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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 14 [본색]
병원냄새는 언제 맡아도 구역질이 난다. 병원 입구 로비에서 기다리던 변백현은 날 보자마자 내 등짝과 팔을 퍽퍽 쳐대며 징징댔다.
“ 왜! 이제! 와! 미워! ”
“ 아파! 왜 이래! ”
“ 나 혼자 무서웠다고…”
변백현이 울상을 지으며 내 손을 붙들었다. 박찬열은? 난 내심 걱정이 됐다.
“ 손목뼈가 부스러져서 수술했어. 아, 진짜 무서워죽는 줄 알았다고, 으엉.”
“ 사고날 때 너도 있었어? ”
“ 그게 어떻게 된거냐면…”
변백현이 아까 낮의 상황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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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1시. 찬열의 집.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 …… ”
[네꺼인 듯 네꺼 아닌 네꺼 같은 나~]
“ …… ”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 무뚝뚝하게 굴지마~]
경수의 전화로 백현의 폰이 시끄럽게 울렸지만 둘 다 일어날 기색이 전혀 보이지않았다. 찬열의 팔을 베고 품에 쏙 들어가 편하게 잠든 백현은 코까지 크릉크릉 골았고 찬열은 백현을 꼭 끌어안은채로 불편하지만 기분좋게 잠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진동과 벨소리가 번갈아울렸고 둘 다 잠시 뒤척이는듯했으나 딱히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수업은 2시부터 시작이었고 시계침은 점점 1시 30분을 향해 똑딱거렸다.
“ 으… 오줌마려…”
아랫배가 찌릿찌릿한 백현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끌어안고있는 찬열의 팔을 짜증스럽게 밀쳐내고 침대에서 내려와 넓은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화장실이 어딨지.
“ 야야…박찬여얼…일어나봐…”
“ …으음…”
“ 화장실…화장실 어디야아… ”
찬열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기며 손짓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간 백현은 곧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기겁하며 일어난 찬열은 서둘러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 으아아악!!”
“ 뭐,뭐야! 무슨 일이야!”
“ 여기 어디야?! 이,이 변태쉐끼!”
눈에 불을 켜고 폴짝 달려들어 찬열의 헤드락을 걸더니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얻어터지게 된 찬열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서둘러 침대 맞은편으로 도망쳤다.
“ 우,우리 똥강아지 왜 이럴까?”
“ 뭔짓했냐? 시발 뭔 짓 했기만 했어봐. 니 고추 작두로 확 썰어버릴테니까!”
자신의 티셔츠 안으로 몸을 이리저리 살핀 백현은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잠시 안심했다. 하지만 벽에 커다랗게 걸린 전자시계 써있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다시 식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 으아아! 망했다!”
“ 배,백현아. 아랫집에서 올라와. 조금만 진정,”
“ 진정하게생겼냐?! 2시 수업인데!”
탁자위에 올려진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한 백현은 경수에게온 부재중전화에 절망하며 서둘러 화장실로 향해 고양이세수를 하고 손을 적셔 머리를 대충 꾹꾹 눌렀다.
“ 야! 나 빨리! 빨리! 나 학교!”
“ 어어. 잠깐만.”
덩달아 급해진 찬열이 백현의 앞에서 잠옷을 휙휙 벗자 백현이 다시 눈을 가리며 소리를 지른다.
“ 미친놈아! 변태새끼! 팬티는 또 왜 안 처입고 있어!”
“ 이게 편한걸 어떡해…. 이제 입을꺼야. 걱정하지마 울 백현이.”
“ 걱정한 거 아니야! 빨리빨리! 그리고 우리 백현이라 부르면 뒤진다!”
“ 모자써, 모자. 머리 눌렸다.”
그 와중에 자신이 눌러쓴 모자와 비슷한 디자인의 모자를 백현에게 씌어준 찬열이 서둘러 차키를 챙겼다.
“ 망했어! 마땅히 공결계 처리할 이유도 없는데! ”
“ 그럼 늦은김에 저기 맥드라이브가서 뭐 먹을까?”
“ 어우, 쫌 닥치고 밟기나해!”
“ 아, 알았어…”
찬열이 차의 속도를 높혔고 백현은 찬열의 집이 학교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절망에 빠졌다.
“ 울 배켜니 눈곱. ”
신호등앞에 잠시 멈췄을때 찬열은 백현의 눈가에 붙은 눈곱을 슥 땠다. 백현은 민망한 듯 찬열의 손을 퍽 처냈고 찬열은 여전히 싱글벙글웃으며 손에 붙은 눈곱을 창밖으로 휙 던졌다.
“ 백현이는 눈곱도 귀여워.”
“ 아침부터 토나오는 소리 쳐하지말고 그냥 입 꾹 닫고 있어줘, 제발. 간곡한 부탁임.”
“ 화끈해.”
신호가 바뀌고 찬열의 차는 좀 더 속도를 내며 달렸다. 울 백현이걱정마. 오빠가 지각 안 하게 해줄게! 혼자 어깨가 으쓱해진 찬열은 요리조리 차들을 추월하며 꽤 빠르게 학교 정문앞에 도착했다.
“ 울 백현이 아침 안 먹어서 어떡해. ”
“ 니나 잘 챙겨드셔요. 나 간다!”
“ 조금있다가 전화해~ 데리러 올게~”
“ 뻐큐!”
백현은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서둘러 학문관 쪽으로 뛰었다. 그때 뒤에서 쿵! 하는 파열음이 울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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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뒤돌아보니까 박찬열 차랑 학교 셔틀버스랑 박은거있지…”
박찬열의 병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 난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했고 뒤에선 변백현이 연신 쫑알쫑알거렸다.
“ 쪽팔리게 왜 학교 버스랑 박고 난리냐, 걘.”
“ 그리고 난 정말 너에게 화가 났어, 도도. 어떻게 나를 저런 변태킹한테 맡길 수가 있어?”
변백현은 또 다시 나를 쳐대며 징징댔다.
“ 아, 그만 때려 좀. 어젠…그럴 일이 있었어. 그리고 누가 그렇게 쳐마시랬냐? ”
“ 아무튼 박찬열 사고난 게 나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짜증나. ”
“ 왜 니 때문인데?”
“ 나 데려다주다가 그런 거 아냐… 아아, 난 몰라. 박찬열 차 개비싼거던데.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변백현이 먼저 앞장서걸었다. 난 병원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가려다가 다른 환자들이 불쾌해할까싶어 꾹 참았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박찬열로 보이는 몸이 머리 꼭대기까지 하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 …… ”
“ …… ”
“ 뭐하냐 미친놈아.”
“ 어때? 죽은 것 같았지?”
고개를 쓱 내밀고 웃은 박찬열이 완전히 이불을 걷어냈다. 얼굴과 목에 반창고를 붙히고 있었고 오른쪽 손엔 초록색 깁스가 둘러져있었다. 나는 간이의자를 끌어다앉으며 혀를 끌끌찼다.
“ 뭐가 좋아서 실실쪼개냐? ”
“ 우리 백현이가 간호해줬거든. 하루종일.”
“ …… ”
나는 고개를 돌려 의외라는 듯이 변백현을 쳐다봤다.
“ 쟤가 존나 불쌍한 척하잖아…”
“ 아아! 으아아아! 찬열이 아프다! 찬열이 손 아프다… 그래서 주스가 먹고 싶다, 주스.”
박찬열이 오버를 하며 손을 감싸쥐자 변백현이 욕을 궁시렁거리며 냉장고 문을 열고 주스를 꺼내 건넨다.
“ 미친놈아, 니가 손이 다쳤지 뇌가 다쳤냐.”
“ 난 간다. ”
“ 뭘 벌써가?”
“ 피곤해서. 갈게. 변백현이 알아서 잘 해줄거야. ”
가지말라며 징징대는 변백현과 어서 가라며 손을 휘휘 흔드는 박찬열에게 대충 손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나시티를 입고 있어서그런지 덥지도 않고 상쾌했지만 기분은 우울했다.
- 그 향수 … 뿌리지마. 적어도 나랑 연습하는 날엔.
머릿속에 김준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 손 위에 있던 김준면이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있다. 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김준면은 어렵다. 분명 클럽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나에게 묻고 싶은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김준면은 묻지않았고 긴가민가하는 것 같았다. 설마 자신이 아끼는 착한 후배가 그런짓을 했으려니싶어서. 아마 평생 묻지않겠지. 김준면은 착해빠졌으니까.
“ … 외롭다.”
내 입에서 이상한 말이 중얼거려졌다. 외롭다? 난 저녁시간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역에 우뚝 멈춰섰고 몇몇 사람들은 짜증을 내며 내 어깨를 툭툭 밀치며 지나갔다. 도경수. 지금 외롭다고 한거야?
“……”
생각해보니 20년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도 그리고 밖에 나와서도. 관계를 맺은 남자들은 내 몸이 고플 뿐이었고 진심으로 나와 마음을 나눈다거나 하는 일말의 애정같은 건 없었다. 초중고 내내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나에게 변백현말고는 쉽사리 손을 먼저 내밀지않았고 난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콧대높은 착각에 빠져살았다. 정말 인생 참 외롭게도 살았다.
지하철역을 나와 익숙한 대학가를 걸었다. 여전히 북적북적거리고 사람들로 넘쳐나는 대학가 풍경에 또 다시 내가 혼자라는게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냥 박찬열 병실에 좀 더 있을 걸 그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취방 골목에 접어들었을때, 김준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에 김준면 이름이 뜨자마자 나를 괴롭히던 낯선 외로움이 잠시나마 달아나는걸느꼈다. 그리고 혹여나 끊길까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형”
[응. 경수야. 전화가능해?]
김준면 목소리는 여전히 미칠듯이 달고 상냥하고 부드럽다. 나에게만 이랬으면 좋겠다.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김준면이 아닌 나에게만 잘해주는 김준면. 난 그게 필요했다.
“네. 무슨 일이세요?”
[다른 건 아니구…. 아까 내가 피곤하단 이유로 조금 별나게 군 것 같아. 미안해, 경수야.]
“……”
[아까 그렇게 끝나고 계속 미안했어, 너한테.]
“ 형.”
[어?]
“ 나한테 앞으로 잘 해주지마요.”
[…경수야?]
“잘 해줄거면 나한테만 잘해주던가해요. 형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웃어주고 잘 대해주는거 질투나서 죽을 것 같고 더 이상은 못 봐줄 것 같으니까… 시발.”
[경수,]
김준면이 더 말하기전에 바로 전화를 끊었다. 조금만 더 말했다간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다. 몸을 일으키고 몇걸음 걸었을까. 김준면에게서 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받지않자 받을때까지 할 모양인지 계속 핸드폰이 울려댔고 난 아예 배터리를 빼냈다.
잠시후,
episode. 15 [평소처럼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