 대박. 저 남자 진짜 잘생겼어."
"성격도 좋은가봐."
"대박대박."
저러니까 내 남자로 두기 불안하다 이거다! 김상균은 할아버지가 파란색 문을 여는 것을 보고 나서야 뒤를 돌았고 자신의 뒤에 수십명의 추종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살짝 놀란 듯 했다.
"누구신데 다들..."
"저 혹시, 번호좀!!"
"아, 죄송합니다. 여자친구 있어서요."
그 삼삼한 거짓말에 수십명의 첨예한 눈꼬리들이 나를 쪼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다들 김상균의 뒤를 쫒았지, 나처럼 옆에 서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김상균은 나를 보고 그만 가자고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고 나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수 많은 여자들의 견제의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다. 다들 그만 좀 쳐다보라고! 우연히 조우하여 같이 동행한 벌 치고는 꽤나 살벌했다. 김상균은 카페에 와서 유니폼을 걸고는 곧장 내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예전엔 덜 했는데 요새는 좀 힘드네."
"...아니에요, 사장님이 너무 영화배우처럼 생긴 탓이죠."
"앗, 손님 오셨네."
어물어물 뱉어지는 말에 김상균은 그저 웃어주는 것으로 화답하고 손님을 받으러 카운터에 섰다. 평소 남자들한테 잘생겼단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 내 나름대로 신경써서 마음을 표현한건데 너무 많이 칭찬을 틀은 탓인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다. 사장님 너무하세요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뻔했다. 서운함을 누르고 손님의 소리가 들리는 카운터 쪽을 돌아봤다. 그곳엔 검정색 코트와 목도리를 제 목까지 싸맨 남자가 기립해 있었다. 자신보다 살짝 긴 다리에 상균의 시선이 올라갔다. 주문을 마친 남자는 식탁으로 잠행하듯 기어가 의자에 제 엉덩이를 곱게 붙였다. 그리곤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누군가를 큰 소리로 호출했다. 여기까진 문제 없었다. 그것이 김동한이라서 문제지.
"어이!!! 돼지얔!!!"
"너 미쳤냐? 김동한?"
수십개의 눈알이 김동한에게 집중된다. 이런 씨발 민폐손님새끼! 당황하는 모든 알바생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 거들먹하게 팔짱을 낀 김동한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상균은 약간 당황한 듯 또 다시 뒤틀린 목소리로 나에게 꾸지람을 놓았다.
"여주씨, 손님에게 그런 무례한 언행은 삼가주세요."
"앗, 죄송합니다. 사장님. 친구라서요.."
가게 손님에게는 누구보다 친절하게, 자상한 말로. 그것이 김상균의 사명이자 영업 방침이였으므로 나는 더 덧붙이지 않고 깔끔한 사과를 건넸다. 그러나 이미 김상균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게 된 나는 김동한의 테이블로 달려가 찰진 스매싱을 갈겼다. 등 쪽에 정확하게 떨어진 손바닥 덕택에 김동한은 제 어깨쪽을 손으로 문지르며 아파했다. 시발놈아, 차마 욕을 내뱉진 못하고 속내로만 시퍼런 욕을 발사했다. 이 녀석으로 인하여 김상균 마음속의 내 이미지 점수는 바닥으로 추락을 쳤을 것이며 대쉬는 커녕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눈치싸움을 해야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존나 지옥같았다. 김동한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손을 들어 내 볼을 꼬집었다. 나를 풀어주려는 남사친의 노력에도 눈을 마름모꼴로 모아 쏘아보았다. 그런 기싸움 역시 김상균의 서빙에 중단되었지만.
"주문하신 아메리카노와 수플레 팬케이크 나왔습니다."
동한새끼는 자신의 테이블에 곱게 놓여지는 하얗고 몽글몽글한 팬케이크와 아메리카노 잔을 한번 쓱 훑더니, 상균에게 시선을 옮겨 그의 모든 것을 마름질했다. 역시 말한대로 얼굴은 잘생겼고 아까 나한테 하는 거 보니까 성격도 굉장히 자상할 것 같고...근데 여자들은 많이 따를 법하다. 골치 아프네. 짧은 시간에 모든 판단을 마친 동한이 물었다.
"우리 못난이, 일 잘 못하죠?"
"네?"
"이 못난이 일은 못하면서 카페 올 때만 드릅게 꾸며요."
"야!!내가 언제 꾸미기만 했다고 그래!"
"그래봤자 호박에 줄긋기지."
김동한은 일말의 점수까지 0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미지 실추를 가산시켰다. 김상균은 그 말에 꽤나 낮은 웃음을 터뜨리고 그대로 뒤를 돌았다. 김동한은 농담이였단 말로 대충 무마하고 폭신한 케이크에 포크를 꽂았다. 아마 내가 사장님을 어려워 하는 것을 알고 나를 도와주려 했나 본데. 대실패다, 대실패. 부아가 치밀어 올라 아메리카노를 놈의 얼굴에 부어버릴까 하다 난 교양있는 지식인이니 한 번 봐주기로 했다. 대신 부러 김동한 놈 들으라고 크게 구둣소리를 내며 카운터를 지났다. 내 얼굴이 그렇게 호박에 줄 긋기인가? 나는 주방에 들어와 속상한 마음을 담아 콤팩트를 열었다. 거울의 반경에는 넓게도 분포한 여드름이 거뭇거뭇 제 몸을 키워가고 있었다. 오늘 분명히 화장이 참 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허옇게 들뜬 것 같다. 또각- 다시 콤팩트를 닫고 밀가루 재는 사장님 곁으로 다가갔다. 김동한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김상균에게 은근히 서운하여 입이 자꾸만 나왔다. 한 마디 해줄수도 있었을텐데. 여주가 일을 더 열심히 해요 라든가. 그러나 어쩌리, 김상균의 성격이 저를 챙길 정도로 다반사에 관심이 있지 않은 것을. 지금은 실추된 이미지 회복이 우선이였다.
"사장님,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방금 친구가 한 얘기는..."
"알아요, 예쁜거."
순간 내가 무슨 환청을 들었나 싶어 고개를 요모조모 돌렸다. 어쩐지 심장이 너무 두근거린다 싶어 설레발 치는 제 가슴을 눌렀다.
"예쁜 거 아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 말아요."
"네?"
심장이 발 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에 놀라 자그맣던 동공이 외곽까지 손을 뻗쳤다. 너무 놀라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 뜨릴 뻔 했다. 김상균은 또 저 말을 웃으며 일상의 대화처럼 넘겼다. 아무렇지 않게 무표정으로 돌아온 김상균이 다시 밀가루를 동그랗게 만다. 저 말을 하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없는 것일까.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김상균이 신기했다. 본인은 과연 모르는 것일까, 저 얼굴로 저런 대사를 치면 뭇 여자들 밤잠을 설치게 한다는 것을. 아마 모를것이다. 김상균은
"현빈씨, 그거 내가 할 테니까 그냥 퇴근하세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근데 사장님 너무 할 거 많으셔서..."
"아 괜찮아요. 현빈씨 오늘 고생 많았어요."
...시발, 남자한테도 나처럼 다정했으니까!
***
가게 일을 마치고 문고리를 걸어 잠그자, 김상균은 대충 허리를 숙여 눈인사를 해주었다. 나는 그대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오늘 김상균의 모든 전면을 파악한 것 같아 기분이 우울했다. 아무 감정 없는 태생이 착한 사람. 난 다정하게 대해야 할 사람들의 목록안에 있는 일개 개미였을 뿐이라는 사실에 속상해진다. 그것은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사준 수많은 고급 젤리의 하나란 사실 같이 이상한 종류의 속상함이었다. 오늘의 심경을 입증하는 술 한 캔이 흰 봉지안에서 달랑댔다. 아무래도 그냥 가기에는 내 맘이 찝찝하다. 어디 클럽에 놀러를 가서 궁둥이를 흔들던가, 찜질방을 가서 등을 지지던가 해야겠다.
"피씨방에나 갈까..."
그렇게 해서 가게된 곳이 피씨방이였다. 고딩시절 친구들과 몰래 메이x, 던전앤xxx를 할 때 빼고는 오지 않았던 곳이었다. 피씨방 옆에는 주황색 빛이 번쩍하는 네온사인이 인상적인 노래방이 있었고 그 옆쪽에는 계단이 연결된 옷가게가 하나 있었다. 별 생각 없이 피씨방엘 입장하려는데 굉장히 잘생긴 인영이 계단 위에 도사렸다. 계단에 앉아 한 쪽 발을 내민채 전화를 하는 남자. 자주 입는 갈색 더플 코트에 검은색 구두, 목 파인 검은색 니트.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사람의 인영 같다. 하루 종일 들었다 놨다 하는
"사장님...?"
"켄타야아...오늘 안 오면 어떡해.."
"너 안오면 나 혼자인데..."
휴대폰을 들고 꽤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하는 김상균. 근데 켄타? 건너 들려오는 목소리는 남자 같은데 왜 저렇게 다정한 거람. 사장님이 사람 때문에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라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물었다. 이제 남자한테도 질투를 하는 제가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추측이지만 통화를 하는데 묘한 기류가 있었다. 사장님한테 들리는 소문으로 그가 모쏠이라는 이야기가 번쩍 스친다. 저 얼굴몸매에 그 성격에 모쏠이란 것은 신빙성 없는 소문이라 흘려들었건만. 사장님, 서,서...설마...
"너 안 오면 나 카트 솔플해야 된단 말이야!!"
"......?"
사장님은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켄타란 분에게 꽤 속상하신 듯 언성을 높이셨다. 아,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한 가지 깜빡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직원들에게 흘려 들었던 그의 유일한 취미... x이플도 아니고 오xxx도 아닌
"카트라이더 혼자 하면 재미없는데..."
"사장님."
"어? 여주씨?"
***
"여주씨, 거기는 드리프트를 밟아줘야 돼요. 그래야 좀 더 구간에 붙여서 오거든요."
"네? 저 이거 잘 못하는..."
꽤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오늘 김상균의 캐릭터 해석에 실패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라. 인서울 유명대학 문과 계열 출신에 사비를 들여 산 개인 카페 사장을. 그 스펙의 인간이 카트라이더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느냔 말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방금 전까지 저를 보며 반색하는 김상균의 표정을 회고했다. 나를 발견했을 당시 표정은 아, 내가 오늘 솔플을 안해도 되겠구나 라는 안도의 표정이었다. 김상균은 게임하러 왔냐는 질문 하나만 던지고 나를 피씨방으로 끌었다. 아마 내가 아니요, 게임 안 할건데요 라고 했었어도 나를 설득했을 사람이었다. 그렇게 해서 피씨방 안으로 입성하게 된 것이다. 사실 카트라이더는 초딩 코흘리개 때 빼고는 해 본적이 없다. 차라리 오버xx를 잘했으면 잘했지 카트게임은 젬병이다. 김상균은 그런 나를 위해 내 옆에 딱 붙어서 게임을 요모조모 설명해 주었다. 게임 할 때 마저 다정한 남자, 그 이름 김상균... 어라 내 눈물이 지금 코로 흐르나?
"여주씨, 거기 상대편 붙어서 와요!"
"앗, 네 사장님!"
김상균은 늘 웃고 다니는데 안 웃는 순간이 딱 세가지가 있었다. 1. 디저트 만들 때. 2. 민폐손님 오거나, 직원이 손님에게 무례할 때. 3. 지각할 때. 그런데 오늘 하나가 더 추가 될 것 같다. 카트라이더 할 때!!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지으면서도 김상균의 명령아닌 명령에 저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었다. 저렇게 카트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너무 귀여웠다. 그래, 사실 내가 느낀 현타의 감정은 김상균의 귀여움이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껏 느낀 존경심과 경외감이 너무나 친밀한 감정으로 바뀌었으니까. 나는 피실 웃음을 흘리며 김상균의 게임 장정에 동참해 주었다. 자, 공격개시! 키보드의 공격키에 나도 모르게 몸이 뒤로 넘어간다.
***
"여주씨, 오늘 진짜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사장님."
"억지로 끌 고 온 건가 싶어서 죄송하네요. 제 친구가 오늘 갑자기 중요한 약속이 생겨서..."
"아니에요, 앞으로 그 분 대신 그냥 저 불러요. 일 끝나고 가면 되고 편하잖아요"
"진짜요? 우와 고마워요..내가 답례로 떡볶이 사줄게요!"
김상균이 놀랍단 표정을 짓는다. 날카롭게 모인 눈이 동그랗게 호선을 그리며 커졌다. 저게 저렇게 고마울 일인가. 해실해실 아이처럼 웃는 김상균이 너무 귀여웠다. 꼭 생일 날 아이의 소원을 들어 준 엄마의 기분이 이런걸까. 김상균의 순수함에 무너져 내린 내 안면근육이 한 없이 광대를 끌어올렸다. 아아아앜 김상균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고...이건 반칙이다. 나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상균에게 내 마음 표현 하나를 더 던져 보기로 했다. 어차피 그는 또 아무 생각 없이 넘길테지만.
"사장님 게임 하시는 거 귀엽네요."
"네에에에?"
"네, 너무 귀여운데요?"
김상균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다. 그리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단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어라? 아무 반응 없이 또 넘길 줄 알았는데 이런 반응일 줄은 몰랐다. 생각 외로 귀엽단 표현은 별로 안 들어본건가. 하기사, 그의 표면적인 외관은 누가 봐도 귀여움보다 젠틀 멋짐 완벽에 가까웠으니. 그럼에도 이 반응은 뭐지. 김상균의 두 주먹이 꾹 쥔 상태로 말려들어간다. 처음엔 은근한 홍당무 같았는데 계속 놀리니까 아예 토마토처럼 빨개진다. 얼굴 찌그러뜨리는 게 귀여워서 자꾸 놀려주고 싶잖아...
"사장님 눈도 귀엽고."
"코도 귀엽고."
"아, 저."
"입도 귀엽...."
"그만해요!"
김상균은 끝내 귀까지 벌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그리고 마른 세수를 몇 번 반복하더니 다시금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굴에서 밀려온 파도가 부딪히는 것 같이 낮은 목소리.
"그만해요. 쑤, 쑥스러우니까..."
***
3편도 금방 올릴 거 같아요!
그리고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그것도 지금 계속 쓰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F,G 이런식으로 완결나는 순간 한꺼번에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저번에 봐주신 비회원님, 회원님들 댓글 보고 감동한 꿈 놈 1명...
혹시 짤 필요하신 분들은 말씀해주세요!
저금 풀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