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주인이요? 03
이틀 정도 재환이가 나한테 말을 안 걸었다.
존나 웃긴 건 뭔지 알아요? 말만 안 걸었지 표정으로 다 얘기함.
"뭐."
(슬쩍 보고 안 본 척)
"밥 달라고?"
처음엔 이러다가 말겠지 싶었는데 요즘에 혼자 벽보고 앉아있어서 가보면
"째아니째아니째아니째아니째아니..."
혼자 발음 연습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나는 그냥 치우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꺼낸 얘기였는데 진짜 저거 연습할지 누가 알았게요?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렵냐고... 못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요즘에 알바 끝내고 올 때마다 꼭 뭘 하나씩 사들고 들어오게 된다.
한 날은 교정 젓가락을 사왔었고 한 날은 동화책이었고 한 날은 한글 공부하는 책이었고.
재환이를 데리고 살기 시작한 날부터 돈은 전부 김재환 기준으로 쓰게 되니 문제라면 문제였다.
저 못난 거 뭐가 예쁘다고 내가 이러나 싶다가도
"와, 이제 젓가락질 할 줄 아네?"
콩나물 하나 잘 집어 먹었다고 뿌듯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게 부모 마음인가.
그래. 이젠 밥도 잘 먹고 다 괜찮았는데
"째아니째아니째아니째아니째아니..."
그놈의 이름이 문제였다.
정말 말 한마디 안 걸 기세인 재환이 때문에 이제는 내가 먼저 두 손 다 들고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도
"재환아, 이름 연습 그냥 천천히 해... 못 하면 어때..."
니가 그러라고 해놓고 왜 이제와서 그래? 꺼져. 하는 얼굴로 얼굴을 돌려버린다.
아니 시바 답답한 내 마음은 몰라주겠니? 이 강생이 새끼야...
어, 그러고보니 요즘에 재환이가 강아지로 있는 걸 본 적이 있던가.
"재환아."
"..."
"왜 계속 사람으로 있어?"
내 질문에 몸이 크게 움찔하는 걸 보니
"네가 강아지라는 거 까먹고 있었지."
그 말에 한 번 더 움찔, 하더니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아니 개춘기야 뭐야? 첫 날 그렇게 시끄럽던 애 어디갔는데.
재환이가 이렇게 구는 걸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내가 결국 아주 치사하지만 효과는 만빵인 방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크윽... 이렇게 치졸한 방법까지 쓰다니...
"재환아, 내가 이름 가지고 뭐라 그래서 화났어?"
"..."
"대답 안 하면 밥 없다."
놀란 얼굴로 날 돌아본 재환이가 어딘지 모르게 끙끙 거리더니 엄청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뭐라고? 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데
"째아니라고 해도 돼?"
존나 귀여워...
본능적으로 코를 틀어막다가도 그게 뭐라고 이 귀여운 애한테 스트레스를 줬나 싶어 갑자기 미안해졌다.
네가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긴 했지만 나쁜 주인 만나서 고생하는구나...
그 때 오바 조금 보태서 평생 째아니라고 해도 된다고 오케이 사인을 쳤는데
"쥬인 잇짜나 째아니..."
"그거 째앙이 아니야!"
"너 아니고 째앙이야!"
그냥 안 된다고 할 걸 그랬다... 내 귀랑 정신머리가 남아있질 않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나랑 화해하고 재환이는 말문이 완전 트여서 평소보다 네 배는 시끄러웠다.
이걸 따로 풀 곳을 찾아야 될 것 같아서 고민 끝에 찾은 게...!
"가."
"가!"
"나."
"나아!"
"와 이제 잘하네?"
"잘하지?"
칭찬하는 건 귀신같이 알고 눈을 반짝이며 웃는다.
사람이 예쁜 짓을 했으면 칭찬은 후하게 해야 한다고 어디서 본 강아지 강씨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올라 주저 않고 재환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잘했어. 자, 젤리."
그러면서 젤리 하나 딱 주면! 완벽하다 이겁니다. 크으...
"이고 맛있어!"
"꼭꼭 씹어서 먹어, 그냥 삼키지 말고."
겉으로만 보면 나랑 나이 비슷해보이지만 아직 위, 아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재환이에 그냥 쿨하게 말 놓기로 했다.
물론 나만. 나 혼자 결정함ㅋ
"이거 또 쓰면 곰이 조요?"
"또 먹고 싶어?"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기에 보란듯이 하나를 눈 앞에 흔들며 자음이 가득 적혀있는 공책을 펼쳐 넘겨주었다.
"이거 미음까지 쓰면 줄게."
"미음... 미음..."
하리보의 노예여...
한 번 먹였더니 맛들려서 이젠 안 주면 공부도 안 할 기세다. 잘못 키웠지 내가...
"재환아, 손톱 안 불편해?"
"응?"
"손톱 말이야."
공부하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재환이 손이 예뻐서 놀고있는 왼쪽 손을 구경하는데 손톱이 생각보다 길게 자라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김재환이 입가에 미소만 띄우며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손톱 깎아줄까?"
"모라는 고지."
"말도 잘 하네 이제."
"싸람이니까요!"
재환이가 습득력이 빨라서 덩달아 나도 행동 말투 하나하나 조심하게 하고 있다.
습득력이 너무 빨라서 이러다가 욕까지 배울까봐... 욕은 속으로 다 하는 중임.
"연필 두고 앉아봐."
나를 못 믿겠다는 얼굴로 연필을 두고 앉길래 괜히 찔려 이거 아픈 거 아니야~ 하고 밑밥을 깔았다.
손톱깎이 보고 도망가기 전에 톡하고 손톱을 깎았는데
(?)
(!)
잔뜩 놀란 얼굴로 도망가버린 탓에 나랑 손톱깎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아... 또 삐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