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한 따뜻한 봄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게 서늘한 공기가 뺨 끝을 스쳤다.
그간 미뤄두었던 잠을 여기서 몰아 자기라도 하는듯 한참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던 여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천천히 두어번 정도 눈을 깜박이던 여주가 빠르게 몸을 일으켰지만 얼마 움직이지 못하고 팔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차가운 쇠느낌이 손목에 느껴지는게 쳐다보지 않아도 수갑임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 의자에 앉아 여주의 행동을 다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여주가 잃어버렸다던 검은색의 반지갑이 손에 들려있었다.
지갑의 민증 주소를 보고 찾아온거구나, 여주의 눈가가 팍 일그러 들었다.
20대 여자의 흔한 지갑답게 지갑안에는 소중한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가족사진, 친구들 사진, 그리고 몰래 복사해서 코팅해둔 민현의 프로필사진.
그런 지갑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남자가 민현의 사진을 보고는 꽤 흥미롭다는듯 웃음지었다.
“오호, 얘를 좋아해? 아님 이미 사귀나?”
“그 사람은 건드리지마.”
벽을 타고 내려온 파이프관을 사이에 두고 수갑을 찬 손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걸 알아 차분하게 주변을 훑어보던 여주가 갑자기 격한 반응을 보이자 남자가 재밌는듯 깔깔 소리내어 웃었다.
“진정해. 나는 너희 팀 반장을 괴롭히러 너를 데려온거지, 널 괴롭힐 생각은 없어.”
“...........”
“하긴. 어짜피 죽을텐데, 죽더라고 왜 죽는지는 알고 죽는게 낫겠지?”
서슴없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남자의 모습에 여주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렸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줄까, 처음 꺼내는 이야기에 말의 정리가 필요한듯 남자가 턱에난 거뭇거뭇한 수염을 손으로 문질렀다.
“처음 죽인사람은 가족들을 전부다 없애려했는데 망할 네 친구덕에 아이를 못죽였고, 두번째는 그냥 늙은 노친네가 다 되어버려서 재미도없이 죽여버렸고, 마지막이 너네 반장인데... 생각해보니까 본인을 죽이는것보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게 더 고통스러워할것 같더라구.”
“........”
“너한테는 뭐, 미안!”
끔찍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걸로도 모자라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해맑게 손 인사를 건네며 “미안!” 하고 사과를 하는 남자의 모습에 여주가 어이없다는듯 픽 웃음을 흘렸다.
그런 여주의 웃음이 전염되기라도 한건지 그 웃음을 따라 다시 한번 깔깔- 크게 웃음을 흘리던 남자가 겨우 배를 움켜잡고는 심호흡을 했다.
그런 남자를 지켜본 결과, 굉장히 감정적이고 계획적이지만 그 속에서도 충동성이 강한 사람임. 이라는 판단을 내린 여주는 함부로 남자를 자극해서도 안되고 순순히 그를 따르는게 현재로써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알고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괴롭혀볼까?”
남자는 신이 나는듯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의자를 가까이 끌고와 여주의 옆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마치 10년전에 사용했을것만 같은 폴더폰을 꺼낸 남자가 눈썹을 한번 꿈틀하더니 어디론가 통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을 통해 통화연결음이 흘렀고, 얼마 지나지않아 곧바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여보세요, 김여주 어딨어. 원하는게 뭐야."
***
“민현아, 무슨 안좋은 일 있어?”
오늘만 해도 몇번째 이소리를 듣는건지.
언제나 이성적이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민현이 늘 무너지는건 여주와 관련된 일이었다.
분명 메시지창의 1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답장은 물론 전화까지 없어 살짝쿵 토라졌던 민현은 아침까지도 연락이 없는 여주가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9시가 넘어서도 모습을 보이지않는 여주때문에 현실이 되어버렸다. 발령받고 단 한번도 지각을 한적이 없던 여주가기에 민현을 포함한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할 만 했다.
요즘 워낙 일이 많았으니까, 늦잠이야 한번 쯤 잘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민현만이 발을 동동 굴렀다.
지각이라니. 잠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알람을 잘 듣고 일어나는 김여주인데. 30분 내내 전화를 걸어도 받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신호연결음에 ‘얘가 드디어 미쳤구나.’, ‘반장님이 아침 점호 시작하시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성우였다.
“안되겠다. 여주 집에 잠시 갔다가올게.”
아침부터 저게 무슨소리람, 지각했다는 이유로 집까지 깨우러가주는 서비스도 있던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에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지성,성운과는 다르게 무슨일이 있어도 일단 집에 찾아가봐야겠다는 민현, 성우의 표정이 극명하게 대조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다니엘의 눈동자에 비춰졌다.
아무리 네 여자친구라도 이렇게 챙기는건 아니다라고 한마디할까 싶다가도, 기껏 해주고 있는 모르는 척이 탈로나기도 하고 아무리 사랑에 빠진 민현이라도 그렇게 생각없이 행동할 아이는 아니기에 민현을 믿고 보내줘야겠구나 싶기도 했다.
결국 후자를 택한 지성은 “반장님이 아침 점호 시작하기전에 빨리 갔다가 와.” 라는 말을 끝으로 성우와 민현의 등을 떠밀었다.
출근 시간이지만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 빠르게 여주의 집에 도착한 두 남자였다.
하지만 굳게 닫혀진 도어락을 만나 어쩔줄 몰라하는 민현을 뒤로하고 성우가 익숙하게 집 비밀번호를 누르자 가볍게 문이 열렸다.
그 모습에 조금 일그러들었던 민현의 미간은 집안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여주의 모습에 더욱더 일그러들었다.
어제 여주가 입었던 옷들이 보이지않고, 물기하나 없는 화장실 등등이 혹시나 했던 상황을 현실로 만들어버렸다.
“엘리베이터 CCTV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결국 경비실에서 여주의 흔적을 찾으려는 성우와 민현의 눈앞에 어젯밤 여주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정신을 잃고 남자에게 끌려가는 여주, 그리고 이 모습을 나중에 볼것을 예상하는듯 CCTV를 똑바로 쳐다보고 웃어보이는 낯익은 범인의 모습까지.
걱정만 했지, 이런 일을 상상한것도 아니었단말이야.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에 성우가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현실적으로 경찰이 납치된다는게, 이게 말이 되냐고.
그리고 책상을 잡고 휘청거리면서도 연신 흘러내리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던 민현이 여주가 거절해도 억지로라도 데려다주는건데, 왜그랬을까 자신을 탓하다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결국 쾅-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이 소식은 빠르게 경찰서에 전해졌고, 더 빠르게 소문이 번졌다. 곧바로 주변 CCTV를 탐색했지만, 지훈이 때 처럼 골목 주변의 CCTV를 다 파악한건지 여주와 범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까도 말했듯 늘 이성적이던 민현이 여주의 일 앞에 또다시 무너져내려 한없이 초조함을 보였다.
이러한 사태에 결국 강력1팀은 경찰청장님의 지시로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전담팀을 맡게 되었고 빠르게 여주를 찾기 위한 실종팀까지 꾸려졌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납치사건은 실종시간을 기점으로 3시간이 골든타임이에요. 성인의 경우 최대 12시간까지 보기도 하는데 그 사이에 범인으로 부터의 연락이나 거래가 없으면 대부분 살해된 채..”
“닥치고 나가.”
3팀에서 근무하는 정형사가 6개월전 까지 실종전담팀에서 근무했었다며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말이 더욱더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주는 약품에 의해 정신을 잃고 납치됐어.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우리에게도 시간이 좀 더 남았을거야.”
“그래, 다른사람도 아니고 김여주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여주가 실종된 건 밤 11시경, 날이 새고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져가고 있는 지금 이미 골든타임은 지난지 한참 오래 전 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팀의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해 반장님이 나서 애써 희망을 불어넣었다. 덩달아 옆에 있던 윤형사님도 웃으며 일어났지만 결국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꾸욱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축 쳐진 경찰서 분위기 사이로 낯익은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
“여기!”
그리고 반장님의 손짓 몇번에 모두가 그 신호를 알아채고는 각자 자신의 위치로 향했다. 반장님이 망설임없이 곧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김여주 어딨어. 원하는게 뭐야.”
***
“형. 오랜만이야.”
“난 사람도 아닌 새끼를 동생으로 둔적 없다.”
“왜 이렇게 예민해. 이러면 내가 너무 재밌잖아.”
딱 잘라 선을 긋는 말에 남자가 흥미롭다는듯 웃기시작했고 목을 긁는듯한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전해져갔다.
“얘가 그렇게 중요해? 그럼, 얘도 알려나.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팀원 따윈 가차없이 버리고 자기 출세가 더 중요한 쓰레기가, 바로 형이라는걸.”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 둘이서 얘기해.”
“형, 이렇게 급하게 목적부터 드러내면 범인들이 다 도망가버린다구.”
“너니까 이러는거야.”
대화가 점점 진행될수록 반장님이 차츰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좋아, 그러면 만나지. 권총이랑 수갑 준비해놔, 1시간 준다. 장소는 내가 문자로 보내지. 단, 꼭 혼자서만 와. 주변에 알짱거리는 놈이 보이면 바로 얘 목에 칼들어 가는거야.”
생각보다 빠르게 만남을 생각하는 범인이었고, 곧 그렇게 대화가 끊길것만 같자 자리에서 일어나 애타게 손목의 시계를 가리키는 지성이었다. 아직 발신 위치 추적을 위한 시간이 남았으니 어떻게는 시간을 벌라는 뜻이었다.
“자,잠깐!! 여주 목소리라도 들려줘.”
“왜. 위치추적 하려니까, 시간이 아직 부족하지?”
그런 상대의 사정을 뻔히 다 알면서도 누구하나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서로를 곰곰히 생각하던 남자가 재밌겠다는듯 전화기를 꺼내 여주의 더 가까이로 향했다.
“너네 반장님은 어떤 사람이지?”
“그 누구보다 팀원들을 아끼고 배려하며, 리더십 까지 갖춘, 당신같은 사람은 절대 이해못할 존경할만한 분.”
“이년이!!”
무서울법 한데도 범인의 두눈을 똑바로 마주한 여주가 흔들림 없이 대답하자, 그에 자극받은 남자가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빠르게 여주의 뺨을 내리쳤다. 하지만 예상했다는듯, 이런것 쯤은 아무렇지 않다는듯 여주는 악-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범인이 여주를 때렸다는건 알지 못해도 흥분한듯한 소리를 들은 민현이 어짜피 범인은 자신들의 상황을 물보듯 훤히 꿰뚫고 있고 더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반장님 곁으로 향했다.
“김여주 털끝이라도 건들이기만 해봐.”
그런 민현을 바라보던 지성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을 펴보였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을 하듯 하나씩 접어나갔다. 위치추적의 시간이 남았음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남았네. 난 분명히 말했어, 혼자만 오라고. 그리고 시간안에 못와도 얘는 죽어.”
뚝-
가차없이 끊겨버린 전화에 모두가 컴퓨터화면을 바라보자, 모니터에는 ‘발신 위치 추적 실패’ 라는 알림이 떳다. 위치추적에는 최소 1분의 시간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는 남자가 그 시간안에 전화를 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또 한번 놓쳐버린 기회에 민현이 신경질적이게 손에 든 서류파일을 내동댕이쳤다.
파일에 들어있던 종이들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민현의 기분 또한 그러했다. 결국 벽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민현이었다.
그런 민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수서역, 물품보관함 7번」
곧바로 도착한 문자에 반장님은 홀로 역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발신기와 블루트스 무전기, 권총, 등을 챙기긴 했지만 상대가 무도특기자 전형의 경찰 출신이라 불안하기만 했다.
결국 ‘눈에 띄지 않는다.’ 라는 작전에 맞춰 성운-성우, 민현-다니엘이 상황실에 있는 지성의 지시에 맞춰 움직였다. 역주변을 뱅뱅 맴돌며 언제든 출동할 준비를 하는것,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역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그중 가장 긴장된 표정의 반장님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품보관함으로 향했다.
그리고 약속된 7번 보관함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그안에는 휴대전화와 종이봉투가 들어있었다.
그런 반장님을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듯, 사물함 문이 열리자 곧바로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안에 휴대전화랑 무전기 버려.”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반장님이 몸을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안의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전화를 하거나, 이어폰을 꽂고 있거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눈에 띄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날 찾기전에 얼른 내 말을 듣는게 좋을걸. 시간이 얼마 없거든.”
결국 물품보관함에 안에 휴대전화와 무전기를 넣고 문을 닫자, “봉투부터 확인해.” 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 다시 전화가 끊겼다.
무전이 끊기면 나머지 팀원들은 어떡하지, 놈의 지시를 따르는게 맞는걸까 싶으면서도 끌려간 여주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봉투를 열어보는 반장님이었다.
「3호선 오금행 19:03분 3-1칸」
이번에도 짧은 글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글이 가리키는 시간은 단 2분 밖에 남지 않았고 짧게 욕을 내뱉은 반장님은 범인에게서 건네받은 휴대전화만을 손에 쥔채 빠르게 달렸다.
걸어서도 5분은 넘게 걸리는 이 거리를 미친듯이 달리고 달려 대합실로 내려왔을땐,
'문이 닫힙니다.'
라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닫혀가고 있는 상태였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눈앞에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멈추지 않고 팔을 뻗어 문 사이로 겨우 손을 집어 넣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끼어든 팔에 닫히려던 문이 다시 열렸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겨우 지하철에 올라탄 반장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보냈다.
하필 퇴근시간과 겹쳐서 사람이 가득찬 지하철 안에서 빨리 3-1칸을 찾아야했다. 그 칸 어딘가에 범인이 숨겨놓은 또 다른 메시지가 있을테니까.
"실례합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붐비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지나쳐 다른 칸으로 넘어가는것 또한 고역이었다. 중간 중간 "아, 뭐야."하는 짜증 섞인 목소리들도 들려왔지만 범인의 메시지를 찾는게 더 급했다.
그렇게 몇개의 지하철 칸을 넘었을까, 드디어 3-1칸의 문이 열렸고 그 칸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눈에 띄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지방경찰청' 이라는 글자가 써져있는 종이가방.
일반인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종이가방이 좌석 위 서랍에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한숨 돌릴 시간도 없이 곧바로 종이가방안을 살폈다.
「오금역 하차. 2번 출구」
이번에도 간결하게 남아있는 문장에 반장님이 작은 욕과 함께 손에 쥔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구겨버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놀아나야하는건지. 이렇게 손바닥안에서 놀고있다는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범인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곧바로 내려야할 역에 도착했고, 적혀있던 2번출구는 공원의 입구라 조금은 한산했다.
빵빵-
해가 산을 넘어가기전, 산 마루에 걸려 아름다운 노을을 자아내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시끄럽게 귀에 꽂혔다. 그리고 그 소리의 원인이던 자동차안에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사람이라기엔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의 남자가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남자는 반장님을 향해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더 화를 돋구었는지 반장님은 앞뒤 가리지않고 바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두사람의 거친 주먹이 오고 갔다. 빠르게 파고 들어 범인을 제압하려는 반장님과는 다르게 여유롭게 그 몸짓을 받아내다가 순식간에 반장님의 몸을 제압해 숨도 못쉴만큼 압박하는 남자였다.
그런 두 사람의 주위로 사람들이 수근거리며 모여들었고 그에 당황한듯한 남자와는 다르게 겨우 숨을 내뱉으며 콜록거리면서도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리는 반장님이었다. 어떻게든 소란을 만들어 주변 경찰서나 자신을 찾고 있을 팀원들에게 위치를 알리기 위한 행동이 먹혀 들어간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몰려들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로 몰리기 시작했고 이에 남자는 반장님의 주머니에 있던 수갑을 빠르게 빼내서 반장님의 손목에 채웠다.
"경찰입니다. 안심하세요."
태연하게 사람들에게 경찰임을 밝힌 남자는 어느새 반장님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권총까지 빼들어 몸에 겨누었다. 그리고 그 몸을 뒤져서 예상했다는듯 발신기까지 저 멀리 던져버리고, 쉽게 반장님을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형은 나 못이긴다니까."
두손은 수갑에 묶이고 총구의 끝에 겨눠진 채 차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장님은 거친 숨을 내뱉었다.
두사람을 태운 차는 아슬아슬하게 한참을 달렸고, 공장단지에 도착한 두사람이었다.
여전히 총구를 반장님에게 겨눈 범인은 쉽게 반장님을 여주가 있는 곳으로 밀어넣었다.
혼자 있던 그 시간동안 뭘한건지 눈물범벅이 되어있는 여주를 본 반장님은 그저 무사히 있는 여주의 모습이 안심되는듯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두사람이 더욱더 마음에 들지 않는 범인은 여주와 마찬가지로 반장님 또한 한손에 수갑을 채우고 다른 한쪽은 파이프관에 걸어두었다.
알수없는 웃음을 지으며 범인은 잠시 자리를 비웠고, 비로소 두 사람만이 텅빈 공장에 남았다.
***
남자가 자리를 비우고 홀로 넓은 공간안에 남은 여주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 어쩌면 심호흡이었던듯 다시 한번 더 일어난 여주가 손에 걸린 수갑을 풀어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없이 여주의 하얀 손목만 빨갛게 부어올랐다.
결국 지쳐버린듯 바닥에 주저앉은 여주가 참아왔던 울음을 눈가에 머금었다. 왜 늘 이런일이 일어나는건지,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에 수갑이 묶인 한손 대신 자유로운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비교적 한손은 자유로웠지만 손과 파이프를 단단하게 채우고 있는 수갑을 풀 방법이 없어 그저 흐르는 눈물만을 닦을 뿐이었다.
무릎을 세워 고개를 묻고 울음을 토해내던 여주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궁지에 몰리면 어떤 발악이든 한다고, 혹시라도 다니엘이 꿈에서 봐주지 않을까 라는 희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과,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는 여주였다.
"워너공장단지... B,C동이 보이는곳..."
홀로 남겨진,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장안에서 홀로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여주였다.
.
.
.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잠을 청하고 있던 다니엘이 숨을 내뱉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 소리에 덩달아 놀란 민현까지 잠에서 깨었다.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거는 다니엘의 행동에 민현이 설마 하는 기대를 품었다. 시동이 걸리자마자 바로 액셀을 밟는 다니엘의 거친 눈빛에 민현이 알겠다는듯 안전벨트를 고쳐맸다.
지하철로 들어가버린건지 반장님의 발신기가 무용지물이 되어 사라져버렸고 그 뒤로 성운의 차도, 민현의 차도 할 일 없이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았다.
일부러 우릴 따돌리기 위해 반장님에게 지하철을 타라고 한게 분명할텐데 왜 그에 대한 방안은 생각하지 못한건지 자신들이 너무 한심해 차마 복귀하라는 명령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지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민현의 차가 역 주변을 벗어나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갑자기 오금역 근처에서 반장님의 발신기가 켜졌다.
'발신기 위치 확인, 오금역으로 집합.'
지성의 빠른 지시가 무전기를 타고 차안에 울려퍼졌고, 그 소리에 민현이 웃음지었다.
자신들이 가려는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에 좋은 변경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민현의 생각과 동일한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니엘이었다.
"워너공장단지, B,C동이 보이는곳. 혼자 있었어요."
"역에서 멀지않아. 우린 범인을 보고 거기까지 따라간거다."
척척 만들어져버린 두사람의 논리에 차는 더 빠르게 목적지로 향했다.
그렇게 몇분 지나지 않아 반장님의 발신기가 확인되었다던 오금역이 나왔다.
'근데 발신기가 더이상 안움직이는걸로 봐서 범인이 버리것같아. 그 주변 확인해봐.'
GPS로 민현의 차가 발신기 주위에 도착했음을 확인한 지성이 다시 한번 무전기로 명령을 내렸다.
그 소리에 민현이 생각에 잠겨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더니 고민없이 무전기와 블랙박스의 선을 뽑아버렸다.
그런 민현의 행동에 더 탄력이라도 받은듯 다니엘이 차의 엑셀을 더더욱 꾸욱 밟았다.
두사람의 차는 빠르게 달려 해가 져버려 음침한 워너 공장단지 앞에서 멈췄다.
탁-
거칠게 차 문을 닫은 두 남자가 주변을 빠르게 스캔했다. B,C동이 보이는곳이라. 생각보다 큰 공장단지에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
하지만 꿈에서 본것처럼 홀로 또 울고 있을 여주를 한시라도 빠르게 찾기 위해서는 직접 발로 뛰는 수 밖에 없었다.
신발코를 바닥에 두어번 정도 찬 다니엘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주변을 살피던 민현 또한 그 뒤를 따랐다.
퍽-
앞을 보기보단 주변을 살피던 다니엘과, 빠르게 달려오던 한 남자가 코너에서 서로를 미처 보지 못한 채 그대로 부딪혔고 두 사람 다 바닥에 나 뒹굴었다.
"아으, 죄송합니다. 괜찮으.."
"다니엘, 그 새끼 잡아!"
먼저 바닥에서 일어난 다니엘이 예의바르게 남자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남자는 그 손길을 거부했고 이윽고 곧바로 민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민현의 얼굴을 확인하고 경찰임을 깨달은 남자가 짧은 욕을 시작으로 빠르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절대, 절대 안놓쳐.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둘씩이나 뺏어가려 했던 놈을 결코 이대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니엘이 빠르게 달려 뒤에서 남자를 덥쳤다. 다시 한번 두 남자가 바닥에서 나 뒹굴었고 그 사이 빠르게 민현이 둘을 따라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만하게 잡힐 사람이 아니라는듯 민현이 남자의 팔에 수갑을 채우기 위해 내민 손을 빠르게 잡아 챈 남자가 주짓수 기술을 사용해 민현을 그대로 바닥에 넘어트렸다.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진 민현이었지만 민현 또한 이렇게 쉽게 당할 사람은 아니라는듯 범인의 옷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남자를 뒤에서 덥치는 과정에서 발을 헛디딘듯한 다니엘은 발목을 잡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고 그런 다니엘을 두고 민현과 범인, 두 사람이 몸을 날리고, 피하는 반복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한사람이 주먹을 날리면 잽싸게 그를 피한 사람이 역이용해 주먹을 날리고, 이를 피하고. 계속 되는 반복이었다. 중간 중간 민현이 그를 잡아채 업어치기를 해도 유연하게 땅에 착지해 크게 상처를 입지 않는 남자였고, 그런 민현에게 역으로 주먹을 더 날리기도 한 남자였다.
오랜만의 맞먹는 싸움에 흥미롭다는듯 남자가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민현에게 들어오라는 듯 도발적인 자세를 취했고, 그에 응한 민현이 범인에게 달려들었다.
민현이 자신에게 다가 오자 기다렸다는듯한 남자는 땅의 모래를 쥐고 있던 손을 펼쳐보이며 민현의 눈가에 모래를 던졌고, 그에 당한 민현은 속수무책하게 얼굴을 가렸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민현을 그대로 바닥에 쓰러트린 남자는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는듯 계속해서 민현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시발, 내가 니 새끼들 때문에!"
"........"
"니네 반장이나, 그 년이나 어짜피 곧 죽을텐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좀 좋아?"
바닥에 쓰러져 온몸으로 그 발길질을 받아낸 민현이 입가에 고인 피를 바닥에 뱉어냈다. 그런 민현을 보며 한번 더 세게 발길질을 한 남자는 오랜만에 무리했다는듯 손목을 털어보이며 뒤돌아섰다.
턱-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지않는 민현의 손길에 남자의 발걸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하, 이 새끼가.."
퍽-
그런 민현이 가소롭다는듯 픽 웃어보이던 남자의 뒤로 언제 일어났는지 모를 다니엘이 발차기를 하며 날아왔다.
당황스러운 공격에 바닥에 넘어진 범인이었지만, 범인의 주짓수는 오히려 누운 자세에서 더 유리했다. 하지만 다니엘의 빠른 주먹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이번엔 다니엘과 범인, 두 사람이 서로 업치락 뒤치락하며 서로를 공격했다.
복싱선수의 주먹을 제대로 맞고도 견뎌내는 범인과, 주짓수의 기술을 당해내면서도 쉽사리 그 기술에 말려들지 않는 다니엘, 두사람이 서로 바닥에 얽혀 거친 싸움을 이어갔다.
하지만 다니엘의 다친 발목이 온전하지 않았는지 땅에 발을 잘 디디지 못하는 다니엘이었고 이를 이용한 범인은 곧바로 다니엘의 다리를 공략했다.
꼼짝없이 범인의 기술에 잡혀버린 다니엘은 오로지 힘으로만 그 기술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 다니엘을 보며 범인은 끝을 내겠다는듯 손으로 다니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점점 다니엘의 얼굴이 빨개져 오고 몸에 힘이 빠져갈 때 즈음,
탕-
민현의 손에서 발사된 총에 의해 범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벽에 기대어 겨우 총을 쏜 민현이 힘없이 손을 내렸고, 다니엘이 빠르게 범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테이져건인게 아쉽네."
범인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은듯 쓰러진 범인에게 혼잣말을 남기는 다니엘이었다.
두사람이 겨우 힘을 합쳐 범인에게 수갑을 채웠다. 하지만 이렇게 범인을 제압했다고 모든걸 끝내기엔 아직 일렀다. 아직 여주와, 반장님이 남아 있었고 범인에게서 풍겨나오는 역한 기름냄새도 찜찜하게 남아 있었다.
도대체 어디있는거야.
일단 차안에 범인을 두기 위해 그를 일으켜 세우려던 다니엘의 손이 힘없이 풀렸다.
이윽고 민현의 시선도 다니엘과 같은 곳으로 향했다.
그 시선이 맞닿은 곳엔 새빨간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공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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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많은 분들이 예상하신대로 범인은 여주의 지갑을 보고 집을 알아냈어요!
사실 되게 어렵지만 독쨔님들이 맞출거라고 예상했는데 진짜 100명이면 한, 두분 빼고 너무 당연하게 맞추시길래 혼자 소름돋았던거 있죠,,,?
우리 독쨔님들 역시 짱짱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다녜리와 민현이의 합작으로 범인을 잡았는데요!!!
마지막에 불이라니요? 무슨일입니까?
허허허.... 사실 이 모든 사건은 다음편을 위해 달려왔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제가 서울사람이 아닌지라... 오늘처럼 막 지하철역 나오고 그런부분은 그냥 혼자 지도보고 의미 없이 쓰는거니까.... 큰 의미 담아주지마세요 ㅠㅠ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ㅎㅎ
다들 시험기간이라 바쁠텐데 저랑 함께 모두모두 힘내요 ♡
(저번화에 댓글을 다 달아드리지 못해 암호닉은 다음화에 정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