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 일단 내 나이는 26살. 다른 분들보단 젊어.
그래서 아마 여기 다른 애들은 널 부러워 할 꺼야. "
" 참나-.. "
짧게 코웃음 치는 녀석이였다.
" 비웃는거야? 비웃는거여도 처음으로 웃는거니까 참는다.
너 여기 처음 왔다며? 사실 나도 여기 처음이야.
비록 보호관찰관이긴 하지만 니가 내 첫 제자인거야. "
" ... "
다시 그 아이의 고개가 돌려졌다.
그리고 이번엔 삐딱했던 자세가 어느덧 제법 올바르게 변했다.
" 음.. 딱히 할 말이 없어. 난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거든.
그래서 지금 솔직히 말하는데, 내 이야기로 한시간을 다 채울 수 있을지
자신 없어. 아까 당당하게 말한거 좀 후회 해. "
" ... "
이번엔 빙그레 미소까지 짓는다.
" 그래도 일단 해 줘야지. 해준다고 했으니까 이건 약속이잖아.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거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 줘야 할까? 음... 난 아버지가 안계셔. "
그 아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거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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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진 내가 17살 때 돌아가셨어.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였지만
그땐 나름 폼 잡는다고 안울었어. 아니다. 사실 눈물이 안나왔지.
우리 아버진 알콜 중독자셨거든. 매일 술 마시고 엄마랑 나 때리고...
원망했어. 그리고 매일 빌었어. 하나님. 제발 저희 아빠 좀 데려가세요.
저딴 인간 필요 없으니까 제발 죽여주세요. "
멍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꽤 내 이야기가 흥미로운가 보다.
" 신이 정말 계신가봐. 내 소원을 들어주시더라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 교통사고가 났더라고. 그것도 뺑소니.
못된 놈은 결국 망하게 돼 있구나.
별 생각 없이 엄마한테 말 했어. 엄마, 아빠 죽었데.
난 엄마가 기뻐할 줄 알았어. 근데 엄마가 그 자리에서 주저 앉더니 펑펑 우시더라고.
엄마, 왜 울어? 돈 한푼 안벌고 술만 마셔대는 그 자식이 뭐가 좋다고 울어?
그 자식한테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눈물이 나와?
난 이해가 안됐지. 난 그 자식이 사라져서 너무 기쁜데 왜 눈물이 나는건가... "
갑자기 맥없는 웃음이 흘렀다.
그 아이의 멍한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에 그 아이가 짓는 의아한 표정도 재밌었다.
" 음... 장례식.. 아버지가 도대체 뭘 하고 살았던 인간인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
조문을 오는 사람이 몇 없더라고. 지금 생각 해 보니까 엄마랑 나랑도 주변에 좋은 사람은 없었던것 같다.
그땐 아빠 핑계만 댔는데... 장례식은 그렇게 조촐하게 진행됐어. 그리고 장례식 후 얻은건
공허함, 허탈감... 엄마의 실어증. 도대체 그 인간이 뭐라고 엄마는 실어증까지 걸렸는지 몰라.
두분이서 4년이란 연애 후 결혼 했다던데 많이 사랑하긴 하셨나 봐. 아무튼 난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론
내 인생엔 꽃이 필줄 알았지. 이제 먹구름질 날은 없을꺼라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더라고.. 하루 하루 후회의 연속이야. 왜 그랬는 줄 아니? "
" ...기도..때문에? "
넌 내가 백마디를 해야 겨우 한마디 해 주는구나.
근데도 니 한마디에 힘이 난다.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네.
" 그 이유에 대해선 나도 잘 몰라. 근데 방금 니가 한 말이 맞는것 같다. 고마워.
드디어 해답을 찾았네. "
고맙다는 말에 약간 움찔 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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