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나 너한테 이메일 보낸 거 있으니까 이따 열어봐.
“이메일?”
ㅡ응. 아, 토미 깁미어 세컨. 우지호, 나 이제 점심 먹어야 돼. 끊어!
“잠…….”
대답도 듣지 않고 덜컥 끊긴 핸드폰을 어이 없이 보다가 벽시계로 눈길을 돌렸다. 새벽 5시였다. 새삼 김유권이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난 것이 실감났다. 나는 조금 짜증을 내며 작성하고 있던 문서창을 내리고 포털 사이트를 열었다.
“요즘 시대에 무슨 이메일이야.”
나도 기억나지 않은 아이디를 김유권이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반복적으로 비밀번호 입력에서 오류가 나자 결국 비밀번호 찾기를 클릭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 핸드폰으로 인증 번호를 보내는 등의 부산을 떠니 다소 피로해진 기분이다. 여차저차 나는 몇 년 동안 쓰지 않아 케케묵은 아이디를 찾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짜식, 좋아 보이네.”
돌마바흐체 궁전을 배경 삼아 환하게 웃고 있는 김유권이 보였다.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귄 건지 어떤 사진에서는 내가 모르는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서로의 기념품을 나눠주는 모습이 찍혔다.
아야 소피아 성당, 블루 모스크, 마운트, 파묵칼레, 괴레메 페어리 침니즈 등 책자에서나 보던 관광 명소에 김유권이 들어 있었다. 그 여유롭고 나태한 낯짝이 조금은 부러워 스크롤을 내리던 손이 굳었다. 누구는 연일 야근으로 어깨 근육이 다 뭉쳤구만 말이야. 술탐 아흐메트 사진으로 터키 관광 사진은 끝이 났다. 마지막 줄에는 김유권이 꽁트 식으로 간결한 편지를 남겼다. 몸 건강히 있으라고, 한국에 돌아오면 실컷 자랑질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속 편한 녀석.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밤을 샌 바람에 뻑뻑해진 눈꺼풀을 문지르며 인터넷 창을 닫으려다가 나는 문득 익숙한 카페명의 이메일을 보고 멈칫했다.
▶게이, 레즈, 트렌스젠더 :: 성소수자들의 모임◀
뭐야, 여기 아직도 있었나. 나는 면도를 하지 않아 까슬하게 올라온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저 카페는 내가 막 성정체성에 혼란기가 찾아온 중학생 무렵에 가입한 곳이었다. 벌써 십년도 훌쩍 넘었다니 세월 참 빠르다며 링크를 눌렀다. 30대를 바라보는 나야 온라인상으로 상담 받고 만남을 가질 시기는 지났다. 게이바라는 좋은 데를 두고 뭣 하러. 하지만 나는 판에 박힌 지루한 일상에서 온라인 카페라는 탈출구, 그 비스 무리한 것을 느꼈다. 불쌍한 어린 양들에게 멘토를 해줄 수도 있는 거고, 요즘 한국 동성계의 이슈를 알 수도 있는 거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카페를 둘러보던 나는 이내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어허… 나 때는 건전 했는데 말야.”
옆 반 태일이가 좋아요… 같은 남자인데 어떡하죠? 부모님께 제가 게이인 걸 말해야 할지 숨겨야 할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아웃팅 당하기 전에 속 시원히 커밍아웃하는 게 좋을까요? 등등의 순수한 고민 글이 올라와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게시판에는 온통 성거래만이 가득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21살 바텀입니다 13일 날 만나서 관계 가지실 뿐 구해요ㅡ부터 자기는 S니 M이니, 도구를 사용하는 상황극을 좋아한다니 별 해괴한 성매매 글로 카페에 도배가 돼있었다.
그래도 나름 추억거리가 많은 곳이었는데.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린 날의 순수함이 훼손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한 게시물 제목이 눈에 띄었다.
[서울 20살 무경험 입니다 아다 따주실 분 구해요]
총체적 난국이었다. 자극적인 제목 덕분에 타 게시글에 비해 월등히 조회수가 높았다. 불편한 마음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얼굴이 없는 나체의 사진과 짤막한 자기소개가 적혀 있었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귀엽게 튀어나온 치골과 여린 분홍빛 성기를 보며, 나는 이 사람이 20살 보다 어리다고 확신했다. 분명히 이 녀석, 미성년자다.
댓글에는 싱싱한 몸을 따먹기 위한 지저분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쪽지를 보낼 테니 자신과 자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댓글을 보며 나는 콧방귀를 끼었다. 머저리들. 어디 성욕을 풀 데가 없어 미성년자까지…… 거기 까지 생각했던 나는 별안간 이상한 사명감을 느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 게시글의 주인을 말려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괜한 오지랖이라고 해도 좋았다. 아까운 청춘을 저렇게 낭비하게 둘 수는 없었다. 더욱이 익명의 온라인상 만남은 리스크가 크다. 막말로 수면제를 먹이고 새우 잡이 배에 팔아버리거나 콩팥이라도 떼어갈게 뭐란 말인가. 나는 홀케라는 닉네임의 작성자에게 쪽지를 남겼다.
ㅡ세시 그룹 기획부 팀장 우지호 입니다. 카페에서 글을 보고 연락처 남깁니다.
부디 대기업 네임벨류를 보고 나를 선택해주길 빌며 컴퓨터를 종료했다. 나는 먹다 남은 커피를 개수대에 버리고 하품했다. 졸음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블락비/짘경] 박경 길들이기 上
w.검백
[쪽지 보고 연락했어요. 저녁 8시. 서울 강남구 XX 러브호텔 앞에서 봐요.]
이상한 문자가 왔다. 스팸인가? 대수롭잖게 삭제 버튼을 누르려던 나는 문득 며칠 전 온라인 성소수자 카페를 기억해 냈다. 아… 그 미성년자. 못 먹는 감 찔러보는 식으로 찔러 보긴 했지만 정말 답변이 올 줄은 몰랐다. 흐음,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어린 친구네. 아무래도 세상의 쓴맛을 봐야할 필요성이 보였다. 오랜만에 재미있어질 것 같아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옆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우 팀장 표정이 왜 그래?”
“예?”
“방금 엄~ 청 수상쩍었어. 괴상한 꿍꿍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구. 음흉한 것이… 우 팀장은 일처리도 깔끔하고 실적도 좋은데 어딘가 속을 영 알 수 없단 말이야.”
“설마요.”
어깨를 으쓱하고 자판기 커피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럼, 일 보세요. 고개를 까딱이고 탕비실을 벗어났다. 황혼의 노을이 유리창을 넘어 대리석 바닥을 발갛게 물들였다. 담뱃불을 끄듯 나는 구두를 비벼 노을빛을 짓밟았다.
발랑 까진 미성년자와 약속한 장소로 차를 몰며 나는 내심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찰나의 호기심 때문에 창창한 앞날을 망칠 만큼 멍청하지 않아야 할 텐데. Nas의 Doo Rags를 들으며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대기하고 있던 호텔리어가 정중한 몸가짐으로 나를 배웅했다.
“주차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좌석에 나와 차키를 건넸다. 한 집 걸러 호텔, 술집, 나이트가 차례로 자리 잡은… 완벽한 유흥가였다. 해가 지고 달이 떠야 비로소 깨어나는 거리. 니코틴, 알코올, 알싸한 밤꽃 냄새가 번갈아 코를 적셨다. 나는 도시의 불빛, 화려한 네온사인 조명을 실눈으로 응시하며 걸었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데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니 모르는 번호다.
“여보세요.”
“대기업 다닌다는 거 구라인 줄 알았는데 진짜인가 봐요? 방금 내린 차, 재규어죠?”
단말기가 아닌 내 앞에서 앳된 미성이 튀어나왔다. 나는 통화 종료를 누르고 삐딱하게 목을 꺾었다. 먼저 와서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적어도 아이큐가 두 자리 수는 아닌 것 같았다. 소년은 크로스백을 메고 검은 스냅백을 꾹 눌러 썼다.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라. 직접 보니까 훨씬 더 어려 보였다.
“너 미자지?”
“…스무 살이라고 써 놓은 거 못 봤어요?”
“목소리 올리지 마. 하이톤이라 더 어려보이니깐.”
내가 피식 웃자 소년이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고삐리 쯤 돼 보이는데 이 철 없는 놈을 어떻게 정신을 번쩍 차려서 돌려 보내줄 수 있을까. 나는 턱을 쓸며 소년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나이야 거짓말로 언제든 꾸며 낼 수 있는 거잖아. 솔직히 말해봐. 몇 살이야? 열아홉, 열여덟?”
“…열아홉이요.”
“그래, 솔직하면 얼마나 좋아. 수험생이면 한창 힘들 시기네.”
느긋한 나와 달리 소년은 호랑이에게 쫓기기라도 하는지 아주 초조하고 급해보였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녀석은 메마른 입술을 연신 핥으며 내 팔을 붙들었다.
“빨리 해요. 설마 어린애 뒷구멍 따먹으면서 호텔 비까지 저보고 부담하라고 하실 건 아니죠? 그쪽, 돈 많아 보이는데.”
“그 정도 매너야.”
그길로 우리는 프론트에 가서 예약했다. 최상층 스위트룸 키를 받고 금빛으로 칠갑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시원하게 뚫린 통유리로 야경을 내다보는데 소년이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섰다. 고소 공포증이라도 있는 건가.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나 싶었다. 얼굴도…… 날라리 보다는 착실한 모범생 같은데.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무섭게 소년이 용수철 튕기듯 재빠르게 내렸다. 나는 소년을 뒤따라 내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뻣뻣하게 굳은 등, 불안정한 걸음 거리. 첫경험이란 말이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라 진짜인건가. 나는 눈을 빛냈다.
룸 넘버를 확인하고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러브호텔이라는 이름답게 커다란 킹사이즈 침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콘솔에 달린 서랍을 열어보니 콘돔이 종류별로 들어있었다. 딸기 맛, 레몬 맛, 바닐라맛? 휘유. 절로 휘파람이 불어졌다.
“너 이름이 뭐야?”
부드러운 침대 시트를 손끝으로 쓸며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검은 모발이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자, 자꾸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용무나…….”
“섹스는 말야,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
“?”
“원나잇에 사랑까지는 어렵지만 적어도 상대에 대해 기본적인 건 알아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넌 내 이름 알잖아. 서로에게 공평해야지.”
“…박경이요.”
박경이 못 미더운 얼굴로 작게 중얼댔다. 좋아. 나는 침대에 앉아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눈이 흔들리는 것이 뻔히 보인다. 저런. 길게 갈 필요도 없이 혀로 몇 번만 놀아주면 끝날 듯싶었다. 나는 방금 깐 오렌지처럼 상큼하게 웃었다.
“일단 박경, 내 앞에서 자위부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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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길게 쓰고 싶었는데 끊기가 애매해서 여기에 끊습니다~~ㅜ.ㅜ
♡암호닉♡ 새우깡
덧글 늘늘 사랑합니다 /ㅇ/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