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 후 화해하는 썰 ◀
(11편 독자8님의 권태기 후 이어지는 소재신청입니다
알님의 카톡버전이 아닌 글버전으로 써달라던 요청에 글버전으로 들고왔습니다!)
5 . 크리스
'그럼 나 먼저 가있을게.'
"어어, 먼저 가. 미안."
'아냐, 미안하긴. 빨리 오기나 하셔.'
"엉, 조금 이따봐."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물론 여자들끼리 수다떠는것 외엔 별건 없었지만 그 누구도 친구들과의 만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보란듯이 늦잠을 자버렸다. 결국 같이 약속장소로 가기로했던 수정이를 먼저 보내고 뒤늦게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창문을 여니 아직도 풀리지 않은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엄청 춥네. 혼자 궁시렁대던 나는 옷장을 열어 살짝 두꺼운 코트를 꺼내어 입었다. 분주히 움직인 덕분인지 꽤나 빠르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허겁지겁 가방까지 챙긴 후 나는 집을 나섰다.
"..."
아파트의 입구를 나서자 보이는건 다름아닌 그의 차였다. 그의 집은 이곳에서 꽤나 멀었기 때문에 그가 이곳에 왔다는건 몇가지 이유가 없었다. 나를 만나러 왔거나, 다른 볼일이 있거나. 그 이유라는 것이 전자는 아니었길 바랐다. 그 와중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차가 세워진 인도를 따라 걸어야만 했다. 오늘따라 하필 그 곳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이 밉게 느껴졌다.
"..."
"..."
짙게 썬팅된 창문 너머로 교차한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훅 끼쳐오는 찬 바람에 코트를 여미고 양쪽 주머니에 각각 손을 넣었다. 그의 차를 지나쳐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일자로 뻗은 인도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마음같아선 빠르게 그의 곁을 벗어나기 위해 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혹시나 내가 비참해 보일까봐서였다. 왠지모르게 그의 시선이 뒤통수에 따갑게 박히는것 같았다.
"..."
"..."
그와 또다시 눈이 마주친건 내가 한참동안 걸은 후였다. 뒤에서 들려오던 시동을 켜는 소리와 뒤이어 들려오는 바퀴소리가 나에게 가까워져갔다. 어느 새 그는 내 옆까지 다가와 내가 걷는 속도에 맞춰 차를 끌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어이가 없어 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면 그는 아주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금새 앞을 바라보고 멈춰있었다.
세 발 내딛으면 그는 그만큼 와있었고, 또 세 발을 내딛으면 역시나 그만큼 내 옆으로 와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엔 여전히 아무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먼저 말을 건건 나였다. 차에 가까이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그가 창문을 내렸다.
"..뭐하자는거에요, 지금?"
"뭐가."
"왜 계속 따라와요."
"난 내 갈길 가는것 뿐이었는데."
나왔다, 저 특유의 말투와 표정. 할 말을 잃은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창문을 올리지 않고 또다시 나를 따라 차를 몰았다.
"나랑 장난하는거에요?"
"응."
"..뭐라구요?"
"재밌네, 이런 것도."
"..허."
기가 찬 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나랑 농담따먹기 하자는것도 아니고.
"어디가는데?"
"알거 없잖아요."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그 또한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벌써 남자만나는건가?"
"내가 그런 년으로 보여요?"
"아니, 뭐."
"여긴 왜 왔는데요."
"..볼일이 있어서."
"구라치는건 여전하네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볼일이 있으면 그 볼일이나 볼것이지 쓸데없이 내 옆은 왜 계속 따라오는건데? 괜시리 심술이 나 입을 비죽이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때 그는 그의 차에서 내려 이번엔 내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키차이만큼 다리길이도 차이가 나는지 그의 걸음은 어느 새 내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아,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그의 가슴팍에 코를 박아 안긴꼴이 되어버렸다.
"..흠, 갑자기 이러면 좀 곤란한데."
"..아, 씨. 진짜. 그니까 왜 자꾸 따라오냐구요."
그 상황에 민망해진 내가 그의 품에서 급하게 떨어졌다.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얼굴 빨개졌어."
"..신경꺼요."
"귀엽네."
"..."
그는 내 팔을 끌어 자신의 품에 넣었다. 그의 특유의 향이 코 깊숙히 들어왔다. 그 향기에 취해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도 이 사람과 있을 때 제일 행복했었는데, 매일같이 친구들을 만나도 그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다시 고백할게."
"..."
"처음 그 날처럼."
"..."
"좋아한다, ㅇㅇㅇ."
"..크리스."
"사귀자, 우리."
6 . 김민석
지잉-, 지잉-.
"여보세요."
'뭐해.'
"뭐하긴, 그냥 집에 있어."
'넌 무슨 여자가 집을 한번 안나오냐.'
"와, 누가 들으면 내가 집에만 쳐박혀 있는 줄 알겠다."
'맞잖아.'
"..나쁜새끼."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흔한 남자사람친구인 육성재였다. 평소엔 연락도 자주 안하더니 오늘 왠 바람이 불어 전화를 하나 했더니,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오늘 만나, 안되도 만나야 돼, 어짜피 너 할것도 없잖아.'
"싫은데?"
'아, 왜!'
"내가 왜 너랑 만나야 돼."
'그냥 만나자면 만나.'
"싫다니까."
하여튼 ㅇㅇㅇ, 말 더럽게 안들어. 진짜. 활발하게 나를 욕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먼저 만나자고 하는 입장이면서 빌빌기어도 모자랄판에 욕을 하고있어?
"죽는다."
'아, 미안. 좀 나와라. 응?'
"왜 그러는데."
'그냥! 내가 맛있는거 사줄게.'
"아, 내가 사준다고 해서 나가는거 아니다. 알지?"
'큽, 알지, 잘 알지. 3시까지 나 알바하는데로 와!'
"엉."
아, 씻기 귀찮은데. 시계는 벌써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거기까지 10분 정도 걸리니까..빨리 준비해야겠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준비를 시작했다. 평소에도 진한 화장을 별로 안좋아해서 오늘도 간단히 화장을 했다. 며칠동안 죽은듯 살던 나에게 생기가 불어넣어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내심 나를 집밖으로 불러낸 그가 고맙기도 했다. 근데 왜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거지.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괜히 머리만 아파.
딸랑-.
그가 일하는 곳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페였다. 나름 큰 규모라 그만큼 알바생도 많았고, 잘생긴 외모덕분인지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뭐, 그건 내가 신경쓸 문제는 아니지만. 문을 여니 작은 종소리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추위에 굳었던 몸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종소리에 고개를 든 그가 나를 발견하더니, ㅇㅇ아!! 하는 큰 소리와 함께 해맑게 나를 반겼다. 덕분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향했다. 아, 저 미친놈..인상을 구긴 내가 애써 그를 무시한 채 빈자리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
"..아."
입에서 작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왜, 그가 맞은 편 자리를 비워둔채 그 곳에 앉아있는지 이유를 알리 없었다.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자 마자 도망치듯 그자리를 빠져나왔다. 내가 나가는 동시에 또다시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
"ㅇㅇ아!"
"..너, 일부러 그런거지."
"...아, 그게 아니라.."
"그래, 니가 날 웬일로 불러내나 했다."
"ㅇㅇ아."
나를 쫓아 그곳에서 달려나온 그가 그 곳에서 벗어나려던 내 팔을 붙잡았다. 순간 배신감이 일어 그를 바라보면 그의 표정엔 미안함만 가득해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한번만, 형 얘기 좀 들어줘라."
"..너, 진짜."
이건 내 친구야, 오빠 친구야. 우정이고 뭐고 어린애들만 한다는 절교를 여기서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니까 이 상황을 정리하자면, 오빠가 성재를 시켜 나를 불러낸거지. 자신이 부르면 안나올걸 아니까.
"한번만."
"..허."
대단히도 천재적인 그의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대단해, 김민석.
***
"..."
"..."
"..뭐야, 이게?"
"티켓."
나는 결국 그의 맞은 편에 위치했다. 그 빈 자리가 내 차지가 될것을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렇게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있을꺼 라는것을. 그는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내 앞에 비행기표를 내밀었다. 내가 티켓인걸 몰라서 물어?
"놓쳤어, 비행기."
"안됐네."
"그니까 책임져."
"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해도 안될뿐더러 어이도 없었다. 놓친 비행기 티켓이 내탓이라는거야, 뭐야. 기가 차 그를 바라보면 그는 그저 살며시 미소를 짓고있을뿐이었다.
"너 보고싶어서 여기 오느라고 비행기 놓쳤다고."
"근데, 어쩌라고."
"이거 한달짜리 출장이었는데, 너 때문에 못갔잖아."
출장, 그 놈의 출장. 헤어진 마당에 내가 계속 출장얘기를 들어야 하나. 이미 물릴만큼 물리는 출장얘기에 인상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니까 니가 나 한달동안 책임져야지, 이거 안가서 돈도 못버는데."
"미쳤어?"
"니가 헤어지자고만 안했어도, 이럴 일 없었잖아."
"그게 내탓이라는거야?"
"응, 너는 왜 쓸데없이 보고싶냐. 진짜."
"..."
뻔뻔한 표정과 말에 할말을 잃어버린 나였다.
"니가 나 안만나주면, 나 계속 출장 뺄려고."
"..진짜 미쳤구나."
출장이 전부인 그의 일에 출장은 뺀다는건 백수가 되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이젠 어이가 없다못해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왠지 모르게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노력할게."
"..."
"출장 가지말라면 오늘처럼 안가고, 너랑 같이 시간 보내고."
"..."
"그니까 나 책임져줘, 니가."
"..싫어."
"그래? 그럼 나 계속 출장빼야겠다. 너 만나ㄹ.."
"그냥 출장 다녀, ..기다릴게."
"..ㅇㅇ아."
"이 말 듣고 싶어서 온거아니야?"
"..응, 맞아."
고마워, 어린 애처럼 해맑게 웃던 그가 내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나를 껴안았다. 주변의 시선이 쏠리는것이 느껴졌다.
"아, 이거 놔."
"싫어, 안 놓을래."
"놓으라니까."
"싫어!"
끝끝내 나를 놓지 않는 그의 어깨너머로 카운터에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있던 성재와 눈을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것 없이 서로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이렇게 될거였으면서.
7 . 김종인
'알겠지? 그럼 끊는다.'
"엄마, 진짜 엄마는 날 딸로 생각하긴 하는거야?"
'그럼,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근데 어떻게 나한테 이래!"
'안쓰러워서 그래, 엄마 바빠. 끊는다.'
"엄ㅁ..! 아, 진짜."
평화롭던 주말 오후 나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사건의 시작이었다. 내가 얼마전 남자친구와 헤어져 지금은 솔로가 되었다는건 어디서 또 소문을 들은건지 엄마는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말은. '너 선보라고, 좋은 남자 하나 건져놨다.' 이게 무슨 막장드라마 같은 소리도 아니고, 내가 재벌집 딸도 아닌데 나중가서는 정략결혼까지 시킬 태세로 나를 몰아세우는 엄마가 처음으로 미웠다. 하지만 엄마의 황소고집을 꺾지 못한 나는 억지로 그 선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겨우 22살 밖에 안먹었는데 선이라니, 이건 진짜 말도 안된다.
"안녕하세요."
"아, 네..안녕하세요."
"ㅇㅇ씨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듣던대로 미인이시네요."
"아, 하하.. 감사합니다."
그쪽도 듣던대로 미남이시네요, 라는 입발린 소리도 나올 수 없었다. 이제 서른이 된, 나와 무려 8살 차이나 나는 대기업 팀장님이라니. 우리 엄만 그저 대기업이라는 말에 혹한거겠지. 현실은 이런 아저씬데 말이야. 애초에 나는 이 선자리를 망가뜨릴 구실이 필요했다. 아니면 내 자신을 망가뜨려서라도 이 남자가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게끔 하는것이 오늘의 목표였다. 근데 어떻게 하지.
"ㅇㅇ씨 아버지는 도둑이셨나봐요."
"..예?"
"ㅇㅇ씨 눈에 별을 훔쳐다 박으셨잖아요."
"..하하, 재밌네요."
미친놈, 그게 무슨 잡초 쌈싸먹는 소리야? 신고있기도 불편한 구두굽으로 벌써 벗겨지고 있는 이마를 내리 찍어버릴까하는 극한의 상황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무래도 내 자신을 스스로 호적에서 파야겠다, 우리 엄마. 진짜.
"ㅇㅇ씨는 무슨 음식 좋아해요?"
"네?"
"좋아하는 음식말이에요, 저녁에 그거 먹으러가요."
"아..저는 아무거나.."
"그래요? 그럼 우리 스테이크 먹으러 갈ㄲ.."
"얜 스테이크 안좋아하는데."
"..헐."
내가 지금 무슨 드라마를 찍고 있나, 어린나이에 아저씨와 가진 선자리부터 시작해 그 선자리에 마치 백마탄 왕자처럼 나타난 너의 등장과 내 팔을 붙들고 있는 너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고있는 대기업 아저씨. 이거 어렸을 때 엄마 따라서 보던 주말연속극이랑 똑같은데. 내가 혹시 꿈을 꾸는건 아닐까 두 명 몰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 겁나 아파. 몰려오는 고통에 인상을 쓰고 너를 바라보면 너는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굳은 표정을 짓고있었다.
"얘 분식집에서 파는 5000원짜리 돈까스 좋아해요, 입이 싼맛에 길들여져서."
"..야, 너."
"넌 뭐하는 새끼야?"
"누나, 나 몰래 바람피는거야?"
"..."
"너 뭐하는 새끼냐고 묻잖ㅇ.."
"설마 이런 늙은 아저씨가 나보다 좋은거야?"
"뭐? 늙은 아저씨? 이 새끼가 근데!!"
"솔직히 그 쪽도 찔리지 않아요? 한참 어린 애 데리고 뭐하는건지, 참."
"..."
"가자."
"..어? ㅇ,어."
뒤에서 노발대발 소리를 지르는 대기업아저씨를 무시한 채 그 곳을 벗어났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넌 나 깐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남자를 만나냐."
"..."
"그것도 저런 늙은 남자를."
"..어, 그니까.."
"지나가다 표정이 별로 안좋길래 구해준거 뿐이야, ..오해하지마."
"..어? 어.."
"..간다, 좀 어린 남자 만나. 아저씨말고."
"..종인아."
너를 부른 것에 큰 이유가 없었다. 왠지 너를 붙잡아야 할것 같았다. 너를 붙잡지 않아 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후회할 내 자신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혹시 오해하지말라는 말을 하며 잠시 머뭇거렸던 너의 행동이 미련으로 느껴졌는데, 그게 맞다면. 약간의 미련이라도 남아있다면. 이렇게 너를 붙잡아도 될까.
"..왜."
"..."
"..왜 부르냐고."
"..."
"묻잖아, ㅇㅇㅇ."
뒤를 돈채 대답을 하던 너는 내가 한참이나 말이 없자 내 앞까지 직접 다가왔다. 나를 내려다 보는 너의 눈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이별을 고한건 나였다. 따지자면 나는 너를 붙잡을 이유도 없었고, 그 정도로 이기적이지 못했다.
"..왜, 불렀냐고. 나."
"..."
"뭐라고 말 좀 해봐, ㅇㅇㅇ."
"..."
"..누나."
"..종인아."
"응, 나야."
"..미안해."
결국 내가 할 말은 이거였다. 미안해. 그게 전부였다. 가지마, 고마워, 그 많은 말을 놔두고도 내 선택은 그것이었다. 실망한 듯한 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다야?"
"..응."
"..그래, 그게 다구나."
"...미안해.."
"제발."
갑작스레 나를 안아오는 너의 행동에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왠지모르게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그냥 가지말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되잖아."
"..."
"그게 그렇게 어려워?"
"..종인아."
"응, 나 여기 있잖아. 내 이름만 부르지말고."
"..가지,마."
"..."
"가지마, 내가 잘못했어, 종인아. 가지마..제발 가지마.."
말하지 못했던 나의 진심이 드러났다. 눈물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같이 터져버린 진심에 너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것이 느껴졌다. 먼저 헤어지자 말하고 먼저 가지말라고 하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가 비웃더라도, 혹시나 그것이 너여도 상관이 없었다. 진심을 드러낸다는게 이토록 어렵지만 막상 드러내고 나면 막을 수도 없이 흘러넘친다는것을 왜 몰랐을까.
"가지마..옆에 있어줘.."
"..응, 나 안갈게. 여기 있을게."
"..."
"누나."
"..응."
"..앞으로 그러지마라, 나 힘들어."
"...응."
"아, 이쁘다. 우리 누나."
그 진심이 넘쳐흘러 강을 이루도록, 그래서 나의 마음이 너에게 닿을 수 있도록.
8 . 김종대
[ 너 진짜 인간도 아니다 ]
[ 진심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
[ 야 심각해 너만 빼고 다 아는데 왜 너만 몰라 ]
[ 김종대가 학교를 안나와 왜 그런지 알아? ]
[ 솔직히 니가 잘못했어 그 여린애를 ]
"..아, 진짜."
학교에서 예쁘게 사귀기로 유명했던, 말 그대로 CC였던 우리의 이별은 점차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카톡으로 경고를 하더니, 결국 너는 정말 학교에 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너와 강의시간표가 정반대인덕에 너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며칠 째 보이지 않는 너의 행방에 주변인들의 화살은 모두 나에게로 날아왔다. 너에게 미안한마음이 없는건 아니었다. 항상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주던 너였기에 나는 특히나 미안했다. 나는 그래서 이별을 말했던거다. 순수하디 순수한 너에게 미련한 나는 어울리지 않을것 같아서. 그래서 너를 놓아주었던건데.
'내가 지금 뻥치는게 아니고 진짜 심각하다니까.'
"나도 알아. 근데 나보고 어떡하라는거야."
'생각이 없어? 니가 뿌린거 니가 거둬야지.'
"그냥 단순히 헤어진거야, 남녀사이에 그런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게 종대오빠면 말이 달라지지, 병신아. 그 오빠 여기서 더 안나오면 학점 꽝이야.'
"..."
'너 때문에, 알아?'
평소 김종대와 나에대해 잘알던 친구의 말이 어쩜 그렇게 하나하나 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내가 문제였다. 도대체 얼마나 학교를 안나갔으면 출석일수가 안채워져서 학점을 그 정도로 받는지. 평소엔 아파도 결석한번 안하던 사람이 나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걸 생각하니 죄책감에 잠도 오지않고 입맛마저 뚝 떨어졌다. 주변 친구들의 욕설 섞인 문자에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라고 보낸 문자도 나를 정신차리게 하지 못했는데, 그 출석 학점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뭘 어째?"
'어쩌긴, 가서 달래줘야지.'
"어떻게 달래줘."
'그걸 니가 알지, 내가 알아?'
솔직히 너 유명하잖아, 김종대 잘 달래기로. 우리가 괜히 니네 커플 부럽다고 하냐. 그 오빠 너 아니면 절대 기분 안풀거든. 이어서 들려오는 친구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내가 뿌린거 내가 거둬야지.
***
"..하."
그의 집 앞에서 한숨만 내뱉는 것도 10분째다. 등쌀에 밀려 어째 오긴 왔는데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평소대로 달래라는 친구의 말에도 평소대로가 어떤거였는지 모르겠다. 아, 그냥 다 모르겠어.
띵동-.
자신감을 가지고 누른 초인종은 무응답으로 나를 맞이했다, 뭐야. 집밖으로 안나온다더니 어디 간 모양인데, 한번 더 초인종을 눌렀지만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급격히 몰려오는 허탈함에 뒤를 돌았다, 그때였다.
"..ㅇㅇ아."
"..아."
들려오는 목소리에 당황한 내가 다시 뒤를 도니 그곳엔 참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몰골이 말도 아니었다.
"..너, 너."
"..오빠."
얼마나 운건지 퉁퉁 부은 눈하며, 부스스한 머리와 축쳐진 몸이 예전의 그를 떠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몰골에 할말을 잃은 나는 끌리는대로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쓰다듬었다. 생기가 없는 그의 두눈에 점차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왜, 울어."
"ㅇㅇ아.."
나올 눈물이 남아있긴 한건지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 결국 그의 얼굴을 내 어깨에 묻었다. 옷이 젖어왔다.
"울지마, 내가 울지말라고 했지."
"내가, 흐, 많이 울꺼라고, 했잖, 아."
"내가 진짜."
"왜 이렇게, 늦게왔어.."
그가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게 마치 엄마에게 매달리는 어린아이같아서 슬핏 웃음이 나왔다.
"애도 아니고, 두고 갈 수가 없네."
"그니까, 왜 두고갔어.."
"..더 착한 사람 만나라고 했잖아."
"내가, 너말고 누구를 만나..."
칭얼대는 그를 떼어 눈을 마주쳤다, 아직도 그렁그렁한 두 눈이 나를 따라 웃었다.
"오빠."
"..응."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아니야.."
"이제 안그럴게, 그니까 뚝. 응?"
"응..뚝."
"착하다, 우리 종대."
머리를 쓰다듬으니 더욱 환하게 웃는다, 진짜 애같다니까.
"학교는 왜 안나가, 혼날래."
"..아니, 너가 안오니까.."
"그렇다고 학교를 안가? 내가 다시 가야 정신차릴래."
"아아, 미안해! 나 학교 잘다닐게! 그니까 가지마.."
"알았어, 학교 잘다녀야 돼, 알겠지?"
"응, 내일부터 꼭 갈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누구에게나 행복해보였던 그 때로.
9 . 루한
"뭐지, 이게."
어느 날부터 집앞에 이상한것이 생겼다. 누군가가 매일 장미꽃 한 송이를 내 집 앞에 두고 가는 것이었다. 포장도 되지 않은 생생한 장미가 매일 아침 나를 반겼다. 그 꽃의 원주인이 누구인지 알고싶었지만 아침 잠이 많은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힘들어 매번 실패했었다. 어쩌다 한번 일찍 일어난 적이 있었지만 그 사람이 더 빨랐다. 그렇게 주인 잃은 장미꽃은 나와 함께 아침을 맞았다.
"..또 있네."
다음 날 아침에도 역시나 장미꽃이 놓여있었다. 이번이 벌써 열 네송이 째다. 도대체 이 꽃의 의미는 무엇이고 몇 송이가 되어야 그만 할런지, 무엇보다 이 꽃을 놓고 가는 사람의 정체는?
"그러니까, 누가 매일 꽃을 놓고간다는거지?"
"그렇다니까, 근데 누군지를 몰라."
"음,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날 좋아하는사람?"
"응, 그게 아니면 꽃을 놓을 이유가 없잖아."
"...그런가."
날 좋아해서 매일 꽃을 놓고간다고, 근데 왜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거지..?
"그럼 왜 얼굴은 안보여주는거지?"
"니가 보면 안될사람인가보지."
"그게 말이야, 방구야."
"예를들어 니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뭐."
"..싫어하는사람.."
평소에 딱히 싫어한다고 느낀 사람은 없었는데. 게다가 남자라면.
"아니면 일찍 일어나서 확인해봐."
"나 잠 많은거 알잖아.."
"진짜 니가 확인하고 싶으면 안떠지던 눈도 확떠지겠다."
"..."
***
"..헐."
이건 기적이다, 기적. 나는 결국 그 꽃의 주인을 확인하겠다고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게다가 어제 잠도 안와서 늦게 잠들었는데, 이시간에 눈이 떠진건 내 생에 손에 꼽을 정도에 속했다.
"아, 맞다. 빨리."
꽃의 주인을 확인해야지, 혹시나 마주칠까 머리도 빗고 눈꼽도 뗐다. 눈이 좀 붓긴했지만 평소같은 모습이었다. 다행이다, 서둘러 현관으로 향했다. 부푼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어?"
"..."
진짜 누군가가 있었다. 꽃을 놓다말고 움찔하던 그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도 놀라 하마터면 문을 그대로 닫아버릴 뻔했다.
"..."
"드디어 나왔네."
마치 내가 언젠가 나올걸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했다, 그는. 평소같은 웃음으로 나를 반기던 그는 바닥에 놓았던 꽃을 집어들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오빠."
"꽃, 몇송이야?"
어제까지 열 네송이였으니까, 오늘까지.
"..열, 다섯 송이."
"그럼 우리 15일동안 헤어져있었네."
"..."
꽃의 의미가 더욱 충격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꽃이 처음 놓여진게 그와 헤어진 다음 날부터였다. 왜 그걸 알지 못했을까, 바보같이.
"..."
"너한테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몰랐어."
"..."
"니가 날 싫어한다고 해서, 모습을 보이면 안되겠더라고."
'그럼 왜 얼굴은 안보여주는거지?'
'니가 보면 안될사람인가보지.'
'그게 말이야, 방구야.'
'예를들어 니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뭐.'
'..싫어하는사람..'
"..아."
"ㅇㅇ아."
"..어?"
"15일동안, 많이 고민했어."
"..."
"널 잊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게 안돼."
"..."
"내가 너한테 남자친구가 아니라 뽀뽀만 밝히는 변태가 된것 같아서, 다 내탓 같더라."
"..아니, 야."
"15일에 걸쳐서 고백한건데."
"..."
"..그 고백, 받아주면 안될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작아서 볼 수나 있었을까 하는 정도로. 그의 표정이 밝아지는걸 보니 보긴 본것 같았다. 그가 내 손에 들린 장미를 빼앗아들더니 무릎을 꿇었다.
"..받아주세요."
"..."
"좋아합니다."
15일에 걸쳐진 고백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를 따라 웃을 수 있었다.
하얀건 배경이오 까만건 글씨네요
글이라고 적기만 하면 글이 아닌데 그냥 적었네요..^^
9명 다른 에피소드로 쓰느라 죽는줄알았네옄ㅋㅋㅋㅋ
어제 어디 놀러가는 바람에 오늘 업뎃해여..
다음편부턴 카톡버전으로 돌아갑니다!
후 보고싶은 우리 톡이..
브금은 전편과 통일!
오늘 음 개인적으로는 크리스가 좋은걸료..나능뇨..옵하ㄱr..죠흔girl..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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