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
심야<心惹> 약국
written by. 참이슬
-마음을 이끄는 약국, 그 열 네번째 이야기-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민과 걱정을 안고 있습니다. 어디 한 번 볼까요? 보자.. 저기 골목길을 걸어가는 아주머니는 다음날 아침메뉴를 고민하고 계시군요. 그 뒷편에 한 구멍가게 안에서 나오는 아저씨는 고된 근무시간에 직장을 바꿀지 말지, 바로 옆 친구들과 노는 무리 중 한 학생은 내일모레 있을 쪽지시험을 잘 볼수 있을지,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커플은 결혼에 관한 걱정을 하네요. 마침 한 마을버스가 도착해요. 저녁 퇴근시간대라 그런지 버스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려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 어느 길보다도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그런 길이에요. 그 때, 한 꼬마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어요.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 저 달이 자꾸 우리를 쫓아와.' 라고 말해요. 어머니는 웃으며 그런 아이를 안아주네요. 저는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주로 아이들만이 제가 그들을 쫓아다니며 무슨 고민, 걱정을 하는지 꿰뚫어보는걸 의심할 수 있기에 이럴 때엔 최대한 모르는 척 하는게 상책이죠. 빼꼼히 달 뒤로 숨어있다가 다시 망원경을 꺼내들었어요. 아이는 이제 저에게서 눈을 돌렸네요. 그런데, 버스 맨 뒤에서 앞에 자리에 앉은 여자가 저를 보고있어요. 저를 보면서 한없이 우울해하네요.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중이지? 망원경 렌즈를 좀 더 확대해봤어요.
' 무작정 이렇게 가면 엄마가 좋아할까? 너무 홧김에 직장을 그만둔건 아닐까? 다른 직장을 구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하지. 지금이라도 재현씨한테 걱정말라고 문자라도 남겨놓을까? 보니까 민형씨, 동혁이에게서도 전화가 많이 왔던데.. 맞다, 혜령이한텐 문자 남겨놓을걸. 난 진짜 바보야. 그렇지만 너무 힘들었잖아.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 내가 잘한게 맞는걸까? 하.. 난 진짜 왜이렇게 불행한거지. 그나저나 오늘따라 달이 참 밝고 이쁘네. 너라도 나한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워. 그런데 보름달이 떴을 때마다 빌었던 소원들은 정말 이루어지는 걸까? '
이런이런. 스스로를 자책하는 걱정이 제일 안타까운 걱정이에요. 지금까지 해온 선택들이 최선의 선택인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 해요. 여자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종국엔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네요. 맞아요. 복잡스러운 마음이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때엔 그저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오늘은 왠지 저 사람을 계속 쫓아다니고 싶네요!
어느 정류장에서 내린 여자는 아파트 단지로 걸어갔어요. 저 아파트에 여자의 부모님이 사시나봐요! 저는 민들레홀씨로 변해서 더 가까이 가보았어요. 베란다에 살포시 내려앉아 바라본 부엌은 저녁을 준비하는 어머님의 손길로 분주해요. 앗,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여자가 들어와요! 여보 벌써 왔어? 하는 어머님을 보아하니, 딸이 오는 줄은 몰랐나봐요. 쭈뼛쭈뼛 들어오는 딸을 발견한 어머님은 깜짝 놀라 들고있던 주걱을 떨어뜨리네요. 연락도 없이 왠일이니! 어머님은 주걱을 들어 딸에게 다가갔어요. 딸은 머쓱하게 웃으며 나 배고파 엄마, 하곤 식탁 앞에 자리잡네요. 어머님은 잠시 놀란듯 하다가도 배고프다는 말에 얼른 밥 한 공기를 뜨고 반찬과 찌개를 식탁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렇게 열심히 밥만 먹던 딸에게 어머님은 너가 어째 집엘 다 오니, 라며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했어요. 오물오물 밥을 먹던 딸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곤 나 병원 그만뒀어. 라고 말해요. 뭐!? 어머님은 다시 한 번 놀랐어요. 너무 많이 놀라셔서 걱정돼요! 아니, 왜? 어머님의 물음에 딸은 그냥.. 이라며 고개를 숙이네요. 어머님의 마음에선 얘가 무슨 일이 생긴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딸의 마음에선 엄마가 또 잔소리하겠지. 라는 걱정이 생겼어요.
" 무슨 일 있는거야? "
" 아니.. 뭐, 이냥저냥 관뒀어. "
" 누가 괴롭혔어? "
" 괴롭힌건 아니고..... "
어머님의 마음 속에선 이미 수많은 걱정이 생겨났어요. 모두 딸에 대한 걱정이에요. 하지만 딸이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모두 딸이 무슨 괴롭힘을 받았고 무슨 피해를 받았는지에 대한 걱정들 뿐이에요. 걱정이 많아질수록 마음의 색은 어둡게 변해가요. 그중에서도 부모님이 자식을 걱정하는 색깔은 다른 걱정들보다도 더 검게 마음에 퍼져가지요. 밥을 다 먹은 모녀는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어요. 딸의 이야기를 듣는 어머님의 마음은 충분한 대화만으로도 까맣던 색깔이 원래대로 돌아가요. 어딜가나 그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야. 어머님의 말에 딸은 고개를 끄덕거려요. 어휴, 못된 것들! 왜 우리 딸을 못괴롭혀서 안달이래?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딸은 푸흐흐- 하며 웃음이 터졌어요. 딸의 마음도 어머니와 대화를 하는 것 만으로도 아까 버스 안에서 했던 수많은 걱정과 고민들이 없어지고 있어요. 딸은 사과를 베어물다 물었어요. 엄마는 화 안나? 응? 뭐가? 내가 엄마한테 말도 안하고 일 관둔거.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건데 왜 화가 나, 1년 넘게 다녔으면 많이 다닌거지. 이참에 좀 쉬어. 푹 잠도 많이 못잤을거 아니야. 생각과는 다른 어머님의 반응에 딸의 표정도 이제서야 풀리네요.
집이란 이런 곳이 아닐까요? 그동안 묵혀놓았던 많은 고민과 걱정들, 이 걱정은 다른 해결방법도 없다고 느낀 답답한 생각들, 불쑥불쑥 머릿속을 헤집어놓아 머리가 아팠던 이러한 모든 것들이 눈이 녹듯 사라지게 하는 마법사가 있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집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머릿속을 관찰하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솔직해지는 밤이라는 시간대에 달의 뒤에서 몰래몰래 사람들을 관찰하는 저는 달토끼입니다. 에구구, 오늘은 너무 많은 시간을 지구에 있던 것 같아요. 보름달이 뜨는 날엔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절구를 찧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을 중요한 일을 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밖에 있었다니! 허겁지겁 달로 올라와보지 어느새 절구에 소원들이 가득 차 넘실거려요. 이제 슬슬 시작해야겠어요. 절굿공이를 들고 힘차게 절구를 빻기 시작해요. 읏챠-! 이 많은 소원들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빛나길 바라면서!
* * *
대학교를 다닐적이었을까, 문득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해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 처럼 밤을 새울 정도는 아니었다. 딱 6시간. 민형은 24시간 중 수면을 취하는 시간은 6시간을 넘지 않았다. 뒤늦게 불어온 책바람은 민형의 하루를 좌우할 정도로 강력했다.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시간 빼고 눈떠있는 시간엔 종일 책만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맏이인 민형의 하루는 약국 위주로 흘러갔지만 데스크 밑 서랍엔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딱히 가리는 장르는 없었지만 민형은 의외로 판타지 소설을 즐겨읽었다.(몇몇이 민형이 읽는 책을 보고 의외다. 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어쩐지 민형은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사람들에게 책 읽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아무도 모르는, 오로지 민형만이 아는 그 이유는 어릴적부터 무궁무진하게 키워온 그의 상상력 때문이리라. 하늘을 나는 상상은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우리들의 삶은 외계인의 장난감처럼 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런지, 내가 트루먼쇼의 트루먼은 아닐런지 등. 민형은 혼자서 이러한 상상을 하는 것을 즐겨했고 그 수단은 책이었다. 요즘들어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잠시 놓고 있던 책이 생각난 민형은 도서관을 찾았다. 그가 살고있는 동네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기 위해 서있는 민형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떨림에 그간 얼어있던 마음이 녹는 듯 했다. 책의 제목을 보고 첫장을 펼쳐볼 때의 간질거리는 기분, 하나의 세계로 빠져들 때의 그 묘한 기분이 좋았다. 한 달이면 긴 시간이었지. 너무나도 오래 책을 잊고 있었나보다. 민형은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도서관 사서에게 다가갔다.
" 대출하시게요? "
" 네. "
" 잠시만요~ "
사서가 처리를 하는 동안 손목에 있는 멈춰진 시계를 보며 민형은 책을 빌린 후 시계 배터리를 교체하기로 했다. 그런 김에 문득 확인해보는 핸드폰 잠금화면은 아무런 알람이 떠 있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숨 쉬듯 핸드폰을 확인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책을 빌리고 운이 좋게 도착한 엘레베이터 안에 빠르게 탑승한 민형은 거울을 보았다. 그러다 엘레베이터 옆에 위치한 계단에서 우당탕- 하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문이 닫히기 일보직전, 열림버튼을 꾹 누른 민형은 엘레베이터를 나와 왼쪽으로 돌았다. 널브러진 책들을 주우며 계단을 보니 한 여자가 책을 줍고 있었다. 넘어진것 같은데.. 민형은 여자를 보며 다친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민형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저 주세요, 넘어지진 않으셨어요? 민형의 목소리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둘은 동시에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 ...여주씨. "
한 달여만에 다시 만난 둘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주를 똑바로 보고 있는 민형과는 달리 여주는 죄라도 진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 '여주씨도 책을 좋아하시나봐요.' 라고 묻는 민형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한 달 동안 자신의 연락을 무시한 사람에게 하는 질문치고는 너무 일상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주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네, 좋아해요. 이제서야 제대로 민형의 얼굴을 마주한 여주는 어쩌면 한 달이 아니라 어제 만났던 사람을 오늘도 만나는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뻔했다. 민형은 늘 그랬듯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경직되어있던 여주도 그제서야 입꼬리를 살짝 올려보았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평범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민형의 이야기를 듣는 여주의 머리 속에선 먼저 그동안의 일들을 말하는게 민형씨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가 끝이나면, 말해야겠다고 다짐한 여주는 민형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여주씨, "
" 네? "
" 저 오늘 좀 말을 많이하는 것 같아요. 지루하진 않으세요? "
" 아, 아니에요! 좋아요.. 괜찮아요. "
" 다행이에요. 사실 어떤 한 사람이랑 낮에 이렇게 오래도록 이야기해본건 처음인것 같아요. "
" 민형씨 말 들으니 저도 그런것 같네요. 환자분들이랑도 이렇게 오래 이야기 해본적은 없는데. "
" 하하, 그런가요. 음.. 저는 사실 약국을 운영하는게 처음부터 마냥 좋진 않았어요. 여주씨도 가끔 힘들지 않냐고 물었잖아요. 당연 초반엔 힘들었어요. 적응도 안되고, 그런데 계속 하다보니까 그 생활에 적응이 되더라구요. 마냥 되지 않을것만 같고 싫던 것들에 익숙해져갔고 그게 제 삶이 되었어요. 오히려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고.. "
" 아아-.. "
"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데, 이런 감정을 애착이라고 표현하는것 같아요. 제가 즐겨읽는 한 책에서는 애착을 ' 오래도록 익숙해진 존재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심리 ' 라고 했어요. "
" ..... "
" 우리가 안지 오래된건 아니지만, 여주씨를 대하는 지금 제 감정이 그래요. "
" ..... "
" 더이상 여주씨랑 떨어져있기가 싫고, 그렇다는 말이에요. "
커피잔을 들고있던 여주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창가에 자리한 둘의 공간은 시간이 멈춰버린듯 했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끊고 단념하지 못하는 것
절구를 빻으면서 많고 많은 소원들 중 소원에 대한 간절함이 유난히 커다란 소원들이 있습니다. 간혹가다 그 간절함이 꾸준히 지속되어 온 것은 절구에서 빠져나오기도 합니다. 절구에 다시 집어넣기 전 소원을 펼쳐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죠. 도대체 어떤 소원이길래, 그 누가 빌었길래 이토록 간절함을 드러내는걸까. 여태껏 봐온 이러한 소원들은 인간과 인간에 대한 소원입니다. 언뜻 들었는데, 짝사랑이라고 하더군요. 어찌나 가슴이 아려오는지 몰라요. 그런데 오늘은 참 신기하게도 오후 내내 따라다녔던 사람과 관련이 있네요.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저에게 닿으면 저는 이 소원을 차곡차곡 접어 달 위로 띄어둡니다. 반짝하고 빛이나며 지구로 사라지지요.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다만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을 선택 할 수 있도록 단 한 번의 기회를 줄 뿐입니다. 특히나 이 소원을 보내온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뜰 때마다 이곳을 방문했네요. 단골 손님이에요. 에구구, 한 눈을 파는 동안 또 다시 절구가 넘실거려요. 오늘따라 자꾸만 깜빡깜빡 하네요. 이런이런, 저는 그럼 다시 열심히 일을 하도록 해볼게요! 읏챠!
-열 네번째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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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욥 ㅠㅠ 그동안 여러 시험 준비때문에 조금 늦게 찾아뵈었어요 ㅠㅠ 죄송합니다 ㅜㅜ 흑 조만간 암호닉 정리를 위해 암호닉 확인 글? 을 따로 올리려고해요. 암호닉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싶으신 분들, 새로 신청하고 싶으신 분들은 그 글을 통해 확인해주시면 될것같아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