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식 호그와트가 보고 싶어서 만든 세계관 입니다. 해리포터와의 유사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출연 가수 중 뉴이스트가 제일 연차가 많아 카테고리는 현재 '뉴이스트'입니다.
* 노래 있습니다.
음양학당(陰陽學黨) ; 음양세계(陰陽世界)
"그래서 이 서류가...."
"잠깐, 잠깐만! 정리 좀 하자"
제법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던 민현의 말-중간, 중간 말을 멈추고선 빼먹은 게 있는지 생각하기도 했다.-을 멈춘 여주는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민현이 말한 것들은 여주가 18년 동안 알아왔던 모든 것들에게 큰 혼동을 주었다. 마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는 여주가 살아 왔던 이 세계의 평행세계가 있다는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여주의 입장에서는 난처했다.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싶고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보았던 것들, 민현이 보여주었던 것들은 현실이었고 여주도 받아들여야 할 사실들이었다. 18년간의 무지(無知)의 대가는 컸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무영(無靈) 세계라는 곳이고 내 부모님이 있었던 세계는 '음양(陰陽) 세계' 라는 곳이다"
"그렇지"
"음양세계는 귀신, 요괴, 요물 등등과 같이 사는 세상이고, 지금 그쪽이 다니는 학교는 악을 끼치는 요괴들을 없애는 걸 배운다?"
"없앤다기보다는 퇴마를 하는거지"
"어찌됐든 난 음양세계의 음양인인데 엄마가 무슨 이유로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능력을 봉인하는 결계를 쳐놨고 그 결계가 곧 수명을 다해서 음양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거지?"
"맞아. 똑똑하네. 잘 정리했어"
음양 세계, 현재 여주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그곳의 세계는 아직 정확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이곳의 세계와는 다르게 세상의 원리, 토대가 설명이 되는 곳이다. 음양 세계의 토대는 음과 양이다. 음(陰)과 양(陽)은 천지(天地)의 기운이고, 모든 만물의 생성 원리이며, 음양 세계의 기초 원리이자 토대이다. 음양은 서로 상반(相反)되면서도 상합(相合)되며 세계가 형성되었고 이 세계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며, 음양(陰陽)의 영력(靈力)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보지 못하는 세계이다.
세계 속 생성과 소멸의 토대는 음, 양이지만 세상을 흘러가게 하는 건 '오행(五行)'으로 존재한다. 오행은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를 뜻하며 이 중, '토'는 수, 화, 목, 금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음양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음양의 영력이 있는 사람이며, 이들을 '음양인(陰陽人)'이라고 칭한다. 음양인들은 여주가 살고 있는 세계를 '무영 세계(無靈世界)' 라고 부르며 무영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영력이 없다고 하여' 무영인(無靈人)'이라고 칭한다.
아까 말했듯, 무영 세계는 음양세계와 달리 세계의 체계, 기초, 원리는 알 수 없다. 그저 수많은 이론이 존재할뿐. 하지만 음과 양이 무영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지 영적인 것들, 흔히들 부르는 '귀신'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영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무영인에게서 음양인이 태어나기도 하긴 한다. 그 증거로 여주의 어머니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무영인, 여주의 어머니는 음양인이다. 아직 받아들이기는 힘든 지 머리를 부여잡고 멍때리고 있는 여주였다. 민현은 뭐가 그리 급한지 다른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이제 음양세계 사람이 된다는 걸 알리는 출생신고서"
민현은 아까 내밀었던 세 장의 종이들 중에서 가운데 있던 종이를 가르켰다. 자세히 보니 맨 위 큰 글씨로 '출생 신고서'라고 적혀있었다. 여주는 현재 출생이 신고 되지 않아서 음양인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신고해야한다고 민현이 말했다. 퇴마니 뭐니 떠들어대는 통에 현실감 따위는 전혀 없는 세계 같았는데 또 '출생신고서'같은 서류를 보니 '사람 사는 세계이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고서에 필요한 부모님 도장 같은 경우는 무영 세계에 낸 신고서를 가지고 가면 쉽게 처리가 되었다.
여주는 남은 한 종이가 궁금해졌다. 슬그머니 그 종이를 바라보니 출생 신고서와 같이 맨 위 큰 글씨가 적혀있었다. '입학 신청서' 라고 적힌 종이었다. 여주의 머릿속에서 아까 민현이 학교 다니고 싶지 않냐던 질문과 종이가 오버랩 되었다. 여주는 출생 신고서에 자신의 이름과 생일 등등 신상 정보를 기입하며 물었다. 나, 학교 다녀야 되는 거야? 민현은 '아, 집주소는 내가 쓸게'라고 하며 펜을 도로 가져가서 대답했다.
"응. 이 세계와 다르게 그곳은 고등교육이 의무라서"
"그럼.... 그 세계로 가야한다는거지?"
여주는 불안한 감을 숨기지 못하며 민현에게 물어보았고 민현은 확고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민현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여주였다. 자신이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를 오가면서 다닐 수 있는건가. 그런 고민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여러 문제들이 떠올랐다. 돈 문제야 부모 덕에 아까 해결이 되었지만 만약 두 세계를 오갈 수 없다면 할머니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그 세계는 귀신이 판치겠지? 아, 귀신보다는 요괴가 더 많다고 했지.... 뭐,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민현은 그런 여주의 머릿속을 어떻게 아는지 아프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여주야, 만약 네가 우리 세계로 오게 된다면 웬만하면 이쪽 세계로 잘 오지 못 할거야"
".... 그럼 데리고"
"할머니는 음양인이 아니시기 때문에 같이 못 살아. 따로 살아야 돼"
눈치가 빠른 민현은 여주가 무얼 말하기도 전에 초장에 답하였다. 다소 단호한 민현의 말에 여주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입술을 쭉 내밀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영력이 없는 사람이 오게 되면 음양 세계로 오게 되면 몸의 패턴이 무너지는 데다가 무영인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기(氣)도 넘쳐나서 미칠 수도 있어"
"...."
"너무 기죽지는 마. 음양인은 별로 무영 세계에 받는 영향은 거의 없어."
"...."
"방학 때가 되면 이곳으로 와서 같이 생활해도 돼"
솔직히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세계가 다르니 부작용이 생긴다는 거라고 대충 알아들은 여주였다. 민현의 마지막 말은 나름 여주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한 말이지만 안타깝게 실패로 돌아갔다. 방학이 되기 전까지는 할머니가 혼자 있잖아. 여주의 말에 민현은 뜸들이며 말했다. .... 어쩔 수 없지. 여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주에게선 지금 생활비에 병원비에 빠듯하기 때문에 부모님의 막대한 돈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엄청난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받기 위해서는 출생 신고가 있어야하고, 출생 신고를 하게 된다면 고등 교육은 의무기 때문에 자연스레 학교를 다녀야한다. 그러면 결국 할머니는 혼자가 되는 수 밖에 없다. 할머니가 혼자 있는 건 싫었다. 여주가 혼자 너무 머리를 꽁꽁 싸매니 그게 보기 힘들었던건지, 아니면 잠시 생각하다 떠오른 말인지 모르겠지만 민현은 여주가 채워넣기 어려운 칸들을 빠짐없이 작성하며 여주에게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내 생각엔 할머니 입장에선 네가 학교를 다니는 걸 보면 기쁠 것 같은데"
여주가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쳐다보자 민현은 말했다.
"하나뿐인 손녀가 남들 다 해본다는 고등학교 생활도 포기하고 일하러 다니는데 어느 할머니가 좋아하겠어"
"...."
"검정고시도 할머니 때문에 준비하는 거지? 할머니는 이해하실거야"
여주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솔직히 민현의 말은 맞았다. 여주의 할머니는 여주가 고등학교를 진학하기를 바랬었다. 자신이 고등학교 진학을 안 하겠다고 말했던 날부터 족히 일주일은 말렸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 고집을 부려 검정고시로 타협을 봤다지만 여전히 할머니는 제게 미안해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할머니의 마음은 잘 알지만 여주가 고민하는 건, 할머니의 걱정도 있었지만 조금 이기적인 자신의 이유도 있었다. 그냥 그 세계에 덜렁 혼자 남겨진다는 게 무섭고 겁이 났다.
여주는 가장이 되어 꿋꿋하게 생활하는 사람이었지만 또, 어떻게 보면 태어난 후 처음으로 둥지를 떠나려는 아기새였다. 날갯짓도 서툰데다가 날려하는 하늘은 지금껏 봐왔던 세계의 하늘과 다른 하늘이기에 더욱 망설이는 여주였다. 민현은 여주가 무엇때문에 고민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는 여주를 보곤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직, 둥지를 떠나지 못 하는 어린 새 같네"
".... 그거 욕이지?"
둥지를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여주에겐 자주적이지 못 하고 겁만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여주는 민현을 째려보았다. 음, 좀 과격하게 해석한 편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한 게 맞긴했다. 여주의 째려봄에도 민현은 굴하지 않고 아까보다 힘있게 말하였다. 그렇게 겁난다면 둥지를 떠나는 데 힘이 되어 줄게. .... 뭐? 아까보다 힘이 있고 단단했지만 표정과 어조는 담담했다.
"내가 너의 처음하는 모험에 옆에 같이 있어주겠다고 말하는 거야"
여주가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 어떻게 정확히 알았는지 민현은 환히 웃어보였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여주는 그 모습에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신기했다. 한참 전부터 궁금하던건데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선 마음이 드는 말만 족족 하는 걸까. 책상에 놓인 서류들을 보니 입학 신청서에 민현이 다 써놓은 덕에 하나만 비어있었다.
입학을 동의한다는 '서명'자리였다. 여주는 옆에 놓인 펜을 홀린듯이 들어 그 위에 싸인했다. 싸인을 휘갈기다 잠시 놓친 게 있다는 걸 떠올린 여주는 고개를 퍼뜩 들어 민현에게 물었다. 참, 그래서 나 어디로 입학하는데? 하마터면 입학할 학교가 무슨 학교인지도 모른 채 입학할 뻔했다. 여주가 민현을 향해 물어보자 민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올라가는 입꼬리의 곡선이 굉장히 매끄러워 예뻐보였다.
"음양학당"
".... 학당?"
"응. 음양학당"
'음양학당'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겨오는 분위기에서 얼마나 오래된 학교인지 보여주는 듯했다. 아직도 학당이라는 말을 쓰는 곳이 있다니. 민현이 말했던 '찻집'이라는 단어와 카페에서의 어색해하던 모습이 '학당'이라는 말에 겹쳐지는 느낌에 여주는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민현은 여주가 웃는 이유는 뭔 지 몰랐지만 얼떠름해 하며 따라 웃었다.
음양학당, 퇴마사 양성 전문 학교로 음양 세계서 가장 큰 퇴양전-퇴마사 양성 전문 학교- 삼 대 학교 중 하나이다.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있는 사설 학교이다. 퇴마사 양성 전문 학교 답게 국, 영, 수를 비롯하여 퇴마 관련 공부를 하고 기술을 익힌다. 음양 학당에서는 반 구별 없이 수강 신청 형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학교에서 하는 연례행사가 스케일이 크기로도 유명하다. 음양학당에서 배출한 유능하고 유명한 퇴마사들도 굉장히 많아 인지도가 높은 학교이다.
"전교회장인 내가 다니는 소감으로는...."
"전교회장이야?"
여주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민현에게 물었고 민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시 민현의 얼굴을 보니 얼굴도 반듯하고 말하는 것도 참 호감이니 회장직이 어울려 보였다. 어울리지 않는 건, 미성년자라는 것....? 미성년자라는 괴리감 빼고는 잘 어울리는 모습에 여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의외야? 아니, 너무 잘 어울려서. 미성년자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지....? 여주는 터져나올 뒷말을 삼켰다.
"학교에 교장 선생님도 좋으시고 다른 선생님들도 능력 있으신 분들이라 믿음직해. 수업도 재밌어."
"그건 봐야 아는 거고"
"너 오면 학교 떠들썩해지겠다"
"왜?"
"편입생이잖아"
민현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지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주는 왜 그 이후로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인지 일말의 후회를 했다.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 학교가 얼마나 떠들썩해질지 몰랐다. 그저 전학생에 대한 평범한 관심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음양학당의 신학기가 시작되는 입학식 날, 학교는 떠들썩했다. 화젯거리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번 일학년 중 , 아직 완성하지 못한 사방신의 신수가 나올까' 또 다른 하나는 '편입생은 누굴까' 전자의 화젯거리는 입학식 날이라면 항상 화제가 되는 소재였고, 후자의 화젯거리는 너무나도 새로운 소재였다. 아마, 학교가 보통 때의 입학식 날보다 더 시끄럽고, 더 소란스러운 이유는 후자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화젯거리의 중심에 선 주인공도 일 년만에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안녕"
"회장님, 정말 가방 없이 등교해도 되는거야?"
"괜찮다니까. 가방은 내가 다 준비 해놨으니까"
여주가 집밖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인사하는 민현과 그 뒤에 있는 검은 세단이었다. 민현이 음양 세계와 무영 세계를 몇 번 왕래하는 동안, 어느새 호칭은 '회장님'이 되어 있었다. 민현도 별 다른 말 없으니 여주는 계속 불러왔다.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신기하게도 성격 차이로 인한 충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차이는 있었지만 충돌은 전혀 없었다. 여주는 색다른 민현의 옷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오늘은 입학식 날이라 했고 학교를 가는 날이었다.
학교 가는 날은 교복을 입어야하는 것일텐데. 분명 오늘 회장님이 교복도 준다고 했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민현의 차림새는 그닥 교복이라고 생각할만한 옷이 아니었다. 음, .... 한복? 한복이라고 하기엔 남색의 도포자락은 자켓 같았고 바지도 통이 크지 않고, 오히려 스키니에 가까웠다. 안 속엔 도저히 알 수 없는 소재의 검은 옷이 보였다. 그저 모르겠다는 눈초리로 민현을 쳐다보니 용케도 알아들은 민현은 이게 교복이라고 말했고 처음 만났던 날 귀신을 없앨 때 쓰던 노란 종이를 꺼내더니 무언가를 읊조렸다. 그리고 그 종이에서 펑 소리가 나더니 종이는 온데 간데 없고 옷만 민현의 손에 있었다.
"자, 입고 나와"
언제봐도 신기한 도술이었다. 도술맞나? 그건 됐고.... 무영 세계에서 이런 거 쓰면 안 된다고 말했지 않았나, 본인 입으로.
여자 교복이라고 치마일 줄 알았던 여주와의 예상과 다르게 민현가 똑같은 차림새였다. -만족이었다.- 거기다가 사이즈가 딱 맞았다. 이쯤되면 학교의 그냥 전교회장이 아닌 것 같은 민현의 정체가 궁금해졌지만 물음은 집어 넣어두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잠을 설쳐 그런지 피곤했거든. 민현과 같이 온 검은 세단에 여주가 몸을 싣자 민현도 따라서 뒷 자석에 나란히 앉았다. 왜, 여기 앉아? 아까 조수석에서 내렸잖아. 혼자 앉으면 심심하잖아? 난 별로. 내가 심심해서 그래, 내가. 민현은 여주의 머리를 한 번 쓸어내렸다.
여주는 차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혹시, 학교에서 준비해준 차량이 날라다닌다거나, 갑자기 뿅하고 사라진다거나 그런 요상한 주술이라고 했던가. 그런 주술을 쓰면서 갈까 싶은 노파심에서 하는 의심이었다. 누가 볼까 싶어서 겁이 났었다. 여주는 무영 세계와 같은정상적인 차량의 거동에 다행스럽게 여겼다. 의심은 잠재우고 편히 앉은 여주는 또 다른 잡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뭐라고 학교에서 기사까지 불러주는거지. 그러나 피곤한 관계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아참, 입학식 날은 발현식도 하기 때문에 너도 나가야 돼. 너 신수 발현 안 했잖아"
".... 발현식? 그게 뭔데?"
"내가 안 알려줬었나....?"
그러던 중 민현이 입학식에 관해서 말을 했고 민현의 말에 한숨만 나왔다. 안 그래도 뭣도 모르는 세상에 가니 불편하고 불안해 죽겠는데 또 모르는 게 나오다니. 민현과 여러 번 만나면서 민현이 까먹고 안 해준 이야기들이 하루에 두 개 꼴로 발견되어 항상 새로운 걸 들었던 여주였다. 그런데 이놈의 회장은 또 까먹은 게 있는 모양인지 입학식인 오늘, 음양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는 날에도 처음 듣는 걸 말했다. 여주는 민현의 멱살을 움켜쥘 뻔했다.
사실 움켜줬었다. 회장 놈이라고 욕도 했다. 여러가지의 욕두문자를 신랄하게 듣고 나서야 멱살을 풀어주는 여주였다. 민현은 잡혔던 멱살이 풀리니 큼큼거리며 기침을 몇 번 하고 설명해주었다. 큼큼, 그러니까 음양인이라면 '신수'라는 걸 꼭 가지고 태어나. 보통 동물의 모양이나 전설 속 동물의 모습이 대부분인데 인간의 모습을 한 신수는 딱 두 가지 밖에 없어. 신수는 주인에게서 태어난 생명체이고 주인이 죽을 때 같이 소멸하는 뭐... 그냥 영혼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편할꺼야.
"보통 열입곱,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들어가자마자 발현식을 해서 신수가 태어나"
"너도 있어?"
"당연하지. 나는 여우야."
민현이 엄지와 중지를 사용해서 손가락으로 딱소리가 나게 하자마자 펑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진짜 여우 한 마리가 떨어졌고 민현은 자신의 신수인 여우를 잡았다.
"...."
"헐!"
살면서 여우를 볼 일이 몇 번이나 있으리. 더군다나 동물원 자체가 사치인 여주에겐 코앞에서 눈을 말똥말똥하게 여주를 바라보는 여우가 더더욱 신기했다. 여우는 뚫어져라 여주를 바라보았다. 눈을 바라보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민현은 곧 신수를 없앴다. 눈에 아른거리는 여우의 잔상에 꽤 민현과 외모가 닮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민현의 이야기를 들은 여주는 민현을 쳐다보며 약간의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근데 나 열일곱 지났는데? 발현 안 되는 거 아니야?"
"발현식을 아직 안 했잖아, 원래 발현식의 시기는 별로 상관은 없는데 열일곱이 신수가 제일 건강하게 태어나서 그래"
"아, 그렇구나"
"입학식은 동시에 발현식이기도 해서 오늘, 너도 1학년들이랑 발현식 할꺼야"
음양 세계를 설명하려면 빠질 수 없는 게 신수다.-그런데 민현은 빼먹었다.- 신수는 음양인의 개인의 성격(20%), 마음가짐(10%), 영력(70%)에서 태어난 것이며 음양인, 자신의 능력치를 끌어 올릴 수 있는 개체이기도 하다. 신수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주인이 죽을 경우 같이 소멸한다. 또한, 감정도 느낄 수 있다. 신수의 형태는 동물이나 전설의 동물이고 인간의 형태인 예외는 딱 두 가지 밖에 없다.
신수는 음양인의 일생에서 한 번 태어날 수 밖에 없다. 아까 민현이 말했듯이 영혼의 동반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이의 신수를 데려와 여러 개의 신수를 가지는 것은 가능하나, 영력이 약하거나 수련이 부족하면 신수의 힘을 견디지 못해 작게는 부상을 입거나 크게는 죽을 수도 있다. 신수와 음양인의 친밀도, 음양인의 수련의 정도에 따라 신수의 능력은 점점 상승한다.
아까의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 차 안은 아무 대화도 없었다. 오직 들리는 건 민현의 콧노래 정도. 민현의 콧노래 덕분인지 아니면 그냥 차 안의 분위기 자체가 밝은 것인지 아무 대화도 없지만 차안의 분위기는 나름대로 밝았다. 눈을 감고 피곤을 달래고 있는 여주는 그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차는 민현의 콧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어디론가 계속 달렸다.
"여기야, 내리자"
".... 여기가 학교?"
내리자는 민현의 말에 여주는 몹시 당황해 했다. 그도 그럴것이 분명 학교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는데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아무 것도 없는 들판 뿐이었다. 아, 아무것도 없지 않았다. 들판 한 가운데에 빨간 공중 전화부스 두 대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빨간 공중전화부스 두 대는 안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나름 잘 어울려보였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 학교는 어디있는 것인지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주는 암만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민현을 쳐다보았다. 민현은 그 모습에 '푸흡'하고 웃었다.
"설마, 그럴 리가"
"그럼 어딘데"
"자, 이제 학교 가자"
민현은 여주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아 이끌어 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여주는 민현이 하는대로 이끌릴 뿐이었다. 여주를 안에도 데려다 놓고 문을 닫기 전 민현은 말했다. 저번에 내가 외우라고 했던 그거 있지? 수화기를 들고 '1212'를 누르고 그걸 외우면 돼.
"그럼 학교에서 보자"
민현은 문을 닫고 민현 역시 나머지 한 대의 전화부스로 들어갔다. 여주는 민현이 나가자마자 바로 시킨 대로 수화기를 들고 약간 녹이 슨 전화버튼을 눌렀다. 여주는 눈을 감고 하도 길어서 외우기 어려웠던 '그것'을 읊었다.
"흐트러짐 가운데 규범이 있고 부족한 것 같으면서 만족하며 구석이 없는 것 같으면서 구석이 있고, 어두운 것 같으면서 밝고, 물러서는 것 같으면서 나아간다"
처음 '그걸' 들은 여주는 마치 주문 같기도 했고, 어느 한 소설에 나올 법한 문장인 것 같기도 했다. 여주가 다 외우고 나서는 기대와 달리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바깥 상황이 뭔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챈 여주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았던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전화 부스 안에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따스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러한 작은 변화가 여주는 신비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들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열리자마자 쨍하게 들어오는 햇빛에 아직 오후도 안 됐는데 이렇게 쨍할 수도 있나하는 의구심과 함께 눈이 찌푸려졌다. 찌푸려진 눈 사이로 민현이 보였다.
"학교 다 왔어."
문을 연 민현이 여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뒤에서 비쳐오는 햇살과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민현의 모습. 삼박자가 조화롭다고 생각하는 여주였다. 그렇지만 얼굴은 그저 무뚝뚝한 표정으로 민현의 손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민현은 여주의 행동에 머쓱한 것인지 이내 손을 거둬 뒷머리를 잠깐 만지다가 여주의 손목을 잡고 여주를 전화 부스 안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여주는 빠져나오자마자 울창한 숲의 모습과 그 사이 어색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듯한 거대한 철문이 크게 열려 있었다. 철문 양 옆에는 '음양학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태양 모양의 동상과 달 모양의 동상이 나란히 있었다. 이곳은 음양학당의 뒷문이었다. 여주는 그 모습에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암만 쳐다보아도 따뜻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조형물들인데 생각보다 따뜻한 느낌의 모습에 멍해진 것인지, 아니면 생각했던 학교의 모습과 다르게 위압감을 풍겨오는 모습에 당황을 했는지, 그건 여주만 알겠지만 여주는 멍하니 자신의 눈 앞에 풍경을 쳐다보기만 했다.
"갈까?"
민현이 먼저 열려 있는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여주에게선 이 세계를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 누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여주는 그 명언을 되새기며 나름 힘찬 발걸음으로 민현을 따라들어갔다.
그건 첫날갯짓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학교 교복 참고는 빅스분들의 도원경 의상입니다. 부채 걸려 있는 도포(자켓) 왼쪽 부분에는 부채 대신 노리개가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세계관 설명은 지식백과 짜집기...^0^ (음양세계로 이동하는 저 긴 문장도 음양의 이치의 설명 내용 중 하나...)
*진도를 빨리 빼고싶다.... 애들 언제 다 등장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