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
차가운 창틀에 손을 얹어본다.
뼈가 앙상한손, 달빛에 더욱창백해보인다.
'달칵'
"안자? 잠안와?"
병실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내가 지금 이렇게 쉬고있을수있는것은 전부 그 덕분..
"아..조금"
그는 내옆에 있던 서랍에서 새수건을 꺼내며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다.
'삐,삐,삐'
이제는 자장가 같은 기계음, 처음 이곳에 입원했을때와 비하면 많이 익숙해졌다.
처음의 불쾌하던 병원냄새는 내 고유의 향기처럼 느껴지고,
거슬리던 기계음은 노래로 들린다.
예전의 고통은 이젠 많이 줄어들었다.
아프지않다는게 내삶이 끝날때가 다가오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슨 생각해"
정신차리니 대야에 따뜻한물과 수건을 담궈 가지고온 그가 보인다.
그는 다정하게 내 볼을 쓰다듬었고, 나는 말없이 웃으며 그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곧 나의 옷을 벗겨주는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잘한 흉터가 많은 큰 손
하얗고 이쁘던 그의 손은 나때문에 고생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처음만났을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그를 처음만난것은 고2 체육대회때, 어릴때부터 몸이 안좋았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반애들의 축구를 응원해주려고 그늘에 앉아있었다.
"야! 변백현!! 여기서 꼼짝말고 있어라? 내가 1등 가져다 줄께!!!"
옆 짝궁이였던 찬열이는 언제나 날챙겨주었고 그날도 그렇게 안심하고 응원할수있었다.
그러나 축구경기중 옆반애가 찬공이 잘못날라가 내가 표적이 되었다.
"야이씨!!!변백현!!!!"
'뻑'
나에게 날라오는 공을 보고 피할새없이 눈을 감았지만 아프지않았다.
분명 누군가가 막아준것같은데
"아오..아파라..야 괜찮냐??"
"아..고마워..."
나에게 날라온 공을 막아준사람이 그였다.
그렇게 처음만났고, 졸업하고 내가 암이라는걸 알자마자 달려와준 사람이다.
할머니와 살던 나를 병원에 입원시켜준것도 그였고,
5년간 날 보살펴준것도 그였다.
지금 나에겐 그 밖에 없다.
기댈곳도
숨을곳도
지금의 나에겐 유일한 그
'참방'
"백현아 끝났어 졸려?"
눈을 뜨니 내몸 구석구석 닦아준 그가 내머리를 보듬어준다.
크고 흉터투성이의 손
그손을 난 아직 놓고싶지않다
아니, 놓을수없게 되어버린것같다.
따뜻한 그의 손에 잠올듯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움찔'
다시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기 시작한다.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숨이 쉬어지지않는다.
이것이 아픔인지 괴로움인지 환각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저 끝나길 빌고 또 빌며 그가 급하게 챙겨주는 약을 먹을뿐이다.
"...하..으흑..."
나오지도 않는 울음소리만 자꾸 내게된다.
두렵다 이러다 어느순간 죽을지 어느순간 지금 여기서 내가 사라질지
아파도 좋으니까 그저 지금 내옆에서 날안고 같이 울어주는 이사람과
5년간 내가 좋아한 내친구 준면이와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더 있고싶다.
날 안는 그의 손과 팔이 떨어지지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