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들려? 나가라고 "
" 지금 제가 작가님한테 연락해서... "
" 니가 뭔데 작가한테 연락을 해 "
" ... "
" 너가 우리 팀 PD야? 아니면 지금 네 자리가 PD라고 생각해? "
" ... 아니요 "
" 그딴식으로 행동할 거면 팀 나가 "
" 죄송합니다... "
" 이제 그만해 내가 파일 보내라 했으니까 사무실 가서 인쇄해 올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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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졌다 깨졌어 또 깨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민윤기를 보고 하루도 빠짐없이 민윤기에게 깨지는 날만을 반복한다. 깨진 시간은 10분이지만 내게는 마치 10년처럼 느껴졌던 긴 시간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석진 덕분에 오늘도 풀려났지만 김석진이 없었다면 아마 난 하루종일 민윤기에게 구박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 민윤기가 원래 입이 거친 것도 알고 있고, 내가 잘못한 것도 맞지만 오늘따라 유독 더 심하게 혼내는 민윤기가 얄미워 금방이라도 주저 앉아 엉엉 울 것 같았다.
화장실에 들려 거울을 보며 민윤기에 대한 온갖 쌍욕을 다 한 뒤에 가득 차오른 눈물을 팔로 한 번 쓱 닦고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시 바삐 움직이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씨발... 이렇게 깨졌는데 3일동안 민윤기 옆에만 촐싹 붙어있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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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만 다시 갈게요 "
아니 무슨 한 번만 한 번만 한 번만!!! 벌써 이틀 째 밤샘에 12번짼데 무슨 한 번만이야!!!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이 한 컷을 위해 또 찍고 찍고 찍고를 반복하며 같은 씬의 슬레이트를 12번이나 쳤다. 촬영장 스텝들도 반포기 상태로 모두 시들어져 있었고 거의 3~4일을 눈 뜨고 보낸 나의 몸 상태도 악 중에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 쓰러지겠다 싶어서 민윤기에게 쉬는시간을 허락 받고 싶었지만 지금 현재 민윤기의 예민함도 극치를 달리고 있는 듯해 보여 말을 아꼈다.
반복되는 촬영, 반복되는 모니터링... 도저히 컷이라고 외치지 않는 민윤기와 김석진. 서로 피곤한 것도 아는 상태이고 예민한 것도 알기에 각자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 여긴 이렇게 하고 여기서는 카메라 각도 좀 바꿔야 할 것 같은데. "
" 조명도 조금 낮춰야 할 것 같고 "
" 씬 7 조명 낮추고 카메라 각도 오른쪽으로 바꿔가면서 테이크 13 들어갈게요 "
비틀거리는 몸으로 슬레이트를 치러 다시 카메라 앞으로 나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몸을 가까스로 참고 테이크 13을 외치는 마지막 기억으로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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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기운에 무거운 눈을 찡그리며 떴다. 이마에는 웬 쿨팩이 붙여져 있고 나는 이불에 꽁꽁 싸매져 작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익숙한 향기와 반복되는 패턴의 벽을 보니 이곳은 촬영장에 작게 마련 된 직원들의 휴게실이었다. 인기척이 안 나도록 조심히 두리번 거리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쉬고 있는 팀원들도 보였다. 내가 어지러워서 쓰러졌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어리바리한 정신 머리를 붙잡이며 기억하려 애쓰던 중 밖에서 들려오는 민윤기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당황하다 눈을 질끈 감고선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 이야 피디님 한 겨울에 땀 난 것 좀 봐 쉬어가면서 하세요 그러다 피디님이 쓰러지실 듯 "
" 탄소는 좀 어때 "
" 아직 자고 있어요 "
누군가의 큰 손이 내 이마 전체를 덮었다. 갑작스럽게 놓이는 차가운 손에 기겁하며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겨우 참고는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해서 꼼짝 안 하고 자는 척을 하였다.
" 열은 많이 내렸네 "
" ... "
" 자는 척은 또 드럽게 못하지 "
" ... "
이런 소름 돋는 귀신같은 민윤기... 좀 좀 모르는 척 좀 해 주지 그걸 또 다 들리게 얄밉도록 크게 말한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서 이도저도 못하는 매우 어색한 기류만이 민윤기와 내 사이에 흘렀다. 어떡하지... 여기서 벌떡 일어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자존심 상하고...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민윤기가 다시 이름을 불렀다.
" 정탄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