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 할걸
'we are one!
안녕하세요 엑소입니다'
뒤를이어 방안에 울려퍼지는 그들의 춤, 노래들. 침대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빤히 쳐다만보고있다가 이내 리모컨 전원버튼을 눌려버렸다. 이불속에 얼굴을 묻고 발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움직였다. 그래, 나도 살아있어. 의미없는 말들만 반복하면서 파고든 이불속에서 한참이나 또 눈물을 훔쳤다.
딱 4년전. 그들과 함께 데뷔를 준비하던 중이였다. 다들 파릇파릇한 연습생들이였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스스로가 이뤄갈 미래에대해서 누구보다 강한 열망을 가진 12명. 아니 13명이였다. 연습실로 이동하다가 벤도 아닌 스타렉스에 꼬깃꼬깃 몸을 눌려앉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선을 이탈한 대형차와 부딪혀 큰 사고가 났었다. 창문쪽에 앉아있던 나는 충돌과동시에 열려버린 문 밖으로 튕겨나가버렸고, 다른멤버들은 차 안에서 팔을 다치고 머리에 약간의 타박상을 입었을 뿐. 떨어지려는 나를 잡아주려다 팔이 부러진 찬열이오빠를 제외하고는 기적이다싶을정도로 몸상태를 빠르게 회복해갔다.
문제는 나였다. 100키로 이상을 달리던 차에서 굴러떨어져 다리가 다시 정상적으로 쓸 수 없을만큼이나. 망가져버렸다. 온몸이 성한곳이 없었지만 특히 다리가 그랬다.
병문안 차 병실에 들린 멤버들은 한참이나 말이없었다. 아니 했어도 들을수가 없었다. 한달가까이를 의식불명상태로 지냈고, 눈을 뜬 후에는 날 제외한 후 데뷔를 한 상태라 다들 바빴으니까.
그들이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할때 나는 철심을 박은 다리로 재활치료를 해야했고
라디오에 나와서 온갖 재밌는 이야기들과 개인기를 부릴때 나는 온갖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했다. 사고 후 후유증, 상실로인한 극심한 우울증 등.
첫 앨범 활동이 다 끝나갈때쯤, 멤버들이 한번 병실에 병문안을 왔었다. 틈틈히 들렸던 멤버들도 있었지만, 팬들이 몰려와 어쩔 수 없이 입구에서 발을 돌리기가 일쑤였으니까. 팬들의 함성소리가 병실에 들릴때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시선을 두지않는 날 보면서 몇은 울었다. 몇은 깊게 한숨을 쉬었고 몇은 화를냈다. 울면서. 유리창으로 간간히 비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미안해. 얼굴 못보겠다.
내옆을 지키던 12명이 조금의 스케줄로 하나둘 빠져나가고 마지막으로 찬열이오빠가 남았을때서야. 오빠의 징어야, 하는 낮고 다정한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팔은. 괜찮고."
"물론."
차리리 오빠가 떨어졌어야했는데. 구해주지도 못하고 이게뭐지. 하면서 장난스럽게 말을 건냈다. 웃을수가 없었다. 속은 울고있었을거니까. 아무반응이 없는 날보며 금방 울상이 되는 오빠를 꼭 안아줬다. 나보다 오빠가 먼저 울었다.
미안해, 그때 내가 구해줬어야하는데. 너 두고 데뷔나하고
너무미안해징어야
회사에서의 특별한 조취는 없었다. 내 치료에대한 보상과 위로금이 다일뿐 차마 다리병신이 된 나를 가수로 쓸 생각은. 전혀 없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오빠가 간이침대에서 겨우 잠이 들어서야 침대에 풀썩 누웠다. 아직도 다리쪽이 많이 아렸다. 밤마다 밀려오는 우울증덕에 오늘따라 하늘이 참. 까맸다.
ㅡ
"이제 뭐하고살려고."
"전문대라도 들어가야지."
나와 동갑인 종인이가 내가 퇴원을 하던날 물은. 첫마디였다. 그래.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일년전을 위해 달려왔는데. 하루만에 망가져버린 그 6년을 되돌이키기엔. 이미 늦어버린거였다. 그들은 날 보면 항상 울었다.
울지마. 나 너무 불쌍해지잖아.
그들이 날 연민하여 울기전에, 난 이미 불쌍한 사람이였으면서도 애써 부정.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아가기위한 조건중 하나였다. 난 살아있다. 불쌍하지 않아. 할수있다. 사실은 다 부질없는 그말이. 밤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게하던 원인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넌 내 꿈을 대신 이룬거야.
그만큼 열심히 해줘야지."
"..."
종인이는 대답이 없었다. 커피를 휘휘 저으면서 붉어진 눈을 애써 감출 뿐이였다.
"난 괜찮아."
아니 하나도 안괜찮아.
"곧 나 하고싶은거 찾아서"
그런게 있을리가 없어도
"열심히 살아야지."
열심히 잘 사는척이라도 해야지.
안그러면 진짜
미쳐버릴거 같으니까.
"종인아."
"어.."
"우리이제 보지말자.
부탁 아니야. 그냥. 알았다고 해줘."
"야 너 그래도 연락은"
"내가 너 지켜볼거야. 잘해야되 꼭.
내가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돌아올게."
아마 그때가, 그들을 마주했던
마지막 순간이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들을보면 차오르는 눈물을 멈추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시간이지만
난 꽤 많이.
달라졌다.
2. 사랑은 타이밍
"00아.내가 말한대로 할거지?"
"...네"
때는 내가 퇴원후 그들과 일방적인 이별통보 후 유럽으로 이민을 갈 계획을 세우고 있던 중. Sm측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평소에 꽤 친분있게 지내던 프로듀서 언니의 제안 아닌 제안에 한참을 뜸을 들인 후 내보낸 대답이였다.
'너 다리가 그렇다고 노래 못부르고 작사작곡 못하는거 아니잖아.
그렇다고 가수를하기엔 좀 무리가있을거같고. 언니랑 같이 프로듀싱
일해보는거 어때.'
연습생을 들어와서부터 꾸준히 배워오던 작사 작곡들. 어리고 철없는 맘에 두서없이 만든곡만 수십곡아였다. 짐을 정리하던 도중 홧김에 다 구겨 쓰레기통에버린 악보들을 주섬주럼 꺼냈다. 그래. 난 살아있다. 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한 스무번째로 만든 악보를 펼쳤다. 아무렇게나 휘갈긴 악보라 정확히 알아볼 순 없지만 위에 예쁘게 적어놓은 '사랑은 타이밍' 하는 글자만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래. 내가 그때는 그랬었지. 아주 철없는 마음에 짝사랑했던 그를 타이밍 좋게 놓쳐버린날. 그날이였을거야. 악보들을 손으로 뚝 펴서 누런 봉투에 다시 집어넣었다.
언제 다시 꺼내게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기쁜마음으로 볼 수 있기를.
아직 거동이 약간 불편한상태라 걸어다닐때 살짝 뒤뚱거리는. 그런게 있었다. 프로듀서 언니에게 조금만 정신 차리고 올게요. 하는 말만 남겨두곤 유럽에의 이민을 긴 여행으로 간주하곤 공항으로 갔다. 한발한발. 내딛는 걸음이 왜그리도 무거웠는지.
이게 내 다리가 병신이여서인지 여기 남겨두고가는 내 미련이 병신같은건지 도통 알수가 없을만큼이나 아리송했다. 후유증으로 약깐 지끈한 머리에 비틀. 하자 뒤에서 뒤에서 누군가 날 받춰줬다. 이상하게도 익숙한 손길에 뒤를 돌았을때. 내가 예상했던 그가 쓰러진 캐리어를 내 손에 쥐여줬다.
"어디가려고."
백현이오빠였다. 내가 지독하게도 짝사랑했던 그사람. '사랑은 타이밍' 의 주인공 아였다 . 물론 지금은 그저 철없었던 작은 추억이지만은 그때는 내 전부였을거라 의심치 않았으니까. 대충 그런 존재였었다.
"어떻게 알았어. 혼자야?"
오빠가 끄덕끄덕.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날 빤히 쳐다봤다. 연민도 동정도 아닌. '사랑은 타이밍' 을 휘갈길때의 내 눈빛 그대로. 한참을 그러다, 이내 눈을먼저 피했다. 프로듀서누나가 나한테 가보라고했어. 하고 알려줬다.
"좀 오래있을거야. 다른오빠들한텐 말하지말고."
"진짜 괜찮아?"
"어"
적어도 미련이 남지않은 '척'만은 했어야했다. 오빠를 뒤로 캐리어를 질질, 다리까지 절뚝대는 내 뒷모습을 떠올리며 부끄럽다. 하는 생각만으로 뒤도 돌아보지않은채 앞으로 걸어가다 00아. 하고 불러오는 목소리와함께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허리를 감싸오는 손길에 발길을 멈췄다. 아무말도없이 조금의 울먹임과함께 그 정적을 이어가다 미안해. 하고는 오빠를 떼냈다. 오빠도 나처럼 '척'이라도 하고살면. 나름 참을만 할거야. 내가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오빠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였다.
"그럴게. 빨리돌아와"
그렇게 지독하게 맞추지못했던 '사랑의 타이밍' 이 끝이났다.
유럽에서의 몇년간 그들과의 소소한 추억들. 좋았던 기억들만 모아 추렸고,간신히 나아질 쯤에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증에 한참을 고생하고. 그렇게 밝은노래 슬픈 노래. 차근차근 써갔다. 느리지도 빠르지도않게. 가끔씩 메일로보내는 곡들에 언니는 항상 좋다. 라는 말만 건내고는 몇일 후에 훨씬 더 세련되고 좋은곡으로 바꿔주곤했다. 뭐가 좋았던거야 언니. 하면 이렇게 배우는거야. 하곤 웃어넘겼다.
그렇게 4년후. 지독하게 우울하고 힘들었던 내 '일부분' 의 시간들이 모두 흐르고
어쩌면 짧을수도, 길 수도 있는 시간에 그들의 춤추고 노래하는 영상들을 보면 끝없이 우울해지는 그 약간의 것들을 남겨둔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심 찬열이 오빠라던가. 누구든 내 귀국을 반겨줄거라는 약간의 기대를 하곤 도착한 공항에는 텅텅. 나와 같이 비행기를 탄 사람들과 곧 비행기를 탈 사람들만이 꽉 채우고 있을 뿐이였다. 그래, 많이 유명해져서 이런데 함부로 못오겠다.
기분이 좋아야하는지 나빠야하는지. 좋아야한다는 이성적 판단 아래
피식. 웃고는 캐리어를 끌었다. 그때보다 많이 호전된 상태라 다리는 절지않았고 가끔 머리가 지끈. 해오는 정도였다. 밖으로 나가자 프로듀서언니가 허겁지겁. 차를 끌고는 도착하는 길이였는지 멀리서 숨을 허덕이며 뛰어오고있었다. 언니 뛰지마요. 라고 말하려다 손에서 놓쳐버린 캐리어의 행방이 묘연해졌을때
"어허. 이런건 잘챙겨야지."
손에 그 큰 캐리어를 번쩍 들고서 나 연예인이에요. 하고 소문이라도 내는마냥 푹 눌러쓴 모자에 큰 선글라스. 낮은목소리. 찬열이 오빠였다.
"오빠 여기와도되?"
"아니. 뒤에봐."
이미 구름때처럼 몰려든 오빠의 팬으로 추정되는 인파에 빨리가야지 하고 마침 도착한 언니에게 캐리어를 넘기곤 날 업고 뛰는 오빠였다. 무겁다! 하는 장난스런 말과 함께.
ㅡ
"그래도 많이 괜찮아진거 같네."
"그쵸"
언니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연습중이라는 멤버들을 보러가자는 오빠의 말을 거절하고 들어선 녹음실은 예전 그대로였다. 내가있어야할 곳은 이자리가 아니라 저 마이크 앞이어야하는데.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리번두리번하다 마이크를 톡톡. 두드렸다. 지잉 ㅡ 하고 울리는소리에 놀라 아아. 하고 소리를 내보니 누가 연습을 하고 끄지않은 모양이였다. 한곡할래? 하는 언니의말에 나중에. 하는 기약없는 약속 후 푹신한 의자에앉아 허리를 뒤로 쭉 젖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잘할거야 분명.
그리고 너 못하면 내가 잘려"
진짜?하는 내말에 진짜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언니였다. 그렇게 의미없는 말들을 이리저리 주고받다가 나가려고 가방을 들었을때쯤 찬열이오빠가 몰고온 그 12명의 무리들이 녹음실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걱정해주는 이와 말없이 혼자서 엉엉 우는 이
다행이다. 하고 기분좋게 웃어주는 이.
왜 연락 안했냐며 잔뜩 토라지다 금새 환하게 웃는 이.
그 사이에서 날 보면서 잘지냈어? 하곤 멀리서 입모양으로 물어오는 백현이오빠와 눈이 마주쳤을때 기분이 정말. 이상하게 묘했다.
응 잘 지냈어. 오빠가 환하게 웃었다.
내가 있어야 할 순간에
내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운명도 인연도
타이밍이 참 중요하다는걸.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지금또 이상하게 묘한 이 느낌을
어떻게든 해석해야할 내 몫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너진짜 그러는거 아니야."
"뭘"
"내가...어? 얼마나 힘드렀느데.
어떠케 나한테 화를낼슈가이서."
내 데뷔가 무산된건 19살. 그리고 유럽으로 간건 20살. 돌아온지금 그때처럼 나이를 핑계로 술을 멀리한 이는 아무도 없기에 나름 눈물의 재회를 하고서 우르르. 몰려온곳은 치킨집. 사옥에서 나가자마자 우르르. 몰려오는 팬들에게 저여자 000아니에요? 하는 물음을 받고서 억지로 도착한 여기서. 왜 쓸데없이 알아봐서는. 하고 오빠들이 섞어놓은 소맥을 원샷 해버렸다. 수술하고 몇년은 술을 멀리하라는 말이 잔을 들때 아차,하기도전에 반이나 들이킨 후였기에 반도 에라모르겠다. 하고 비워버렸다
근 몇년간의 첫 술. 예전에 장난삼아 한잔마시고 가버린 나에게 소맥 한잔의 의미는 아주 대단한거였다. 정신줄을 잡을 새도없이 픽 저 세계로가버린 나는 이미 헛소리들을 지껄이고 있었다. 아까 날 알아본 팬들때문에 다들 허허. 하고 헛웃음만 나뒹구는 그 사이에서 혼자 얼굴이 벌게져서는.
내가 입원했을때 본채만채도 안해서 버럭 화를 낸 세훈이가 그 타겟이 되버린거였다. 내말에 미안해. 하고 등을 토닥토닥 거려주는데 뭐가 그리도 고약한 술버릇인지 팔로 손을 탁 채버렸다.
"놔. 난 뒤끝이 굉장히 긴사람이다 너?"
아진짜 미안하다니까. 하고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세훈이를 멍 하니 쳐다보다가 그상태로 눈이 풀려버렸다. 테이블에 머리를 쿵. 박고 아야.....하는 기억을 끝으로 아무 생각도 나지를 않았다. 물밀듯 밀려오는 두통에 눈을 떳을때는 낯선 침대에서 다행이 어제 그 옷 그상태로 잠이 든 상태였다. 여기가 어디지. 하고 쳐다본 아래쪽은 백현이오빠가 이불하나만 둘둘 둘러싸곤 쭈그려 자고있었다. 비맞은 강아지가 깨갱한것처럼. 내위에 덮어진 두꺼운 이불을 덮어준후 방을 나섰다. 이곳저곳 붙혀진 포스터들, 장식관에 나열된 수많은 트로피들. 거실에 붙혀진 포스터 중에 제일 큰 그들의 단체포스터 옆에 기분좋게웃고있는 내사진이붙어져있었다.
"씨....뭐야이게."
하면서도 얼굴은 웃고있는게. 기분이 되게 이상했다. 내 자리는 분명 저긴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을 수백번은 되풀이하면서. 왜 하필 나지. 차라리 다른사람이였으면. 하는 못된 상상들까지. 나도 어쩔 수 없이 내가 최선인 '인간' 일 수밖에 없었던거였다. 원래 내 자리였던곳에 내가 붙어있을뿐인데. 너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움이. 또 깊숙히서 울컥함이 올라오려는게 느껴져서. 뒤로 고개를 획 돌렸을때, 나보다 키가 한참 큰 루한오빠가 내뒤에서 날 따라 포스터를 빤히 쳐다보고있는게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획 돈 나때문에 깜짝이야. 하고 활짝 웃는 오빠와 마주보면서 나도 더러 내가 더 놀랬다. 하고 웃어버렸다.
"저 사진 기억나? 우리 데뷔 확정일 정해진날.
너 진짜 좋아했었는데."
다시 시선을 그 사진에 두고선 말했다. 끝을 흐리기에 장난스럽게 대꾸를 해도 그냥 내머리를 쓰담쓰담하다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췄다.
"00아."
"응"
"그냥 예전처럼 기분안좋으면 오빠한테와서 다풀고.
기죽지말고. 4년이나 지났어도 너는 나한테 똑같아."
일로와. 하고 꼭 안아주는 오빠에게 아침부터 날 울려야겠냐면서 훌쩍거리자 너 지금 진짜 못생겼어. 하고 볼을 주욱 늘여트리는 오빠. 약주고병주기는. 처음보네.
루한오빠는 찬열이오빠랑 꽤 비슷한. 유일하게 내가 찡찡댈때, 울때 한번도 빠짐없이 옆에서 토닥토닥. 하고 달래주던 사람이였다. 찬열이오빠와 다른점은 나도모를 미묘한 그 차이. 정도였다. 물론 멤버로써 '여자' 보다는 친동생같은 '여동생' 으로 받어들였기에 가능한 거였겠지만. 다른멤버들은 나름 홍일점인 내게 남자친구라도 되는마냥 장난을 걸어오곤했었고. 유독 백현이오빠가 장난을 칠때만 얼굴이 시뻘게져서 한동안 놀림감이 되기도했었던것 까지. 그때만해도 정말 당연했던것들이. 지금은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네.
멍하니 숙소를 두리번거리다 씻으시지~하고 화장실로 밀어넣는 오빠덕에 들어온 화장실조차 추억이 덕지덕지 묻어있는것같이 먹먹한게. 세수를 하고 거울을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거울속에 내가 그냥. 너무 미웠다.
ㅡ
"잘먹고. 힘내고!"
입모양으로 하트를 그리며 내앞에 콩나물국을 탁 내려놓는 경수오빠. 정말 예전으로 돌아간거같다. 나 기분안좋은날이면 맨날 떡볶이 해주고 막 그랬었는데. 옆에앉아서 밥숟갈 한번 뜰때마다 반찬 하나하나를 순서까지 정해가며 올려주는 종인이덕에 아주 부담스러운 식사를끝내고 숙소를 나갈 채비를 했다. 아 서운한데ㅡ 하는 멤버들이 너 어제 기억나긴하냐!하면서 가지말라며 붙잡는데도 자꾸만 밀려오는 갖가지 추억들이 너무 커서 차마.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쉼표를 찍었다.
마침표를 찍을때쯤 그때처럼 자연스러운 우리가 되있기를 바라면서.
문을 나서자마자 금방 일어나서 부스스한 상태로 아 왜에에 아 왜가! 하는 종대오빠조차 뒤로하고 나온 숙소밖은. 아주 생각치도 못했던것들이 나를 덮쳤다.
핸드폰에서는 이제야 알았어라는걸 알려주기라도 하는것처럼 쉴새없이 진동이 울렸고 전화를 받을새도 없이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소리가 주변에 크게퍼졌다.
"대체 내가 뭐라고...아.."
모자도 선글라스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옆을 지나가려는데 뒤에서 내 머리에 모자를 꾹 눌려써주고선 앞을 가로막은 이들의 팬들이 까만 벤에 놀라 뒷걸음질 칠때 를 틈타 조수석에 날 태운후. 대신 그 셔터소리의 주인공이 됬다. 썬팅한 창문밖으로 보이는 찬열이 오빠를 보다 걸려온 백현이오빠의 전화에 차마 스쳐가며 내게 손짓으로 인사를해주던 찬열이오빠에게 답을 해주지 못했다.
"괜찮아?"
"응. 찬열이오빠 어떡해."
"우린 걱정 말고. 도착하자마자 연락하고."
분명 루한 오빠처럼 오빠로써의 당연한 호의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복잡해져버린것같은 기분에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가방에 백현이오빠가 나 오면 주려고 사놨다던 머리끈들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잘 가고있어? 하는 찬열이오빠의 문자에
나도모르게
웃어버렸다.
저 창밖에 맺힌 저 별 이슬은
밤이 지나도 마를 리가 없겠지
멈추지 않는 니 생각에
너 떠난 자리에 턱하고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니
저 하늘에 별 이슬이 맺힌다
줄리엣
W.엑소구
"전화 안받아?"
아침부터 어제 저녁에 간식사러 나간다는 변백현이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자 핸드폰만 붙잡고있는 준면에게 세훈이가 물었다. 끄덕끄덕 하고 깊게 한숨을 쉬자 옆에 붙어앉아 계속 말을 이었다.
"변백현 어제 어디갔는데?"
"그러게. 말도없이"
"아 어제 변백현 00이집"
"맞어. 어제 지혼자갔어"
이리저리 준비한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멤버들이 한마디씩을 던지고 지나가다 찬열이의 00이집에 갔다는말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이야기 안해주는데에에!"
"요새 변백현이 000 힐링해주잖아."
"헐"
"내가 생각하는 그거?"
찬열이의 끄덕임에 그럼 둘이 무슨 사이라도 된다는거야? 하곤 웅성웅성대기 시닥했다. 그래. 니가생각하는 그거. 하고 경수가 웃으면서 지나가자 아무것도 모르고있던 멤버들은 입을 떡 벌리고선 준면에게 빨리 전화해보라고. 보챘다.
서너번쯤 전화를 한 후에야 백현이 금방 잠에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끝까지 잠긴 목소리에 모두들 긴장을 하고있던 사이에서 누구야? 하는 00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길고긴 정적이 흘렀다.
ㅡ
"누구야?"
"....ㅇ어.....ㅈ준면이형..."
어색한 공기가 맴돌던 어젯밤은 오빠가 난 거실에서잘게! 한마디로 모든게 정리됬다. 재웠주겠다며 침대옆에누워 자장까지 불러주던 오빠는 직접부른 자장가에 심취했는지 나보다 먼저 잠들어버렸다. 5분만 재우다가 깨워야지 하다 정말 5분이 지난줄 알고 눈을 떴을때는 이미 아침이였다. 겨우 3센치 간격을 두고 얼굴을 마주하고있던터라 깜짝 놀라서 뒤로 물렀는데도 다행히 오빠는 아주 깊은 꿈나라속이였다.진짜 아직도 자는가ㅡ 하고 손으로 얼굴위를 이리저리 흔드는 사이 오빠가 움직일 새도없이 확. 끌어안았다. 아 피곤해 하면서 한손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다
"부재중....."
마침 울려오는 진동에 받은 전화가. 준면이오빠 전화였다. 꼼짝도 못하고 한손에 계속 안겨있는데. 음. 그냥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그냥이라 표현하기엔 되게 말로 표현하긴 그런.
"아....알았어."
귀찮다는듯 으아...하면서 핸드폰을 침대 머리맡에 올려두고는 양손으로 꼭 안고 이마에 잠 덜깬 뽀뽀를 하고선 그대로 또 잠이들었다. 일어나라고 아무리 꼼지락거리면서 빠져나가려 안간힘을써도 무슨 잠결에 힘이 그리도 센지 뒤척이면서 더 세게 안아오길래 한참을 그러다 지쳐버렸는지 둘다 12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깼다.
".....ㄴ나 여기서잤어?왜?"
"아....어제
자장가불러주다가"
오빠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러다 그제서야 우리가 아직까지 껴안은상태로 있었다는 걸 알곤 설마 이러고잤어? 하고 물어왔다. 응 하는 내말에 아....조탕...하면서 내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오빠였다. 그러다 내가 눈을 피하자 두 볼을잡고 어딜봐. 하고는 씩 웃었다. 문제는, 우린 아직 이러고 누워있었다.
ㅡ
내가 프로듀서로 입사한지 약 3일만에. 다시 SM으로 들어왔다는 기사가 수백개가 퍼졌다. 백현이오빠가 씻지도 못한채로 멤버들의 만류로 숙소로 돌아간 후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하필 또 그시간에 시작하는 연예뉴스. 첫 소식부터가 파격이라며 내 사진들을 툭툭 던져놓기 시작했다. 아나운서의 설명이 시작하기도 전에 그냥 채널을 돌려버렸다. 리모컨을 던져놓고 소파에 축 늘어졌다. 너무 많이자도 피곤하다더니. 이런거였나보다. 소파에 또 누워있으려니 어제밤의 오빠가 생각났다.
에이씨. 붉어진얼굴에 커텐틈으로 새어흘러오는 햇빛이 부셔 팔로 눈을 가렸다.
까맸다.
밥먹을 시간인데. 딱히 먹을게 없었다. 컵라면이나 먹을까. 하고 대충 모자만 푹 눌러다쓰고 문앞을 나서려다
'핸드폰 잘 챙기고.'
아맞다. 방에 들어가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모르는 번호에서 문자가 서너통. 와있었다. 누구였더라... 내용을 아무리봐도 도통 짐작이가지않는 문자들.
ㅡ 귀국하면 연락 하신다고 하셨는데...
ㅡ 몸은 좀 괜찮으세요?
ㅡ 보는데로 연락 꼭 주세요.
통화버튼을 누르려다 에이. 잘못보낸거겠지. 하고는 가디건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제 가을이라는걸 알리기라도 하는마냥 쓸려오는 선선한바람이 스치자 꽤나 얇은옷을 걸치고 있던 터라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이리저리 쳐다보다 , 나 없는사이 새건물 많이생겼네. 새로지은거 치고는. 생긴게 좀 구식이네. 이런저런 잡생각들로 도착한 가게에서 자주먹던 컵라면을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자 주인 아주머니가 갸웃 하더니 이네 아! 하고 날 손으로 가르켰다.
"저 쪽에 사는 000이 맞지? 맞네. 한참 안보이더니
어디갔었어?"
"아. 저 유럽잠깐 있다가..."
"좋은데살다왔네~ 근데. 이거 먹어도 되?
저번에 알르레기니 뭐니 고생하더니."
"저요? 에이. 저 그런거 없어요."
"그래? 내가 착각했나보네. 여기 잔돈!"
안녕히 계세요.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길에 습관처럼 비켜간 틈 사이에 작은 돌부리가 끼여있었다. 넘어질뻔했네. 왼쪽 오른쪽 앞뒤 사방이 건물로 꽉 메워진 공간속에서 사이로 보이는 구름들은 꽤나 예뻤다. 한참을 쳐다보다 하늘을 보면서 걸었다. 그냥 공기좋은 시골에서나 가서 살까. 프로듀서 언니가 아무말도 없었으면. 난 지금 유럽에서 뭘 하고있었을까. 가게와 집 그 짧은 거리동안 온갖생각들이 머리에 스쳤다.
집에와서 컵라면 스프를 컵에서 빼지도않은채 물을 넣어버려 맨손으로 빼려다 또 손을 데여버리고. 아침부터 온통 실수 투성이네. 식탁의자에 쭈그리고앉아 컵라면 익는걸 기다리다 다 익었을때쯤 한입. 두입 먹기시작했을때 등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분나쁜 가려움에 화장실에가서 거울을 봤을때는 이미 두드러기같은게 온몸에 퍼지기 시작한 후였다.
"아....컵라면"
남은 컵라면을 몽땅 버리고 대충 머리만 감고선 택시를 탔다. 택시 아저씨가 혹시 000아니에요? 하고물어 잘못보셨어요. 대답했다. 나지금 꼴이 말이 아니라서.
병원에 도착했을때쯤엔 얼굴까지 다 번져버려 보기 흉할정도로 울긋불긋 해져 있었다. 손으로 만지다 울퉁불퉁한 이상한느낌에 으. 하고는 접수를 하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멀리서 젊은 남자의사가 내이름을 아주 우렁차게 부르며 달려오고있었다.
옆에서 간호사가 저기있어요. 하고 가르키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집중됬다. 남자가 당황한듯 가운으로 날 감싸 진료실에 앉혔고, 천천히 말을 걸었다.
"왜 문자 답을 안했어요."
"네?"
"나에요 나."
남자가 답답한듯 손바닥으로 가슴쪽을 탁탁 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왜그래요. 하고묻자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곤 씩 웃었다.
"얼굴이왜또 그래. 혹시 컵라면 먹었어요?"
"....네"
"먹지마요. 몸에 안좋아. 피부과부터 일단갔다가.
아침에 문자온 번호로 연락해요. 의사선생님 . 하고 저장해두고."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남자가 만족한것처럼
가봐요ㅡ 하고 손짓했다.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ㅡ 귀국하면 연락 하신다고 하셨는데...
ㅡ 몸은 좀 괜찮으세요?
ㅡ 보는데로 연락 꼭 주세요.
머릿속이.
자꾸만 복잡해진다.
학교 앞 그 언덕에
창문에 흩날리는
아름다운 실루엣
그녀가 기다리네
"시"ㅍ집 오라그내가 잘해준다고"
"그래도 무대 설 정도는 해."
데뷔전 마지막 휴가 1일. '일반인으로서의 마지막 밤' 이라는 제목으로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한 그녀는. 예전과 달라진게 없었다. 똑같이 예뻤고, 착했다.
내 주량은 생각치도 않은채 들이켜버려, 다른애들이 췻기가 슬슬 오를때쯤 난 이미 저기로 가버린 상태였다. 바람이나 쐴까. 하고 밖으로 나가 계단에 걸터앉아 00이한테 전화를 걸려다 , 술마시는걸 유독 싫어하던 00이기에 배경화면으로 해 둔 00이의 사진만 빤히 쳐다보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홀드버튼을 눌렸다.
"누구야?" 하는 그녀의 말애 여자친구야. 하고 대답 할 수가 없었기에 "그냥 아는동생."하고 대답했다. 아무한테도 우리가 사귀는걸 알려주지말자. 하는게 약속 아닌 약속이였으니까. 그렇게 했다.
맞은편 벤치로 가 등을 기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날씨 조오타! 쌀쌀한 날씨에 말도안되는 말을 지껄일만큼 취해버린 상태 에서 그렇지? 하고 그녀가 있는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야기했을때, 천천히 얼굴의 간격을 좁혀온건. 그녀였다. 거부할 생각은 하지도못한채 허리를 감싸들러오는 그녀의 손길에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둘의 얼굴이 서로의 숨결에 따뜻해졌을정도로 진득한 키스를 나눈 후였다.
대체 무슨 정신머리였는지 또 순식간에 지우개로 지워저린마냥 지워져버린 죄책감에 그녀의 배웅까지 받은채로 집으로 들어왔다.난 그때 단단히 미쳤었다.셔츠의 단추를 반이나 풀어놓고 그녀를 벽에 기대게 하고선 닥치는대로 입술을 부딫혔다. 거친 숨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질때쯤,
"중환자실."
"..."
"다리랑 머리를 많이다쳤어.
다행이 머리.....아미치겠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말을 끊고는 붉어진 눈가를 매만지는 세훈이였다.
울 새도없이 무지막지하게 닥쳐오는 현실들을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어아니지? 하면서 억지로 웃어봐도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내 억지로 참고있던 눈물이 새었다.
한참의 정적속에 내 울음소리가 병실을 꽉 채울때쯤,
문이 세게열려 벽쪽을 탁. 쳤다.
너무미안해"
묵묵히 말을 이었다.
"빨리 약속이나 지켜"
"무슨약속"
"오빠가 얼마전에 나 아프면
재밌는거 보여준다고 했잖아."
그렇지? 하면서 예쁘게 웃었다.
"00아,"
"응?"
"얼마전이 언제지"
"지금 한달 지났으니까...한달 전이겠지"
..어 그래 맞아. 하고는 잠깐 전화를 한다고 해두곤 병실을 나왔다. 핸드폰을 켰는데 손이 떨렸다. 앞이 새하얘진거처럼 아무것도 안보였다. 형에게 전화를 걸려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쳤다. 내가 분명 1년전 쯤에 꺼낸 이야기를 한달전으로 기억하는건. 그 사이 11개월이 아주 사라져버린건지. 아무리 해도 받지않는 전화에 아직 병원에 있을 형이 있을 곳으로 무작정 달렸다. 멀리서 차트를 들고 쫓아오는 형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왜그래, 하는 형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 00이가 기억을 못해"
형은. 대답이 없었다.
조그만눈으로 날 바라보는 그대
그대는내 맘속 조그만 바람 되어
지금도 내 맘을 자꾸 흔들어 놓네
W.엑소구
"맞잖아."
"어?"
"왜 아니라그래"
"무슨소리야"
"정확히 기억은 잘 안나도 누가 누군진 알아
엄청 뒤섞인거 같긴 한데 오빠만 보면 자꾸..."
깊은 정적이 방을 메웠다. 잠깐 그 흐름을 깬 오빠의 짧은 한숨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어졌으면서도 애써 웃는 얼굴에 아무말도없이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먼저 눈을 피한건 오빠였다. 한발짝 다가와 날 꼭 안아줬다.
"00아,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내가 다 미안해."
비행기 시간 다 되겠다. 얼른 가봐. 하고 어깨를 쭉 뒤로밀어 손으로 탁탁 두드렸다. 맞지, 맞잖아. 라고 붙잡을 수도 없었다. 오빠 옷소매를 잡고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나먼저 나갈게, 문이닫는 소리가 들린후 벽에 기댔다. 멍하니 돌아선 흔적을 눈으로 훑었다. 오빠가 왜 저런 거짓말을 하는지도, 왜 애써 붙잡지 않으려는 나도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지금이 아주 답답할 뿐이였다.
ㅡ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스치는 가게, 기억이나지않는 건물들, 그리고 돌부리. 이제서야 조금씩 거리가 낯익은 기억처럼 스쳤다.
'컵라면먹지 말고.'
나조차도 기억나지않았던 내 증상들. 가게에 들어서 컵라면이 진열된곳을 천천히 훑었다. 혹시나 기억나는 부분이있을까 하나하나 들어보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혹시나 내가 아는 그 사람일까봐. 억지로 떠올리려해도 온통 까매진 머릿속은 여전히 구석의 기억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구석에 저릿한 그 이상한 느낌까지도 설명하지 못했다.
먹지도 않을 컵라면을 한가득 사들고 계산대에 내밀때, 또 아주머니는 아가씨 먹어도 괜찮아? 하고 물었다.
"아뇨, 안괜찮아요."
하나도 안괜찮아요.
양손가득 라면이 든 봉지를 들고서 걷다가, 또 자연스레 그 돌부리를 스쳤다. 칠칠맞게 왜자꾸 넘어지는거야. 익숙한 그 목소리와함께 내 무릎이 유독 흉터가 많았던 이유가, 혹시 여기서의 상처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은 없었다. 아주 큰게, 없었다.
집앞에서 봉투를 내려놓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110905
한번도 생각못했던건데 11년 9월 5일. 무슨날이였지, 집 비밀번호로 해놓을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날이였을까. 집안으로 들어가 달력을 뒤졌다. 유독 일기나 다이어리같은걸 꾸미는데 취미가 없었던 나는 달력에 무슨날이라고 적어놓은게 하나도 없을만큼이나 무심했다. 그냥 그날에 크게 동그라미가 되있었을뿐. 그리고 최근 몇년간 그날의 대한 특별한 표시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가버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챙긴 짐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캐리어 하나를 겨우 채울정도, 옷도 화장품도 갖가지 생활옹품을 챙길힘조차도 없었다. 그냥 얼른 여기를 벗어나야하겠다는 생각만이 전부였다. 안좋은 기억으로 지워버린기억을 떠올리기보다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
결국은 기억나지않을 기억들이 목소리로, 혹은 장면으로 스치는 그 기분이 너무 싫었다. 아무리 예쁜 색이라도 검정색과 합쳐지면 결국은 색을 잃어. 예쁜색처럼, 내 기억도 하나하나 묻혀졌다. 절대 기억해서는 안되는 기억처럼 내가 모르는 '나'가 나를자꾸 숨겼다. 혹 만약에나 그 목소리가 찬열이오빠라 해도 내가 잠깐이나마 오빠한테 느꼈던 '예전 기억속의 설렘' 은 다른 기억들처럼 차차 잊혀지겠지.
백현이오빠도, 찬열이오빠도. 결국은 다시 내가 끌어낼 수 없을만큼
깊숙히들어가 삭아들어서
사라질거야.
ㅡ
00이가 간 후의 연습실분위기는 싸했다. 빡빡한 스케줄로 아무도 공항에 배웅해주러 갈 형편이 되지 못했다. 한사람이 조금만 틀려도 여기저기서 원망의 소리가 내쳤고 하루에 몇번씩이나 치고박는 그 직전까지 서로를 몰아넣었다. 특히 세훈이가 그랬다. 날마다 죄책감에 시달렸고 얼마전에는 불면증까지 생겼댔다. 가끔 내 방에 찾아와 말했다.
'00이가, 자꾸 꿈에나와.'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이였고, 이것에 가려진 큰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결국은 빛을 삼켜버린 그림자가 우리를 덮쳤고, 망가졌다. 우리중 누구도 가해자는 없었지만, 피해자는 한명, 아니 열 셋이였다. 한명은 열둘을 이해하지못했고, 열둘은 그런 하나를 보듬어줄 힘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아꼈지만, 우리는 '하나' 를 외치던 우리도 결국은 열 셋이였다. 각자의 감정이 앞섰고, 그에대한 결과를 받을 준비조차 하지못한채 몇배의 몫을 감당해야했다.
먼저 날 찾아온건 백현이였다. 손에 든 익숙한 봉투를 내밀었다. '사랑은 타이밍' 휘갈긴 글씨밑으로 써내려간 악보. 아마 백현이가 '나'라는 뒤섞인 기억 틈을 결국은 백현이에게로 맞춰버린 결과였던 모양이였다.
"처음에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왜 나랑 00이를 자꾸 붙혀놓는지
우리가 모르는 00이를 왜이렇게 많이 알고있는지"
"미안하다. 말 못해줘서."
"00이가 기억하는 나는 내가 아니였어.
그냥...다 너더라. 그래도 좋았어 날 좋아해주니까.
이제생각해보니까 병신같다.
나 진짜 이기적이네."
누구의 탓도 아니였다. 백현이의말에 입을 꾹 닫았다. 지금쯤 비행기를 타곤 우리가 절대 찾지못할 곳으로 숨어버릴 00이는 어쩌면 다시 보지못할 사람일수도 있지만,한참이 지난 지금도 내일 오겠지. 하고는 매일매일 00이를 그리는 오늘은 우리가 처음 사귀기 시작한 날. 9월 5일. 혼자만의 추억이라도 넌 저 깊숙히나마 오늘이되면 특별한 날이였다라고정도는 기억해줄까.
오랜만에 00이의 집을 찾았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여운이라도 남겨놓겠다는것처럼 집은 팔지 않았다. 비밀번호도 같았다. 110905. 널부러진 컵라면들이 아직도 그대로였다. 넌 이걸 사면서 무슨생각을 했을까. 네가 알지못하는 너에대한 사실들을 이제쯤이면 조금이나마 기억 해 냈을까.
난 널 아직도 잊지 못했다. 내색은 안해도 아직 백현이도 여전한것 같다. 지금도 네가 날 기억하던 그때가 여전히 그립고, 잊었던 날을 생각하면 아리고, 슬프다. 그래도 나에대한 나쁜 기억을 지워서 다행이다. 좋은 기억조차 지워버린 너를 탓하기엔 난 너무 나쁜 놈이였으니까.
마지막날 사랑해, 하고 목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꺼내지 않았던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것도, 어쩌면 내 지독한 이기심일수도 혹은 너애대한 과한 배려일수도 모르겠지만 큰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는 내말에 아직도 아무 연락도 없는 너는. 아마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해준 크림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어주던 네가 아직도 아른거리고, 내 품에 쏙 안기던 네 촉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에대한 지독한 미련은, 아마 절대 잊혀질수가 없을거다. 나보다도 컸었던 너니까. 지금쯤 너는 뭘 하고있을지, 혹시 결혼은 했는지. 우릴 잊지는 않았는지. 나에대한 감정이 원망인지 혹은 긍정인지.
네가 너무.
보고싶다.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이리떼가 몰려온다'
이 헛된 두려움에 시달리는데 그게 더 좋아요?'
'얘야, 처음부터 이리떼는 없었단다. 없는걸 좀 두려워하는게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거냐?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이리에게 물리지 않았어. 마을은 늘 안전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이리떼에 대항하기위해서 단결했다. 그들은 질서를 만든거야. 질서, 모룰거야 너는. 그건 마을을 지켜주는거란다.'
세상에는, 네가 기억해서는 안될 것들이 아주 많다. 특히 나에대한 기억이 그렇다. 널 좋아해주던 백현이를 나로 생각하는거에대해서 난 널 절대 미워하지 않는다. 내기억의 결말은 결국은 새드엔딩일테니까. 넌 너에대한 질서를 만들었고 난 너의 질서를 따랐다.
그건, 아마도
널 지켜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