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 09
조회를 위해 인재와 함께 2반에 들어간 흥수는 역시나 비어있는 최한의 자리에 혀를 쯧쯧 찼다. 인재 역시 비어있는 최한의 자리를 보고 착찹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
“다들 이제 중간고사 다가온 거 알지? 열심히 공부해서 최선을 다해서 보자, 응?”
“네”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 그에 인재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불평만 하지 말고 열심히 해서 잘 보면 너네도 다 좋잖아? 성적 오르면 야자 일주일 빼주는 것도 생각해 볼게”
“진짜요?”
“쌤 진짜죠? 약속했어요!”
인재의 말에 교실이 일순간에 어수선해졌다. 어이구, 저렇게도 야자가 싫을까. 덩달아 흥수도 따라 웃었다. 인재가 교탁을 탁탁 치며 말했다.
“그럼 다들 공부 열심들 하시고, 회장?”
“차렷, 경례”
인재와 흥수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고 교실을 나왔다. 말없이 인재를 뒤따라가던 흥수가 교무실 가까이 이르렀을 쯤 인재를 불렀다.
“선생님”
“응, 왜?”
“저기 최한 말이에요.”
“한이?”
인재는 의외의 이름에 반문했다.
“걔는 어떤 애에요?”
“응?”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게 삐딱하냐고요. 밖에서 만났는데 다른 어른들한테는 예의도 바르고 말도 잘 듣고 그러던데 학교에서는 왜 그러는 거예요?”
“글쎄…….”
인재는 굉장히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한이에 관해서라면 사실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어”
“선생님이요?”
“한이는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말을 안 하는 편이거든. 사실은 한이 이 년째 우리 반이야. 근데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아버지께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한이를 때리신다는 것 밖에 없어. 그것도 시훈이가 말해줘서 알았고”
흥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재는 말을 이었다.
“내가 한이한테 처음 들은 말이 ‘제가 무슨 일이 있는 걸 왜 선생님이 아셔야 하는데요.’였어. 한이는 개학식 날에 지각을 했었거든. 나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었고”
“그 녀석은 왜 그렇게 학교를 싫어할까요. 학교도 싫어하고 선생도 싫어하고”
흥수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인재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싫어할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인재는 교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를 보고 조금 놀라 표정을 지었다. 흥수는 자신의 자리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 최한을 발견하고는 인재에게 있을 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려 보이더니 모르는 척 표정을 바꾸며 최한에게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웬일이냐? 네가 자발적으로 교무실을 다 오고”
“교내 봉사하라면서요.”
“어?”
“어제 쌤이 교내 봉사해야 된다면서요.”
“그래서 너 지금 나 찾아 온 거냐?”
최한은 흥수의 눈을 피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흥수는 흠, 하고 그런 최한의 태도에 답했다. 그때 종이 울렸다. 교무실이 일순간에 어수선해졌다가 또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최한은 어디 청소해요, 라고 말하며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흥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
“봉사 대신 상담은 어떠냐?”
“싫은데요.”
최한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교무실을 나서려는 최한 뒤로 다시 흥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 교시 상담하면 교내 봉사 2시간 빼주마.”
“…….”
“아 물론 오늘도 그냥 가면 그 이후의 일은 나 책임 안 진다”
망설이던 최한은 결국 뒤를 돌았다. 그리고 당장이라고 이를 갈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로 가는데요.”
흥수는 웃으며 교무실 맞은편 상담실을 고갯짓 했다.
*
상담실에 들어가 마주 앉은 흥수와 최한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몇 번이나 말을 시작하려다 말았던 흥수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첫마디를 열었다.
“나한테 다 말해봐라”
“뭐를요”
최한이 흥수를 쏘아보았다.
“뭐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왜 학교도 싫고 선생도 싫은지.”
“제가 왜 그걸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는데요.”
“혼자 품고 있으면 힘드니까”
의외의 대답에 한이 흥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고 있던 흥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해봐라. 난 선생이 된지 일 년도 안됐고 사실 아직도 이 학교가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학생으로서 더 익숙한 사람이니까 선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말해봐라.”
“…….”
최한은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대답해라. 너 학교 다니기 싫으냐?”
“네”
“그럼 자퇴를 하지 왜 계속 학교를 다녀?”
“갈 데가 없으니까요. 학교 다니기는 싫지만 지금 학교 밖에 나가서 살아남을 자신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다니는데요.”
아, 이 녀석은 제 2의 고남순이었던가. 흥수는 속에서 없었던 애정이 확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기왕 다닐 거 열심히 다니지 왜 그러냐?”
“뭐가요”
“애들 때리고 담배피고 선생님들한테 대들고. 공부는 안 해도 사고는 치지 말지 그러냐. 후회할 텐데. 이미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흥수의 말에 최한은 어딘가 화가 난 듯 보였다. 최한은 따지듯 물었다.
“그럼 선생님은요? 선생님은 유급했었다면서요. 선생님은 뭔데요?”
“후회했었다. 지금도 날 보며 어색해하는 동창들을 볼 때면 후회하고 있다. 나도 그렇고 네가 알바 했던 치킨집 사장 셋도 많이 후회했다. 그리고 고남순도, 후회하고 있지”
맨 마지막에 남순의 이름을 덧붙이는 흥수는 어딘가 씁쓸해보였다. 최한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한아. 공부 잘하라고는 안 할 테니까 학교 제대로 다녀라. 지각도 하지 말고 결석도 하지 말고. 애들하고도 잘 지내고”
“이미 그렇게 하기엔 너무 지났잖아요.”
최한이 중얼거렸다.
“나아지기는 할 거다. 내가 그랬듯이. 그리고 선생님들 너무 미워하지 마라. 너만 힘들다”
“…….”
그 말에는 최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흥수는 흘깃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1교시가 끝나가고 있었다. 흥수가 마무리를 하려 입을 여는 순간 최한이 말했다.
“저는 엄마가 없어요.”
“어?”
“형제도 없고요, 아버지는 있기는 한데 있으나 마나죠. 없는 게 나을 정도니까”
“…….”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 안나요.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담임선생님이 그랬죠. 애들 다 보는 앞에서 얘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 엄마가 없거든. 그러니까 잘 대해주어라. 이렇게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제가 혼자만 있으니까 나름 저를 위한다고 한 말인 거 알아요. 그런데 전 그날부터 진짜 왕따가 됐죠.”
“……그랬냐.”
“선생님들이 나쁘지 않은 거 알아요. 정쌤이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고 또 얼마나 위하는지도 알아요. 근데 그냥 싫어요, 선생님들은 다”
흥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실 쌤은 선생님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지금 쌤 앞에 앉아 있는 거잖아요. 그래도 강요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 저랑 비슷했다고 해도 선생님이랑 제가 같은 사람인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최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흥수는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에 대해 들었다.”
“…….”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라. 또 며칠 동안 학교 빠지지 말고. 알겠냐?”
최한은 문을 열었다.
“내일 학교 꼭 와라. 교내 봉사도 마저 해야지”
최한은 상담실 밖으로 나갔다. 흥수는 최한이 쾅, 하고 닫아버린 문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도대체 자신이 뭘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다음날 최한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
보름이 지났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간 남순은 집에 들어올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바빴다. 촬영은 계속 됐고 남순의 루머도 줄어드는 듯 했다. 그러나 남순의 인생은 언제나 그랬듯이 순순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그날도 남순은 평소와 같이 촬영에 열중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 다른 배우들과 웃고 떠들던 남순은 얼굴이 새파래져 자신에게 달려오는 매니저를 보며 의아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순아 잠깐 이리 와봐”
매니저는 남순을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끌고 갔다.
“왜? 무슨 일 있어 형?”
“너 지금 핸드폰 없지?”
“응. 형한테 줬잖아.”
“그럼 인터넷도 못 봤지?”
“……또 뭐 터졌어?”
남순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매니저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남순은 이리저리 기사를 클릭해 보다가 말없이 매니저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이건 진짜 아니지 남순아?”
“형은……나 왜 그렇게 믿어?”
“고남순”
“나 형이 생각하는 그런 착한 애 아니라고. 알잖아 이제”
남순이 벽에 등을 기댔다.
“미안 형. 사실이야.”
“사실이라고? 네가 제일 친구 다리를, 그것도 축구 선수였던 친구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게?”
“…….”
남순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매니저는 한숨을 쉬었다.
“뭐 더 있니? 더 한 것도 있어?”
처음으로 매니저가 남순을 몰아붙였다. 남순은 힘없이 대답했다.
“없어. 그 일 있고 나서 정신 차린 거거든.”
“그 친구는”
“응?”
“그 친구는 지금 어디 있냐고.”
“그건 왜”
“지금 네가 그 친구한테 돈 줘서 입 막았다는 루머가 돌고 있어. 아니잖아 그건”
“아니지. 당연히”
“그래. 아니겠지. 그러니까 그 친구 지금 만날 수 있냐고. 혹시라도 그 친구가 인터넷이 글이라도 올리면 어떡해. 지금 네 이미지 지금까지 그 어떤 과거 터졌을 때 보다 엉망이야. 안 그래도 사장님 방금 화나서 전화하셨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냐고”
“걔 그럴 애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남순아”
“화해했어. 고등학교 때. 진짜 괜찮아”
매니저는 화를 삭이느라 심호흡을 했다. 그것이 남순을 향한 화인지 아니면 유포 자를 향한 화인지 매니저는 구분이 안 갔다. 매니저는 남순에게 말했다.
“이젠 고소 할 거다”
“형”
“지금 이 거 유포한 사람도 그 최초 유포 자, 최영훈이라고. 사장님도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시란다. 더 이상은 네 의견 따른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너 이러다 드라마 실패하면 그 책임 어떻게 질래?”
“…….”
“그럼 내일 변호사 만나.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는 남순의 목소리는 지쳐있었다. 얼마나 더 많이 남아 있는 건지, 또 얼마나 지쳐야 이 일이 끝날지 남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릴 적, 그 잠시 동안의 비행이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실시간 검색어 1위는 고남순 친구 다리. 남순은 수없이 올라와있는 글들과 추측 기사 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흥수에 대한 미안함을 다시 느꼈다. 그러면서도 남순은 그 순간 흥수의 위로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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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잘 지내셨어요?
개학한지 벌써 5일이나 지난거에요? 허 참..
늦어서 죄송해요. 주말에 폭풍 올릴려고 노력해야지
쓰다보니까 남순이가 끊임없이 불쌍해지네요ㅠㅠㅠㅠㅠㅠ
전 여러분이 본편을 기다리고 계실줄..몰랐어요. 본편 재미 없을줄....
미안해요. 열심히 올릴게요.
일단 암호닉은 며칠전 올렸던 작가말에서 댓글 달아주신 분들만 쓸게요
그거 못보신 분들은 여기 다시 정리해 주세요
비올라님, 깡주님, 소금님, 비랑님, 이경님, 메가톤님, 흥순홀릭님, 보라돌이님, 넥타이님, 미미님, 맷님
감사하구요
여러분 잘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