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수호] 지여애모(只汝愛慕)
05
타오와 준면은 꽤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물론 그 결과는 타오의 노력이 8할을 이루었다. 수국의 왕실과 수도를 벗어나지못했던 준면에게 제가 살았던 화주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준면은 제가 모르던 수국의 이야기에 아이마냥 좋아하였다. 그런 타오의 노력을 준면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둘은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준면의 또래가 없었던 화류헌에서 타오는 유일한 준면의 말동무였다. 무뚝뚝해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의 타오였지만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생겼단 것만으로도 준면은 즐거웠다. 제 사람이 한명 있다는 것만으로 외로움이 이렇게 사라져버릴수도 있구나, 준면은 생각했다.
"마마, 뛰지 마십시오. 넘어지십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그렇게 허술한 으악!"
뛰지 말라는 타오의 말을 대충 넘기던 준면이 결국 화원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갑자기 아래로 쑥 꺼지는 준면을 쳐다보던 타오가 급히 뛰어갔다. 어찌 이리 어린아이같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으니. 타오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준면의 안위를 살폈다. 어디 다친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던 타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크게 다친곳은 없었지만 자잘히 까진 피부와 접질리기라도 한것인지 빨갛게 부어오른 손목때문이었다. 준면이 검지손가락으로 타오의 미간을 꾹 눌렀다. 찌푸리지마, 주름져. 지금 넘어져가지곤 한다는 말이.. 타오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그만 궁으로 들어가시죠."
"어제 그리던거 마저 그려야하는데.."
"지금 그 손목을 하시고 말입니까?"
준면의 손목을 이리저리 만지던 타오가 의원이라도 불러야겠다며 아직도 흙바닥에 앉아있는 준면을 끌어당겨 일으켜세웠다. 준면은 못 이기겠다는듯 어쩔 수 없다는듯 타오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밝은 봄햇살이 둘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국무회의는 한 시진-두 시간 가량-이 넘게 계속 되었다. 저마다 생각이 다른 대신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의견만 내놓기 급급했다. 결국 참다못한 황제가 결론도 채 마무리짓지 않고 해산을 명했다. 아침부터 제 당파의 이익만을 위하는 대신들틈새에 끼여 머리싸움을 하느라 그런지는 몰라도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크리스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리며 대관저를 빠져나왔다. 크리스의 뒤로 대여섯의 환관과 내관들이 줄을 지어 따라왔다. 피곤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하루종일 집무에 시달렸다. 아침부터 장시간 시달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크리스의 어두워진 낯빛을 눈치채기라도 한것인지 내관이 잠시 바람을 쐬고오시는게 어떠냐 권하였다. 사랑채안에 틀어박혀 집무만 보고있어 바깥바람이 절실해진 크리스가 잠시 다녀오마, 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관이 자연스레 따라가려고 크리스의 뒤를 따랐지만 혼자 다녀오겠노라고 뜻을 내비친 크리스때문에 그의 행동은 저지되었다.
"벌써 봄이구나."
어느덧 완연한 봄이었다. 화원에는 노란나래꽃과 분홍의 달래꽃이 만개하였다. 사랑채뒷편을 둘러 걷다 크리스가 걸음을 뚝, 멈췄다. 준면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준면과 그의 호위무사였다. 이름이 타오였던가. 크리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준면은 앉아있었고 타오는 그런 준면의 손목을 지분거리고있었다. 넘어진 준면의 상처를 살펴주는거였지만 그런 사정을 크리스가 알리 만무했다. 크리스의 눈에는 준면과 타오가 손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연인이라도 된것인양. 크리스가 손을 꽉 말아쥐어 손등에 핏줄이 섰다. 심기가 거슬렸다.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잡아 떼어놓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크리스가 옆에 피어있는 달래꽃을 잡아뜯었다. 꽃분홍의 예쁜 잎이 처참하게 짓눌려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아, 정말이지 짜증나는구나. 크리스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크리스가 떠난 자리에 뭉개진 꽃잎만이 남아있었다.
의원은 준면의 오른쪽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아주곤 당분간 그림은 그리지말라 신신당부하며 화류헌을 떠났다. 당분간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생각에 풀이 죽은 준면이 제 옆에 제 손목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타오를 보았다. 괜찮다는 듯 웃어보였지만 타오는 속상하다는듯 준면을 질책했다. 평소에 조심하라 그렇게 말씀드렸건만. 저를 나무라는 입을 준면이 제 검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알았네요.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잖아."
준면의 거리낌없는 행동에 타오가 당황한듯 얼굴을 뒤로 뺐다. 준면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남몰래 준면에게 연정을 품고있는 타오에게는 커다란 행동으로 다가왔다. 이 사람은 이런 내 마음을 알기나 하는건지. 무슨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던 타오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준면이 두 눈에 힘을 세게 주며 말했다. 나가자. 타오는 골치가 아픈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며칠동안 잠잠한것같더니. 지금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준면이 타오의 팔을 잡아당기며 장터로 놀러나가자 조르고있었다. 여즉 가라앉지 않은 손목때문에 그림을 그리기는 무리인것같고 그냥 화류헌안에 있ㅈ니 너무 심심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골똘히 궁리하던 준면에게 내관이 귀뜸을 해준게 화근이었다. 태평국의 수도인 환야엔 한달마다 각지에서 온 상인들이 모여 큰 장을 연다고. 광대놀음도 하고 쉬이 보지못했던 진귀한 물건도 구경할수있다는 말을. 준면은 그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타오에게 달려갔다.
"나가자. 응? 나 지금까지 궁밖은 커녕 동궁밖으로도 나가본적 없단말이야. 마음대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응? 으응?"
타오가 제 관복의 소매를 집요하게 잡아당기며 말을 속사포처럼 다다다 내뱉는 준면을 내려다보았다. 준면이 이때다하고 눈을 크게 깜빡거리며 타오를 간절하게 올려다보았다. 윽. 결국은 타오가 백기를 들었다. 타오가 고개를 푸욱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준면에게 말했다. 두 시진-약 4시간-정도만 나갔다 오시는겁니다. 타오의 긍정의 답에 준면은 뛸 듯이 기뻐하였다.
"진짜? 진짜지?!"
"대신, 황태자마마께는 비밀로 하셔야할겁니다. 들키면 저나 마마나 화를 면치못할것입니다."
"당연하지. 크리스는 요즘에 잘 보이지도 않던걸, 뭐."
"궁 밖으로 나가시면 사람도 많고 복잡하니 제 옆에 잘 있으셔야합니다."
준면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밖으로 나가자고 타오를 보챘다. 그 복장으로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타오의 목소리에 그제야 준면이 제 화려한 의복을 보고 뒷 머리를 긁적거리며 멋쩍은듯 웃었다. 내관에게 활동복을 받아오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죠. 타오가 내관에게 옷을 받으러 나간 후 준면이 의자에 걸터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태평국에서의 첫 외출이었다.
활동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준면이 주환관에게만 살짝 귀뜸을 해주고 타오를 따라 나섰다. 대문으로 당당히 나갈 순 없으니 궁에 필요한 물품이 배달되곤하는 작은 쪽문을 통하여 궁을 빠져나왔다. 궁을 나와 조금을 걸으니 오색의 천막이 세워져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색머리의 갈색눈이 대부분인 수국의 사람들과는 달리 크리스처럼 휘황찬란한 머리색을 가지고있는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거렸다. 진정한 태평국의 모습이었다.
"우와! 타오, 이리와봐!"
태어나 이렇게 큰 장터에 온 적은 처음인지라 신기한지 준면이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장터를 누볐다. 타오는 그런 준면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신기하기도 할만하지. 준면이 저리 신나 활짝 웃는 모습에 저도 따라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새어나왔다.
광대놀음도 보고 여기저기를 쏘다닌 준면이 피곤한듯 축 쳐졌다. 그 모습을 본 타오가 준면을 주막으로 데리고 가 국밥을 한그릇 시켜주었다. 국밥을 말끔히 비운 준면이 다시 힘이 난것인지 다시 장터바닥을 누볐다. 신기함에 너무 정신이 팔린것일까 타오와 떨어진 준면이 고개를 휙휙 돌리며 타오를 찾았다. 타오! 크게 외쳐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때, 준면의 눈에 서역상인의 것으로 보이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태평국이나 수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기한 것들이 가판대에 진열되어있었다.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던 준면이 파란색의 납작한 유리같은것을 집어들었다. 파란원안의 하얀원, 하늘원, 검은 원이 차례로 있어 꼭 흉안(凶眼)을 보는것만 같았다. 이건 뭐에요? 준면이 상인에게 물었다.
"나자르본죽이라 하는것이오."
"나자르본죽이요..?"
"아나톨리아의 특산품이지. 악귀를 막아주고 행운이 오게 한다는 일종의 부적이오."
"..이거 얼마예요?"
주환관이 밖에 나간다고 할때 제 손에 돈을 쥐어줬었다. 태평국의 화폐단위를 잘 모르는 준면이 그냥 가지고있던 돈의 반절을 상인에게 건네주었다. 상인이 준면이 건네주는 돈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돈을 받곤 나자르본죽하나를 준면에게 주었다. 나자르본죽을 받은 준면이 그것을 안주머니에 조심히 넣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세반고리모양의 장신구를 가르켰다. 이것도 하나주세요. 남아있던 돈을 모조리 상인에게 쥐어주며 말을 했다. 상인이 씨익 웃으며 돈을 건네받았다. 자네, 태평국사람이 아니지? 상인의 뜬금없는 말에 장신구를 챙겨 가게를 나서려던 준면이 멈춰섰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니 잘 모르는것같길래 그랬소. 준면이 상인을 한번 흘끔 쳐다보곤 가게를 나갔다. 상인이 낄낄 거리며 가게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우락부락한 건장한 사내 서넛이 앉아있었다. 상인이 사내들을 보고 말했다.
"방금 나간자를 쫓아라. 돈이 더 있을수도 있으니 옷을 살펴보고 돈이 없다면 이리 끌고오너라. 서역에서 높은 값에 팔 수 있을것 같구나."
사내들이 상인의 말에 우르르 몰려나갔다. 상인이 아까 전, 준면이 건네준 돈을 보며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 상인의 손에는 나자르본죽과 장신구를 더한 값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려있었다. 태평국의 화폐개념이 전혀 없던 준면이 무턱대고 쥐어준 돈을 보고 상인은 준면이 태평국사람이 아니란것을 깨달았다. 거기다 그 정도의 미모면 서역에서 꽤 높은값에 노예로 팔 수 있으리라 생각한 상인이 굴러들어온 복에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준면은, 아직도 타오를 만나지 못하고 장터를 헤매고있었다.
세컨드입니다^♡^ |
이번화는 분량이 ㅈ..쪼금 짧죠?ㅠ.ㅠ 인티점검기간동안 많이 쓰려고 했는데 이거에 치이고 저거에 치이면서 fail..ㅁ7ㅁ8 <<준면이가 산 나자르본죽의 이미지에요! 실제로 존재하는거랍니다~ 터키에서 쉽게 보실수있어요! 진짜 사람 눈같죠?ㄷㄷ 나름 중요한건데 제가 글로 설명을 잘 못해서 이미지첨부해요ㅠ.ㅠ |
암호닉S2 |
펠리컨 슈웹스 송편 카카오톡 그린티 아이셔 복숭아 콜팝 돌기 만두 스폰지밥 후후 마귀 슈잉슈잉 징어 두루미 꿀꿀이 다엘 홍홍 됴르르 속미인곡 이빠 땡삼 식빵녀
암호닉분들 언제나 꾸준한 댓글 감사합니다 연재에 큰 힘이 된답니당S2 |
이번화부터 당분간 암호닉신청안받습니다! 몇화후에 다시 받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