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옷 좀 갈아입을껄."
" 옷도 없으면서."
" 그런가..."
" 걱정마. 성규형은 너 처음보는거 아니라니깐..."
" 휴우...김성규 많이 아프냐 ? "
" 몰라. 아프다고 말하기도 뭐해. 우리랑 다르니까..."
" 하긴... "
이상하게 자꾸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예전에 헤어졌던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랄까.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경직시켰다.
*
" 야 ! 좀 서둘러 ! "
" 아오 ! 알았어 ! 거스름돈 좀 받고 ! "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마음이 더 급해진다. 꼴뚜기같은 김명수가 거스름돈을 받느라 택시에서 내리질 않는다.급해죽겠는데.
거스름돈을 대충 주머니에 구겨넣은 김명수가 나를 부축해끌었고 갑자기 김명수네 집이 13층이란게 생각나고 짜증이 확 밀려왔다.
" 야, 진짜 너무한다 !! 택시비까지 내줬더니 ! "
" 아...미안. 암튼 빨리 !! "
" 엘리베이터 속도를 나보고 어쩌라고!! "
" 아이씨..."
" 존나 무섭네,남우현.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사람같아."
" 11층...12층...13층...땡!!!왜 문 안 열어 !!! "
" 미친놈아 ! 열리니까 기다려 !! "
" 우어어어어 !!! "
목발로 문을 마구 걷어차자 덜컹거리며 문이 열린다.내가 봐도 좀 사이코같긴한데...
아무튼 절뚝거리며 김명수네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띡띡띡띡띡띡. 또로록. 틀렸다는 알림음이 나온다.
" 야 ! 넌 너네집 비밀번호도 모르냐 !? "
" 아오썅 !! 입 좀 다물어 ! 니가 옆에서 보채니까 더 안 되잖어!!! "
이번엔 띠리리리릭하며 맑고 고운 소리가 흘러나온다.문을 열자마자 목발을 집어던지고 절뚝거리며 김명수의 방으로 향했다.
" 김성...규우... ? "
" ...... "
왠 카리스마 넘치는 할머니 한 분이 이성열과 함께 서있었다.
" ...너네 할머니셔 ? "
" 뭐 ? 무슨..."
뒤따라들어온 김명수도 처음보는 모양인지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 할머니는 누구세요 ? "
" 얘가 남우현이가 ? "
" 아니. 그 옆에."
이성열이 나를 홱 가르키며 말하자 카리스마 할머니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내 잘생긴 얼굴을 훑어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 좀 무식하긴해도 천성이 못난 놈은 아니구먼. "
" 예 ? 무식이요 ? "
" 이런 무식한 놈 살리겠다고 몸을 저리 버려 ? 쯧쯧..."
" ...으..."
김성규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가슴팍이 높이 치켜올라가는가싶더니 이내 잔잔한 숨을 뱉으며 가슴팍이 다시 내려갔다.
" ...... "
" 성규형 ! 정신이 들어 ? "
그렇게 보고싶었던 김성규다.
눈을 느리게 끔벅거린 뒤 부스스 몸을 일으키려다가 카리스마 할머니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이더니 예의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할머니는 누구길래 이러는 거지.
" 삼신님..."
" 우째 정신이 좀 드는겨 ? "
삼신님 ? ...삼신이라면...삼신...삼신할매 ?
" 네..."
" 미련한 놈. 어디서 인간의 명을 간섭하려 들어! "
" ...죄송해요."
" 쯧쯧쯧..."
" 김성규... "
다리를 최대한 덜 절뚝거리며 김성규에게 다가갔다. 김성규는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
성열과 명수,삼신할매가 잠시 방을 나갔고 방안은 온전히 성규와 우현만이 남았다.
" 진짜 괜찮은 거야 ? 응 ? "
" 어. 거뜬해."
머리에 둘러진 붕대와 여기저기 까진 상처를 조심스럽게 살핀 성규가 입술을 우물쭈물거리더니 또 울기시작한다. 서럽게 우는 성규를 조심히 끌어안은 우현이 깁스를 하지않은 손을 들어 성규의 등을 토닥토닥거렸다.
" 울지마.나 지금 겁나 참고 있는데 니가 자꾸 우니깐 나도 울 것 같단말이야."
" 흐읍...끅.... "
" ... 진짜 너무 보고싶었어,성규야."
" 흐어어엉... "
" 난 좀 꾀죄죄한데...넌 진짜 예쁘다."
" 흐어업..."
성규의 두 볼을 꾸욱 잡은 우현이 까슬까슬하게 터버린 성규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입술이 촉촉하게 적셔졌을때쯤 찐득하게 섞던 입술을 뗐고 물기가 가득한 눈을 투박한 손으로 슥슥 닦아주었다.
" 김성규."
" 으응... ? "
" 이제 이틀남았다."
" ...... "
" 이틀 뒤에 갈 꺼지 ? "
" ...난 그러고 싶은데...삼신님이... "
" 너랑 이것저것 해보려고 생각한 3일이 그냥 없어져버렸어. 억울해 죽을 것 같아."
" ...... "
" 내가 말한 첫번째 소원이었잖아. 한달 다 채우고 가기.꼭 지켜줘."
" ...... "
성규가 그저 대답없이 눈물가득한 눈으로 미소지으며 우현의 머리에 둘러진 붕대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
" 아,왜 자꾸... "
" 야...얼른... "
명수가 성열의 손을 꼬옥 잡은채 반대쪽 손으로 자꾸 성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럴때마다 간지럼을 타는 성열이 몸을 움츠렸고 명수의 찌름은 멈출 줄 몰랐다.
" 성열이, 이제 그만 성규 나오라혀.올라가야지."
" 할매 ! ...저기... "
성열이 명수의 눈치를 보며 할매의 팔뚝을 붙잡았다.
" 할매 먼저 올라가. "
" 그게 무슨 소리여. 잉란도 다 찾았담서 ? "
" 으응...근데 정리할 게 있어서... "
" 니가 정리할 게 뭐 있다고... "
그제서야 꼬옥 붙잡고 있는 성열과 명수의 손이 눈에 들어온건지 할매가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 한달동안 잉란만 찾은건 아니였나보제 ? "
" ...아아~할매애...이틀만. 딱 이틀만 있다가 바로 올라갈께."
" 쓸데없는 소리 말어."
" 아아...할매...제발...안 올라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딱 이틀만 더 있다간다는 거잖아... "
" ...... "
" ...이틀 더 ? "
성열이 애교를 부리며 말하자 한숨을 내쉰 할매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비약 두 병을 다시 성열에게 건넸다.
" 늦지말구와."
" 예쓰 !!! "
명수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열의 손을 잡은 손을 들어 성열의 손등에 뽀뽀를 쪽 했다. 할매는 혀를 쯧쯧차며 다시 천상으로 돌아가려는 듯이 몸을 돌렸다.
" 할머...아니 삼신님 ! 안녕히가세요 ! "
꾸벅 90도를 한 명수가 씨익 웃어보였다.할매가 대꾸없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 고 놈... "
참 잘 생겼단 말이여...
*
" 진짜 많이 시들었네... "
잔뜩 시든 나무를 살짝 만지기만해도 검은 잎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졌다.
김성규는 나와 같이 병실로 돌아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오늘따라 김성규가 참 예쁘고 올망졸망하게 생겼다는게 느껴졌다. 뭐,언제 안 이쁜 적이 있었겠느냐만...
이성열 덕분에 김성규는 일요일까지 있다가 가기로 했다. 그래봤자 벌써 금요일 오후다.
난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간호사 누나에게 신랄하게 까였고 간호사 누나는 단단히 나를 벼르고 있는건지 한시간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병실문을 열고 내 존재유무를 확인했다. 그래서 마음대로 김성규를 물고 빨지도 못하겠다.
김명수는 나와 김성규의 오붓한 시간을 위한다는 핑계로 이성열와 공원으로 데이트를 하러갔고 장동우는 몇 시간 전부터 코빼기도 안 보였다.
" 이거 다시 가져가야겠다."
" 다 시들었는데 ? "
"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현이,너처럼.
그 말을 끝으로 김성규가 쑥쓰럽다는듯이 볼을 붉히는데 그 모습에 코피 퐝...
" 성규야."
" ...좋다."
" 뭐가 ? "
" 그냥. 너가 김성규 - 하고 부르다가 성규야 - 라고 불러주니까 좋아. "
" ...미리 말하지... "
이제 몇 번 못 불러볼텐데...
" 성규야."
" 응. "
" 김성규...성규야... "
" 왜 불러 ? "
" 병실에만 있기 답답하지 ? "
" 아니. 난 그냥 너랑 단 둘이 있고 싶었어."
아,예쁜 주제에 말도 예쁘게 한다.예뻐죽겠다는 표현이 이런 건가 보다.
" 나 어떡하냐."
" 왜 ? "
" 너 가고 나서 너무 힘들 것 같아. 이런 말 하면 너가 더 힘들어할까봐 안 하고 꾹 참으려고 했는데 못 참겠어. 솔직히 나 너무 무서워. 미리 준비하고 싶은데 도저히 못 하겠어. 그냥 가지말고 나랑 살면 안될까 ? "
에그몽 완결났습니다.
지금은 번외쓰는중이구요.
번외는 텍파에만 들어갈예정입니다.
아마 37편이 마지막 편이 될 것 같아서
내용 조절 중입니다.
이제 마지막 인사를 준비...크..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