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름이 웬디? 김박사 취향도 알아줘야한다니까."
"독특하시죠. 많이."
"아니 아주 적합해. 근데말이야."
남자가 고개를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사슴같은 눈에, 여자보다 더 곱상한 외모를 가진 남자의 이름은 루한이라고 했다. 뚫어져라 날 쳐다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남자는 누구지?"
"..."
"여기오기 전날 같이있던사람. 아, 정확히 말하면 아침을 같이맞은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혹시, 스폰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구비는 필요했을거니까. 하고는 자리에 일어서 손을 내밀었다. 반응이 없자 직접 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 버튼을 눌렀다. 지하 5층까지. 어디에갈까, 하며 손가락을 아래위로 왔다갔다 하다가 지하 3층, 기계공학실. 혹시 세훈이가 있는곳인가. 유난히 기계에만 박식했던 애니까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았을거다. 루한의 팔을 잡았다. 왜그래?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무슨말을 할거라는걸 알기라도 한모양인지 아, 하고는 고개를 다시 돌렸다.
"오세훈?"
"세훈이를 알아요?"
"그럼. 3개월전에 죽었거든. 애매하긴한데, 죽은거라고하는게 더 맞겠지."
그상태로 굳은채 천천히 루한의 손을 놓았다. 온몸의 피가 손끝부터 바짝마르는 느낌이였다. 무슨말이냐고 물을 새도없이 다리에 힘이풀려 주저앉았다. 흘러내린 옆머리를 옆으로 쓸어올렸다. 그 사이 열린 엘리베이터의 문에 루한은 다음층수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타지말라는 손짓을 보냈다. 대꾸없이 한발짝 물러서는 그들이였고, 천천히 문이 닫겼다. 5층. 버튼을 누른 후 루한이 날 들쳐 올렸다. 뭐하는거에요, 하자 말없이 건내는 웃음이 대답의 전부였다.
5층. 생명 공학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모두 루한에게 안녕하세요,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다들 내 모양새는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지 이내 다시 바삐 손을 놀렸다. 앉을수 있겠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날 소파에 앉혀놓고는 큰 문을 천천히 닫았다. 밖에서 들리는 수십개의 사람들과 현미경, 갖가지 기계들이 온갖 잡소리가 그 문을 닫는 순간 조용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루한이 옆에 놓여진 커피를 따라주며 말했다.
"방음이 잘되있어. 여기서하는 이야기는 새나가면 안되거든."
"..."
"오세훈은 죽었어.아마도"
울줄알았는데. 그정도는 아닌가봐. 루한이 등을 기댔다. 아니야? 하면서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뜨거웠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기까지 했다.말없이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사실 루한의 말이 가깝게 와닿지 않았다는게 내가 할 수 있는 변명의 전부였다. 고개를 숙였다. 루한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시계모양의 기계를 건냈다. 세훈이가 만든것중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기계였다. 파란버튼을 가진. 세훈이를 이지경까지 몰고온 장본인.
"아무리 작동방법을 찾으려해도 센서가 다 차단했는지안에 내부도 못봐. 혹시 방법을 알아?"
"아뇨 모릅니다."
손끝으로 버튼을 살짝 눌렀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사이, 루한은 내게 다시 말을 건냈다.
"아무리 작동방법을 찾으려해도 센서가 다 차단했는지 안에 내부도 못봐. 혹시 방법을 알아?"
"..."
시간이 정확히 5초. 5초가 되돌아갔다.
"모르는가보네. 가져, 쓸모 없으니까."
루한이 방을 나가려다, 말을 덧붙혔다.
"아, 그리고 오세훈이 죽은게 니가 여기온 이유. 알고있었잖아. 반의 반도 안적힌 이력서로 합격할리가 없다는거."
잠깐 커피나 마시고있어. 루한이 나가는사이 잡음들이 잠시 들렸다가, 문이 닫히는순간 멈췄다. 커피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사실 달달 떨리는손에 한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해 양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몇초 지나지 않아 투명한 테이블위로 루한의 얼굴이 비쳤다.
"좀 늦을거같아서. 곧 같은 공채 5기들이 방으로 들어갈거야. 테이블위에 보이는 서류들 찬찬히 보고있어."
테이블을 손으로 슥 훑었다. 손끝으로 약간의 전기가 흘렀다. 반사적으로 손을 움츠린 후 소파에 등을 기댔다. 고개를 살짝 들어 시계모양의 기계를 만지작거렸다. 세훈이가 내게 이 기계를 건내주기전에 말했었다. '이건 너랑 나랑만 쓸 수 있는거야.' 세훈이는 아직 죽지않았다. 적어도 이 기계를 끝까지 손에 잡고있었다면 몇번이고 시간을 되돌려 죽음을 모면했을테니까. 그리고 한번도 틀리지않았던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기계 잡음이 들림과 동시에 남자 둘이 문을열고 들어왔다. 시계를 보이지않게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둘도 처음본 사이였는지 소파에 마주앉을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큼큼, 하는 한 남자의 어색한 헛기침에 먼저말을꺼낸건 그 옆에 앉아있던 검은셔츠에, 약간은 사나운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내이름은 김종인이에요. 여기 오고싶어서 온건 아니고. 아, 나이는 27살."
동갑이였다. 지원서를 내지도않고서 합격할정도면, 여기서 와달라는 요청서를 보낼정도로 아주 유능한 사람인 모양이였다.
"도경수. 28살이에요."
다른남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쪽은요? 하고는 고개를까딱.했다.
"전 김웬디에요. 27살."
테이블이 밝게 빛났다. 도경수는 우와, 하고는 테이블을 바라봤고 김종인은 묵묵히 고개만숙여 응시했다. 비춰진 서류를 한장한장 넘겼다. 계약서 간단한 규칙들. 딱히 주의해야할 사항은 없었다. 마지막장에 다다르자마자 다시 테이블은 투명한 유리로 변했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런분위기가 썩 익숙하지않은지, 도경수가 아 근데요, 하고는 말을 꺼냈다.
"그쪽들은 뭐하다가 오셨는데요? "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김종인이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는 도경수를 바라봤다. 살풋 웃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명함을 꺼내 보였다.
"초면이 아닌거같은데. 당신 박사잖아."
"나를 알아? 한국에는 들어온지 얼마 안됬는데."
"가끔 독일에 갔었거든.아, 웬디씨. 남의소개를 함부로하긴 그렇지만 이사람은 독일 의대 최연소 박사야. 천재지."
김종인이 뒤에있던 커피포트에서 커피한잔을 꺼내왔다. 한모금 천천히 마시더니 테이블에 빈 커피잔을 놓았다.
"나는 여기 연구소 전사장 아들입니다. 뭐 간단히 말하자면 재산분쟁에 실패했죠. 그렇다고 그걸로 들어왔다는건 아니고, 한국에서 제일 큰 생명과학연구소에서 일하고있어요."
"그걸로만 들어올수 있단말이야?"
"엄청난걸 발견했거든. 그 논문이랑 이력서랑 같이 제출했는데 합격했더라고.물론 내가 원해서 한게아니라 아버지가 제출한거지만."
"엄청난게 뭔데요."
내 말에 도경수가 팔짱을 끼고는 천천히 웃었다.
"그걸 알려줄 멍청이도 있나. 웬디씨는?"
"아버지가 여기 박사시긴한데, 여기온건 몰라요. 김종인씨와 케이스가 비슷하네요. 저도 논문이였어요. 아주 간략한."
"간략? 간략한 논문도 있나."
"설명은 생략할게요."
김종인이 궁금하다. 하고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고개를들어 그와 눈이마주쳤을때, 슬쩍 웃고는 눈을 피했다.
또다시 긴정적이 흐르는동안 문이 다시 열렸다. 루한이 손에 든 가운을 하나씩 던져줬다.
"한명이 안왔네. 일단 가지."
"한명이 더있어요?"
"어. 너네가 다 아는사람."
셋 모두가 서로를 쳐다봤다. 눈을씻고 찾아봐도 공통점은 없어보이는데. 모두 이름 석자가 새겨진 흰 가운을 입고는 루한을 따라 나섰다. 아까는 다른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아주 구석진곳에 놓여진 엘리베이터는, 투명했다.
"6층으로 간다."
"여긴 5층까지밖에 없지않나?"
"알고있잖아, 너네가 가진 지식이 5층까지의 부서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예상은 했었어. "
도경수가 가볍게 웃었다. 아무도 모른다. 저말이진짜인지 가짜인지.
"놀라지말고, 천천히 따라와."
루한의 말과 동시에 열린 엘리베이터 사이로 펼쳐진 광경에 셋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액체속에 담긴 수백개의 인간 모형들. 뒤를 따르고있던중 루한이 뒤를 돌아, 발길이 모두 멈췄다.
"이게 너네가 연구할 것들. 마그넷인데, 보통 돈많은 사람들의 소유물들이지. 심장이아프면 만들어 보충하고. 사치스러운놈들은 피부안좋아지면 하나씩만들어. 바꿔치기하거든."
"정부에서는 이걸 알고있나?"
김종인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말했다. 루한이 김종인의 한쪽 어깨를 잡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질문이야. 마그넷이 의학용도로만 사용되는게 아니지. 필요한것들이 생기면 중요인물과 클론을 바꿔치기해서 조종하는거야.예를들면 이 연구소를 삼켜준 정부의 중요 인물들이라던가."
"그럼 그 중요인물들은?"
"죽여야지. 별수있나."
김종인이 루한의 어깨를 손으로 쳤다.
"그럼 우리 아버지를 밀어내려고."
"예민하게 굴지마, 너네 아버지가 한 일이니까. 정부한테받은돈만 5천억이야. 괜찮지않나?"
김종인은 말이 없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한숨을 크게 들이쉴 뿐이였다.
"근데 진짜 마그넷을 만드는사람이 이만큼이나 되요? 한사람을 만들어 죽인만큼 잔인한사람들이 꽤 많나봐."
"사람들은 똑같애. 내 주변에도 한명있지. 저쪽 세번째칸에 보이나? "
눈이 평소에 좋지않아 찡그려 억지로 맞춰진 시야였지만 눕혀진 박스에 누운 사람이 세훈이라는 정도는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죽었다면서요."
"애매하다고했지, 완전히 죽지는 않았어. 비슷해."
이사람은 대체 머리에 뭐가있는걸까. 말하는 한가지 한가지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 빤히 루한을 쳐다봤다. 도경수는 이리저리 주변을 훑었고, 김종인은 짜증난다는듯이 머리를 흐트렸다. 나가 이래서 오기 싫었다니까. 하면서.
엘리베이터에 다시 올랐다. 가장 마지막층은 10층이였다. 숨겨진 층수가 무려 5층이나. 수상한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였다. 내 연구를 받아들인것부터가 아주 의심스럽기도했지만 이정도의 스케일일줄은 상상을 못했던거다.
"6층은 마그넷이있고, 7층은 장기 척출실이나 수술실. 아, 놀라지마 너네는 수술은 안시키니까. 8,9,10층이 너네가 주로 있을곳이야. 지하라도 지상보다 공기도 더 맑고 환경도 좋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까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광경에 셋은 발길을 멈췄다
루한이 내 어깨를 천천히 감쌌다.
."내가 아까 이야기했었지. 니 이름이 적합하다고. 환영한다 웬디."
수많은 마그넷들이 흰옷가지들을 걸치고 일상생활을 즐기는 이곳은,
이들이 칭하는 바, '네버랜드'였다.
네버랜드에 온걸 환영해 웬디.
"말해줘."
"급하게 생각하지마, 찬찬히 하라고."
"당신같으면 안급해? 친구가 죽어서 마그넷을 만들었다는데. 빨리말해 세훈이 어딨냐고."
"거봐, 방음잘되는게 진짜 유용하다니까."
숙소까지 안내를 해주고는 나가버리는 루한의 팔목을 잡았다. 다짜고짜 세훈이가 어딨냐고묻자 아까 봤지않느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 '그건 마그넷이잖아.' 하는 내 말에 루한이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주변에 자리한 모든 이들, 정확히말하면 마그넷들이 나를 주목했다. 그리고서 이끌려온 5층에서도, 루한은 끝까지 내게 정답을 주지 않았다.
"그쪽은 감정이란게 없어?조금만 내 입장에서 생각해봐."
루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살짝 웃었다.
"내가 중요한걸 말을 안해줬는데말이야."
내옆을 비켜 블라인드를 천천히 위로 올렸다. 현미경과 여러가지실험에 바쁜 사람들. 이리와봐. 손가락을 까딱하고는 유리창앞으로 날 이끌었다. 왼팔을 내 허리에 둘러, 하지말라는 말을 꺼내기도전에 근데말이야, 하고 선수를 쳤다.
"넌 24시간동안 사람이 저렇게 일을하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럼 저게 사람이 아니란말이야?"
"똑똑하네."
"그럼,"
"마그넷들이지."
"..."
"내가 마그넷 종류가 다양하다고 말하지 않았었나? 저기서 24시간 중노동을 하는 마그넷들은, 여기 지시에 안따라서 몸을 바꿔치기 당한거야. "
검지로 내 머리를 살짝 눌렀다.
"여기, 이 엄청난 지식들을 제외하고는."
"저기, 그럼 세훈이도."
"찬찬히 하라고 했잖아. "
"그럼 이 손좀 떼고.."
"여기 보는사람 아무도없어. 방음도 잘 되있다니까?"
뭐 당장이란말은 아니야. 그냥 이러고있어. 하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거리를 두어야할 사람에 속했다. 원래 생김새와 유달리 다른 행동을 보이는사람들은 숨길수 있는게 많으니까. 루한이 내 허리를 잡은손을 더 세게 쥐였다.
"모든 마그넷들은 자기가 마그넷이라는걸 몰라. 그래서 아까 니가 마그넷이라고 말 꺼내니까, 다들 쳐다보잖아. 그래서 우린 보통 그렇게 안불러. 그렇게 만든건 아닌데 마그넷이란 단어에 굉장히 예민하거든. 선천적인가보지."
"그럼 뭐라고 부르는데"
"피터팬. 유치한거같아도 네버렌드와 피터팬."
루한이 날 눈을 천천히 내려 쳐다봤다.
"그리고 웬디.적절하지."
"그런데 끼워넣지마. 기분나빠."
허리를 숙여 내 귀에 속삭였다.
"그러지마, 이유는 간단해. 나도 마그넷이거든."
"허,거짓말도 작작해야지."
내 어깨를 양쪽으로 잡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맞춰왔다. 생각보다 느린 상황파악에 멈칫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피했다. 내 입에 다시 살짝 맞추고는,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감정이 없거든."
"..."
"유감스럽지만 그 오세훈이란놈도 곧."
"무슨말이야."
"찬찬히 하라고 몇번을 말해. 오늘은 이만 가봐, 지금 들은것들만해도 상당히 충격적일텐데."
루한이 내 손목을 잡았다. 팔을 당겨 천천히 안았다. 밀어낼 새도없이 숨이막힐듯이 안고는 말했다.
"익숙한가봐. 너도 그대로네."
"..."
내 손목을 잡을 손을 위로 올렸다. 고개로 까딱, 하면서 여기봐. 하고는 손을 풀었다.
"보통 이럴땐 맥박이 미친듯이 뛰지."
"..."
"뭐...넌 그렇지 않다는뜻이야. 빨리 말해줘도 나쁠건 없을거같으니까. 따라와."
다시 소음이 들리는 연구실을 떠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었다. 숨막힐듯한 적막함. 8층을 알리는 소리와함께 루한이 따라와, 하는 손짓을 보냈다. 길게 늘여진 병실들. 여느 병원과 다를것 하나 없이 의사와 간호사가 아주 바삐움직이고, 짙은 약냄새가 코끝을 찌를정도의 평범한 모양새였지만. 다만 다를게 있다면 복도를 걸어다니는 환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놀라지말고. 만에하나 놀랐다 해도 성질급한 널 탓해. 난 몇번이고 말했어. 찬찬히 하라고."
1304실. 오세훈. 기계공학실. 숨을 죽였다. 천천히 문을열고 들어간 병실에는 나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과는 아주 다른모습을 한 세훈이가 산소호흡기와 수많은 링겔,튜브들을 몸에 두른채 가쁜 숨소리만을 병실에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세훈이 왜이래?"
"하반신을 봐."
"..."
"다리가 잘려나갔어. 실험하다가. 과다출혈로 정신을 잃었는데 잠깐 깨고는 3개월동안 이모양이야."
"그럼 그 마그넷은"
"너네는 주의가 부족해? 계약서에 분명히 적혀있었어. 생명에 지장갈 시 마그넷 1인 무료지급."
세훈이의 손을 천천히 잡았다. 참을새도없이 눈물이 미친듯이 흘렀다. 잘려진 다리를 덮은 하얀 천을 잡아쥐였다. 고개를 숙였고, 울었다.
"내가 이랬어. 마그넷한테 맞춰야할 바늘을 나한테찔러서 뇌만말고 다죽었었거든. 얘도 살 수 있으니까 걱정마. 다만 방법이 좀 까다로울 뿐이지."
"방법이 있어?"
눈물이나 좀 닦고 말하지, 하고는 옆에 티슈를 던져줬다. 머리를 옆으로 늘어트려 애써 눈물을 다 거두곤 고개를들어 심호흡을 했다. 루한이 일어서라며 손을 내밀었다. 됬어. 하고는 일어서려다 다리에 힘이풀려 주저앉았다.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세훈이소식을 들었을때처럼, 루한이 다시 날 들어 푹신한 소파위에 앉혔다.
"100일. 그 마그넷이 살수있는 기간이야."
"그럼 그쪽은 뭐야."
"성질 급한거 티내는것도 아니고, 좀 들어봐. 100일 후면 그 마그넷은 그냥 오세훈이야. "
고개를 세훈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저기 누운 오세훈은 죽고."
"무슨말이야 그럼, 누가 살고 누가 죽는단뜻이야."
"100일후에 마그넷이 신체적기능을 다 갖추면 두뇌에 기억된 요소들을 옮기는거야. 싹다."
"그럼 결국은 세훈이가 산다는거잖아."
"말했잖아 살 수 있다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숨같은 의미였다. 세훈이가 살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근데 유감스럽게 마그넷이 100일동안 신체적기능을 갖출동안 정신적기능도 같이 향상되. 자아를 갖춘다는거지. 감정부터시작해서 모든 인격체를 이루는거야."
"그럼 그 마그넷은"
"말했지. 죽는다고. 뭐 어떻게 처리하냐느니 그런건 궁금해하지 말고. 우리가 널 데려온 이유는 하나야. 니가 같이 아침을 맞았던 그 스폰서들. 하나씩 감정들삭제해주면서 어떤 기분이였을까. 삭제할수있는사람은 만들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널 부른거고."
"그런건 이력서에 제출한적 없는데."
다 아는수가 있어. 하고는 슬쩍 웃었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감정이없다고 했지 나는. 그리고 기억들이 트레이드 되는순간 진짜 오세훈이 잃는건 딱 하나야."
"감정?"
"그걸 니가 만들어주는거야. 내일이면 오세훈의 마그넷이 100일의 하루를 시작하는날이야. 그리고 너한테도 남은시간은 100일이다."
"100일안에 그걸 어떻게 연구해. 그 논문도 무려 2년동안이나..."
루한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힌트를 주자면, 답은 너한테있어."
ㅡ
"김웬디 그여자, 온 이유가 따로 있는거 같던데."
"우리가 알 바 아니잖아."
"예상을 못했던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수상한곳같고."
"그래서 뭐 어떻다는거야."
"맘에들어. 엄청"
도경수가 웃었다. 공채 5기,그들에게 주어진 호텔 스위트룸 정도의 공간. 급히 루한을 따라간 웬디를 기다리며 와인을 한잔씩 주고받았다. 둘은 사촌이였다. 몇년에 한번 볼까한 사이여서, 같이 들어오게된것도 오늘 당장 알게된 사실이였다. 그냥 남들앞에선 모르는사람인척 해. 보자마자 김종인이 먼저 건낸말이였다. 평소에 서로에게 별 감정이 없다고 굳게믿던 도경수는 그래그럼. 하고는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그게 또 김종인한테는 아니였던거다. 항상 자신보다 우월했던 도경수에게 엄청난 열등감에 시달렸고, 결국엔 자기보다 먼저 박사학위까지 뚝딱 따버린게 이유였다. 그리고 도경수의 강연을 청취하러 독일까지 갔었다. 얻은건 격한 패배감일 뿐. 생명과학분야 국내 0.1퍼센트들만이 들어가는 그 연구소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낮추는 그 못된습관을 지우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후 지나지않아 개발한 기술이 그거였다. 유독 마취에 관심이많던 김종인은 세계 최고 마취제를 만들어냈다. 적정 약을 조율해 주사해야하는 보편적인 마취제가 아닌 일정한 약을 주사 한 후, 깨우고자 할때쯤 약간의 해독제를 주입하기만하면 1분 이내에 깨어나는 아주 엄청난 발견을 한거였다. 그리고 이건, 도경수가 5년을 연구하고도 만들지못한거였음에 김종인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다.
국립과학연구소가 김종인의 연구를 받아들인 이유도 그랬다. '깨울사람만 깨웠으면 좋겠어.' 분명 죽일사람도 존재한다는 의미였고, 김종인은 알아채지 못했다. 아버지가 제출한 서류였고 애초부터 이런 마그넷들을 다 알고있던 아버지라 일처리도 완벽했다.
와인을 천천히 마셨다. 바닥을 드러낼때쯤 도경수가 다시 말을 건냈다.
"여기있는 마그넷이 피터팬, 그리고 웬디씨에 네버랜드까지. 아직 둘이 모자라."
"동화쓰는거도 아니고...."
"후크선장이랑 팅커벨. "
"여기에서 한쪽손을 제대로 못쓰는사람은 한사람밖에 없지."
"..."
"너"
who is Tinkerbell?
w. 엑소구
"어, 저여자"
"..."
ㅇ
" 여기 시스템은 역시 훌륭해."
"근데 도경수씨. 궁금한게있는데 심각하게는 듣지말고..."
"뭔데?"
"혹시, 사이코패스에요?"
도경수가 웬디를 보며 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비슷해. 사이코패스는 아니고 소시오패스.
비슷하지뭐. 혹시 웬디씨 심리학쪽으로 하나?
이정도로 빨리맞춘사람은 그쪽이 처음이라서."
"그냥, 감이죠."
웬디도 웃었다. 옆에있던 김종인이 못참겠다는듯 검은 서류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테이블에 던져올렸다. 한묶음씩 책상에 펼치니, 약 10묶음정도 되보였다.
"대학도 아니고 조과제일줄은 상상도 못했네.
여기 올려진게 내 논문의 전부야. '실질적 마취학의 연구'"
내용을 훑어보던 도경수가 니가 이걸 했단말이야? 하고는 김종인을 쳐다봤고, 그런 도경를 보며 뿌듯하기라도 하다는듯 어깨까지 으쓱엿다.
"내 연구가 이렇게 살인도구로 사용될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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