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 토끼와 순진한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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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인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거기서부터 인간과 동물이 섞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하면서 인간 구조상 초식 동물의 성향을 나타내는 인간들이 많아졌고 육식 동물의 성향을 나타내는 인간들은 힘은 매우 강하였지만 수가 적었다. 그리고 이런 초식 종족, 육식 종족 사이에서도 외면을 받는 인간 종족이 있었다. 바로 여우. 여우는 흔히 영악하고 배신을 잘 하는 종족이라며 외면을 받고 강제 처형까지 당하는 종족이었다. 현재 쉽게 볼 수 없는 종족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여우 종족 중 한 사람이었다. 주변인들에게 손가락 질을 당하였지만 그 시선에 상처받지 않은 척, 당당한 척을 하고 살았다. 내면은 곪아서 더 이상 터질게 없는 상태였지만.
여우 종족이 연예인을 한다는 것은 거의 인터넷을 끊고 산다는 말과 같았다. 초식 종족과 육식 종족 둘 이서 기싸움을 하는 시대인데다가 둘 다에게 욕을 먹는 게 바로 여우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찌라시에 주인공은 마치 여우 종족이라는 듯이 말이 나왔고 여우 종족을 욕할 때마다 하나가 되는 초식 종족과 육식 종족은 매우 잔인하였다. 그리고 이런 사회 속에 나는 몇 안되는 여우 종족인 연예인,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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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록 여우 종족이었지만 탑 배우였다. 물론 처음에는 사람들의 욕도 많았으며 여러 가지 찌라시들과 소문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실력은 인기를 불러오는 법이었다. 뛰어난 비주얼과 몸매, 연기력으로 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으며 욕하면서도 믿고 보는 배우, 그게 나였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들어오는 광고들도 스폰을 썼다는 루머가 쏟아졌지만 애써 무시하였다. 주변 연기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마치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듯이 말이다. 처음에는 여우 종족인 나와 일하기 싫어하던 매니저 오빠가 나에게 말했었다.
'여주야 너는 여우 종족 치고는 순진한거 같아, 아니 모든 종족 통틀어서'
'...아 그래요?'
'세상 물정 모르는 그런 순진함이 아니라 그냥 꾸밈이 없다는 뜻이야. 대배우들이 너 칭찬 많이 하더라'
아무리 다른 종족이어도 차별받는 종족이어도 언젠가 진심은 통한다. 아직까지 나를 여우 종족이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니 나는 그저 지금 이대로,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아, 여주야 새로 들어가는 드라마 상대 배우 나왔어"
"그래요? 누구요?"
"이번에도 대박 나겠는데? 전정국이야. 상대배우가"
"...전정국이요? 그 아역배우로 시작했던 사람?"
"응 맞아. 요새 인기 최절정인 배우"
전정국은 나랑 동갑이었다. 나랑은 달리 초식 종족, 토끼 종족이었던 배우였다. 그는 아역 배우로 시작하였는데 귀여운 외모와 뛰어난 연기 실력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연예인치고는 재빨리 군대에 갔다 옴과 동시에 어른스러워지고 성숙해진 외모와 더욱 깊어진 연기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다.
캐스팅 기사가 뜨자마자 역시나 나의 욕이 많았다. '전정국 꼬시는거 아니냐', '저런 여우 종족과 우리 오빠라니' 등등의 반응이었다. 뭐 이런 반응도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면 다 사라질 반응이었지만 괜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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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가는 드라마의 대본 리딩을 하는 날이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감독, 작가님들과 여러 스태프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그런지 매우 떨렸다. 물론 그 중 몇몇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지나가다가 본 사람들이거나 같이 호흡을 맞췄던 사람도 있긴 하였다. 대본 리딩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을 하였다. 안 그래도 차별받는 종족이어서 겉돌지 않으려면 주인공이어도 일찍 도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배우들을 기다렸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 김여주 배우님?"
"아 네? 어... 전정국 배우님?"
그 상대는 바로 나와 호흡을 맞출 배우인 전정국이었다. 토끼 종족이라서 그런지 크고 순진한 눈이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순수한 눈빛으로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대본리딩 장소 여기 아니고 3층 회의실이래요! 감독님이 여주씨에게는 문자를 못했다고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나의 짐을 챙기고는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같이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 있던 그가 신경 쓰였다. 장소를 빠져나오면서 살짝 뒤를 돌아봤을 때 웃고 있던 얼굴을 치우고 묘하게 표정에 조소를 띄우고 나를 쳐다보는 거 같았지만 나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말한 장소로 갔다. 이상하게도 책상이며 의자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서 이상했다. 그렇지만 순진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했던 그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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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대본 리딩 시간은 오후 3시,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었다. 대본 리딩이 충분히 시작되고도 남는 시간이었는데 배우들은커녕 스태프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Rrrrrrrr- Rrrrrrrr-
"여보세요?"
"여주씨! 지금 어디에요? 여주씨 때문에 대본 리딩을 시작 못하고 있어요!"
"네? 저 대본 리딩 장소에 와 있는데요?"
"무슨 소리에요. 여주씨 지금 여주씨만 빼고 다 와있는데... 지금 감독님 살짝 화나신 상태니까 얼른 와요! 2층 회의실이에요!"
어이가 없게도 대본 리딩 장소는 내가 처음에 갔었던 그 장소였다. 전정국. 그가 떠올랐다.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순수한 눈빛에서는 일부로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멍청하게도 나는 처음 보는 그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내가 허겁지겁 2층으로 내려갔을 때 대본 리딩 현장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내가 문을 열자 모든 시선은 나에게로 쏟아져 있었다. 물론 차가운 시선이. 감독님은 화가 나셨는지 빨개진 얼굴을 하고 내게 말했다.
"여주씨... 지금 정신이 있어?"
"...그게 저는 제 시간에 왔는데 정국씨가 저한테 3층이 대본 리딩 장소라고..."
"하- 여주씨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정국씨가 대본 리딩 현장에 제일 먼저 와있었는데"
"네? 아니 제가 제일 먼저 와 있었는데 정국씨가 분명..."
"정국씨 말 해봐요! 여주씨 말이 다 사실이에요?"
모든 사람의 눈길이 전정국에게로 향하였다. 물론 나의 눈길도.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정국은 토끼 특유의 순진한 눈빛을 하고서는 말했다.
"하하- 잘 모르겠는데... 저 지금 여주씨 처음 보거든요..."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순진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다니... 내가 변명을 할 여지도 없이 모든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다시 나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내곤 했다. 힘들게 변화시킨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하긴, 여우가 그럼 그렇지'라는 시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여주씨 실망이야- 요새 잘나간다고 이러는 모양인데 그러다 한순간에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가 있어...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당연히 죄송해해야지... 특히 여우 종족인 여주씨는 더더욱 조심해요. 괜히 다른 배우들까지 마음 상하게 하지 말고, 자 이게 시작합시다."
감독님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은 분산이 되었다. 딱 하나의 시선을 제외하고서. 나의 자리로 앉으려고 걸음을 옮기고 마침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전정국의 시선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억울한 마음에 순간적으로 울컥하여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하필 옆자리가 전정국이었기 때문에 나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대본 리딩을 하는데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나왔다. 매우 억울한 상황을 겪은 뒤였기 때문일까 마치 본격적인 연기라도 한 거처럼 잘 소화를 하였다. 나를 안 좋게 쳐다보던 배우들까지도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얼음장같던 감독님도 나를 칭찬하였다.
"뭐... 여주씨가 그래도 연기를 잘하긴 잘하네... 드라마 대박나겠어"
감독님의 말을 끝으로 여러 곳에서 나의 연기에 대한 칭찬이 나왔다. 그리고 옆에서 나를 찌르는 행동에 바라보자 전정국이 있었다. 전정국은 또 순진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정말 잘하시네요"
나를 그렇게 궁지로 몰아넣고는 하는 말이 나에 대한 칭찬이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러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저 순진한 눈에 속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불행하게도 나는 전정국에게 당하였지만 전정국의 큰 눈만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그가 용서가 되는 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와 함께 합을 맞추는 장면에서는 그를 쳐다보지 못하였다. 옆에서는 나를 바라보며 연기를 하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대본만을 바라보며 연기를 하였다.
"정국씨랑 여주씨 싸웠어? 여주씨 다른 배우랑은 잘만 눈 마주치더니 정국씨한테는 왜 그래?"
"... 여주씨가 저를 별로 안좋아하나봐요...하하"
"설마 아까 일 때문은 아니지?"
내가 자기를 안 좋아하는 거 같아면서 우울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전정국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여자는 물론이고 지나가는 남자여도 불쌍하게 보였다. 그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나도 이렇게 느끼는데 이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저 나는 나쁜 사람이었다. 나는 또 생각했다. '내가 전정국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럴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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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웠던 대본 리딩 시간이 끝났다. 나는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오늘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하루였다. 오늘 처음 보는 전정국은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의 순진한 눈빛은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진짜로 내가 잘못한건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한참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나의 짐을 챙겨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는데 바로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전정국이었다.
"...정국씨?"
전정국은 내 말에 대답은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순진했던 눈빛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둔갑한 전정국의 눈이 무서워졌다. 나는 애써 차분한 척 그자리를 벗어나려 하였지만 나의 손목이 잡히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강한 힘으로 전정국은 나를 잡았다. 전정국은 나의 손목을 잡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거리를 벌리려고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내 내 뒤에는 벽이었다. 전정국이 점점 나에게로 다가오고 마침내 전정국의 얼굴과 나의 얼굴이 약 10센티 정도의 간격이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야 말았다. 이런 나의 반응에 전정국은 웃더니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았다. 무언가를 입력하고서는 나에게 전정국은 폰을 건네주었다.
"내 번호랑 내 매니저 번호 입력했어요"
"..."
"내 연락, 받았으면 좋겠네요"
다시 한번 뜨겁고도 진득한 눈빛을 보이고는 전정국은 자리를 떠났다. 전정국은 토끼였지만 내가 생각해오던 내가 보고 들어왔던 토끼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문자가 왔다. 전정국에게서
'뭐해요?'
오늘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해맑고도 뻔뻔한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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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러브입니다!
매우 영악하고도 섹시한 정국이가 보고싶었습니다...ㅎㅎㅎ
(암호닉 매우 소중하고 감사하게 받도록 하겠습니다...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