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1억
정국은 아침에 먼저 일어나 여름을 한참 바라보았다.
여름이는 하루종일 자놓고 계속 잠이 오는지 한 번도 안 깨고 자자 정국은 그 모습이 마냥 강아지처럼 보인다 생각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자연스레 서랍 안에서 우울증 약을 꺼낸 정국은 고개를 작게 저어보고선
그 약을 다시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기지개를 쭉 키고선 방에서 나온 정국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제 42회_(2)
눈을 뜨자마자 자연스레 손을 옆으로 뻗었는데 그가 없었다. 또 어디 간 거야.. 인상을 쓴채로
벽에 달려있는 시계를 보면 벌써 12시가 다 되어갔다. 어제 저녁에 자서 지금 일어난 거야? 일어날 때 좀 깨워주지..
혼잣말을 하며 문을 열었을 땐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 이 냄새 뭐더라? 닭도리탕? 킁킁 냄새를 맡으며 거실로 나오자
그는 주방에서 무언가 칼질을 하고 있었다. 놀래서 그쪽으로 달려가 급히 칼을 뺏었더니 그의 표정은 당황스러워보였다.
"칼..! 칼.. 만지지 마."
"…언제 일어났대."
"……."
"칼?"
"칼.. 위험하니까.. 또 너 손목.."
"걱정마. 나 이제 그런짓 안 해."
"……."
"네가 뺏으면서 다칠 뻔 했잖아."
"미안.."
그는 내 손에 들린 칼을 뺏어가며 말했다.
"반말 아직도 어색해 죽겠네."
"아, 어색해!? 그냥 존댓말 할까...?"
"뭔 또 존댓말이야. 앉아. 배고프지."
"응! 조금.. 근데 이거 다 네가 한 거야?"
"별로 한 건 없지만 먹어."
토스트를 했는지 토스트를 썰어서는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고선 의자에 앉기에
그 맞은편에 앉아보였더니 정국이가 나에게 웬 봉지에서 가게 이름이 써져잇는 나무젓가락을 건내주었다.
"뭐야.. 배달시켰어!? 난 또 네가 만든줄 알았네.."
"나 요리 못 해."
"안 되겠네.. 내가 맨날 밥 해줘야겠네."
"굳이 그래주지 않아도 되는데.."
"왜!?"
"먹어."
"왜! 내가 만든 건 별로야?"
"먹어라."
"치.."
반으로 잘라진 토스트를 먼저 먹어보려고 하자 정국이가 나를 웃으면서 쳐다보기에 왜? 하자 정국이는 고개를 저었다.
얼른 먹으라기에 잘먹겠습니다! 하고 외치고선 한입 베어물었을까..
"아.."
"왜."
"뭘 왜야! 여기에 와사비 넣었지!"
"아닌데? 내 건 아무런 맛도 안나는데."
"자기 거에만 안 넣고..! 자꾸 나 놀리고..! 애초에 왜 밥 먹기 전에 토스트를 주나 했네.. 진짜.. 사람이.."
그래도 확실히 정국이는 많이 밝아졌다. 이제는 네가 우울해하면 더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한입 먹다가 만 토스트를 먹어보라고 들이댔더니 정국이가 고개를 저으며 나무젓가락을 쪼갠다.
그러다 자기 것이 이상하게 쪼개지자 그걸 나에게 주는데 그게 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여워서 웃어보였더니
정국이도 웃긴지 따라 웃어보인다.
이렇게 소소하게 집에서만 만나며 연애하는데도 행복할 수가 있을까?
밥을 다 먹고 티비를 보는데 드라마 속 연인들은 놀이공원에 가서 데이트를 한다.
그 모습이 막상 부러워서 입을 벌리고 보면, 정국이는 나를 힐끔 보고선 말했다.
"부러워?"
"조금?"
"가고싶어?"
"가고는 싶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
"가자."
"응. 그 나중이 10년 뒤라도 기다릴 수 있어."
"그때는 우리 삼십대 후반이야."
"그게 왜?"
"그래도 좋아?"
"좋아. 너랑 함께라면 뭐..!"
그 말을 하고선 정국이의 어깨에 기대어보았다. 여전히 좋은향이 나는 정국이를 꼭 끌어안자
정국이는 나런 나의 뒷머리를 쓸어준다. 몇 번이나 생각이 드는 거지만.. 정국이의 손길은 참 따듯하다.
어제 뜬금없이 자신을 꼭 끌어안고 울던 나의 얘기는 전혀 하지도 않는 정국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오늘은 노래 녹음을 하러 회사에 왔다. 회사에 도착했는데 익숙한 얼굴이 있어 반갑게 그쪽으로 다가가다.
유미씨였다. 유미씨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며 활짝 웃어보였다.
이상하게 유미씨를 보면 따라 웃음이 나온다니까..
"나 이번에 우리 회사 계약 끝나서 여기서 계약하려구."
"그래요? 벌써 계약이 끝났어?"
"응. 이제 자주 보겠다? 여름씨도? 너무 좋다."
몇년은 알던 사이처럼 유미씨와 같이 하이파이브도 하고, 신나서 다른 얘기들도 나눴더니
정국이는 우리를 한참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정국이가 먼저 2층으로 올라가자 유미씨는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둘이 만나는 거. 입 꾹 닫고 있을게요. 우리 나중에 셋이서 밥 같이 먹는 거다?"
"당연하죠! 진짜.. 정국이 곁에는 다 좋은분들만 있는 것 같아요."
"내 생각에도 그래요. 예전에 태형이, 지민이, 정국이랑 방송 같이 했는데.
나 혼자 여자였거든요? 근데 엄청 챙겨주고.. 따듯한 애들 같더라구요."
"진짜요? 아, 저 그 방송 한 번 본 것 같아요..!"
"어! 3년전인데 기억해요!?"
"그.. 무슨 먹는 방송이었는데! 그쵸?"
"어! 맞아요!!"
뭐가 또 신나는지 별 거 아닌 걸로 둘이 서로 박수를 치며 웃기 바쁜데 그가 2층에 먼저 올라가서는 내게 말한다.
"얼른 와."
"아, 응!.. 갈게요.. 언니!"
"어! 언니라고 불러줬다.. 이제 우리 다음에 볼 땐 언니, 동생 해요!"
"네!"
안녕- 하고 서로 몇년은 떨어져서 지낼 것 처럼 인사를 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오자 그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왜 그러냐 물으니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베프인줄 알겠네. 한 번 본 사이면서."
"유미언니 엄청 착하셔! 예쁘시고..!"
"그거 모르는 사람 없어."
"그렇겠다!"
"그렇게 좋아?"
"응! 반디언니 다음으로 좋아! 내 사랑들!"
"네 사랑 참 많다."
"그치만 내 첫번째 사랑은 너인걸!"
우웩- 하고 토하는 시늉을 하기에 꽤 충격먹은 표정을 지었더니 정국이는 그 모습을 보고 웃는다.
그렇게까지 할 건 없었잖아.. 찡찡 거리며 그를 따르면
그는 익숙한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섰고, 윤기오빠는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 놀랬는지 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아마 뜨거운 커피에 혀 데인 게 분명하다.
"야 진짜 우리 애들은 노크하는 방법 먼저 알려줘야겠어."
"알려준다고 해?"
"특히 전정국 너! 임마!"
"뭔 노크야. 안에서 노래 작업만 하면서."
"야.. 그래도 나한테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지!"
"웃기네."
"나참.. 어. 여름이 안녕."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선 손을 흔드는 오빠에 따라 손을 흔들어주었다.
대충 이름모를 누군가 데모 작업을 해주었기에 그 노래를 한참 들어보던 그는 곧바로 녹음실로 들어간다.
커피를 홀짝 마시며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몸을 움직이는 오빠를 한참 보다가 녹음실 안에 있는 그를 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한 번도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는구나.
"야 침 흐르겠다. 입 좀 닫아. 디러워 죽겠네.. 부담스러워서 노래 못 부르겠다."
"아, 그래? 나 엄청 부담스러웠어?"
"응. 하나는 원테이크고 하나는 금방 끝내도록 할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오오..!"
"근데 너네 참 신기하다?"
"왜?"
오빠는 뭔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에서 가사가 적힌 종이를 보고있는 정국이를 보고선, 그 다음으로는 나를 본다.
뭔가를 말하려는듯 입술이 움직일듯 말듯 하기에 나는 빨리 말해! 하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냥.. 정국이는 우울증이었고.. 너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잖아.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거든.
항상 웃고있어도 어딘가 건드리면 툭 하고 터질 것 같은.. 그런?"
"……."
"근데.. 이상하게 둘이 같이 붙어 다니고 나서부터 거짓말처럼 밝아지는 게 한눈에 보이니까."
"…그래?"
"응. 둘이 만나게 될줄 누가 알았겠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딱 보아도 정국이가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나까지 밝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멍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싶다가도
나를 잘 아는 오빠가 조금은 고마웠다.
"정국아. '하' 발음에서 힘이 너무 빠진다. 그거 빼곤 다 괜찮아. 다시 가자."
"……."
"그쪽 진짜 할 거 없구나? 오늘도 찾아오고."
"할 거 많은데. 그쪽 보려고 찾아 온 건데?"
"그러다 열애설이라도 뜨면?"
"내 팬들도 나 연애 하는 거에 대해선 터치 안 해."
"왜?"
"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여자친구 없으면 더 이상하거든. 애들이 나 남자 좋아한다고 몰아갔다니까?"
"하긴.. "
"하긴? 뭐 내가 남자 좋아하게 생겼다 이거야?"
"뭐래?"
"솔직히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만나야 되는 거 아닌가? 여름이 친구라니.. 와.. 나 소름 돋았었잖아."
"별로."
"원래 성격이 그래?"
"어. 어서오세요. 가라.. 메-"
"어우 어쩜 혓바닥도 귀여울까?"
태형이 손님은 안들리게끔 작게 속삭이자 화영이 미친놈.. 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자 태형이 웃으며 과자 진열대 쪽으로 갔고
손님이 음료수를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손님이 갈때만을 기다리며 과자를 고르는척 하던 태형은 가만히 서서 화영을 보았다.
부담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태형에 화영은 계산을 하다말고 태형을 힐끔 보았다.
와 잘생긴 사람이 저렇게 쳐다보니까 엄청 부담스럽네.
태형은 급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더니 곧 손님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다 손님이 나가자 화영의 앞에 와서는 뻔뻔하게 말했다.
"몇시에 끝나."
"몇시에 끝나는 거 알아서 뭐하게."
"저녁 같이 먹자."
"저녁 넘어서 끝나는데? 10시."
"그럼 야식 먹던가."
"살쪄."
"야식으로 샐러드 먹던가."
"샐러드는 맛 없어."
"치킨 먹자."
"생각 좀 해볼게."
"살찐다며."
화영의 모습이 귀여운지 태형이 화영의 머리를 쓰다듬자 화영이 미친! 하고 손을 쳐냈다.
태형이 오오- 역시- 하고 웃어보이자 화영이 꺼지라며 옆에 있던 화장지를 던져보인다.
또 그 화장지를 받아내자 화영이 어쭈.. 하고 자신의 핸드폰을 던지려했고, 태형은 뒤 돌아 걸어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10시에 데리러 올게."
"누가 먹는대!?"
"치킨에 넘어간 거 아니었어?"
"아닌데?"
"10시에 온다."
"야!"
녹음은 다 하고서 윤기오빠랑 노래는 언제 낼지 상의 좀 한다기에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손을 씻고선 나오자 연습실에서는 연습생 애들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참 꽃다운 나이네.. 괜히 27살이 된 내 자신을 탓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늙었다.. 이제..
"왜 혼자 나와있어요? 정국이는?"
"어!.. 깜짝..이야.."
"너무 놀래면 내가 상처 받아요.. 안 받아요."
"아.. 그냥 그.. 갑자기 나타나셔서 놀란 거예요!.."
"어허.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정국이 작업실에 있나봐요?"
"네."
"낯가리시는구나!"
"조금..!"
"정국이랑 똑같네. 뭔가 느낌도 그치."
"어. 뭔가 느낌이 있어. 녹음 다 끝났어요? 뭐 원테이크 한다던데."
"네! 작업은 다 끝났어요."
"아, 그럼 놀러가야겠다. 어어! 거미!!"
갑자기 거미! 하고 내 어깨를 가리키기에 놀래서 뒷걸음질을 치자 미친듯이 웃기 시작하는 둘에 나는 표정을 굳혔다.
와.. 나 이제 다른 사람들한테도 놀림감이야..?
놀리는 거 재밌다며 초면에 자꾸 나를 놀리려고 온갖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 나는 입을 꾹 닫고선 한마디도 안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말하는 거에 다 웃으니까.. 무슨 어린애라도 된 것 같았다.
내가 뭔 한마디를 할 때마다 빵 터지는 둘을 보니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서로의 이름을 다 밝히고선 겨우 이름을 외웠다. 자꾸 날 놀리시는 분은 김남준.. 그리고 놀리는 걸 거들어주는 분은 정호석..
작업실에 거의 다 왔을까.. 갑자기 둘이 내 뒤를 보고 놀란듯 표정을 굳히기에 뒤를 보았더니
몇 번 보았던 얼굴에 나도 따라 표정을 굳혔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둘도 놀란듯 안녕하세요.. 하고 허리를 숙였다. 나영희는 분명 나에게 용건이 있는듯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게 용건이 있어서 온 게 아니었음 좋겠단 생각만 그 짧은 사이에 몇백 번은 한 것 같다.
떨리지만.. 떨리지 않은척 나영희를 올려다보았다. 나영희는 그때의 표정과 다르게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하고선 나를 보았다.
"정국이는 안에 있나요?"
"네."
내 앞으로 들이민 건 다름아닌 자신의 명함이었다. 그 명함을 받아내자 나영희는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선 내게 말했다.
"나중에 따로 만나서 얘기 좀 했음 해서요."
"……."
"언제든 연락 줘요. 길게는 못 기다려요. 내가 성격이 급해서."
"네. 알겠습니다."
나영희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허무하게 내 앞에서 사라진 나영희의 뒷모습을 한참 보고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나에게도.. 수빈씨에게 했던 것처럼 하려는 걸까? 조금은 무서웠지만..
무서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저었다. 뭔가 뒤에서 자꾸만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자..
"……."
"……."
"…왜요?"
"아니.. 왜 여름씨한테.. 뭔.. 사이인가 하고.. 의아한.. 음..."
"그러니까.. 왜 여름씨한테!?"
"아.. 그냥.. 아무것도.. 아, 그.. 이거.. 명함 준 거요!.. 그리고 회장님이랑 마주친 거.. 정국이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그래. 비밀로 해달라는데.. 당연하지."
"그럼.. 당연하지."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이는데 갑자기 작업실 문을 벌컥 열더니 둘은 청개구리처럼 정국이에게 소리쳤다.
"야! 정국아! 방금 네 어머니 오셨는데!!"
"네 어머니가! 여름.."
급히 호석씨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을까 정국이가 살짝 인상을 쓴채로 우리를 보았다.
"여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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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2편을 2편으로 나눈 건! 전편이 ㅠ_ㅠ 너무 짧았기에.. 그래서!!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