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방에 콕 틀어박혀서 아무 말 없이 타고 있는 양초만 바라보고 있을 때, 평소답지 않은 무거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고 한숨을 내쉴 때, 우리들의 미숙한 방송 태도로 실장 님께 불려 가서 잔소리 들으면서도 앞에서는 너무 잘 했다고 칭찬해 주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할 때, 가끔 차 안에서 이동할 때 잠에서 일어나면 누군가와 통화 중에 울음을 터뜨리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을 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무대에 서서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춤을 출 때. 나는 너를 안쓰러워하고 안타깝게 여겼고 안아 주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다. “재환아.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형, 형은 좋아하는 사람이 슬퍼하면 어떻게 해줄 거예요?” 응? 내 얼굴을 빤히 쳐다 보면서 네가 입을 굳게 다물고 나와 같은 생각에 빠졌다. 물론 대상 자체는 같지 않지만, 너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면 나에게도 특별한 사람이지 않을까. 너는 입을 열었다. “기도하지 않을까?” “에? 기도요? 형 종교 없잖아.” “무언가를 바란 적은 있었지.” “뭐?” “많았지.” 의미심장한 대답들만 하고 정작 내가 원하는 대답은 해 주지도 않고 웃어 넘기는 네가 묘하게 예뻐 보이기도 했다. 형아, 나는 이 정돈데. 나는 이 정도로 형을 좋아하고 있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애써 시선을 옮겼지만 네가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져서 다시 네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근데 그런 건 왜 물어 봐?” “궁금하니까요.” “...”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요즘 슬퍼해요. 많이.” 애꿎은 손톱 주위만 뜯고 있었는데 네가 네 손으로 내 두 손을 모으게 만들었다. 작은 박수 소리가 한 번 귓가에 담기고 내 오른쪽 어깨에 네 머리가 닿았음을 알 수 있었다. 너의 속눈썹이 돋보였고, 입술은 언제 봐도 부드러워보인다고 그렇게 또 혼자만의 마음에서만 떠들었다. “...재환아.” “...” “이왕 슬퍼진 거, 그 감정을 없었던 걸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겠죠? 저도 알아요.” “하지만.” “...네.” “하지만, 네가 행복한 감정을 더 크게 만들어 주면 되잖아.” “네?” “어차피 슬픈 감정도 행복한 감정도 둘 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면, 행복한 감정을 더 크게 만들어서 슬픈 감정은 없는 거처럼 만들어 주는 거야.” 가히 하늘에다 대고 소원을 이야기하면 이런 기분일까. 전혀 예상치도 못한 너의 말에 심장이 요동치는 듯 했다. 나의 어깨에 기댄 너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너무나 놀란 마음에 서둘러 스피커 위에 올려진 휴지를 뜯어 너의 눈 밑을 꾹꾹 눌렀다. 왜 울어. 왜... “아냐, 재환아. 형 괜찮아. 그냥...” “...” “그냥 형이 많이 힘들었나 봐, 괜히 내 이야기도 아닌데 이렇게나 이입이 돼서 울어 버렸네.” “...울지 마요.” “...응. 안 울게.” “아냐... 아냐, 울어도 돼요. 형, 마음껏 울어요.” 데자뷰. 네 눈물을 보자마자 떠올랐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숙소에서 책을 읽더니 눈물을 흘리던 너. 그 때는, 원식이와 노는 척 하면서 널 유심히 지켜 봤었는데 그 때도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갑자기 우는 거지? 그야말로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 그런,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 느낌. “다 울었어.” “형, 뭐가 그렇게 무서워? 내가 옆에 있잖아요. 나 말고도 멤버들도 있고, 가족 분들도 계시고 팬 분들도 있는데.” “...하나면 될 거 같아.” “네?” “다른 거 필요 없이- 재환이 너 하나면 될 거 같다구.”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 막았다. 울면서도 예쁜 건 반칙인데, 거기다 말까지 예쁘게 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잖아. “...미안해요, 형.” “뭐가?” “...” “뭐가 미안해?” 너를 그저 같은 멤버 형으로 신경 쓰기에는, 많이 아끼는 사람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네가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더 사랑스럽고 예쁘니까 내 진심을 지금까지 숨겨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랑해서요.” “아-“ “진짜요. 형. 사랑해서 미안해요.” “나도. 재환아.” 네가 나를 안았다. 너의 따뜻한 품이 고스란히 와닿았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서글펐다. 너처럼은 아니더라도 칭찬해 주고 싶었는데, 격려라도, 위로라도 해 주고 싶었는데. 내 그릇이 넓지 못 해서 속상했고, 힘들었다. 언젠가 너와 나만 둘이서 있을 때 널 닮은, 너보다 더 화려하지만 수수한 꽃다발을 건네며 못다 전한 내 모든 것들을 말하면서 고백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고 만다. 포기하고, 뒤돌아 서게 된다. “형, 나 진짜 형 좋아하는데요...” “알아. 내가 뭐 모르는 거 봤어?” “정말요? 꼭 알아 줘야 돼요. 잊으면 안 돼요, 오늘 있었던 일.” “달력에 표시할게.” 형, 그거 알아요? 나 고등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가 나한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랑 이뤄질 수 있는 기미가 안 보인다고, 어떡하면 좋냐고 나한테 물어 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너무 좋아하다 보면, 굳이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고, 그냥 좋아하는 걸로 된다고 했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무언가라도 깨달았는지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나는 내가 정말 그 생각에 자신도 있었고 그 생각이 현명한 생각인 줄 알았어요. “안 답답해? 이렇게 안고 있으면.” “응... 딱 십 분만... 아니, 딱 오 분만 이러고 있어요.” 근데, 아닌 거 같아요. 정말 좋아하면 무조건 이뤄져야 돼요, 그 사람이 내 사람이어야 하고 듣기만 해도 힘든 그런 사랑은 싫어요. 지금 형이랑 나처럼, 내 상황처럼 꼭 이뤄져야만 해요. 이 사랑은 계속 되어야만 해요. “사랑해요, 학연이 형.” 아니면 내가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거든.
- 나, 종종 널 보면 익숙할 때보다 놀라울 때가 더 많은 거 같아. 어떻게 이렇게 다정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거지? 싶어서. 오늘 아침에 조조영화나 보러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