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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3주년 기념일
















잠을 설쳤다. 퀭한 눈으로 침대 옆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남준은 상체를 세워 앉아 안경을 썼다. 새벽 5시. 요즘 그가 항상 잠을 이어가지 못하고 깨는 시간이었다. 여주와 헤어진 지 일주일. 남준은 하루하루 흘러갈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의존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저 일에만 너무 몰두하느라 여주를 방치했다 생각했는데, 그녀는 언제 이렇게 남준의 삶 깊숙이 들어왔는지.



남준은 거실의 불을 켜고, 부엌에서 커피를 내렸다. 금세 커피의 향기가 집 안을 채웠다. 커피잔을 들고 소파에 앉아 바라본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하얀 머그잔과 대비되는 커피의 진한 색에 남준은 별안간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커피 마시지 말고 아침은 꼭 밥 먹어야 돼. 항상 그녀가 하던 말이 떠올라서. 매일 아침 꼬박꼬박 확인하던 단호한 얼굴까지 함께 떠올랐다. 애써 잊으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도 어김없이 혀를 데었다.

















여주는 항상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요즘 들어 악몽을 자주 꾼다. 밤중에 홀로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면, 전화를 걸어 달래줄 사람이 없다는 게 슬펐다. 두 사람이 함께 잠드는 주말이면, 그는 항상 여주가 다시 잠에 들 때까지 품에 안고 토닥여주었다. 그 따스한 손길에, 그녀는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밤중에 깨어날 때면, 혼자라는 게 더없이 실감 났다. 그녀도, 잠을 설쳤다.



'내꺼' 다소 오글거리게 저장된 이름은, 남준의 번호를 갖고 있었다. 아직 번호를 지우지 못했고 저장명을 바꾸지 못했다. 사귄 지 3개월이 된 때, 남준이 넌지시 물어왔었다. 나 뭐라고 저장했어? 하는 연인끼리의 흔한 질문. 그 말에 여주는 '남준이'라고 저장된 화면을 보여주었고, 남준은 곧장 그녀의 핸드폰을 가져가 마음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주 핸드폰 속 남준의 번호는 '내꺼'였다. 그리고 그 날에, 남준이 호칭까지 정정해버렸다.





"자기야."


"뭐?"


"좋다. 이거 딱이네. 그치 자기야."


"뭐야 갑자기! 민망해.."


"뭐가 자기야? 뭐가 민망해?"


"아 김남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여주를 얼굴 덕지덕지 장난기를 묻히고 놀리던 남준. 아직도 그때의 모습이 선명했다. 전화번호 편집을 누른 여주는 괜히 손가락만 접었다 폈다 반복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김남준'이라는 새로운 저장명을 만들었다. 이제 그녀의 핸드폰 속에 '내꺼'는 없었다. 한숨을 쉬며 탁자에 핸드폰을 내려놓은 여주는 다시 침대로 풀썩 쓰러졌다. 그녀도 역시 하루하루 남준의 존재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자기야. 나 가봐야할 것 같은데."


"..응? 지금?"


"어. 어떡하지..미안해서."


"..안 가면 안돼?"


"..."


"아니야, 가.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진짜 미안.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올게."


"..처음으로 잡은건데. 그래도 갔네."





이미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남준은 일에만 미쳐 살았다. 매일 야근은 물론이고, 출근도 제일 먼저 했다. 동료들이 회사에서 사는 거냐며 짓궂게 놀려대도, 남준은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남준의 이별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그런 남준의 반응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마무리하곤 했다. 남준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당장으로써는 그녀 생각을 지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니. 살이 빠지고, 피부가 퍼석해져도 남준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이주 째 이어지자,





"남준씨!!"





당연한 듯, 그는 쓰러졌다.























조금씩 주위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남준이 눈을 떴다. 온 사방이 하얀 것이 병원인 듯싶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며 나 쓰러졌었지, 하고 몇 시간 전의 일을 기억해낸다. 남준의 가장 친한 동료가 남준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괜찮냐 물었다. 입술까지 메마른 남준은 그런 동료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너 과로래, 인마. 동료의 잔소리 폭탄이 남준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녀가 생각났다.

 




"야 너 꼼짝도 하지 말고 쉬어, 알겠지!"





남준을 집까지 태워 준 동료는 남준이 알겠다고 손을 휘휘 저어 보일 때까지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챙김에 남준은 작게 웃었다. 고맙네, 그래도 친구라고. 집으로 돌아온 남준은 외투를 대충 벗어놓고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켜 여주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남준과 헤어진 뒤, 새로 올라온 소식은 없었다. 남준은 내심 안도하는 자신이 어이없었다.


카메라 앨범을 열었다. 여주와 헤어진 뒤, 어떤 감정이 몰아칠까 두려워 들어가지 않았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쌓인 예쁜 추억들은 남준의 마음을 울렸다. 여기도 갔었지, 저기도 갔었지. 하나하나 기억해낼수록 한 가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너를 보고 싶다. 남준은 외투도 입지 않은 채 차에 탔다. 우발적이고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남준의 이성을 꾹 눌러버린 그리움은 그를 막무가내로 이끌었다.





"..여주야."


"..김남준?"





오후 10시. 그녀가 카페 문을 닫는 시간이다. 문을 잠그던 여주는 자신을 부른 사람이 남준이라는 것에 놀란 듯했다. 뜻밖의 인물이었다. 게다가 어느새 쏙 빠진 얼굴살 하며, 쌀쌀한 밤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옷차림 하며. 완벽에 가깝던 남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얘기 좀 할래? 남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잠시 말이 없던 여주는 그래. 하고 짧게 대답했다. 아직 남준의 눈에 맺힌 눈물을 외면할 정도로 냉정하지 못했다.




"..."


"..."





오랜만에 남준의 차 안에 나란히 앉은 둘은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었다. 남준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는 중이었고, 여주는 그런 남준을 기다려주었다. 무작정 그녀가 보고 싶어서 뛰쳐나왔다. 하고픈 말은 하루를 다 채울 만큼 많았었는데, 얼굴을 보니 그냥 안고 싶었다. 손잡고 싶었고, 사랑한다 속삭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이 흘러왔다.





"미안해."


"..."


"..내가 너무 늦게 알았어."





목적어가 없는 불완전한 말이었지만, 둘은 이해할 수 있었다. 덜덜 떨려오는 남준의 목소리에 여주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만 만지작거렸다. 조수석은 여전히 여주의 몸에 맞에 조절되어 있었고 여주가 달아준 캐릭터 모양 탈취제도 그대로였다. 남준의 차에 탈 때마다 나던 익숙한 향기가 이렇게 독이 되어 돌아올 줄 몰랐다. 그녀의 감정이 위태로워지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마음을 바로잡았다.





"나 진짜 염치 없는 거 아는데, 진짜 나쁜 것도 아는데,"


"..."


"너 없이 못살겠어."


"..남준아."


"..."


"난 있잖아. 널 못 믿겠어."


"어떻게 하면 돼? 어떻게 해야 믿을래? 나 변할 수 있어."


"네가 뭘 한다고 내 마음이 바뀌는 거 아니야."


"..."


"이미 3년동안 많이 느꼈어. 이제 그만할래. 네 눈치 보는 거."





남준과 대비되게 차분한 여주의 목소리와 말이 그의 마음을 쿡쿡 날카롭게 찔러왔다. 알고 있었다. 잡아봤자 자신의 마음만 다친다는 것을. 그래도 다시 몇 분 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빌어먹게도 잠깐 본 그녀의 모습에 설렜으니까. 나 갈게. 운전 조심해. 익숙한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그렇게 남준의 차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여주의 모습을 남준은 보지 못했다. 이미 정리를 시작했을 그녀에게, 남준은 자신의 감정이 우선이었다. 오늘도 그녀를 위하지 못했다.
























































---

우울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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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여주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남준이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ㅠㅠㅠㅠ
6년 전
비회원180.244
2편 올라왔어 !!!!!!!!!! 싸라함미다ㅜㅜㅜ자까님
(분더캄머

6년 전
비회원96.8
ㅠㅠㅠㅠㅠㅜ 하..
6년 전
비회원39.137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넘재밌어요ㅠㅠㅠ작가님 최고...아련미 터지구....후회하는 남준 너무 슬퍼버리고...내용 넘나 좋아요.최고...
6년 전
비회원78.47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2
ㅠㅠㅠㅠㅠㅠㅠㅠㅠ정말 최고에요,,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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