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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음식들이 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급하게 삼켜 버렸다. 이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벗어 나고 싶었기에 결국 밥을 반이나 남겨버렸고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려 몸을 살짝 일으켰다.
"야."
그러나 맞은편에서 종인이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 놓고 경수를 아니 꼬운 표정으로 쳐다 보고 있었다. 지레 겁을 집어 먹은 경수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오줌을 지릴 정도로 종인의 표정이 살벌했다. 덜덜 떨던 다리를 멈추고 종인이 턱짓으로 제가 해 놓은 음식들-고작 된장찌개와 달걀 후라이 뿐이었지만-을 가리키며 물었다.
"맛 없냐."
"아, 아니…! 어, 엄청 맛있는데…?"
결국 경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된장찌개 국물을 밥에 말고 우적우적 입에 넣으며 쩝쩝 거리는 괴걸스러운 소리를 냈다. 경수의 쩝쩝 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부엌을 울렸다. 결국 겨우 밥 한 그릇을 모두 비우고 나서야 경수는 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나 개수대에 그릇을 넣어 놓고는 부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혀가 마비될 정도로 끔찍한 맛이었다…! 대체 된장 찌개에 고등어는 왜 넣은건지! 달걀 후라이에도 소금이 덩어리로 씹혔고, 밥도 설익혀 마치 돌을 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억지로 한 그릇을 비웠으니, 속이 미슥거려왔다. 경수는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입을 헹구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분노의 양치질을 하며 다음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종인이 요리를 하도록 냅둬서는 안되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 * *
12인의 초능력자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드디어 전쟁에 서막이 오른 것이다….
드디어 12인의 초능력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일주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써온 탓에 경수의 눈 아래로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피곤에 쩔어 보이는 경수가 시계를 보자 벌써 시침은 숫자 4를 가르키고 있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이 시려 왔다. 어서 컴퓨터를 끄고 씻지도 않은 채 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였다. 오늘은 전에 제게 메일을 보내왔던 학생과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점심 때 즈음 만나기로 했으니 조금 눈을 붙이고 일어나도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경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제대로 눈을 붙이지도 못했던 몇 일간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 오는듯 했다.
결국 늦잠을 자 버렸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모닝콜은 듣지도 못했다.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으면 그 시끄러운 알람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경수는 자기 자신을 자책했다. 약속시간은 1시였는데 지금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고작 약속 시간이 30분 남아 있었다. 저번에 주고 받은 핸드폰 번호로 약속 시간을 미뤄야 겠다는 문자를 보내려고 핸드폰을 열어 보자 저를 반기는 것은 발랄한 학생의 문자였다.
[ 12시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염~☆★ ]
이런 씨발! 경수는 핸드폰을 내동댕이 치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샤워기에 물을 틀어 바로 머리에 물을 들이부었다. 존나 차가워서 머리가 울렸지만 경수는 지금 그런 것 하나 하나 따질 시간이 없었다. 미래의 노벨 문학상 유망주를 실망하게 할 순 없었다!
* * *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이 차가운 공기에 얼어 붙어 딱딱해졌다. 부산스럽게 준비해 달리고 또 달려 약속 장소에 나온 시간은 1시 50분.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전화 한 통도 없는 학생에 경수는 이미 학생이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 이 햄버거 가게 안에 혼자 온 학생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인터뷰를 핑계로 만나자고 저를 불러 들인 것도 장난을 치려고 하는 저의 안티의 소행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섣불리 나왔다가 인신매매나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겠다고 생각한 경수는 그 길로 가게를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경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귀 옆에 댔다.
"어, 어! 학생…?"
"어디세요? 왜 이렇게 늦으세요?"
정말이지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학생의 목소리는 지하 371665852992m의 동굴음이었다. 세, 세상에나! 요즘에는 초등학생들도 변성기가 이렇게 이, 일찍 오나…? 경수는 제 귀로 울려 오는 이 목소리가 제게 메일을 보내왔던 별이 가득한 초등학생과는 조금 반전인 목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의심의 여지를 떨쳐내며 물었다.
"지금 가게 안인데…. 학생이 없네요."
"아, 저 2층에 있어요. 올라 오세요."
학생과의 통화를 끊고 경수는 2층 계단으로 걸음을 향했다. 기다리게 해서 너무 미안했다. 혼자 이런 데서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괜스레 학생의 부모님께도 미안해졌다. 경수는 걸음을 빨리 해 두 칸씩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2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한 양아치 같은 고삐리를 제외 하고는….
제 몸집을 몇 배나 커 보이게 하는 빨간 색의 커다란 패딩에 껄렁껄렁 다리를 떨며 제 앞에 놓인 콜라를 쭉쭉 빨아 대면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저…. 저 아이가…? 에, 에이 설마…. 아직 저를 보지 못했을 학생을 보고는 경수는 조심스럽게 다시 몇 계단을 내려가 자신의 몸을 숨겼다. 저건 누가 봐도 각 학교마다 몇 마리쯤은 서식하고 있는 일진 양아치 놈인데…?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 왔다. 대체 왜 내 주위엔 이런 일진 새끼들밖에 꼬이질 않는 거지! 아냐, 혹시 내가 약속 장소를 잘못 알고…!
"도경수 작가님이세요?"
"악, 씨발!"
경수는 깜짝 놀라 제 뒤로 어깨를 잡아오는 손길을 뿌리치며 소리를 질러 버렸다. 그러자 잔뜩 커다래진 눈으로 경수를 내려다 보는 학생이었다. 하, 학생이… 담배 냄새 나?
"맞죠, 도경수 작가님?"
말투가 뭔가 비웃는 것 같이 기분이 나빴다. 경수의 위 아래를 스캔 해 오는 찬열의 노골적인 시선에 경수가 뒷걸음질 쳤다.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인터뷰. 안 해요?"
아, 똥 밟았다…. 먼저 계단을 올라 사라지는 뒷 모습을 보며 경수가 울상을 지었다. 인터뷰 하다가 나 몇 대 얻어 맞는 거 아냐…? 어쩔 수 없이 찬열을 뒤 쫓아 올라간 경수는 찬열의 맞은 편에 앉았다.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찬열의 입꼬리는 내려갈 줄을 몰랐다.
"이름은 도경수. 나이는 스물 일곱살이시죠?"
마치 심문을 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경수는 잔뜩 쫄아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찬열은 속으로 웃음을 꾹 참았다. 씨발, 194는 개뿔. 제 앞에 잔뜩 쫄아 있는 도경수는 기껏 해야 170은 겨우 넘길 것 같았다.
"키는 몇?"
"네? 그, 그건 왜요…. 아, 171인데요오…."
찬열의 물음에 깜짝 놀라 눈이 커진 경수가 찬열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눈을 깔며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근데 이게 무슨 인터뷰지!? 작가에 대한 질문은 커녕 출신 고등학교까지 물어오는 찬열에 조금 화를 내 볼까, 아님 도망쳐 버릴까 생각까지 한 경수였지만 곧 그 생각은 관뒀다. 다리 길이도 나보단 훨씬 길어 보였는데 괜히 잡히면 전치 몇 주나 끊을지도 몰랐다. 갑자기 밀려오는 서러움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병신이지, 내가 병신이야…!
"여자 친구는. 있어요?"
"ㄴ, 네? 아, 왜 자꾸 그…, 그런거 물어 봐요오. 아, 진짜…."
겨우 용기를 내서 찬열의 질문을 거절-거절이라고 하기엔 찬열에 눈엔 그저 앙탈로 보였지만.-했다. 찬열은 지금 제 앞에 앉아 고개를 푹 숙여 계속해서 땅만 주시하고 있는 경수가 조금은 귀여웠다. 놀리면 놀릴 수록 움찔 거리며 당황하는 모습이 퍽이나 웃겼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스물 일곱이라며, 이거 다 거짓말 아냐? 갓 고등학교를 입학했다고 해도 믿을 것만 같은 경수의 외모는 예상과는 달리-오덕후 안경 여드름 돼지- 무지무지무지(x74618) 깜찍하고 귀여웠다. 어렸을 적 제가 끔직이도 아끼며 키웠던 패럿 '쭈쭈'와 닮은 것도 같았다.
"묻는 말에 대답 해요. 여자 친구, 있냐고?"
제가 생각해도 조금 위협적인 어투로 경수에게 묻자 경수는 결국 고개를 들어 글썽이는 눈으로 찬열과 눈을 마주했다.
"저, 저기요…. 제가요. 글을 되게 모, 못 쓰는 건 알…아요. 아, 학생이…. 제 글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저, 정말 죄송한데요….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어른을 놀리면은 안 되는, 거, 거예요…. 그, 그니까…. 저 조금 바쁜데 집에… 가면 안 될까요…."
찬열에게 애원하는 표정을 해 보이는 경수는 툭하고 건들이면 금새 울음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경수는 지금 찬열을 제 안티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한 번만 더 경수를 놀리고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을 한 찬열은 아무도 없는 2층 안을 다시 한 번 둘러 보았다. 제 머리 위에 놓여 있는 cctv가 걸리기는 했지만….
찬열은 몸을 반쯤 일으켜 두 손으로 경수의 볼을 잡았다. 경수는 저를 때리려고 하는 줄 오해했는지 버둥거리며 찬열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으아아, 아! 때리지 마요! 아, 신고 할꺼야! 아! 때리지 마!"
"아, 씨발. 가만히 쫌 있어봐."
찬열이 제게 저항하는 경수를 잡은 두 손에 힘을 꽉 주자 경수가 이내 모든 행동을 멈추고 저를 바라봤다.
아. 원래는 이 정도만 장난 치고 말려고 했는데…. 그 커다란 눈이 제게 닿자 자꾸 몇 년 전 천국으로 간 '쭈쭈'가 경수의 얼굴에 겹쳐 보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쭈쭈…. 제가 학교에 다녀오면 반갑다며 꼬리를 살랑대고 저와 입맞춤을 했었더랬다…. 아직도 그 촉감을 잊을 수 없었다. 다시, 다시 한 번만….
"쭈쭈야…."
"왜, 왜 울? 그, 근데! 쭈, 쭈쭈요…?"
찬열은 두툼한 입술에 결국 제 입술을 쪽 하고 맞췄다.
충격과 공포 그리고 경악. 두려움과 소름끼침과 당황 놀람, 무서움. 경수의 눈이 튀어나올 만큼이나 커다래졌다. 바, 방금…! 뽀, 뽀뽀…!
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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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셥입니다ㅠ^ㅠ 요즘 제가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많이 바빴어요ㅠㅠ..
개인 홈도 오픈 해서 관리 하느라 바빴고ㅠㅠㅠ..
연재 조금 늦어진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오늘은 종인이 분량이 조금 없네요.. 경수야 항상 미안해. 널 너무 불쌍하게 만드는 나를 미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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