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이태민을 본건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나보다 몇배는 작은 키면서 단정한 검은색의 내 머리와는 달리 유난히 밝은 갈색의 샤기컷이 되 머리를 하고있었다. 이태민은 터덜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복도를 걷던 나를 동그랗고 큰 눈을 꿈뻑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떨어진 나를 꼭 구경하는것만 같아서 괜한마음에 뭘보냐? 하고 심술을 부리자 이태민은 조금 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며시 내젓더니 그대로 먼저 복도를 나가버렸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 몇년이나 지나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때 다시 그곳에서 나는 이태민을 만났다. 이태민은 처음과 달리 검은 머리를 하고있었으며, 이제 막 연습생을 시작한 나와 달리 이태민은 데뷔반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처럼 나를 보며 웃어주지도 않았다. 사실 그때는 왜 나를 보고 웃지 싶어서 기분이 나빴었는데 뒤늦게 생각해보면 솔직히 그 웃음이 좋았었던것같기도하다. 연습생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나서 번번히 꽤나 마주칠일도 많았고, 얘기를 한번쭘은 해볼수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태민은 일방적으로 나를 무시하는듯했다. 그게 너무 기분이 나빴고, 재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마찬가지로 이태민을 무시했고, 피해다녔는데 그게 글쎄 선배들 눈에 딱 보인건지 나와 이태민을 강제로 옥상에 불러놓고 둘이 싸웠냐며, 친하게 지내라며 우리를 달랬지만 우리는 그때도 마찬가지로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고있었다. 결국은 선배가 억지로 우리에게 악수를 하라며 강요를 했고, 빨리 집으로 가야했던 나는 어쩔수없이 이태민의 손을 잡아챘다. 그것이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작고, 보드라운 차가운 손은 마치 내 손과 맞춰진것같았다. 선배가 억지로 우리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서 악수를 시키고는 이태민과 같이 내려가는데도 난 옥상에서 한발자국을 내걸을수가 없었다. 15살, 한참이던 사춘기소년의 어렸던 심장이 빠르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몇일 후, 팀이 결성되었고 난 보기좋게 떨어졌지만 이태민은 보란듯이 붙었다.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이태민을 보면서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삼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삼킬수가 없었다. 어린 가슴은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고, 어떻게 다스려야할지도 몰랐으니. 그저 멀리서 이태민을 노려보는데 이태민이 나를 발견하고는 웃고있던 표정을 천천히 지웠고, 난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래, 난 도망쳤다.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그 전보다는 확연히 차이나게 연습을 더욱 빡세게했다. 가끔은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말리기까지 할 정도로 나는 내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연습을 했다. 몇몇 애들이 뒤에서 내가 데뷔를 하고싶어서 미쳤다며 수군거려도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것은 그거뿐이었다. 나도 데뷔를 해서 나를 깔보는듯한 저 이태민과 같은 자리에 서고싶다. 이태민이 나를 더이상 깔보지못하게 나도 어서빨리 데뷔해서 동등하게 서있고 싶었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도 분명 참가할사유는 충분하다.
“애기팀 곧 데뷔한다더라.”
하지만 내가 시도라도 해보기도전에 총알만 넉넉하게 채워놓는 그 때, 이태민은 이미 게임의 승리를 알렸다. 이것보다 병신같고 바보같은게 어디있을까? 그날 나는 아프다고 조퇴를 한 후, 집에가서 밤새도록 펑펑 울었다. 왜 울고싶은지 이유는 그저 데뷔를 못해서. 내가 져서. 라고 생각하고 밤새도록 펑펑 울었는데 아무리 울어도 가슴 속 무언가는 사라지지않고 오히려 목구멍을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눈이 팅팅 부어 이태민만 마주쳤을때, 이태민이 팀에 들어가서 멤버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 알것같았다.
나는 이태민에게 질투따위를 한것이아니었다. 데뷔를 하고싶었던것도 아니었다. 이태민과 같은 타이틀에 갇혀서 마주보고 웃고싶었던거였다.
“잠깐 나 좀 보자.”
앉아서 땀을 닦으며 휴식을 취하는 이태민에게 다가가서 나오라고 말을 건네자 주변 선배들이 또 우리를 향해 불똥어린 시선을 보낸다. 저것들 사이도 안좋은데 싸우는건 아니겠지?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한채 조금 더디게 움직이는 이태민의 손목을 잡아채서 끌고나왔다. 오랜만에 보는게 아닌데도 오랜만인것만 같았다.
“무슨 일있어?”
조곤 조곤 조금의 불안한 감정이 새어들어오는 그 목소리를 듣자 속에 응어리가 사르르 풀려간다,
“데뷔하니까 좋지?”
“어? 어…….”
“……머리 길다.”
“아직 컨셉이 안정해져서….”
“아…그래….”
분명 무언가 할말이 있었는데. 분명 이태민에게 해줄말이 있었는데…….
“할말끝났음 나 들어가볼께….”
또, 시도조차 못해보고 이태민은 돌아섰다. 결국은 바보같이 그대로 나마저도 돌아서서 그곳을 빠져나와 내 연습실로 갔는데 한참 문규가 나를 찾았다며 헉헉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너 태민이 불렀다매!”
“응.”
“싸웠냐? 싸웠어?! 때리진않았지?!!”
“뭘 또….”
“야 임마, 넌 몰라! 태민이가 얼마나 너 보기 껄끄러운데!”
“그게 뭔 소리야”
“…아, 아씨…이거 말해도 되나? 아니 그게….”
나는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막혀 곧 죽을것처럼 그렇게 달려서 이태민에게로 갔다. 그리고 이태민을 보자마자 뭐라 할말도없이 손목을 잡고 그대로 달려 초등학교 6학년 처음 만났던 이제는 쓰지않는 사무실 앞 복도에 도착했고, 이태민은 많이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야? 한다. 그때처럼 나는 다시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심호흡을 하고 나오자 이태민이 멍청하게 쳐다본다.
“안녕.”
내가 먼저 말을 걷고, 다가가고, 웃어보였다. 이태민이 처음 그랬던것처럼 내가 먼저 시작했다. 그러자 이태민은 무언가 알아차렸는지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뭘보냐? 우리는 그 말을 끝으로 키득 거리며 작게 웃었다.
*
“이번에 다같이 수련회간다더라.”
체중관리를 한다고 며칠 음료수도 안마시던 문규가 입안 가득 초콜릿을 넣고 우물 우물 거리는데 영 더러워보이는게 식욕이 사라져 먹으려고 깠던 초콜릿을 내려놓았다.
“너 다이어트 안해?”
“야 이 씨, 말도 마! 죽일놈의 다이어트!!”
“의지력 하난 진짜 없어.”
“먹는걸 상대로 의지력이 어떻게 생기냐?!”
“또 열낸다. 냄비냐?”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비아냥 거리자 문규가 씩씩 거리며 냄비가 어쩌고 저쩌고 소리를 버럭 버럭 내질러대는데 그걸 무시하고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사생팬들이 진을 치고 있는게 보였다. 저것들은 집도 안가나.
“야! 내 말 듣고있냐?! 어?!”
“수련회 우리도 가는거야?”
“말 돌리지, 어? 수련회? 당연하지. 단합으로 가는거라는데 내가 보기엔 이번에 데뷔팀 있다고 가는 것 같드라.”
“가?”
“나야 뭐 당빠지.”
“너 말고 임마.”
문규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그럼 누구? 한다. 이태민이라고 차마 말할수가 없어서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니 눈치도 빠른 녀석이 그새 알아차린 건지 엇! 하고 소리를 지른다.
“소녀시대 누나들?”
“아.”
눈치 빠른 놈이라고 한거 취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