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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확 같이 죽어버릴까? 침대에 앉아 내 손을 만지작 거리던 형의 대사였다. 난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형은…죽고 싶어요? 내 되물음에 형은 살짝 웃었던 것 같다. 책상을 정리하다 꾸겨져 있는 낡은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그렇게 찾으려고 노력을 해도 코빼기도 안 보였던 사진이였는데, 꼭 이렇게 쉽게 나온단 말이지. 나는 꾸깃꾸깃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사진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었다. 뿌연 먼지가 사라지자, 어쩐지 환하게 웃고 있던 얼굴이 더 밝아진 것 같았다. 난 정리는 뒷전이고 낡은 사진을 빛에 비추어 보았다. 자세히 보니 사진의 장소는 병원이였고, 형은 병원복을 입고 있었다. 보나마나 내가 찍어준 사진 같았다. 그 시절의 나는 사진을 배우는 학생이였으니깐. 시간이 흘러 내가 죽기 전 까지도 형을 생생하게 기억할 줄 알았는데, 조금도 잊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나 보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치부 했으면서도, 결국에는 잊고 마는 잔인한 동물이였나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형과 관련된 단어만 봐도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눈물이 새어 나왔었는데, 지금은 그저 추억에 젖은 사람 처럼 멍하니 사진을 보고만 있을 뿐이였다. 그렇게 아파했으면서도,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참 형 답다고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형을 떠올려도, 눈물대신 웃음이 먼저 나왔다. “오랜만이야, 형.” 형의 작은 얼굴을 한번 쓸었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정의를 내릴 수 없었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다. 형은 병원의 작은 창문에서 보이는 작은 하늘을 좋아했었다. 그 창문을 매일 쓸며, 꼭 내가 퇴원을 하면 나가자고 매일 그렇게 약속을 했었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 이란 것을, 형도 나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형은 떠난 그 날 까지도 약지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해왔다. 승현아 내가 퇴원하면, 꼭 나가자. 나가서, 파란 하늘 보면서 도시락도 먹고…. 생생하게 떠오르는 형의 마지막 순간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지난 날을 상기하자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왔다. 낡은 사진 위로 내 눈물 방울이 투둑 떨어졌다. 딱히 슬프지는 않았는데, 그냥 별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사람은 추억에 약한 동물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난 다시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
2 |
들어간다. 형의 굳은 목소리에 괜히 놀라 컴퓨터 모니터를 급하게 껐다. 뭐 숨길 것도 없는데, 왜 목소리만 들어도 긴장 되는지…. 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형은 내 대답에 잠시 멈칫 하는 듯 하더니, 금방 문을 열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헤어지고 나서 처음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너무 오랜만에 보는 눈동자였다. 서로 마주친 눈이 어색해 피해버리자, 어색함이 방을 가득 매웠다. 불편한 고요함이 괜히 견디기 힘들어 애꿎은 손톱을 뜯으며 형의 말을 기다렸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언제 던져나올지 모를 대사를 기다리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드는 순간 갈라진 형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혹시…온천 좋아해? “네? 온천이요?” “어. 좋아하면 나랑 갈래?” “아……. 형들은 간데요?” “아니. 우리 둘만 가는거야.” 대답을 회피하며 눈빛을 피하자, 형이 다시 대답을 재촉했다. 갈꺼야? 다음주 일요일인데. 이건 제안이 아니라, 강요였다. 거절을 하게 되면 뻔히 전개 되는 상황에 난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해요. 괜히 어색해져, 급히 껐던 모니터를 다시 켰다. 내 대답이 떨어지고 나서도 형은 한참을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가, 시계 바늘이 째깍 거릴 정도의 적막이 찾아오자 그때서야 발걸음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 * 뭘 챙겨야 할지 몰라, 인터넷에 몇 차례 검색을 하고 나서 짐을 챙겼다. 헤어진 연인과 단 둘이 온천여행 이라니. 한참 사귀고 있을 시절에도 같이 목욕탕은 커녕, 샤워도 한 기억이 없는데 말이다. 형의 머릿속이 도통 가늠이 가질 않아, 한숨이 삐져 나왔다. 어차피 족히 5년은 더 얼굴 보고 살아야 할 사람이니, 어색함도 불편함도 빨리 푸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민 제안이겠지 싶어, 딱히 거절을 하지 않은 것인데 단 둘이 대체 온천에서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은가 뒤늦게 떠오른 문제점이였다. 벌써부터 머리가 저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