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캠퍼스 로망스 :: 01
The Campus Romance :: 01
더 캠퍼스 로망스
01
" 나는 지금 이 곳에 있는 사람 중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없다! "
" ...있다. "
" 헐 야야, 설마 그럼- "
" 한 번에 하나씩 질문하는거 아니야? "
" 아 맞다, 빨리빨리 병 돌려! "
과대의 말에 한 사람이 빈 소주병을 돌렸고, 병 입구는 자석에 이끌리기라도 하는 마냥 정우의 옆에 앉은 나를 가리켰다. 나는 이미 주량에 다다랐고 이 잔을 마시면 필름이 끊길거라는 것을 잘 알았다. 몽롱한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질문을 기다렸다. ' 나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없다! ' 신이 난 애들의 목소리에 나는 마른 세수를 했다. 아 이제 진짜 못 마시겠는데.. 나는 일단 소주잔을 들었다. 와- 김여주 진짜 독하다! 야유 속에서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몸이 앞뒤로 흔들리면서 소주를 흘리기도 했다. 그 때 정우가 내 잔을 가져가려 했다. 당황한 나머지 잡고있던 잔을 놓지 않으니 정우는 내 손을 그대로 감싸서 자신의 입 속으로 소주를 털어넣었다. 빈 잔을 거머쥔 내 팔은 바닥으로 털썩- 하고 힘없이 가라앉았다. 여기저기서 엄청나게들 소리치고 있는 걸 아는데, 꿈에서 들리는 것 마냥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고 그저 정우만 보일 뿐이었다. 언제 또 소주병이 돌아갔는지 이번에는 정우의 차례가 되었다. ' 너 김여주 좋아하지! ' 정우는 질문을 한 과대를 한 번, 나를 한 번 보고는 대답했다.
" 응. 나 김여주 좋아해. "
" 와아아~~~ "
" 우리 과 씨씨 1호가 여기서 탄생하는구나! "
" 잠깐만! 아직 여주 대답은 못 들었잖아! "
" 됐다, 이제 그만하자 취한 사람도 많고 하니까. "
" 조용히해 김정우, 이게 어디서 수작질이여~ "
남학생들은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정우에게 달려들더니 정우를 잡고 억지로 술을 먹이려는 듯 포즈를 취했다. 아, 안돼. 그러지마. 만류하는 나의 말에 ' 김정우 고백 받아주면 놔줄게. ' 라며 유치한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난감한 나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사람들은 이미 전적으로 과대의 편에 서 있었다. 난 괜찮다는 정우의 말에 나 말고 사람들이 더 난리였다. 소주를 병째로 정우에게 가져가는 과대를 보니 결국 참지 못하고 내질렀다. ' 나, 나도 좋아해! ' 내 외침에 아주 잠깐동안 분위기가 조용하더니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남자애들에게서 겨우 풀리 정우는 머리를 정돈하며 나를 보았다. 난리통인 사람들 속에서 조용히 ' 진짜야? ' 라고 물어오는 정우를 보며 고개를 숙인체 끄덕거렸다. 정우의 조용한 웃음소리가 그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잘만 들려오는 탓에 귀까지 빨개진걸 나는 몰랐다. 그렇게 사람들이 극구 만류하는 씨씨를, 최악의 시기라는 그것도 3월에, 나는 내 인생의 첫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02
대화방이라고 적힌 간판을 따라 무작정 남루한 건물에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단 간절함 밖엔. 삐걱거리는 문을 여니 카운터엔 여자가 서있었다. 대화방이라 그래서 사무적인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영 딴판이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누구든 대화할 상대만 있으면 그만이니까. 팔짱을 낀 여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여자 뒤로 보이는 [ 대화 1시간 : 3만원 ] 표지판을 보고 말없이 지갑을 꺼냈다. 그러자 여자는 ' 저기, 여기 어딘지 알고 오신거에요? ' 라고 묻는다. 대화방 아닌가요. 나의 대답에 여자는 이제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흠-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긴 복도를 한 번 슥 쳐다본다. ' 잠시만요. ' 여자는 복도를 따라 걷다가 중간 쯤에서 멈춰 한 방에 들어간다. 그동안 나는 카운터 위에 놓인 만원 세 장을 바라보았다. 또각 소리에 다시 옆을 돌아보니 여자가 이 방으로 들어가라는 듯 안내했다. 지갑을 가방 안에 넣고 여자의 안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정말 작았다. 그리고 벽에 붙박이 식으로 놓인 쇼파라고 하기엔 조금 더 넓은 침대같은 의자와 문 옆에는 작은 서랍장이 있었다. 방 안에 여자도 카운터에 있던 여자와 비슷한 차림새다. 그리고 둘 다 떨떠름한 표정이다. 둘을 보아하니 대충 이곳은 남자를 위한 공간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렴 어때, 지금 난 말 할 상대가 필요할 뿐이니 상관 없었다. 자리에 앉자 여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 죄송한데, 먼저 말하지만 저 양성은 아니에요. "
" .., 저도에요. "
" 근데 여길 왜 왔어요? "
" 대화할 사람이 필요해서요, 여기가 대화방이라고 써져 있길래요. "
" ..언니 약간 모자란 사람 아니야? 대화방이라고 해서 진짜 대화만 하는 줄 알았어요? "
어깨를 으쓱하니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여자는 긴 한숨을 쉬었다. ' 뭐, 그래도 난 좋아요. 언니 덕에 1시간은 쉴 수 있으니까. ' 그제서야 표정을 푸는 여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자는 다시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이를 시작으로 학교, 학과, 사는 곳.. 하다 못해 연애 경험까지 물어본다. 나는 있는대로 다 대답했다. 내 말을 들은 여자는 ' 반반하게 생겼는데 연애를 한 번 밖에 안해봤어요? ' 라고 물었다.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날 보는 여자는 눈을 좀 더 커다랗게 떴다. ' 칭찬이에요 언니. 왜 정색을 하고 그래. ' 하며 내 어깨를 살짝 밀치는 여자에 물었다.
" 제가 남자를 많이 만나게 생겼나요? "
" 아니 뭐... 못생긴건 아니니까 한 명 보다는 더 많이 만나봤을 거라 생각했지 나는. "
" ' 걸레 ' 같다는 말인거죠? "
" 에에? 언니 왜 그걸 그렇게 받아들여! 아니 내 말은~ 언니가 막 헤퍼보인다는게 아니라. 그냥.. 그냥 연애 경험이 많아 보인다 이거지, 언니 이거 칭찬이에요. 내가 언제 걸레같다고..! "
" 아- 그렇구나. 감사해요. "
" 누가 언니보고 걸레같다고 했구나. 맞죠? "
" ..몇 번 들어봤어요. "
' 친구가? ' 친구라는 단어에 자동반사하듯, 한숨이 나왔다. 고맙게도, 여자는 내가 입을 열기까지 걸린 시간을 말 없이 기다려줬다. 그러다 어느새 시간이 오래 지났는지, 여자는 ' 언니 5분 남았어요. ' 라며 어서 말할 것을 재촉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일>이 있은 후로 부터 꼭, 정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누구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 속에서 커다란 파도를 일으켜 심란을 일으키는 이것을 밖으로 빼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했다. 혹자는 그럼 혼자 있을 때 말해도 되는게 아닌가, 하겠지만. 이것은 분명 물음이 아니였지만. 홀로인 상태에선 싫었다. 누구든.. 누구든 알아주었으면 싶은 나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 사람이 무서워요. "
" ... "
" ... "
위로라는 것은, 응원이라는 축에 기반하여 상대가 지금의 상태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말의 깊이로 이루어진다. 나의 이 이름모를 감정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상태는, 상처로 썩어서 문드러진 나의 영혼이 간절히 외치는 것은 위로였음을. 하지만 그 위로는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힘을 내 따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답답함에 한 마디 툭 던진 말이겠지만 그것은 나에겐 분명 진정한 ' 위로 ' 로 다가와 지친 나를 감싸주었다.
" 언니, 잘못 알고있네. 보니까 언니는 사람이 무서운게 아니야. "
" ... "
" 사람한테 상처받는 게 무서운거지. "
03
정신없이 뛰다보니 캠퍼스 밖에 있었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에 가빠,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질끈 감고 숨을 골랐다. 그러면서도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10시 20분. 그래도 왠 여자가 대학교 앞에서 혼자 주저앉아 가만히 있는 걸 볼 사람이 적은 시간대라 다행이다. 한참을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아찔해져오는 머리에 다시 상체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딱 열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 후에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아- 내뱉은 숨 속엔 시름이 가득하다. 가방을 고쳐 메고 걷기 시작했다.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걸으면서 생각했다. 동시에 언제까지 도망칠건데, 하는 반문이 생겼다. 가방끈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걸었다.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운터에 서서 메뉴판을 보지 않고 브라우니를 주문해, 오는 길에 물 한 컵을 쟁반 위에 올리고 창을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포크로 폭신한 브라우니를 찍었다. 한 입 크기로 잘라내 입 안에 넣으니 오늘 처음으로 코웃음이 났다. 멈추지 않고 먹다가 약간 입 안이 답답할 때 쯤 차가운 물을 마셨다. 그러다 가방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포크를 입에 물고 핸드폰을 꺼냈다. 모르는 번호네, 나는 전화가 끊길 때까지 기다리다 끊기고 나서 문자를 보냈다. ' 누구세요? ' 그러자 10초도 안 돼서 답장이 왔다.
[ 호ㅏㅇ웈희 ] 010-xxxx-xxxx
나의 두 엄지는 잠시 갈 곳을 잃었다. 허공에서 움찔거리며 무어라 답장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기만 했다. 그러자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통화버튼을 밀어 귀에 가져갔다. 주변이 시끄러운 걸 들어보니,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한 모양이다. ..네. 나의 짧은 마디에 ' 나 때문에 나갔어요? ' 라고 묻는 이 사람은 내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게했 다. 나 때문에... 말로만 하다가 이렇게 남에게 들으니 참, 가만히 앉아 듣기에 마냥 좋지는 않다. 아니에요. 정말로요. 그는 내 말을 듣고 안심을 한건지, 안심한 척을 한건지는 모른다. 다만 헤헤- 하는 그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들으니, 전화를 받길 잘했다는 생각은 들었다. ' 친구, 이어폰 두고 갔어요. ' 빠르게 자켓 안 주머니를 뒤졌더니 역시나 이어폰이 없었다. 큰일 날 뻔 했네. 나는 그를 만나려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왔다. 전화 속 너머의 그는 어디있을런지. 캠퍼스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급했다. 왠지 모르게, 그를 혼자 두는 것이 그닥 좋을건 없어보였다.
" 쉬시 덕에 이어폰 찾았어요. "
" 감사해요.. 제가 뭐, 어떻게 보답을 해야- "
" 쉬시랑 점심 먹어요. "
" 점심이요? "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고민했다. 학교 근처에는 분명 사람이 많을텐데, 그렇다고 멀리 데리고 가는 것도 웃기고.. 또 한숨이 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그는 마음을 정했는지 내 어깨를 콕콕 찌른다. 말없이 손을 뻗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가격대가 낮은 평범한 밥집이었다. 굿? 하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식당을 보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딱 점심시간으로 모든 식당들이 북적거릴 때다.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그를 따라갔다. 아직은 빈자리가 많았지만 곧 학생들로 엄청 북적거리겠지. 나는 최대한 구석으로 그를 이끌었다. 메뉴를 펼치자 그가 적극적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 제육덮밥.. 있어요? "
" 네, 여기 있어요. "
" 쉬시는 제육덮밥 좋아요. "
" ...아, 네.. "
" 친구는? "
" 저는 음, 순두부찌개 먹을게요. "
그는 손을 들어 주문을 했다. 음식이 나올 때 까지 이제 뭘 해야하지. 물이라도 따르려는데 그가 먼저 컵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주먹을 쥐었다. 불편하다고 생각할 때 쯤 등뒤로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사람들이 들어옴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등을 곧게 세웠다. 컵을 건네는 그를 보았다. 그는 내가 아닌 내 뒤로 시선이 향해있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내가 옆을 돌아보았을 땐 카페 앞에서 마주친 과대, 부과대를 포함한 여러명의 같은 과 사람들이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다.
" 뭐야~ 쉬시, 벌써 이러기야? "
" 아- 됐어, 오해하지마. "
" 됐긴 뭐가 돼~ 저기.. 저희 여기 앉아도 되죠? "
" ...네. "
" 잘됐다. 우리 여기서 밥먹구 노래방 갔다가 회식가면 되겠다! 그치? "
" 헐 너 진짜 천재냐? "
쉬시를 보며 언제 친해졌는지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도, 나를 보고 주춤거리는 사람들, 하이파이브를 치는 사람들을 보니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서둘러 물을 마시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물을 마셔도 불안감에 떨리는 손을 결국 식탁 아래로 감췄다. 시선을 수저에 놓고 요지부동인 상태로 있는데, ' 저.. 선배님. ' 날 부르는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 과대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말을 이어갔다.
" 선배님은 몇 살이세요? "
" 아.. 저, 동갑.. 이에요. "
" 동갑..? 뭐야, 빠른이에요? "
" 네.. "
" 그래도 우린 학번제니까 선배님이지, 제가 괜한걸 물어봤네요. 죄송해요. "
" 아.. 아니에요, 편하게.. 부르세요. "
" 선배님 저희 불편한건 아니죠? 너무 경직되신 것 같아요~ "
쏟아지는 말들에 나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선을 피하기 바쁠 뿐이었다. 얼른 밥이나 나왔으면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앞서 먼저 시켰던 나와 쉬시(하도 쉬시, 거려서 욱희보다 더 입에 붙었다.)의 음식이 나왔다. 눈치를 보다가 한 숟갈 크게 퍼서 먹는 그를 보며 숟가락을 들었다. 옆에서 ' 아, 나도 순두부 시킬걸. ' 하는 말에 잠시 멈칫하다가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 쉬시 한 입만 먹으면 안돼요. ' 라고 물어오는 그에게 내 그릇을 내밀었다. 오늘 처음 만나서 처음 밥을 먹는 사이인데, 조금 황당하면서도 굉장히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어찌보면 부럽기도 하다. 한 입 치고는 조금 거한 숟갈질에 한 번 더 당황했지만 괜찮았다. 얼른 먹고 여길 나가고 싶었으니. 그렇게 말없이 먹기만 하는데, 부과대가 말을 걸어왔다.
" 암만 봐도 둘이 뭐 있는 것 같아. 선배님도 뭔가 마음이 있으니까 욱희랑 둘이 밥 먹으러 온거 아니에요? "
" ...야, 뭐 그런 말을. "
" 아 왜, 싫으면 둘이 밥먹으러 왜 와? "
" 지은아, 그만해. "
" 아니 내가 뭘 했다고- "
" ..아니에요. "
순식간에 가라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그런거 아니에요. 결국 나는 또 분위기를 망쳤다. 호숫가에 잘 못 떨어진 기름 한 방울과 같은 존재인 걸 알면서. 아무리해도 섞일 수가 없는 사이인거야.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에서 의자를 뒤로 끌었다. 미안하지만 쉬시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 제육덮밥과 순두부찌개를 계산하고 문을 밀고 나갔다. 뒤에서 수없이 많은 말들이 오갈 것을 알면서 그것들을 뒤로한 체 나왔다. 식당을 지나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누군가 옆에 서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살짝 보니 익숙한 검정 패딩이 보였다.
" 디저트는 쉬시가 살게요. "
" ..됐어요. "
" 흠, 과제 다음주 까진데. "
과제라는 단어에 고개를 들자 그는 무슨 의미인지 씨익 웃고있었다. 하는 수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택시정거장 쪽을 보며 말했다.
" 그럼.. 다른데 가서 얘기해요. "
그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제야 돌처럼 굳어있던 어깨에 힘이 풀리며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01-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