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편 아닙니당 ㅎㅎㅎ
내일이 마지막이고
번외편이 쭈르륵 나올 것 같아요 ㅎㅎ
*
따가운 햇살이 맨 살에 닿아 뜨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몇 번 뒤척거린 동우가 눈부신 햇살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 깼어 ? "
" 혀엉... "
동우가 칭얼거리며 침대에 앉아있는 호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허벅지에 머리를 댄 동우가 졸린 눈을 뜨지 못하고 비비적거리
자 호원이 갈라진 동우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 벌써 10시야."
" 으으..."
이만 가봐야한다는 걸 알았지만 모른척하며 호원을 좀 더 깊이 끌어안았다. 동우의 하얀 몸에 여기저기 호원의 흔적들이 남아있
었다.
" 모기물린 것 같이 됐네."
동우가 쑥쓰러운듯 웃으며 더운 날씨지만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덮었다. 귀엽다는 듯이 볼을 살짝 꼬집은 호원이 침대에서 일어
나 창문을 좀 더 활짝 열었다.
" 얼른 일어나서 옷 입어. 좀 걷자. 날씨 좋으니깐. "
햇살이 호원의 등 뒤에서 쏟아져내렸다.
*
이상하네. 내가 창문을 열어놓고 잤던가.
솔솔 바람이 불어와 앞머리를 간질간질거린다. 조근조근 속삭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콧잔등에 간질거리는 느낌도 들어왔
다.
" 일어나봐,명수야."
" ...... "
" 일어나,멍청아 ! "
눈을 뜨자 코 앞에 바짝 다가와있는 성열의 얼굴이 보였다. 깔끔한 천상옷을 입고 있었다.명수가 꿈지럭거리며 손을 뻗어 핸드폰
으로 시간을 확인했다.11시.오늘은 왠일로 성열이보다 더 늦잠을 자버렸다.
" 흐음...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 "
" 나 허리아파,멍청아..."
성열이 힝힝거리며 허리를 매만지자 명수가 팬티만 대충 주워입고 일어나 성열을 침대에 눕히고 허리를 조심스럽게 안마해주기
시작했다.
" 많이 아파 ? "
" 으으...응.많이 아파."
" 그럼 하루 더 있다가 내일... "
" 치이..."
" 분명 몇 시간 전까지는 아직 어젯밤이였는데 벌써 오늘이네... "
시간 참 빨리 갔다. LTE보다 빠른 속도로 간 것 같은 느낌이다. 성열이 간간히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괴물 김명수... "
어제 명수의 모습은 인간이기보다 한 마리 표범에 가까웠다. 그것도 파이팅넘치는 표범.
" 미안...어젠 내가 좀..."
" 돼,됐어. 말하지마...아무튼 빨랑 너도 준비해... "
" 하아...싫다."
성열의 옆에 드러누우며 성열을 꼬옥 끌어안았다.
" 이성열. "
" 응."
" 또 놀러와. 그땐 더 맛있는 거 사줄께."
" 내가 돼지냐...맛있는 거 사준다고 오게...너보러 올꺼야."
" ...성열아아..."
존나 감동.
명수가 우는 소리를 내며 성열의 뼈가 부서지도록 끌어안고 흔들어댔다.
*
" 성열이가 좀 늦네... "
" 무슨 일 있나."
무슨 일 있었으면 좋겠는데...
우현이 내심 기대가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힐끗 성규가 멘 가방을 쳐다봤다.
" 가방 벗고 있으면 안 돼 ? "
" 으응 ? "
" 가방. 벗고 있으라구. 금방이라도 갈 것 처럼 그러지말고. 아직 이성열도 안 왔는데."
" ...아...으응. "
후다닥 가방을 벗은 성규가 서먹서먹한 분위기에 슬쩍 우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 좀 웃어봐..."
" 웃음이 나오냐."
" 그럼 나 가기 전까지 그렇게 아무 말없이 뚱한 표정만 지을꺼야 ? "
" ...그건 아닌데 웃음이 안 나오니깐 그렇지."
우현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 몇 달 뒤에 태어날 동생한테 무지 잘해줘야겠다."
" 왜 ? "
" 덕분에 너랑 만났잖아."
" 얼마나 예쁠까...궁금하다."
" 보러내려와."
' 진짜 그러고싶어'하고 진심어린 표정을 지은 성규가 아쉬운 한숨을 뱉으며 시계를 슬쩍 쳐다봤다. 해가 지기전에는 가야될텐데 벌써 오후 2시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냥 하루만 더 있다가 가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병실문이 열리고 성열과 명수가 들어왔다. 둘의 얼굴에도 아쉬움과 서운함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성열이의 가방이 유난히 불룩했다.
" 장동우는 안 왔어 ? "
" 그러게...안 올 애가 아닌데... "
" 어 ? 저기 온다 ! "
성규가 창밖을 가리켰다. 병원 앞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동우와 호원이 이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 이제...가야지 ? "
명수는 성열에게 한 말이였는데 그에 맞춰 한숨을 쉬며 성규와 우현도 자리에서 일어나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방을 멘 성규가 선반위에 올려져있던 화분을 챙겨들고 냉장고를 열어 조심스럽게 비약을 꺼내들었다.
" 가자."
우현이 성규의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섰고,명수와 성열도 손을 꼭 잡고 우현의 뒤를 따랐다.
*
옥상으로 가는 문이 잠겨있는 바람에 호원이 다시 1층으로 내려가 몸을 숨기고 옥상으로 날아올라 문을 열어줬다.
여섯명이 나란히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대고 한참을 아무 말없이 푸른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 ...이러다 날 새겠다."
" 그러게... "
장난스럽게 말한 성열의 말에 명수만 대꾸를 해주자 결국 성열이 멍하니 있는 성규의 어깨를 툭툭 쳐댔다.
" 형 ! 언제까지 보기만 할꺼야. 이제 슬슬 가야지."
" 어 ? 아...그래야지... 사자님은 여기에 남으시게요 ? "
" 사실은 나도 이제 인간세상은 못 내려올 것 같아. "
명부관으로 승급했거든.
호원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성열과 성규 쪽으로 걸어갔다. 성규와 성열이 나란히 비약을 마셨다. 거지같은 맛에 성규와 성열이 헛구역질을 하며 혀를 내둘렀다.
난간쪽에 성규와 성열,호원이 서있었고 난간에서 떨어진 쪽에는 우현과 명수,동우가 서있었다. 또 다시 일동 침묵이다.
결국 성열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눈가를 훔치는가싶더니 울음을 터트리며 명수에게 와락 안겼다.
" 으어엉 ! 진짜 많이 보고 싶을꺼야, 으허어엉!!!!!! "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명수가 울음을 참으려는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천천히 성열의 등을 토닥거렸다. 하지만 눈에 한가득 맺혀있던 눈물방울은 무게를 견디지못하고 성열이의 어깨에 톡톡 떨어지고 있었다.
" 후으으..이제 진짜 가네."
" 우현이 너 붕대 푼 모습 본 다음에 가고싶었는데... 꼭 빨리 나아야 돼, 알았지 ?"
" 걱정마."
" 그리고 이거."
성규가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 우현에게 건넸다. 노트다. 그렇게 성규가 숨기고 안 보여주며 써왔던 내용이 가득한 그 노트였다. 우현이 노트를 받아들고 물었다.
" 이거...나 줘도 돼 ? "
" 사실 인간세상에서 겪은 일들만 쓰려했는데...온통 니 얘기밖에 없네... "
볼을 붉히며 쑥쓰러워한 성규가 우현이 노트를 펼치려하자 지금 보지말라며 손을 막았다.
" 그럼 언제 봐 ? "
" 너 다 낫고 동생태어나면."
" 그렇게나 한참뒤에 보라구 ? "
" 동생은 몇 달뒤면 태어나고 너 빨리 낫겠다면서. 빨리 나아서 보면 되지."
" ...억지다."
" 아무튼 꼭 동생태어난 다음에 봐. 알았지 ? 약속."
성규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우현이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손가락을 걸었다. 아,진짜 안 울려고 했는데. 우현이 눈꼽을 떼는 척 눈을 비볐지만 이미 벌게진 눈가를 가릴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살풋히 웃은 성규가 한발짝 다가와 우현의 입술에 짧게 뽀뽀를 했다.
" 한 달 동안 우현이 너 덕분에 너무 행복했어. 평생 잊지않을께. "
" 성규야..."
" 그리고 너 노래 계속 불러줘. 하늘까지 들릴지는 모르겠는데...느낄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깐 꼭 불러줘."
" ...가지마,성규야."
이 쪽은 성규가 아니라 우현이 운다.
성규를 끌어안은 우현을 가지말라는 말과 함께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자 씁쓸하게 웃은 성규가 우현의 뒷머리를 쓰다듬고는 등에 붙어있던 우현의 손을 떼어냈다.
" 내가 들어주기로 한 소원 아직 두 개나 남았는데...안 쓸꺼야 ? "
" ...... "
손등으로 눈가를 닦은 우현이 두번째 소원을 말했다.
" 너... 꼭 다시 내려와. 나보러. "
" ...알았어. 언젠가는...꼭 다시 내려올께...그럼 마지막 소원은 ? "
잠시 생각한 우현이 다시 성규를 끌어안으며 작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 나중에 다시 내려오면...그때 말할께...사랑해,보고싶을꺼야."
" 나도...많이 많이 사랑해,우현아. "
한 편 동우와 호원은 그 두 커플과는 다르게 꽤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옥상 홍수 나겠네요."
" 그러게."
" 형도 이제 가야겠죠 ? "
" 그래야지.나한테 할 말... 없진 않겠지 ? "
" 흠...생각해본적없는데. 미워서. "
동우가 골똘히 생각해보다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하자 호원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 진짜 ? "
" 농담이에요. 미간펴요. 무섭게 생겼네..."
" 장난치지말고 얼른 말해봐."
" 으음...그냥 명부관도 열심히 하구...또...나 잊지말고...또..."
" ...진짜 할 말이 그것 뿐이야 ? "
" 그럼요 ? "
뭘 원하는데요 ?
동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자 그와 똑같이 호원의 눈꼬리도 치켜올라간다.
" 아아~알았어요."
" 빨리."
" 형. "
" 응."
" 거짓말 아니라."
" 응."
" 진짜진짜로."
" 아,끊지말고 말해."
" 좋아한다구요. "
그거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동우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호원도 끝내 너털웃음을 흘리며 동우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 잘 지내라. 다치지말고."
" 형도 잘 지내야되요."
맨날 내가 먼저 안았으니깐 이번엔 니가 먼저 좀 안아주지 ?
호원이 힐끗 명수네 쪽을 보고는 말했다. 그 말에 환히 웃은 동우가 호원을 꼭 끌어안았다.
" 나도 안 우는데 왜 울어... "
" 슬프니까 울지. "
" 슬퍼하지마. 항상 위에서 너만 바라보고 있을꺼야. "
이제 그만 진짜 가야겠다,우현아.
성규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끌어안고있던 성규의 몸이 점점 올라가고 나중엔 손만 겨우 잡을 수 있는 높이가 되어버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떠있는 모습이 참 낯설게만 느껴지는 순간이다.
" 꼭 다시 만나,성규야 ! 사랑해 ! "
어느새 손이 떨어졌고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가는 성규에게 우현이 소리쳤다. 맑고 쨍쨍한 날씨가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더니 우현의 뺨에 닿았다.
" 성규형 가신다,성열아. 너도 이제 가야지 ? "
" 흐윽...흡... "
" 아깐 안 울 것 처럼 말하더니 갑자기 왜 울어..."
그러면서 몰래 손등으로 눈물을 벅벅 닦아낸 명수가 코맹맹이 소리로 '나 잊지마'하며 말하자 웃긴 명수의 목소리에 웃음이 터진 성열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날아올랐다. 성규와 성열이 모습이 서서히 흐려지더니 이내 눈앞에서 사라졌고 그 뒤에도 명수와 우현은 한참동안이나 하늘만 올려다봤다.
" 크흠...이제 내 차롄가."
호원의 목소리에 명수와 우현이 '아,있었어요?'하면서 눈물을 닦으며 다가왔다.
" 감사했어요,저 누워있는 동안에."
우현이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자 호원이 피식 웃으며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 나중에 또 보자. 뭐, 내가 데리러 올지는 모르겠지만. 하하. 농담이야.농담."
존나 그딴 얼굴로 농담하지마.
명수와 우현의 속으로 중얼거리며 표정이 잠시 썩어들어가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호원까지 하늘로 올라가자 옥상은 바람소리와 짹짹거리는 새소리만 들려왔다.
" ...다 갔다."
" ...벌써 보고싶다."
" 되게 허전하네."
세 명이 코를 훌쩍이며 하늘만 올려다보는 와중에 갑자기 옥상문이 벌컥 열리고 우현의 전담 간호사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다가 왔다.
" 아니, 여기서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 얼른 병실로 돌아가세요. 또 무단으로 외출한 줄 알고 진짜 ! 옥상문은 또 어떻게 열었대. "
" 예예~알겠습니다."
명수와 동우가 우현을 부축하며 옥상을 빠져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