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출근을 위해 거실로 나오던 흥수는 소파에 산송장처럼 앉아있는 남순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는 자신이 나왔는지도 모르는 남순을 툭 치며 말했다.
“뭐해?”
“어? 어 벌써 깼냐?”
“뭐가 벌써야. 지금 여섯시 반이야. 이제 밥 먹고 출근해야지”
“시간이 그렇게나 됐어?”
남순이 멍하니 되물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흥수가 그 모습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늘부터 촬영 들어간다며. 너 밤새 이러고 있었어?”
“그랬나봐”
“어이구 잘 한다”
흥수가 밥통을 열어보더니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씨, 하고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그에 남순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펄쩍 뛰자 흥수가 혀를 차며 냉장고를 열었다.
“너 진짜 정신 좀 차려라. 며칠 좀 괜찮더니 왜 또 이래? 야 근데 빵 없냐?”
“빵 어제 다 먹었잖아. 어떻게 괜찮아. 그 일 터지고 첫 스케줄인데”
“아 이 병신새끼야. 그만하고 씻기나 해. 조금 있으면 매니저 오겠다.”
아 오늘 아침은 굶게 생겼네, 하고 살벌하게 중얼거린 흥수가 방으로 다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여전히 소파에 앉아있는 남순을 보고 속상함에 일부로 현관문을 거칠게 열었다. 위태위태해 보이네, 저 새끼. 저러는 게 얼마만이지. 흥수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문을 닫았다.
집에 홀로 남은 남순은 잠시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후, 집으로 남순을 데리러 온 매니저는 남순의 데뷔일 처음으로 자신 스스로 아무런 타의 없이 출근 준비를 마친 자신의 연예인을 보고 기뻐해야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 07
촬영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순은 내내 말이 없었다. 매니저는 ‘잘 잤어? 몰라, 밥은? 몰라, 피곤해? 몰라’라는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문답에 지쳐 대화를 포기한지 오래였다.
“남순아 이제 도착했어.”
“벌써?”
남순의 반문에 매니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없이 내려 남순이 탄 자리 문을 열어주었다.
“빨리 내려라. 조금 일찍이라도 와 있어야지. 안 그래도 다들 너 보는 시선 곱지 않을 텐데”
그 말에 남순이 슬쩍 웃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들어가자 형”
남순이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와서 촬영을 준비하던 스텝들이 남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중 군데군데 꽤 노골적인 불신과 불평이 담긴 눈길을 보내졌지만 남순은 모르는 척 밝게 인사를 건넸다. 남순이 그의 대기실에 거의 다다랐을 때 쯤, 스텝 하나가 남순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어?”
인사를 받던 남순이 스텝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멈칫했다. 매니저가 무슨 일이냐며 남순의 옆구리를 찔렀다. 남순은 오호라,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너, 김민기냐?”
“오랜만이야 남순아.”
6년 만에 마주친 두 고등학교 동창은, 그렇게 서로를 보며 웃었다. 남순은 민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허허, 웃으며 말했다.
“결국 피디가 되셨구먼, 우리 김민기군.”
“넌 진짜 의외야. 설마 우리 고회장님이 애교 많기로 유명한 연예인이 되실 줄은 그 누구도 꿈에도 몰랐지.”
“에이씨”
남순은 민기의 팔을 밀쳤다
“넌 애가 왜 능글맞아졌어, 김민기답지 않게. 난 고지식한 김민기가 좋다.”
“방송사에선 고지직한 김민기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
민기의 대답에 남순은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옆에 서 있던 스텝 하나가 남순과 민기를 돌아보다가 물었다.
“둘이 아세요?”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2년 내내 같은 반이었어요.”
민기의 대답에 주변에 있던 스텝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학창시절의 루머로 곤욕을 치루고 있는 스타와, 그 스타의 학창시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 남순은 쏟아지는 시선에 쓴웃음을 삼켰다.
“너 이제 좀 피곤하겠다. 주위에서 엄청 물어댈 거 아니야 나에 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고남순의 학창시절은 재미없을걸. 사람들이 관심 있는 우리 고회장님의 질풍노도 학창시절은 나도 궁금한 거고”
남순이 피식 웃었다. 그들 옆에 있던 여자 스텝 하나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고남순씨 고등학교 때는 어땠는데요?”
“남순이요?”
민기가 슬쩍 남순을 바라보았다. 남순이 눈을 흘기며 민기를 마주보았다.
“대체로 조용했죠. 말도 적었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도, 그렇다고 친구랑 노는 걸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었거든요.”
남순은 팔짱을 끼며 민기를 바라보았다.
“뭐 학교에서 짱 그런 거 아니었어요?”
누군가의 노골적인 질문에 매니저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남순은 미동조차 없었다. 민기는 차분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전 학교 다니면서 남순이가 맞고 삥 뜯기는 건 봤어도 누구 때리는 건 못 봐서요.”
아 진짜 쪽팔리게. 남순이 중얼거렸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그 누구도 남순이를 못 건드렸죠. 지금이랑 비슷한 소문이 그때도 났었거든요.”
남순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은 그 소문 때문이 아니라 옆에 있던 누구 때문이었던 거 같지만. 아무도 실감을 못했거든요. 그 누구도 남순이가 주먹질하는 거 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스타의 동창생의 생생한 증언은 꽤 의외였다.
“근데 왜 반박기사 안내세요?”
누군가가 물었다. 그 말에 남순이 허허, 하고 허탈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전부가 거짓은 아니니까요. 제가 한 잘못은 제가 책임져야죠. 어쨌든 드라마에 폐 끼치게 된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남순은 며칠간 소속사를 통해 수십 번 전했던 사과를 다시 고개숙여했다.
“남순씨! 감독님이 부르세요!”
멀리서 직원 하나가 소리쳤다. 남순은 묵묵히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갔다.
*
“오늘 특별히 전할 말은 없고 여기 야자 신청서 나눠줄테니까 회장한테 제출하고. 정선생님은 오늘 일이 있으셔서 조회는 못 들어오신다고 하셨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학교에 간 흥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조회를 시작했다. 이제 그런 흥수에게 익숙해진 아이들은 네, 네 대답했다.
“최한이랑 이시훈은 오늘도야? 내가 여기 부임한지가 얼만데 난 걔네 조회 들어오는 꼴을 한 번도 못 봤…….”
그때 꽝, 하고 교실 문이 열리고 남학생 둘이 들어왔다. 흥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오늘 처음 보네. 오늘은 정선생님 없으니까 시 외우기 말고 벌점 일점씩이다.”
흥수는 음, 하고 뭔가 더 할 말을 생각하다가 대뜸 말했다.
“그래 최한. 넌 조회 끝나고 교무실로 좀 와라”
“아 왜요?”
“그냥 좀 대꾸 없이 와라. 나 피곤하다”
그리고 흥수는 출석부를 챙겨들었다.
“이상. 회장”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오냐. 최한 너 바로 와라”
흥수가 교실을 나갔다. 최한, 이라는 명찰을 단 학생이 씨 어쩌고 라고 욕을 읊조리며 자신의 책상을 거칠게 걷어찼다. 그리고는 흥수를 따라 교실을 나갔다.
교무실에 들어간 흥수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양 손을 주머니에 꽂고 있는 반 학생을 바라보았다. 흐음, 하고 한숨을 쉰 흥수가 서류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너, 교내봉사 밀린 거 많더라.”
“그래서요”
“학교 빠지지 말고 교내봉사나 하라고”
“싫은데요?”
그 말에 흥수가 서류를 만지던 손을 멈추고 최한을 올려다본다. 그 눈빛에 지지 않겠다는 듯 노려보는 두 눈동자에 흥수는 다시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너 이러다가 유급한다.”
“그게 선생님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유급하면 많이 쪽팔릴 텐데 괜찮나?”
니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폼생폼사 아니냐. 하고 흥수가 뒷말을 이었다. 최한은 그런 흥수를 보고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쌤이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뭐 쌤도 유급했었어요?”
“응.”
그리고 흥수의 흔쾌한 답변에 살짝 당황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 사실상 퇴학 비슷한 것 당하고 1년 유급했었다. 왜?”
“…….”
“내가 뭐 범생이 같이 생겼나보지?”
이건 범생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최한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흥수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학교도 안 나오려고 용쓰고 사고 하나라도 더 치려고 애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최한은 인상만 벅벅 쓸 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놈은 제 2의 오정호인가, 아니면 제 2의 나인가. 흥수는 밀려오는 씁쓸함을 숨기며 말했다.
“가봐라. 오늘 야자 시간에 교내봉사 할 테니까 어디 도망가지 말고”
최한은 대답 없이 뒤를 돌았다. 그리고 교무실을 나가는 길에 교무실 문을 꽝 차버렸다. 순간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있던 흥수는 뭔가 아련하고 울렁거렸던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아이 저 새끼가”
그리고 수업시간 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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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머리가 딸려요. 다음에는 쉬어가는 편으로 특별편이나 쓸까요. 과거이야기? 고3?
드디어 소원 성취했습니다. 12시 전에 올리기 아싸.
그래도 딴 때.. 보다는 길죠??
비랑님, 이경님, 몽쉘님, 바삭님, 꼬꼬마님, 오징어님, 이진기님, 남순고남순님, 흥순홀릭님, 31님, 사탕님, 수열분자님, 미미님, 콘칩님, 꺆님, 깡주님, 맷님, 이남자가제남잡니다님
감사합니다.
ps. 제 글 제목 기억도 못하는 전 뭐라고 표현해야 하죠ㅋㅋㅋ 흥수형님 나도 븅신새끼 한번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