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 선결혼 후연애
W_웰츠
내 아내는 남자다. 농담같다고? 진심이다.
그리고 우리가 결혼한지는 일주일도 채 되지않았다. 물론, 알고지낸지도.
***
탈칵-부우웅. 시동을 걸고서 깔끔하게 선텐된 창문 사이로 타라는 신호를 보내자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
찬열의 고급스러운 검정색 자가용 조수석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탄다. 그러고보니 내 차에 누군가를, 그것도
백현을 태운다는거는 처음이라 운전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옆자리가 신경쓰인다.
"평소에는 장보러 어디가니?"
"그냥 집 앞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마트요."
"걸어서?"
"당연하죠. 걸어서 10분이면 금방 가요."
"자동차라도 사줄까? 아님 스쿠터? 아, 스쿠터는 좀 위험하다. 그럼 자전거는?"
"ㄴ, 네?"
저에게 눈길 한 번 주지않고 열심히 운전만 하는 찬열의 얼굴을 당황스럽다는 듯이 쳐다본 백현에 찬열이 그제야 시선을 돌리자
재빨리 고개를 돌린 백현이 괜찮다고 답하자 걱정스러운건지 마음에 안드는건지 미간을 조금 찌푸린 찬열이 입을 연다.
걸어서 10분이면 너무 멀잖아. 툭하니 뱉어진 찬열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백현이 조금은 높은 톤의 목소리로
찬열의 말에 반박했다.
"걸어서 10분이 뭐가 멀어요? 완전 가까운거지."
"나한텐 멀어."
누가 도련님 아니랄까봐 얄미운 말만 내뱉는 찬열이 마음에 안들어 입을 삐죽인다. 그런 백현의 표정을 본 찬열이 피식 웃더니
농담이야 농담, 그냥 너 짐들고 왔다갔다하는게 걱정되서 그래. 하며 백현을 풀어주자 그렇게 깊게 기분이 상한건 아닌지
금세 얼굴을 푼다. 그 사이 자동차는 바퀴의 마찰 소리로 인해 삑삑 소리를 내는 페인트칠 된 주차장안으로 들어선다.
집 앞 20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에 도착한 백현과 찬열은 주차를 시켜논 차를 뒤로 하고 식품코너로 연결된 통로로 걸어갔다.
"근데 뭐살껀데?"
"일단 반찬거리부터..뭐 좋아해요?"
"난 뭐, 아무거나 잘먹어."
제법 입맛이 까탈스럽기로 한가닥했던 찬열이지만 어린나이에 그것도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시집살이아닌 시집살이를 하는
백현이 안쓰러워 그가 만들기 편하도록 배려를 하자 곰곰히 생각하던 백현이 카트를 끌고 차가운 공기를 내뿜는 냉장코너로 간다.
내가 끌게. 하며 카트의 손잡이를 잡자 작게 웃는 백현이 계란을 카트 안으로 조심스럽게 놓는다.
삐-익. 삑. 총 237000원이요. 입이 떡벌어지는 금액에 백현은 몸둘바를 못하다 자연스럽게 카드를 건내는 찬열의 모습만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대형마트를 한바퀴 다 돌면서 이것저것 생필품부터 필요하다 싶은건 다 담아내는 찬열을
말리고 말려서 나온 금액이다. 평소에 집 앞 마트에서 23700원이면 비싸다 싶어 저가 먹고싶어서 집은 과자도 내려놓았던
백현인데 0 하나가 더 붙는 금액에 머릿 속에선 자신의 한 달 생활비보다 넘는 것 같아 아찔했다. 그리곤
역시 부잣집은 다르다 싶어 한 편으로 씁쓸함에 입맛을 다셨다.
"가자, 짐은 나한테 줘."
"네? 아니에요. 이건 제가 들게요."
프라이팬부터 온갖 무게가 나가보이는 물건이 잔뜩 담긴 봉투를 한 손에 쥔 찬열이 또 하나 꾀나 무거워 보이는 봉투를
들려하자 백현이 재빨리 두 팔 가득 안고서 저가 들겠다며 우긴다. 됐네요. 낑낑거리는 백현의 팔에서 봉투를 빼앗아 그 안에서
가장 가벼워보이는 2+1으로 묶인 곽휴지를 안겨준다. 이거나 들어, 이게 제일 무거우니까.
장보기를 마친 둘은 피곤함에 쇼파에 잔뜩 늘어져있는데 풀린 눈으로 티비를 보던 백현의 모습을 지켜본 찬열이 큼- 하는
소리를 낸다. 갑자기 들린 소리에 그런 찬열을 쳐다보자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입을 꾹 물고있는 찬열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19살이랬나?"
"네."
"뭐, 너도나도 딱히 탐탁치않은 결혼을 한건 맞고, 그렇다고 이 결혼생활이 어떤 결과로 나뉘어질지는
너도나도 모르는 일이고."
"네."
"솔직하게 난 아직 너한테 아무 감정없어. 너도 마찬가지일꺼고. 지금 내가 너한테 잘해주는건
나보다 현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 니가 걱정되서야 그리고...나중에 안좋은 결과가 있더라도 서로
껄끄럽지않게, 웃으면서 볼 수 있으니까."
"...그렇죠."
"19살이면 충분히 어른다운 생각을 하고있을꺼라고 생각해. 특히나 백현이 너는.
내말 잘 알아들었을꺼라고 믿는다. 먼저 잘게."
어깨를 한 번 토닥인 찬열이 리모컨을 백현의 옆에 놓아두고는 자신의 방에 들어간다. 속사포처럼 지나간 찬열의 말에
잠시 생각이 필요해졌다. 오늘 같이 장보기를 함으로써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찬열은 역시나 대하기 너무 어려웠으며
한마디로 자신이 잘해주는거에 대한 오해를 하지 말라는 뜻아닌가. 한 번 벽을 놓은 찬열의 매정함에 찬열의 말대로
어른다운 생각을 하려고해도 아직은 어린 백현은 마음에 작게 생채기가 생긴 기분이다.
"다녀오세요."
"응. 오늘 좀 늦어,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들어와."
현관 앞에서 넥타이의 매무새를 한 번 만진 찬열이 가볍게 손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서 나간다.
일단 집청소부터 해야겠다 싶어 찬열의 방에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침대 시트를 정리하는데 배게밑에 깔린 찬열의
휴대폰이 보여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집어 들다 급하게 현관문을 열어 밖을 확인하니 금세 사라진 찬열이 보이질 않는다.
이걸 어쩌지. 작게 내뱉은 백현이 집으로 전화가 오겠지 싶어 거실 탁자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쇼파에 정자세로 앉아
찬열의 전화만 기다렸다.
지잉- 길게 울리는 찬열의 휴대폰을 급하게 확인하니 화면 속에는 생각 외 인물의 이름이 적혀있다. '아버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백현이 눈 꼭 감고 통화버튼을 누르자 건너편에서 기침 한 번과 함께
잘지내고 있냐는 말이 들려온다.
"여,보세요."
"...백현이냐?"
"네, 형이 휴대폰을 놓고가서요."
"결혼한지 일주일이 다되가는데 호칭이 그게 뭐냐, 찬열이가 형이라고 부르라 하던?"
"예? 아,아니요. 아직은.."
"이녀석들 안되겠구만..조만간 찾아가도록 하마."
"...네. 편히 쉬세요."
잔뜩 긴장한 몸이 풀어지자 몸이 노곤노곤해지는 듯 했다. 거실에 잔뜩 늘어놓은 청소도구가 오늘따라 꼴뵈기 싫었다.
오늘 늦는다던 찬열의 말이 생각나 휴대폰을 들어 연락처를 살피다 어느 한 곳에 멈춰선 손이 망설임없이 전화를 건다.
니가 왠일이냐. 신호음이 얼마 들리지 않아 건너편에선 잔뜩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에도 좋다고 웃는
백현이 잘지내냐고 묻는다.
- 언제부터 잘지내는거 궁금했다고.
"또 그런다."
- 또 그러기는 무슨...결..혼생활은 어떠냐.
"나름..괜찮아."
- 괜찮은거 맞냐? 영 목소리가 아닌데.
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백현이 그저 웃는 소리만 내자 건너편에서 역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혼해 그럼.
만날래 경수야? 애써 말을 돌린 백현에 멈칫하던 경수가 한참을 말이 없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는다.
30분 뒤에 우리집과 경수집의 중간 지점에서 보기로 약속했기에 서둘러 늘어놓은 청소도구를 준비하고 오랜만에 나갈 준비를
한다. 찬열의 방에 들어가 평소에 좋다고 느낀 그의 향수도 한껏 뿌리고서야 마침내 외출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