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예뻤어. 남자답게 생겼다고 하기엔 너무 여리했고, 여자같다고 하기엔 선이 굵었지. 언젠가 너는 그런 제 얼굴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었지만 그렇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이는 그런 정대현이였으니. 너무 남자답지도, 그렇다고 여성스럽다고도 하지 못할 오묘한 얼굴. 난 너의 그 얼굴을 사랑했어.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너의 모든것을, 나는 너의 어떤것이라도 사랑했어 대현아.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였고, 지금도 그러해. 하지만 너는 모르겠지. 나는 너에게 미움을 받고 있겠지. 내게는 과분한 널 미친듯이 사랑하고 품어주는 길 대신 널 놓는 걸 택한 나를, 너는 미워하고 있을거야.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런 네 모습이, 내가 원한 길이니. 훗날 네가 아파야 할 양은 훨씬 줄어들테니 말이야.
오늘은 날이 많이 추웠어. 밖에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벌써 1월이 끝나가는데도 하늘에선 눈이 내렸을 정도니까. 뿌연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니 생각이 났어. 후덥지근한 6월 끝물에 태어나서 추운 겨울을 싫어하던, 그렇지만 그 겨울날 내리던 눈만 보면 눈을 반짝이던 순수한 네 얼굴이 떠올라 그저 살풋 웃어뵐 뿐이였지. 가슴 한켠이 아려와서, 쥐고 있던 손에 땀이 배어나올때까지 창 밖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어. 결국엔 눈이 그치기도 전에 내 눈 앞이 뿌얘지면서 무너지고 말았어. 내가 울때면 옆에서 달래주던 니 생각에, 더욱 서럽게 울었는지도 몰라. 뭐, 얼마 안 가 지쳐 잠이 들어버렸지만. 오늘따라 니가 참 그리워지네.
너는 내 긴 머리를 참 좋아했었지. 그래서 유난히 나는 머릿결에 집착했었어, 널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나름대로 좋은 추억이야. 넌 내 머리를 쓰다듬을때마다 행복하단듯 웃어줬으니까. 아직까지도 그 얼굴만 떠올리면 모든걸 잊고 행복해지는 느낌이야. 그런데 대현아, 앞으론 그런 생각도 못하게 될 것 같아. 머리를 죄다 정리했거든. 앞으로는 거울을 보며 내 머리를 보고 한숨을 쉬게 되겠네. 그래도 상관은 없어. 끝에 가까워질땐 이미 그런것따윈 포기하고 그저 살아있는것에 감사하고, 이렇게 너와 같은하늘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될 테니까. 지금의 이 사치를 최대한 만끽하고싶어. 대현아, 오늘 치료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너무 피곤하네. 미안해 다음에 더 길게 쓰도록 할게. 잘자 대현아.
대현아, 오늘은 새로운 담당선생님이 오셨어. 전에 계시던 선생님은 연륜이 느껴지시는 중년의 교수님이셨는데, 이번 선생님은 꽤 젊으신 편이야. 뭐, 말수도 적고 느린게 꼭 그나이답지 않게 느껴질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담담한 눈빛 속에서 보여지는 날카로운 촉은 확실히 젊고 당차. 꽤나 좋은 사람 같아. 대현이 너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살아가고 있을까? 너야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있으니, 어딜 가나 사랑받을 네가 확실하지만 그 주변사람들에 내가 포함되지 않는다는게 아직도 실감나지가 않네. 이젠 조금 익숙해져야할텐데. 넌 익숙해졌겠지, 그랬어야해. 그래서 나보다 더 예쁘고 너에게 잘어울리는, 널 위한 여자를 찾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싶은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니 그게 조금 애석하다.
오늘은 발렌타인데이구나, 딱 3년 전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났지. 요즘 넌 어떻게 지내고 있니, 대현아. 나는 벌써 머리가 다 빠져버렸어. 확실히 헤어스타일이 중요한 것 같긴 해. 만약 기적적으로 완치해서 살아난다고 해도 이 머리는 어떻게, 구제할 방법이 없을것같네. 그렇담 대현이 네 앞에 설수 없을거고... 아, 물론 그냥 생각일 뿐이야. 그럴 일은 없을거니까. 올해도 넌 많은 여자들에게 초콜릿을 받았겠지? 그중에 내가 만든 것도 있으려나. 사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 이끌고 간호사 언니들과 몰래 초콜릿을 조금 만들어 네 주소로 보냈거든. 혹시 받았으려나 모르겠다. 받았다면 이 편지들도 같이 읽고있겠지. 오늘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아, 그렇다고 그렇게 슬픈건 아니고. 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다만 대현이 널 마지막으로나마 보지 못한다는게 제일 서러워. 그래도 넌 아무쪼록 이 편지를 읽으면서 아무런 반응을 안보였음 좋겠다. 그렇담 날 잊은거고, 니가 아파해야할 필요도 없을테니까. 악필이 좀 심하네. 시야가 자주 희뿌얘보이게 되서. 앞으론 악필이 거슬리지 않아야 할텐데, 내가 제일 하고싶은 말만 적을거니까. 사랑하는 대현아, 넌 내게 있어 너무나도 과분하고 큰 존재라서, 내가 버티기엔 너무 잘난 너라서, 그래서 내가 버티지 못해서 떠난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줘. 그러니까 날 용서하지 마, 대현아. 더 좋은 사람을 만나서 나란 존재는 그저 한켠의 추억에 불과하게, 종종 꺼내보며 추억하는 낡은 사진과 같은 존재로, 너의 마음 구석진곳에 놓아둬. 이렇게 아파하는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니, 너는 그저 행복하기만 해줘.
사랑해 내 대현아.
부비부에요 |
왓더헬 역시 똥이네요 완전 아련아련한걸 쓰고싶었는데 ... 역시 전 안되나봐요
쓰라는 톡은 안쓰고.... 그냥 삘꽃혀서 썼는데.... 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