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 토끼와 순진한 여우
F
□□
"...민윤기 네가 왜 여기있어?"
"밥부터 먹자"
"시끄럽고, 네가 왜 여기있냐고!"
"...우리 회사가 너네 회사를 샀거든"
"뭐?"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회사 회장이거든, 내가 사자고 추천했어"
"..."
"걱정마. 너네 기획사 사장님도 동의했으니까. 너한테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잖아. 아마 내일 쯤 기사 날거야"
"민윤기! 너 진짜..."
"오랜만에 보는건데 너무 그러지 말아라... 밥 먹자 우선"
민윤기, 그 또한 나처럼 여우 종족이었다. 조금 더 따지자면 백여우. 점점 사라져 가는 종족은 여우 종족이었고 그런 현실 속에서 나와 민윤기는 서로를 많이 의지했었다. 내가 배우 쌩신인이었던 시절에도 그는 나를 아껴주고 응원해주고 오직 내 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변했고 나를 떠나갔다. 아주 매정하게. 그랬던 그가 지금 내 앞에서 나에게 투자를 하고 싶다며 나타났다. 내가 거절을 하지 못하게 아예 내가 소속된 회사까지 사들이면서 말이다.
그는 여전히 하얗고 차가웠다. 그런 겉모습 속에 남을 보담 아주는 따뜻함이 있어 나는 그에게 의지하고 사랑했지만 그런 사람에게 거절을 당한 나는 아주 큰 상처를 입었었다. 민윤기와 헤어진 이후 나는 웃음도 잃고 그저 일에만 빠져있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살았고 견딘 결과 그를 겨우 잊을 수 있었고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는 걸 인지했을 때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동안 잘 지냈어?"
"..."
"아, 나는 네가 나오는 드라마는 다 찾아봤어. 연기 잘하더라"
"..."
"예전보다 더 늘었던데"
"..."
"이젠 내 말은 다 무시하는거야? 서운하게"
"서운? 지금 사장님 앞이어서 참고 있는거야. 너랑 이러고 있는거 불편해"
"글쎄"
"..."
"이제부터 너도 내 소속인 사람이야. 너도 따지고보면 우리 회사 배우고"
"..."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지"
"...밥만 먹고 갈게"
"좋을 대로. 밥이라도 먹는게 어디야"
그렇게 서먹하게 밥을 먹었다. 사장님은 사장님대로 나와 민윤기의 눈치를 보았다. 민윤기는 여유롭게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고서는 나를 쳐다보면서 스테이크를 입안으로 넣었다. 나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였지만 떨려오는 손과 심장을 느끼니 괜찮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구나. 아직은 민윤기를 완전히 잊은 게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전정국이 생각났다.
■■
"내 차 타고 가자"
"싫어, 매니저 오빠 있어"
"내가 네 매니저 휴가 줬어. 당분간 네 담당은 나거든"
"뭐? 내 동의도 없이 너 혼자서 결정하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 소속인 사람을 관리하는게 당연한거지 얼른 타- "
이렇게 나오는 민윤기와는 말이 안 통했다. 민윤기와는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냈는데 민윤기는 한번 원하는 게 있으면 절대 안 놓치는 스타일이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모든 걸 말이다. 지금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민윤기는 말릴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쉬고는 민윤기의 차에 탔다. 민윤기의 차에는 민윤기 특유의 시원한 향이 맴돌아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향기였지만 소름 끼치도록 익숙한 향기였다.
민윤기는 아무 말없이 내게 다가와 안전벨트를 맺는지 확인을 하고는 시동을 걸었다. 시동을 켜자마자 나오는 노래의 볼륨을 민윤기는 최소로 줄이고 운전을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차 안에서는 민윤기와 나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창밖을 바라보니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거리 또한 민윤기와 자주 갔던 거리였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이 거리를 민윤기와 함께하니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침묵을 깨고 민윤기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지냈어?"
"궁금하긴 한가봐?"
"..."
"그렇게 떠났으면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뭘 잘했다고 뻔뻔하게 나타난거야?"
"..."
"네가 그렇게 떠나고 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욕이랑 루머들을 나 혼자서 참았어"
"..."
"나한테 네가 가장 필요했던 시간에 네가 떠난거라고"
"미안해"
"..."
"지금 너한테 할 말은 미안하다는 말 밖에 없다"
다시 만나도 사과를 해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윤기의 사과 한마디로 그동안 미웠던 감정이 사라져가는 게 무서웠다. 민윤기는 입을 다물고 운전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나의 후각을 자극하는 이 향기- 민윤기의 향기는 더욱 나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집 앞에 도착하였다. 민윤기는 아무 말없이 그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러자 민윤기가 나의 손을 잡아왔다.
"다시 잘해보자는 말은 하지 않을게"
"..."
"나한테 기회를 줘. 네 옆에 있게 해줘"
"..."
"예전처럼 좋아해달라는 말은 안 할게. 어렵다는거 나도 아니까"
"...갈게. 데려다줘서 고마워"
"...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촬영 있잖아"
"알았어. 조심히 들어가"
나름 냉정하게 말을 뱉고는 민윤기의 차에서 내렸다. 당당하게 아파트 안에 들어가 몰래 민윤기의 차를 바라보았다. 민윤기의 차는 한참을 그 자리에 있다가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나쁜 자식이다. 민윤기는. 이제 와서 이러는 거 다 소용없는데. 용서하지 않을 건데. 그러면서도 이제야 다시 와준 민윤기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나였다. 정말 바보 같았다.
□□
지친 몸을 이끌고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나의 집 현관문 앞에 익숙한 형체가 있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 형체는 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전정국... 지금 시각은 10시를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언제부터 그가 여기서 나를 기다렸는지, 밥은 먹었는지 걱정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멍청하게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전정국 역시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흘렸다. 그렇게 참았는데, 다시는 민윤기때문에 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민윤기 앞에서도 잘 참았다. 그런데 왜 전정국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지는 것일까. 한번 터진 눈물은 금방 멈추지 않았다. 나를 그저 가만히 보고 있던 전정국 또한 내가 우는 것을 보니 당황을 하였는지 거의 뛰어오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왜... 왜 여기있어요?"
"여주씨는 왜 우는데요"
"..."
"말 안할거예요?"
"나... 안아줄래요?"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정국은 살짝 거칠게 나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곤 어설프게 나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의 품 안에서 울었다. 소리 없이. 그의 품에서 살짝 멀어졌을 때 그는 얼굴을 굳히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냄새가 나"
"..."
"여주 냄새 말고, 다른 냄새"
"..."
"남자네, 같은 여우 종족이고"
"...정국씨"
"지금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 때문에 네가 운거야?"
"..."
"어떤 새끼인지 궁금하네"
"..."
"여주가 다 울어주고"
"..."
"들어가, 내일 촬영있잖아"
"정국씨"
"그만. 지금은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
"..."
"기다렸어. 연락 한다고 그래서. 근데 아무 연락 없어서 무작정 집 앞으로 왔어. 그런데 너는 다른 새끼 때문에 울고 있네"
"..."
"갈게요. 내일 봐요"
전정국은 그렇게 뒤돌아서 나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전정국이 뒤돌고 나니 거짓말처럼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렀다. 더 마음이 아팠다. 그 짧은 시간에 전정국이 민윤기보다 마음에 가득 찼던 것인지. 더욱 아팠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지쳐 집으로 들어갔다.
■■
'아직도 자? 집 앞이야 촬영가야지'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있었다. 문자 내용을 보아하니 민윤기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전 날 많이 운 거 치고는 멀쩡한 나의 얼굴을 보고 안심이 되는 것과 동시에 두려웠다. 만약 얼굴 꼴이 말이 아니었다면 하루쯤 촬영을 미뤄도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 민윤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전정국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멀쩡한 나의 얼굴이었다.
간단하게 옷을 걸치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느리게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1층입니다- 나의 바람을 무참히 짓밟듯이 1층임을 알리는 알림이 들렸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건물을 나섰다.
민윤기는 차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지는 못했는지 민윤기는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민윤기에게 다가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여주"
전정국이었다. 여기서 밤을 새운 건지 어제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는 차에서 내려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목소리가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김여주?"
정확히 민윤기와 전정국이 거의 동시에 나를 향해 다가왔고 지금 내 앞에 그들이 와있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라 서로를 견제하듯이 쳐다보는 둘이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그러는 그쪽은요?"
"민윤기라고 합니다. 지금 보니까 전정국씨군요. 티비에서 봤어요. 이번에 여주랑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네, 맞는데 그쪽은 누군데 여기 이러고 있는지"
"오늘부터 당분간 여주의 매니저 대신에 제가 일합니다. 여주 옆에서 같이"
"..."
"이정도면 되겠죠? 여주 앞에 있을 이유"
"..."
"한가지 더 알려드릴까요"
"...뭐죠?"
"여주의 전남자친구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민윤기의 마지막에 나와 전정국 모두 굳었다.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건 오직 민윤기, 하나였다.
□■
캔디러브입니다!
요새 독자님들의 반응에 너무 감동을 하여서... 진짜 꿈인거 같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저는 자유가 끝이네요..핳핳 개학이에요...ㅠㅠㅠ
근데 오늘 호석이... 우리 호석이 믹테가...ㅠㅠㅠㅠㅠ 이번 방학을 그거 하나만을 바라보고 왔기때문에
과감히 믹테를 앓을 예정입니다...!! 너무 기대중이에요ㅠㅠㅠ
그리고 작품에 대해서는 아마 다음편은 정국이의 번외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중입니다!
오늘 편이 마음에 드실진 모르겠지만 많이 아껴주세요..ㅎㅎㅎㅎㅎ
(신알신이 350이 넘었어요... 매회마다 높아져서 정말 감사드리고... 더욱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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