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 #1
'모르는 게 약이다.'
"뭐야?"
겨우 잠든 진주가 힘겹게 눈꺼풀을 일으키며 핸드폰을 열었다. 지인들은 진주가 근래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기에 눈치 없게 지금 시간에 연락을 할 리 없었고, 때문에 중요한 연락이겠거니 싶어 어둠 속에서 핸드폰 빛을 눈에 적응시키던 진주는 음.. 아직도 꿈일까 싶었다.
헤어지자.
앞뒤 설명도 없이 툭하니 딱 하나 와 있는 카톡.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진주는 여전히 눈을 의심했다.
"나쁜 새끼네, 그거."
재환이 진주를 위로하듯 화를 냈다. 어떻게, 내가 손 좀 봐줘? 하며 주먹을 내 보이는 재환의 모습에 진주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냥 웃어서 끝날 일이 아니지, 그걸 그냥 뒀어? 뭐라고 보냈어?"
뭐라고 보냈냐고? 헤어지자는 데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도 안 보냈는데. 진주의 대답에 재환은 답답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 진짜 생각했던 것보다 멍청하네.
"내가 살다살다 김재환한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네."
"야. 왜 차였는지는 알고 차여야지. 이거 바보아냐?"
재환이 혀를 쯔쯔 차자, 진주가 머쓱하게 머리를 매만진다. 뻔하지. 나한테 질렸거나, 새 여자가 생겼거나. 둘다거나.
의외로 담담한 진주의 모습에 재환이 더 당황했다. 진주의 슬픈 눈이 아직은 낯선 재환이었다.
"대충 눈치챘었어."
"뭘."
"진작에 나한테 관심 떨어졌었어. 내가 구질구질하게 계속 버틴 거지."
"니가 왜?"
재환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투로 물었다. 왜냐는 말에 진주는 살짝 멈칫했지만 이내 체념한 듯 말을 이어갔다. 내가 좋아했으니까.
알면서 버티는 게 후에 더 큰 상처가 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주가 먼저 그를 내치지 못한 것은 마음을 정리한다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녀가 처음 그에게 반했을 때, 주위에서 모두가 그녀를 말렸다. 그렇게 평판이 좋지 않았음에도 고백을 강행했던 이유는 역시나 자신의 감정을 죽이기 힘들어서. 카사노바를 나만 바라보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어리석음도 숨어있었다.
최근 들어, 만나도 별 감흥이 없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으며 끝에는 얼굴 보기도 참 힘들었던 그를 보며 그때도 진주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잠깐이겠거니 권태기겠거니 싶었지만 결국에는 이별을 통보받았다.
"사람 고쳐만나는 거 아니라더니.."
"그 형은 고쳐지지도 않아."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아. 별로 안 힘들어."
재환은 말없이 진주를 쳐다보다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재환은 알고 있었다. 진주는 생각보다 이별 후유증을 심하게 겪고, 또 꽤나 오래간다는 것을. 사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동안 제 감정에 힘들어할 게 뻔히 보여 재환은 걱정이 앞섰다.
"뭔 일 있으면 불러. 그놈 다시 연락 와도 절대 받아주지 말고."
"진짜? 왜?"
벌써 취한 듯 혀가 배배 꼬인 채 묻는 진주를 보고 재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연락 오면 또 바보같이 받아줄 거야."
"그럼 진짜 바보야, 너. 그럼 나 영원히 못 보는 줄 알아."
"그러지 뭐~"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대는 진주를 보고 재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재환이 작은 소주잔에 넘치게 부어 원샷하고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맘대로 해. 술도 못 마시는 게 왜 맨날 불러내."
재환이 화가 난 듯 얼굴이 벌게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갔다가 이씨, 하며 다시 들어와 진주를 둘러메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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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 때문에 들떠서 시작합니다. 절대로 개강이라 슬퍼서 그런 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