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민의 긴 속눈썹과 동그랗게 뜨여진 눈이 한가득 내 시선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귓가엔 계속 레일라의 가사가 들렸고, 집 안엔 여전히 우리 둘 뿐이었다.
나는 지금 분위기에 취해서 그 애에게 입을 맞췄고,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파드득 나재민에게서 떨어졌다.
내가 상체를 앞으로 빼 입을 맞춘 자세라, 의자에 그대로 앉아 나를 올려다 보는 그 애의 얼굴은 미묘한 표정으로 얼어 있었다.
맙소사. 나 방금 무슨 짓을 저지른거냐.
"그게, 그러니까, 어,"
"..."
"...미안해. 프로젝트는 각자 알아서 하자. 내 자료 올려둘게."
횡설수설, 나도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나머지 그 상황을 빠져 나가려 나재민을 밀어냈지만 갈 곳 잃은 내 시선은 결국 다시 그 애에게로 돌아갔다.
아까는 조금 놀란 것 같더니 지금은 세상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웃고만 있다.
창피함에 죽을 것 만 같아 여차하면 방으로 도망가려고 계단 쪽으로 주춤주춤 걸음을 옮기자 그걸 또 알아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내 쪽으로 걸어왔다.
"어디 가요, 누나."
"야...내가 실수 했어...어쩌다 보니까 그만,"
"실수였어도 괜찮아요, 나도 좋았으니까."
"..."
"난 처음이었는데."
"뭐?!"
"뻥이예요."
그런 말을 하면서 잘도 순진한 얼굴로 웃는다.
점점 다가오는 그 애의 걸음이 맞춰 나도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지만 곧 등 뒤로 벽이 느껴지고, 꼼짝없이 벽과 나재민 사이에 가둬진 나는 나보다 두 뼘 쯤은 위에 솟아있던 얼굴이 숙여져 내 얼굴과 한 뼘도 안되는 거리에 멈춰서자, 나도 모르게 호흡이 멎었다.
위험하다. 머리 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경고음에 나는 얄팍하게나마 마지막 방어막을 내세웠다.
"...진짜 미안한데 그래도 연애는 안해."
겨우 겨우 쥐어 짜낸 내 변명이 몹시 맘에 안든다는 듯 차갑게 표정이 굳어진 나재민이 황당하다는 듯 내게서 멀어졌다.
나도 지금 이게 말도 안되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아 뭔가. 쟤는 안된다.
"...누나는 누나 좋을 대로 하면서."
"그래서 사과 하잖아."
"왜 안돼요?"
"여기서 대학 다니려면 너네는 어릴 때 부터 해오던거 나는 몇년만에 따라 잡아야 해서 시간 없어. 그러니까, 그래서. 지금은 안돼."
키스까지 하고 데이트는 안된대! 라고 궁시렁 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못들은 척,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숨 막힐 것 같던 순간이 지나가고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니, 돌아섰던 그 애가 다시금 빙글- 돌아 내게 다가왔다.
뭐야, 라는 질문을 할 새도 없이 볼과 턱의 중간 그 어디 쯔음에 낯선 감촉이 훅 들어왔다 사라졌다.
"...?"
"다른 거 다 안된다고 했으니까 이 정돈 괜찮죠?"
뻔뻔하고도 불퉁한 얼굴이 바로 앞에서 입을 삐쭉였다.
내가 멍하니 그 얼굴만 바라보자, 나재민은 세상에서 가장 처연한 얼굴을 하고는 테이블로 가 자신의 책과 노트북을 정리해 가방에 쓸어 담았다.
"누나 말 대로 각자 정리해서 프레센테이션에 올리는 걸로 해요. 나 자존심 상해서 집에 갈래."
"야...미안해..."
나재민은 분명히 나를 골리려 연기를 하고 있는게 맞았지만, 그 얼굴이 또 기가 막히게 그 애가 하고 있는 슬픈 척이랑 잘 어울려서 나는 못이기는 척 한번 더 사과를 건넸다.
그런 나를 밉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 나재민은 한숨을 쉬곤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꿰어 신었다.
"...내일 봐요."
"...어."
"오늘 먼저 키스한건 누나라는거 잊지 말고요."
"야, 지금 꼭 그 말을 해야겠,"
"잘 자요. 좋은 꿈 꾸고."
한 쪽 입꼬리만 올려 웃어 보인 나재민은 곧바로 현관 문을 열고 나갔다.
동그란 뒷통수가 문이 닫히며 사라지자 나는 죄책감에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는데. 안된다 했으면서 결국 여지를 준 것은 나였기에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탓 할 수 밖에 없었다.
"아...김여주 이 바보 등신 머저리..."
나재민의 얼굴이 머리 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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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ㄹㅇ 까흠짝 놀랐어요...이렇게 모든 글이 초록글에 올라가다니...처음 있는 일이라서ㅠㅠㅠㅠ너무 감격스러움...ㅠㅠㅠㅠㅠㅠㅠㅠ
늘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린다고 말 하고 싶습니다.
곧 안된다고 말 하는 여주도 된다고 하게 만들테니까요, 그때까지 좀 답답해도 참아 주세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