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 선결혼 후연애
W_웰츠
나에게는 아내가 있다. 얼마전에 생긴.
나 역시 남편이 있다. 그렇다. 아내가 아닌 남편이.
***
띵동- 박찬열씨. 우왁스럽게 눌려진 초인종의 스프링 소리가 집 내부 안 까지 들어온다. 그와 동시에
중력을 무시한 머리카락들이 흔들거리는 남자가 하얀시트 위에서 부스스하게 일어서더니 쿵쿵거리는 현관문 앞으로
걸어간다. 누구세요. 조금은 피곤 가득한 갈라지는 목소리로 현관문을 앞에대고 입을 여니 밖에서는 '택배입니다.'라는
숨에 찬 남자가 답변한다. 끼이익-
"박찬열씨 맞나요?"
"아..뭐, 저희 형이에요."
끼릭-쿵. 닫힌 철 현관문에서는 철의 작은 진동이 울린다. 두 손 가득 안긴 상자를 내려다보니 받는 사람의 칸에
정갈하게 박찬열 이라는 글자가 써있다. 그리고 보내는 이의 이름을 살펴보니 박찬열의 아버지의 성함 역시 정갈하게 적혀있다.
약간은 긴 회색 츄리닝바지를 바닥에 끌며 곁눈질로 굳게 닫힌 방문을 보다 어정쩡하게 발을 옮긴다. 그 와중에 차마
'제 남편되는 사람인데요.' 라고 할 수는 없기에 급하게 둘러댄 저의 모습이 웃겨 바람새는 웃음을 보인다.
똑똑. 저 들어가요. 방 안에서는 그 어떤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지만 그런것쯤은 게의치 않다는 듯 문고리를 돌려 방 문을
열자 역시 하얀 시트 위에 엎어져 드러 누워있는 남자의 뒷통수가 보인다. 어제 밤까지 회사 업무를 하다 잔건지
서류들로 잔뜩 흐트러져있는 책상 한켠에 택배상자를 올려놓고는 잠에 깰라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선다.
쇼파에 앉아있다 탁자에 둔 핸드폰이 울리자 조금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탁자를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수신자를 확인하니
'동생' 이라는 딱딱한 두 글자가 검은 화면에 둥둥 떠있다.
"응. 어쩐일이야?"
- 오랜만에 전화했더니 뭐? 어쩐일이야?
"그런게 아니고."
- 됐어, 오빠한테 뭘 바래.
"그럼 끊을까?"
- 아오, 이건 순수한건지 멍청한건지 진짜.
역시나 우렁찬 여동생의 목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 푸스스 웃자 수화기에서는 또 멍청하게 웃고있는거 다 안다며 구박아닌
구박을 한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건지 궁금해서 안부를 물으려는 찰나 건너편에서 먼저 다급하게 말을 꺼낸다.
- 근데 오빠 합방은 했냐?
"어, 어?"
- 안했나보네.
"아..아니야. 어,제도 같이 잤는데."
- 오빠는 거짓말하면 다 티난다고했지?
"..응."
내 대답이 떨어지자 동생의 한숨이 여기까지 들려온다. 내가 작게 웃자 어디 이게 여자의 입에서 나올 만한 것들인가 싶은
욕들이 잔뜩 수화기를 통해 고스란히 귀로 들어왔다. 내가 조만간 오빠집에 찾아가겠다는 으름장을 잔뜩 늘어놓은 동생이
전화를 끊는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아, 깼어요? 미안해요."
"아니, 뭐. 사과받으려고 한 말은 아니고."
전화를 쇼파위로 내려놓고 생각에 빠질려는 찰나 언제 깬건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뒷머리를 정리하며 나오는 찬열이 보인다.
재빨리 쇼파에서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자 뻘쭘해진 찬열이 시선을 거둬
백현이 앉아있던 쇼파위로 몸을 누웠다.
"...밥에 김치만 줘도되."
"네? 뭐라고 하셨어요?"
"어? 아니 맛있게 해달라고."
네에! 하며 밝게 웃는 백현의 얼굴을 쳐다보다 시선을 다시 티비로 옮긴다. 한참 축구가 전반전의 막바지를 하고 있을 때
주방에서 밥먹으라는 백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몸과 발은 주방을 향해 걸어가지만 눈은 여전히 티비로 머물고 있는 찬열이
탁자에 부딪히려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현이 급하게 찬열의 앞을 막아서자 갑자기 앞길이 막힌 찬열이 깜짝놀라
고개를 돌리니 마치 포옹이라도 하고 있는 듯이 정수리만 보이는 백현이 보였다.
"뭐, 뭐해?"
"부딪힐까봐서요."
"아..고마워. 밥먹자."
고맙다는 찬열의 말에 기분좋게 웃어보인 백현이 찬열이 앉은 반대편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밥은 퍼올렸지만
도통 입에 넣을 생각을 앉는 백현이 보여 왜 안먹냐는 듯한 눈길을 주자 그 눈길을 알아챈건지 겨우겨우 입안으로 밥을
우겨넣는 백현이 보인다. 어디 아픈건가 싶어 조용히 안색을 살피니 전혀 그런 눈치는 아닌 것 같아 다시 밥그릇으로
시선을 돌려 열심히 먹었다.
"오늘은 뭐할꺼야?"
"오늘 바빠요. 냉장고에 반찬재료도 다 떨어져서 장도 봐야되고, 아까 욕실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세는 것 같길래
수리공 아저씨도 불러야되고, 주방청소도 하고, 빨래도 널고."
"...원래 이래?"
"뭐가요?"
"아니, 원래부터 이렇게 여자들처럼 막..오해해서 듣지는 말고."
대충 찬열의 말을 알아들은 백현이 어떠한 대답없이 어깨만 살짝 들었다 올려보이자 찬열은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고개만 갸우뚱한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연다. 나도 어짜피 오늘 휴무인데 같이 장보러 갈래?
결혼한지는 일주일도 채 되지않았지만 일을 다닌다는 핑계라면 핑계도 있었고, 조금은 백현이 귀찮은 것도 있어서
한 번을 그와 함께 보낸 날이 없었기에 느낀 양심의 가책도 있어 휴무를 그와 보내기로 결심해 묻자
얼굴이 붉어진 백현이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