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주인이요? 01
첫만남
"...이게 뭐람."
"아녕하세요!!!"
"오우...캄 다운..."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 된 거지?
"아녕하세요! 째앙이야! 째앙이 쥬인인니까?"
느닷없이 주인이라며 나를 찾아온 남자.
그의 팔에는 마치 집을 나온 듯 큰 가방이 들려있었고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향해 웃더니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뭐 어쩌라고...?
"째앙이 이거 너무 무거오줍니다... 째앙이 들어가!"
"어? 어딜, 어딜 들어와요."
"쥬잉 째앙이 주인이쟈나!"
그럼 들어가도 되지요? 들어가께요!
불도저도 아니고 마음대로 밀고 들어온 남자는 말끝마다 주인 주인 하며 기어코 우리 집 한편에 자신의 짐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밀고 들어온다고 쳐도 내가 생각할 시간 정도는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 그 전에 누구신데요?!
"쥬인!"
"...네...?"
"거기 추오요. 바람들어와!"
추우니까 닥치고 문 닫아라 이건가...
마치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한 것처럼 한껏 편한 자세로 쇼파에 앉아 내게 손짓하는 꼴이 너무 보기 싫어서 한 대 쥐어박을까 하다 참았다.
쫓아내기 전까지는 이성적으로 굴자. 내 집에서 내보내는 순간에 가서 발을 밟아주는 거야. 좋았어 성이름.
저런 물만두는 개껌이지.
왜 개껌이냐면 개껌은 내가 씹을 수도 없으니까...?
그냥 바보새끼인 줄 알았는데 남자는 ㄹㅇ 투명드래곤이었음. 그러니까 존나 세다고.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또라이를 만나본 적이 있던가? 나도 어디가서 인성으로 밀리지 않는데 이 새끼는 정말...
"그러니까... 강아지...라고요?"
"녜!"
"대체 어디가?"
"째앙이가!"
"이런 미친..."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보이자 남자는 가뜩이나 쳐진 눈꼬리를 축 내렸다.
강아지상이 좋다고 했지 자기를 강아지라고 하는 사람은 별론데요. 아, 별로. 저 웃는 거 아니고 원래 웃는 상임.
남자의 말을 정리하자면 그랬다.
자기는 강아지이고 사람으로 변신할 수도 있는데 완전 사람이 되려면 인간이랑 적어도 일년은 같이 살아야... 더 말하기도 지친다 이건.
아니 무슨 구미호야? 꼬리 아홉개 달린 거 보여주면 내가 이해를 하겠어 솔직히 이건 너무하잖아...
"남녀가 유별하거늘... 누구 맘대로 우리 집에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언제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준다고 했어...?
나도 하루 한 끼 먹고 잠도 못 자도 옷도 쌀포대 입을까 말까인데 누가 그런 거짓부렁을 이 끼암찍이한테 한 거야...
"쥬인니가 째앙이 불렀잖어..."
"혼자 있으면 외롭다구... 밤마다 이불 끌어 안고 그래짜나..."
"대체 뭐라는 겁니까 지금..."
누가 더 아련한지 대결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왜 저런 눈빛으로 보는데? 누가 보면 내가 정말로 그러는 줄 안다고!
난 밤마다 이불 끌어 안은 적 없어! 좀 울어서 그렇지! 그것도 다 정해인이 너무 잘생겨서 그래...
아니 무슨 카스썰이야? 그럼 재벌이 날 사랑하는 내용으로 해주든지...
길 가는 남자를 내가 키우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
"나이가 어떻게 돼요?"
"나이?"
"...째앙이 몇 살?"
"음... 몬라!"
그럼 아는 건 뭔데.
당장에라도 남자 멱살을 잡아 짤짤 털고 싶었지만 힘든 사람은 도와주어야 인간의 도리를 다 해주는 것이라는 사회적 압박에 못 이겨 그냥 설득해보기로 했다.
엄마... 엄마 딸을 이렇게 착한 사람으로 키우면 어떡해요...
"이름이 째앙이에요?"
"움... 짼니...째아니..."
"재안이?"
"안니여 째아니!"
"재환이?"
"녜!"
자기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사람도 몇 없었는지 이름을 불러주자 눈을 빛내는 남자에 한숨이 다 나왔다.
이젠 정말 답이 없다. 그냥 내쫓자. 난 놀부부인이고 저 남자는 흥부가 되는 거다.
"지금 말도 안 되는 거 알죠? 전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쪽 못 믿겠거든요."
"흙...?"
"아니야. 그거 아니야."
내 말의 요점이 흙이 아닌데 대체 어떻게 알아 들은 건지 자기가 앉은 쇼파 옆에 있던 화분에서 흙을 한줌 쥐기에 존나 놀라서 남자의 행동을 저지했다.
지금 이 상태라면 충분히 눈에 넣어줄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도 내 말에 손에 쥔 흙을 버리더니 손을 툭툭 턴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남자의 짐을 챙긴 내가 문 앞으로 걸어나가자 눈으로 나를 쫓는 얼굴에 내가 손짓했다. 그냥 닥치고 나오라는 소리였음.
"그 쥬인인지 뭔지 나는 못 해주니까 다른 곳 가요. 이게 뭐야."
"째아니 집 여기..."
"장난 받아줄 생각 없으니까 가시라고요."
"...나 또 버리지 마요."
마치 내가 정말 키우던 자신을 버리는 것처럼 말하는 남자에 달려가 끌어안을 뻔했지만 기억하세요 청년이여 나는 그렇게까지 약한 사람이 아님을.
멘탈 약하다는 걸 걸렸다간 정말 눌러 앉을 것 같아서 그냥 무작정 문을 열고 남자의 짐을 문밖에 내려놨다.
"그럼 멀리 안 나갈테니 안녕히 가시지요."
남자를 내보내고 그대로 잠들었던 것 같다.
내가 평일동안 알바에 학교에 얼마나 힘들었게요? 그걸 그 남자가 완전히 화룡점정 찍어주시는 바람에 죽을뻔했다 아입니꺼...
"집에 먹을게 하나또 없네 하나또 어또케 이롤 수가 있지~?"
남이 보면 부끄러울 모습이지만 혼자인데 뭐 어때? 다들 이러고 살잖아요?
화장할 땐 내가 뷰티유튜버고 요리하면 요리사고 먹을 땐 먹방하는 사람이고 그런거지 뭐...
내 배처럼 텅 빈 냉장고에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후드집업을 걸쳤다. 그래 멀리는 못 가고 편의점을 갔다오자. 오늘은 그 잘생긴 알바생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거울로 본 몰골이 말이 아니라 인상을 쓰곤 문을 열었는데,
"왓"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아까 그 남자가 가져왔던 짐이랑... 강아지?
뭐야 그 새끼 내가 집에서 내쫓았다고 키우던 강아지 나한테 버리고 간 것...? 당신 인성 무엇...
급한대로 강아지를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괘씸해서 짐까지 챙겨주고 싶진 않았음. 누가 버리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겠지. 마음같아선 불태우고 싶지만 참는 것...
밤은 위험하니까 밤만 지나면 다시 내보내는 거야... 얘는 그 또라이 강아지니까... 밤만 지나면...
"흫, 너 되게 귀엽다"
하지만 강아지를 쓰다듬음과 동시에 머리로는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 한 달에 얼마쯤 들지 계산하는 마더 테레사 급 수용력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지만 어? 원래 귀여운게 짜릿한 법이잖아.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고 내 욕망은 시작도 없었다고.
아무도 날 막을 순 없으셈.
"아구 우리 꼬질이 좀 씻을까?"
사랑둥이를 욕실에 두고 입었던 후드집업을 벗으러 방에 다녀왔을 뿐인데.
제가 그 사이 기절이라도 했었나요?
"...헤헤"
그렇지 않고서야 저새끼가 다시 보일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