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었어요.. 죄송합니다ㅠ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우하한 세계 03
"우으..추워"
방금 샤워를 마친 몸은 사시나무 떨듯 제멋대로 달달거렸다. 잘 닦지못한 등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소름끼쳤다. 화장실 문고리가 가까웠다 멀어졌다 하는게 빈혈 같다. 문고리를 잡아 지탱하듯 몸을 기대어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핑- 도는게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어지러웠다.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식은땀 같이 느껴졌다. 누나한테 아파서 쉰다고 카톡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 이상한 남자가 집까지 쫓아 들어오는게 두려웠다. 혼자 있고싶지 않았다. 몸을 닦던 수건으로 얼굴에 떨어진 물을 닦고 머리에 둘러 화장실을 나왔다. 수랍장 두번째 칸에서 속옷과 흰티셔츠를 꺼내어 입고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우유와 식빵을 꺼내어 식탁에 두었다. 전에 빵집 누나가 준 머그컵에 우유를 적당히 따르곤 전자렌지에 넣어 삼십초 돌렸다. 식빵두개를 꺼내 토스트기에 넣어 나머진 우유와 같이 냉장고에 넣었다. 우유와 토스트가 데워지는 동안 부엌찬장을 열어 빈혈약과 감기약등을 정수기 물을 받아 입에 털어 넣어 마셨다. 서로 다른 약을 한꺼번에 같이 먹으면 안좋다지만 언제 그걸 하나씩 일일이 먹겠냐싶다. 귀찮다.
띵- 삐빅-
엇비슷하게 멈춰진 토스트기와 전자렌지에 있는 머그컵을 조심히 꺼내 탁자에 놓고 리모컨을 찾아 티비를 틀어 채널을 돌리면서 의자에 앉았다. 아침이라 그런지 재미없는 방송 뿐이였다. 토스트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티비채널이 바뀌는 것만 멍하니 보다, 그냥 티비를 꺼버렸다. 와 진짜 재미없어. 샤워 때문인지 슬슬 졸려왔다. 눈을 감고 수동적으로 입을 움직여 토스트를 우적우적 씹고선 우유와 같이 삼켰다. 알바하러가긴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상관없었다. 누나는 이른시간부터 빵을 만들어 놓으니까 지금 준비해서가면 빵만드는것도 볼수있으니, 나로선 득이되는 일이다. 싱크대에 토스트를 담았던 접시와 머그컵을 놓고 머리에 두른 수건을 빨래통에 집어 던지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칫솔에 치약을 묻힌 지호는 얼마 전, 한 회사의 치약에서 벌래가 나와 화제가 되었던 일이 생각나 순간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제 치약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거라 믿으며 이빨 구석구석 혀까지 싹싹 닦았다. 세면대 옆 코드에 드라이기를 꼽고 대충 휘휘 말린 뒤, 화장실을 나와 수랍장 첫번째에선 셔츠를 세번째엔 양말을 꺼내 신었다. 어차피 빵집에 가면 유니폼을 입어야 하기에 머리나 옷이나 이쁘게 입지 않아도 됬다. 와인색 골지셔츠에 두툼한 짙은 베이지색 니트 조끼, 연한 베이지색 바지, 무릎길이까지 내려오는 어두운 갈색코트로 완전 무장을 했다. 너무 대충 말렸던 건지 이리저리 삐쳐잇는 머리에 비니도 썼다. 손이 꽁꽁 발이 꽁꽁 어는 겨울바람아 물러가라다. 목도리까지 하려다 너무 갑갑할것 같아 냅둿다.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곤 곧바로 집을 나섰다.
아직 이른시간의 새벽 찬공기가 뺨에 닿았다. 뺨이 후끈거리고, 머리도 핑도는게 감기약을 몇개 챙기고올껄 그랬다. 걸어가며 보이는 집집마다 이제서야 아침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불을 킨 집도 있고, 샤워소리가 들리는 집, 티비소리, 그리고 가족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으며 대화하고, 그릇과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 등,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들만의 평화로운 행복함이 느껴지는게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에 꼼짝없이 납치를 당했더라면 이런 소소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을거란 생각에 무서워져 걸음을 빨리했다. 이젠 집집마다 들리는 소리들이 소음같아졌다. 골목 어딘가에서 그 남자가 튀어나오는 상상에 눈이 시큰해지는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딸랑-
언제나 거슬렸던 종소리가 이렇게 반가운적은 처음이다. 빵집이 거의 보이자마자 발에 불이 떨어지듯 달렸다. 금방이라도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느낌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도감에 울음을 터트릴 뻔 했다. 문열리는 소리에 누나가 조리실에서 나왔다. 창백한 얼굴로 숨을 고르고 있는 내모습을 본 누난 놀람반 궁금반으로 날 쳐다보았다.
"너가 왠일로 이 시간에 왔어?? 얼굴은 왜그렇게 허옇게 뜨고"
"그냥 누나 빵만드는거 보려구요. 아, 밖이 엄청춥네.."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탈으실에 들어왔다. 몸까지 움츠리며 춥다는 내 말에 누나가 얼른 옷갈아입고 난로옆에 앉아있으라고 말했다. 아까 진짜 울었으면 쪽팔려 죽어버렸을 것이다. 탈의실 락커 문을 열어 옷걸이에 코트와 셔츠, 바지 순대로 곱게 접어 넣고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다. 프렌차이즈점도 아닌 개인 빵집에서 무슨 유니폼이냐 싶었지만 프렌차이즈점을 이기려면 우리도 뭔가 특별한게 필요하다면서 시즌별로 다양하게 입자며, 본인이 손수 만들어 오셨다. 어찌나 꼼꼼히 만든건지 딱 내 사이즈, 완전 딱 맞았다. 알고보니 누난 예전에 패션디자이너가 꿈이였다고 한다.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디자이너개성이라지만 이건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흰 셔츠에 쥐색조끼, 빨간타이 거기다 베이지색 바지까지... 학교순정드라마에 열광하는 누난 저번 드라마에 나온 등장인물들이 입은 교복에 꽂혔나보다. 그렇게 입고싶으면 자기가 입던가 정작 누나는 내 것만 만들어 놓고 자기 자신은 조리하느라 바빠 그런것 입으면 불편하고, 옷만 버린다며 조리복만 주구장창 입는다. 저번엔 한복을 입히더니 이번엔 교복이라니!! 이 나이에 교복이라니!! 씩씩대며 파란 교복마의를 노려보며 끙끙 앓던 지호는 결국 한숨을 내쉬곤 왼손부터 넣어 입었다. 이 곳 만큼 시급 짭짤한데는 없으니까..
유니폼을 입고 쭈삣쭈삣나온 지호는 난로옆 의자에 힘없이 걸터 앉았다. 그 모습에 누나가 눈을 빛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먹일발견한 표정에 무서웠다.
"지호야, 착하지 가만있어봐.."
"왜..왜이러세요 누나.."
서서히 다가온 누나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가기엔 이미 늦었다. 빛의속도로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대는 누나의 모습은 마치...하..
"아악!! 누나 그만해요!!"
"쓰읍- 땍!, 내가 뭐랬어! 넌 누나 모델이라고 했지?! 잔말말고 포즈나 취해봐! 어벙하게 있지말고!"
쉴세없이 들이대지는 카메라를 한대치고 싶었다. 저거 내 몸값보다 비싸겠지.. 포기.
"아, 누나 그만찍고 이제 빵만들어요!!"
"아휴, 알았어요 우리 지호 수고했쪄용??"
40대 아저씨 표정을 하곤 진짜 애 다루듯 내 엉덩일 토닥이는 누나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5살만 젊었어도 누난 감옥가요!!!! 가제미 눈으로 누날 노려보지만 내 눈총따위 좁밥이란듯 가볍게 무시했다. 빨리 돈벌어서 여길 벗어나야지...
빵반죽을 열심히 만드는 모습에 멍하니 조리탁상에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반죽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무슨 스트링 치즈같았다. 멍하니 반죽하는 모습만 보자 양보듯이 졸음이 몰려왔다. 쩌억- 하품하는 내모습에 누나가 픽- 하고 웃었다. 누나 빵만들때 웃는거 아니에요 침들어가요.
"지호 교복입으니까 진짜 애같다. 젊어보여"
"아이구, 감사합니다."
"엉덩이도 토실토실한게 얼마나 귀엽던지 손에 짝짝 달라붙더라."
"아, 진짜 누나!!"
빨게진 얼굴로 펄쩍뛰는 지호를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는 모습이 마녀같았다. 진짜 5년만 젊었어도...바로 112인데...
누나와 같이 빵을 만들고, 채우고, 포장하고, 쟁반까지 닦으며 시간을 보내자 벌써 시간이 오전 10시였다. 문 앞 팻말을 오픈으로 돌려놓고 테이블이 많은 곳 중 티비와 제일 가까운 곳에 앉았다. 빵만으론 돈을 벌 수 없어 카페까지 같이 운영하는 바람에, 가끔 일손도 부족하고 정말 혼이 나갈정도로 엄청 바쁠때가있다. 그래서 손님이 없는 시간엔 그때그때 휴식을 취해주어야 한다. 밤을 새서 아까부터 괴롭히는 졸음에 미칠 것 같았다.
"아우, 노곤해..."
테이블에 늘어지듯 퍼져선 재방송하는 드라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드럽게 키큰 남자애 두명이 라면을 먹고있었다. 거참, 맛있게도 먹네.. 저거보니까 나도 배고프다. 어라?, 그러고보니 재네들 내가 입고있는 옷이랑 비슷하네, 아..... 멍청하게 제옷 한번, 티비 한번, 번갈아 보던 중, 문에 달린 벨이 딸랑거리며 울렸다. 무의식으로 고갤 돌려 바라보니 문 앞엔 어제봤던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어제완 달리 진녹색 체크코트와 검은셔츠 자수가 수놓아진 타이등, 저 옷 또한 비싸보이는 옷이였다. 남자도 밤을 샌건지 눈 밑이 퀭했다. 아저씨도 잠와 미치겠네요? 꼬시다. 킥킥거리며 웃다 멈췄다. 머리가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린 후 부터 그제서야 둔한 내 몸뚱아린 반응하기 시작했다. 쿵쿵쿵 거리며 심장이 속으로 말려들듯 뛰었고, 손이 발발 떨렸다. 남자를 바라본채로 멈춰진 내 시선과 마주친 남자는 느릿하게 다리부터 머리까지 천천히 훑다, 내 눈에서 멈춘채 그렇게 서 있었다. 때 마침 조리실에서 나온 누나가 남자를 보더니 웃으며 카운터로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오세요, 어떤걸 주문하시겠어요?"
그 말에 남자가 누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나 위험해요!!!, 순간 정신을 차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젠장, 여기까지 쫓아올줄은 몰랐다. 괜히 저 때문에 누나까지 피해를 입을까 두렵고 무서웠다. 사람들의 왕래가 잘 없는 골목에 있는 빵집은 녀석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누나를 데리고 도망친다 해도 저 남자에겐 손쉽게 잡힐것이다. 그 뒤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남자를 잡고 매달려서라도 나만 데리고 가라고 말해야 한다. 급하게 남자를 부르려는데 나보다 남자가 더 빨랐다. 남자는 누날 보며 어젯밤에 보여준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만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내 예상관 달리 태연하게 주문을 한 남잔, 밝은 표정으로 계산을 한 누나가 조리실로 들어가자 날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허튼짓 할 생각이면 접으라는 무언의 표시인가보다. 남자의 새까만 눈동자에 집어 삼켜질 것 만 같았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는 날 보며 남잔 피식 웃었다.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남자에 지레 겁을 먹고 조리실쪽으로 후다닥 달렸다. 그런 날 개 보듯 쳐다본 남잔 내가 앉던 의자에 가서 앉아선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다 다시 내 쪽을 보다 티비를 보다 하더니 이내 날 미친놈 보듯 표정이 이상해졌다. 뭐지 싶어 드라마를 보니, 아..교복... 시이발, 무서워 죽겠는데 이와중에 쪽팔려하는 내가 웃겼다.
"이젠 하다못해 연예인 코스프레하는겁니까? 방화에 오타쿠라 중증이네."
"이, 이건 유니폼입니다! 그리고 누가 바..방화범이라는거에요!!! 아니라고 했잖아요!!"
혹시나 누나가 들을라 조리실을 흘끗 보며 작게 외쳤다. 나보고 연예인 코스프레 한다며 비웃는 남자에 흥부박이 터졌다. 지는 경찰코스프레하는중이잖아 누가 중증이라는거야 저 싸이코가.
"알아요."
"네?"
"당신 방화범 아니라구요."
뭐??,' 아니야, 넌 방화범이야, 이 방화범 방화범' 거릴줄 알았던 남자가 저렇게 순순히 말하자 그게 더 어이없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진짜 방화범인 마냥 안도의 한숨까지 속으로 쉬었다. 뭐지, 또 다른 속임순가. 의심의 눈초리로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남잔 그저 멀뚱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지금 현재로선요."
"그건.."
"자, 여기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지호야, 얼른 갔다드려."
갑작스레 나타난 누나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들은건 아닐까.. 아니겠지, 하며 살펴본 누난 아무것도 못들은 듯, 뭘 멍청히 서있냐며 아메리카노를 내 얼굴에 들이댔다. 얼떨결에 받아든 난 쭈삣 남자에게 다가가 아메리카노를 탁상에 놓으며 남자에게만 들리듯 작게 속삭였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앉아있는 남잔 서서 구부정히 있는 날 위로 쳐다보며 웃었다.
"말 그대로에요. 법적이나 증거로나 당신이 방화범이 아니라구요."
"당연하죠! 제가 범인이 아니니까."
"..글쎄, 제 감은 안그런데요. 당신은 분명 방화범입니다. 제 직감은 절대 틀린적 없으니까요."
"...."
내가 보기엔 그냥 쪽팔려서 이러는것 같은데요. 감은 무슨 감이야 수사 시작부터 이미 나 아니라니까 자꾸그러네. 당신 진짜 경찰이라면 때려쳐 완전 안맞아.
"그리고.. 어제 당한일은 꼭 배로 갚아드리죠."
셔츠 소매깃을 살짝 내려보이며 남자는 활짝 웃으며 으르렁 거렸다. 사람이 웃으면서 화낼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남자의 손목에는 어젯밤, 내가 채우고 도망친 수갑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뭐야 당신 그냥 단순히 나 복수하러 온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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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