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me ; 안개 -00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왜 뛰고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무작정 살고 싶다는 생각에 몸은 자꾸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입으로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주문이라도 외듯이 살려달라는 말만 끊임없이 외쳤다. 허나 애석하게도, 입모양만이 되풀이 될 뿐 한솔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한솔이 계속 미친 듯 뛰어왔음을 짐작케 하는 거친 숨소리만이 뱉어져 나왔다. 방치되어온 시간동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텐데.'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한솔이지만 이런 상황이 닥치기를 원해온 적은 결코 없었다. 한솔의 체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 한솔이 달린 시간만 자그마치 4시간이 넘었다. 평소의 한솔이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테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한솔은 살고 싶었다. 설령 얼마 못 가서 죽더라도 낮의 일로부터 있는 힘껏 도피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던 한솔은 문득, 누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다준 ‘전설’을 생각했다. 한솔이 있던 곳으로부터 걸어서 7시간, 아마 한솔이 있는 힘껏 달려서는 한나절 정도 달려서 닿는 곳에는, 다른 곳에 닿을 수 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존재했다. 물론 걷다보면 어디엔가 닿는다. 그 곳이 남극이든 북극이든, 천국이든 지옥이든, 바다든 강이든 그 사실 자체는 아주 당연하고 어쩌면 시시한 사실중의 하나겠지만, 전설 속 ‘다른 곳’은 단순히 보이는 풍경이나 분위기가 아닌 또 다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로써 ‘다른 곳’이였다. 그 순간 한솔의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한솔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어딘가에 발이 채여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풀이 지천에 널려있는 곳이라 한솔이 다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한솔은 그 자리에서 끙끙거리며 몸을 돌려 엎어진 몸을 바로 누였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해가 지고 그 자리를 달이 메우기라도 하는 듯이 정확히 4시간 전 해가 떠있던 그 자리에 달이 떠 있었다. 보름이 지나고 저물어가는 하현달이다. 아마 며칠이 지나고 나면 다 잊어버릴 것이다. 한솔 본인이 이렇게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도,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죽고 말았으리란 사실도. 문득, 한솔은 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리고 있던 순간에는 눈치 채지 못했었다. 방치되어왔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던 한솔이 말하는 법을 잊어버릴 확률은 희박했다. 그럼 단순히 목소리가 나가버린 것일까, 너무 숨이 가빠서 목소리조차 안 나올 정도로 지친 것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생각할수록 잔인하고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그럴 힘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한솔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망할 세상을 원망하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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