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1
우리학교에는 4대천왕이 있어. 뭐? 오글거린다고? 오글거려도 어쩔수가 없어. 이게 인생의 진리니까. 아무튼 우리학교의 4대 천왕이 누구냐면!
엉뚱발랄 김준면 밀크보이 변백현 수트간지 박찬열 섹시쩌는 김종인 그리고, 후로게이 도경수.
뭐? 왜 4대천왕이 아니냐고? 그건 나도 몰라. 는 구라고. 후로게이 도경수는 나중에 들어왔거든! 근데 들어오게 된 계기가 좀 이상해. 얘기해 줄까?
*
경수는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거 폭싹 익어 물렁물렁해진 홍시가 거기있었구만! 어디선가 농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한 경수는 눈만 빼꼼히 올려 자신에게 시선집중된 아이들을 슬쩍슬쩍 훑어보았다.
"자기소개 해볼래?"
"네, 네? 아, 나, 나는 도경수라고 해… 잘 부탁해…"
데크레센도인마냥 점점 줄어드는 자신의 목소리가 워망스러운 경수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당당히 고개를 쳐 들고 교실 뒤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뚤을 기세로 쳐다보았다. 난 부끄럽지 않다, 부끄럽지 않다…! 눈을 부릅뜨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경수는 보이지도 않는건지 담임선생님은 여전히 전학생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잘 적응할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둥, 먼저 다가가 친해지라는 둥, 어머 조회시간이 얼마 안남았네 라는 말을 해가며 설교를 늘어놓았다. 아니, 얼마 안남았으면 제발 그만좀 하시라구요… 그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아 울고싶어진 경수는 갑자기 들려오는 선생님의 말에 화색을 띄었다.
"자, 경수는 어디 앉는게 좋을까?"
저는 뒷자리가 좋습니다. 이왕이면 창가쪽 뒷자리로…흐흐. 허나 이 말 역시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경수는 잠자코 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했다.
"음… 새로 왔으니까 반장의 도움이 필요하겠지? 저기 반장 옆에 가서 앉아."
"선생님, 그럼 저는요?"
"넌 아무대나 책상 들고 가 앉아."
아, 너무해요 쌤. 울상을 지은 백현이 책상을 들고 창가쪽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부럽다, 시발. 찬열의 옆자리에 가 앉은 백현은 투덜거리며 찡찡댔다. 그런 백현을 아빠미소로 쳐다본 찬열이 어이구, 내새끼 그래쪄요? 하며 호응해주었다. 별 눈꼴시런 장면을 다 본 경수는 복도에서 책상과 의자를 끌고 와 준면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 안녕? 수줍게 말을 건 경수는 이윽고 들려오는 준면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내 책상으로 물건 넘어오는거 싫어해. 지우개가루 날리는거는 더 싫어해. 지우개로 지우다가 책상 흔들리는건 더 더 싫어해."
"…그래."
알았다, 이새끼야. 뒷말은 침묵한 경수가 책상 위로 엎드렸다. 으아… 친구 잘 사귈 수 있을까? 괜히 걱정되네. 남부럽지 않은 친화력으로 항상 친구들이 많았던 경수는 태어나 생애 처음으로 친구 걱정을 했다. 전학왔다고 막 왕따시키고 그러진 않겠지…? 서서히 눈이 감겨오던 경수는 앞문이 쾅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깜짝이야! 앞문을 열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온 종인은 태연하게 찬열의 앞자리로 가 앉고는 팔을 베고 엎드렸다. 뭐지, 쟤는? 몹쓸 관찰심리가 되살아난 경수는 종인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자는건지 그냥 엎드려 있는건지, 찬열과 백현이 말을 걸어오면 5초 뒤에 들려오는 종인의 목소리에 큰소리로 웃은 경수는 곧 입을 막았다. 병신 도경수. 반 아이들이 경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는 다시 제 할일을 하기 시작했다.
"…경수야."
"으응? 왜, 준면아?"
"난 내가 공부할때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거를 제일 싫어해."
"엉…."
알았다고, 새끼야. 역시나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씹어댄 경수는 곧 수업종이 울림과 동시에 잠에 빠져들었다. 아니, 왜 이러지? 내가 원래 이런사람이 아닌데요, 선생님… 속으로 웅얼거리던 경수는 결국 1교시 문학시간부터 4교시 세계사시간까지 내리 잠만 쳐 잤다. 전학 온 첫날부터 잠만보 전학생이라고 낙인찍히게 생겼다, 시발. 게다가 단 한명도 남김없이 자신을 버리고 밥을 먹으러 간 아이들을 원망했다. 아니, 전학생이 오면 좀, 어? 다정하게 말도 걸어주고, 어? 밥도 같이 먹고, 어?! 지가 여태껏 잔건 생각 안나는 모양이다. 혼자 터덜터덜 매점으로 가 빵을 사온 경수는 교실에서 외로이 빵을 뜯어먹었다. 내가 이런건 또 처음 겪어보네… 서러워서 진짜. 마치 빵이 반 아이들인마냥 격하게 찢어내 먹던 경수는 뒷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백현과 준면이었다.
"으아… 배부르다."
"먹은게 있긴 있냐?"
"당연하지!"
"스파게티 네번 떠먹고 마늘빵 한개 먹은게 자랑이다."
"흐흐… 아무튼 맛있었다!"
오늘 메뉴는 스파게티였나보다. 나 스파게티 좋아하는데… 진짜 잘먹는데… 괜히 또 한번 서러워진 경수는 안나오는 눈물을 훔치고 빵을 계속 먹었다. 준면과 떠들던 백현은 앞자리에서 쓸쓸하게 빵이나 뜯어먹고있는 경수를 발견했다. …불쌍해라. 백현은 경수를 불렀다.
"경수야?"
"으,응?"
"왜 혼자 먹구있어, 이리 와. 같이 얘기하자."
너님 천사세요? 감동의 눈물이 나올거같은 경수는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나 백현의 앞자리에 가 앉았다. 우와, 개같네. 부르면 달려오는 개처럼 후딱 달려온 경수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인 백현이 말했다.
"경수야 밥 안먹어? 오늘 진짜 맛있는거 나왔는데!"
"아… 그냥…."
알아, 안다고 이새끼야! 나 스파게티 좋아한다고 그만 말하라고… 우리의 소심한 경수는 역시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씹어댔다. 아, 소심한 도경수여. 경수에게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백현이 창밖을 내려다 보더니 또 조잘거렸다. 빵좀 먹게 그 입좀 다물라.
"김종인 지치지도 않나봐, 또 축구한다."
"원래 그렇지 뭐."
"축구도 못하는게 한다고 나대기는."
열번 골을 넣으면 열에 아홉은 자살골을 넣는다는 종인을 신명나게 까대던 백현이 경수에게 물었다.
"너 김종인이 누군지 알아?"
"응? 어어… 그 까만애?"
"으하하하하하하! 어, 맞아. 걔야, 그 까만애."
옆에서 로그함수를 풀고있는 준면의 어깨를 내려치며 웃어대던 백현이 너무 웃겨 흐른 눈물을 닦아냈다. 아, 도경수 너무 웃긴거같애. 단지 종인에게 까맣다고 한 경수는 웃긴애로 인식되고 말았다.
"근데 걔가 왜?"
"아, 아니야. 그냥."
"으응…"
빵을 다 먹고 손가락을 쪽쪽 빨던 경수는 창 밖을 보았다. 종인이 운동장을 날뛰고 있었다. 마치 한마리의 가물치처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종인을 바라보는 경수의 눈이 반짝였다.
똥글망글~.~ 저 사대천왕 쓰면서 손발 사라지는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