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흠흠, 아침밥 준비해야겠다.”
사과처럼 붉어진 경의 얼굴을 보다가 지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서둘러 경의 얼굴에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난 지호는 민망한 마음에 애꿎은 헛기침만 반복했다. 예쁘다니. 그게 열아홉 남자에게 할 소리인가. 손부채질을 하며 밖으로 나와 방문을 닫았다. 쿵. 문이 닫히고 나서도 심장이 엇박으로 뛰어댔다. 경의 놀란 얼굴이 선연히 떠올랐다. 하얀 솜털이 채 없어지지 않은 뺨, 그 뺨을 만졌던 손가락이 찌르르 하다.
“돌았지, 내가.”
손등으로 눈을 가리며 지호가 키득댔다. 그런데도 기분이 좋았다. 저 때문에 밤을 새버린 경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은 일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한 굿모닝이다. 지호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냉장고로 걸어갔다.
어제는 늦게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반찬 만들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자고 일어나 입맛도 없는데 가볍게 먹자며 지호는 수제 샌드위치로 메뉴를 정했다. 토마토, 양배추, 양파를 꺼내서 다듬어 씻고 참치 캔 뚜껑도 땄다. 마요네즈를 찾으러 냉장고 문짝을 살피다 지호는 어제 먹지 않고 둔 우유를 발견했다. 아, 오늘도 우유 배달 왔을 텐데. 그제야 생각이 나 지호는 앞치마 차림으로 집밖을 나갔다. 쨍쨍 해가 나는 더운 날씨. 어느새 꽤 자란 푸른 잔디밭이 발목을 간질였다. 언제 한번 잔디를 깎을 겸 정원 관리를 해야겠다며 지호는 빨간 우편함을 열었다.
“음?”
우유와 쪽지 하나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지호는 그 자리서 쪽지를 열었다.
ㅡ우유를 두고 가다가 집이 아름다워 감탄했습니다. 언젠가 이런 집에서 살고 싶네요. 아, 그리고 오늘 유두절인 거 아세요? 꼭 머리 감으시길!!
우유 배달원이 놓고 간 거였나. 지호는 쪽지와 우유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음력으로 6월 보름, 이번 년도 양력으로는 7월 11일. 유두절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날이지만 빼빼로데이 같은 근본 없는 기념일이 아닌 먼 조상 때부터 지내온 풍속이다. 유두(流頭)라는 한자 뜻풀이 그대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것인데, 여기에는 더운 여름날을 탈 없이 보내자는 좋은 뜻이 담겨있다.
“오늘 경이랑 같이 샤워할까.”
프라이팬을 꺼내 버터를 녹이고 빵을 데우며 지호가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지호는 샌드위치를 완성하고 아직도 방 안에 있는 경을 찾아갔다. 넋이 나간 얼굴로 경은 지호가 나갈 때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다. 지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경 앞에 쭈그려 앉았다. 손을 뻗어 이마를 짚자 경이 정신을 차렸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다정한 음색에 경이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열은 없는데. 지호는 이마에서 뺨으로 손을 내려 경의 체온을 쟀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다. 으차. 지호가 몸을 폈다.
“와서 아침 먹어.”
“그 옷 뭐에요?”
경은 대답 대신 지호가 요리하느라 입고 있던 앞치마에 관심을 보였다. 아, 이거. 지호는 앞치마를 만지작거리다가 씩 웃었다.
“앞치마. 요리할 때 양념 튀지 말라고 입는 거.”
“아…….”
경이 일어났다. 170도 넘지 않는 작은 키라 지호의 어깨선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지호는 오늘이야 말로 꼭 경에게 우유를 먹이리라 다짐했다.
“오늘은 짜파게티가 아니네요?”
지호가 샌드위치가 담긴 접시를 내밀자 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샌드위치야.”
“마, 맛있어 보여요.”
이건 그냥 손으로 먹어도 돼. 지호가 손으로 집어 큼지막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었다. 지호가 먹는 걸 유심히 지켜보던 경도 따라서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볼을 귀엽게 움직이며 꿀꺽 삼킨 경이 베시시 웃었다.
“맛있어요!”
“그래, 그래.”
어쩜 저렇게 예쁘지. 지호는 흐물흐물한 눈빛으로 경이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 봤을 때부터 줄곧 느껴왔다. 운명이라고. 지켜주고 싶고, 보살펴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 지호는 자신이 점점 팔불출화 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경을 살피느라 바빴다.
“우유도 마시면서 먹어.”
지호는 우유가 담긴 컵을 경에게 가깝게 놓았다. 컵이 투명했기에 하얀 우유가 잘 비쳐보였다. 경은 한동안 진지하게 컵을 보다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우유? 우유가… 뭐에요? 혹시 사람 몸에서 나오는 건가요?”
“음, 사람 몸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이 우유는 젖소에서 나왔어. 먹어 봐, 맛있을 거다.”
지호의 설명에 경의 얼굴이 꺼림칙해졌다. 굉장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냄새를 맡고, 흔들어 보기도 하고, 컵을 톡톡 두드려 보기도 한다. 지호는 경의 과민 반응에 미간을 모았다. 우유를 싫어하나? 좀 비릿한 맛은 있긴 한데.
“저도 우유를 만든 적 있어요.”
한참 난리를 떨던 경이 말했다. 우유를 만든다고? 지호는 사뭇 당황스러워졌다.
“우유는 아기를 밴 여성만 만들 수 있는데.”
“하지만 저도 만든 적 있는 걸요. 분명히, 이렇게 생겼어요. 양은 적었지만.”
설마……. 지호는 뒷목을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우유를 만들었는데?”
“보여드릴까요?”
경이 눈을 빛냈다. 드디어 저가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는 듯 기쁘기까지 한 반응에 지호는 점점 불안해졌다. 의자에서 일어난 경이 지호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바지를 벗고 팬티 위로 손을 가져다대…….
“그만!”
지호가 재빨리 경의 바지를 추켜올렸다. 왜 그러냐는 듯 순수하게 저를 올려보는 박경 때문에 지호는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알만 했다. 성교육을 못 받았으니, 그것과 우유를 혼동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다. 지호는 한숨을 쉬고 목을 긁적거렸다. 어떻게 말문을 떼야 할지 모르겠다. 얼렁뚱땅 넘어가기에 경의 나이는 지나치게 많았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것을 모르다니.
“경이 네가 만들었다는 건, 그러니까, 음, 정액일 거다.”
“정액이요?”
경이 눈을 깜빡였다.
“그건 먹는 게 아닌 가요?”
“먹… 은적 있어?”
“네. 그런데 맛없고 비려서 다음부터는 안 먹었어요. 제 몸에서 나온 것 치고 먹을 만 한 건 없었거든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경 때문에 지호의 얼굴만 점점 뜨거워졌다. 성(性)이 부끄러운 건 아닌데도, 친구도 아닌 다 큰 아들과 이런 대화를 가지고 나눈 다는 게 어색했다.
“정액은 일종의 씨앗이야. 아기를 낳기 위한 씨앗.”
“아…….”
“정액에는 정자가 들어있어서 여자의 몸속에 있는 난자를 만나면 아기가 생겨.”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는지 경이 학구열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기까지 한 태도에 지호는 머쓱해졌다. 그, 그럼 남은 밥을 먹도록 하지. 궁색하게 화제를 전환하는데 경이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계속 지호를 응시했다. 물어보기가 무서웠지만 모른 척 할 수도 없어 지호는 상냥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왜?”
“정액은 왜 생겨요? 전 아기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가끔 멋대로 나와요.”
그건……. 지호는 난처하게 중얼댔다. 모래라도 한 움큼 삼킨 듯 입안이 껄끄러워졌지만 이왕 시작한 성 교육 제대로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지호는 각오를 다지고 똑바로 경을 마주했다.
“경이 네 나이 때는 한창 성장기고 호르몬도 많이 나와서 자주 나올 거야. 자다가 일어나니 팬티가 축축해진 적 있지?”
“네.”
“그게 몽정이다. 꿈속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고 사정하는 거지. 사정은 정액이 나오는 행위를 말하는 거야.”
“아…….”
“남자라면 모두 사정을 해. 주된 목적은 아이를 잉태하기 위한 것이지만 쾌락을 위해서 하기도 하지. 성기를 만지다 보면… 기분 좋을 때가 있지?”
지호의 물음에 경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거야.
“그걸 자위라고 한다. 자신이 직접 성기를 만져서 쾌락을 좇는 거지. 일주일에 한, 두 번의 자위는 건강상에 좋다고 하니까. 너무 많이 하면 안 되지만 오히려 적당한 자위는 건강에 좋다고 해.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지. 입에서 침이 나오는 것처럼 정액도 남자라면 당연히 나오는 거야.”
머릿속에 있던 지식을 중구난방 식으로 말했는데 경이 잘 알아들었을까. 지호는 괜히 큼큼 헛기침을 했다. 이상한 게 아니었네요. 중얼거리며 경이 먹다 남은 샌드위치 조각을 빤히 봤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경의 모습에 지호가 선뜻 말을 건넸다.
“또 궁금한 거 있어?”
경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뚫어버릴 듯 강렬한 시선이었다. 지호는 다시금 불안감이 도졌다. 대체 무엇을 물어 보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나 걱정스러웠다. 지호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경의 눈빛은 이글거리다 못해 활활 타올랐다.
“아빠도 자위를 해요?”
…첩첩산중이었다.
아침을 다 먹고 한 시간이 넘는 성교육 특강을 끝내고 나서 지호는 경와 함께 목욕을 하기로 했다. 아빠와 아들 사이에 있는 로망 중 하나는 아무래도 목욕하며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게 아니던가.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추억거리를 나누며 속마음을 터는 시간은 없겠지만, 같이 몸을 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대감을 공유할 수 있을 터였다. 게다 오늘은 유두절. 지호는 경의 머리를 감겨주고 싶었다.
“저번부터 궁금했는데, 저 커다란 상자는 뭐에요?”
지호는 경의 손가락을 따라 눈을 굴렸다. 욕조였다. 경이 커왔던 지하실은 공간이 좁아 화장실에 겨우 변기만 있을 뿐 욕조가 있을 리 만무했다. 지호는 경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욕조라는 거다. 물을 채우고 몸을 담그는 곳이야.”
“아… 드라마에서 본 것 같기도 해요.”
“너도 해볼래? 따듯한 물에 있으면 기분이 좋거든.”
정말요? 신나하는 경의 모습이 귀여웠다. 지호는 가볍게 경의 볼을 꼬집은 뒤 욕조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여린 살갗이므로 데이지 않게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의 비율이 중요했다.
“물이 받아지는 동안 몸에 물 뿌리고 있지.”
지호는 경을 샤워부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1인용 샤워부스라 남성 둘이 들어가자 금방 내부가 꽉 찬다. 경은 신기해하며 투명한 샤워부스를 손으로 눌러보았다. 비밀 장소에 들어온 것 같아요. 지호는 미소를 지은 채 샤워기를 들고 경의 등에 물을 뿌렸다. 갑작스러운 물 뿌림에 경이 눈을 댕그랗게 떴다.
“눈 감아.”
샤워 부스 안. 밀폐된 공간이어서인지, 타일이 붙은 욕실 특성상 때문인지 지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경은 지호의 말에 따라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다. 어디서였더라? 생각하고 있는데 따듯한 물이 정수리부터 흘러 내렸다. 머리카락을 적신 물이 이마를 타고 코에서 미끄러져 입술과 턱, 목, 가슴, 배, 골반을 지나 허벅지와 무릎을 훑고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가 좋았다. 물의 향연이 멈추자 경이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저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지호가 보였다.
그래, 오늘 새벽 같이 자자고 했을 때 그 목소리였어.
어딘가 쉬어있고 낯선, 그러나 듣기 감미로웠던 그 음성. 경은 지호를 빤히 쳐다봤다. 처음 볼 때까지만 해도 수많은 바깥사람들 중 한 명이였다. 아닌 척 해도 무언가 자신에게 요구해올 거라고 무언가를 자꾸 강요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호는 경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경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해도 좋다는 태도였다. 경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지하실에서도 지하실 밖에서도 처음이었다. 왜 나에게 잘해주는 걸까. 질문할 때 마다 조금도 귀찮은 기색 없이 늘 꼬박꼬박 대답해준다. 경은 조금 무서워졌다. 점점 우지호라는, 자신의 새 아빠에게 기대고 있는 저가 낯설었다.
“욕조에 물 다 받았다. 들어가자.”
지호가 경의 손을 덥석 잡았다. 경은 지호의 얼굴에서 저를 잡은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크고 다정다감한 손이었다. 마디가 길고 손가락은 길쭉길쭉 했다. 저를 꽉 잡아준 손이 든든했다. 경은 어쩐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마음 편히 이 손을 믿고 따라가고 싶어졌다. 믿어도, 될까. 내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나의 곁에 영원히 남아 줄까. 경은 저를 잡고 욕조에 몸을 담그는 지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분명한 건 지호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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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이 경쾌해서 넣었는데 가사가 내용과는 정 반대네요... 퍽X~ X큐~ ㅋㅋㅋㅋ
♡암호닉♡ 새우깡
오늘 분량, 괜찮으신가요? 6화 처럼 20kb가 넘는게 좋으려나...ㅇㅅa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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