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명수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눈을 떴다. 불완전한 초점이 허공을 잠시 돌다 내 앞의 그의 눈에 탁 박혔다. 날 바라보고 있던 그가 살짝 놀란듯 눈을 억지로 감는다.
" 더 자. "
그는 한 손으로 내 허리를 두드렸다. 어제 잠든 것과 똑같이 아직 내 발목은 그에게 잡혀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우리의 한 손이 서로에게 꼭 깍지가 끼어졌다. 맞물린 열 손가락들이 꼼지락하며 다른 손가락을 간질였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난 눈을 감지 않았다. 벌써 며칠째, 계속 이러고 있다간 식물인간이 되어버릴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과 뻐근한 몸이 "싫어." 하고 말하자 그는 그제야 눈을 느릿하게 떴다. 더 짙어진 눈이 날 걱정하 듯 향했고, 그는 들리지 않는 한숨을 쉬고 먼저 조용히 일어났다.
잡혀있던 발목이 풀리고, 꼭 맞아있던 손바닥이 사라졌다. 알 수없는 해방감과 허전함에 손발을 괜히 돌리며 일어나려 하자 그가 그 전에 내 몸을 받쳐줘 일어나 앉았다. 엉성해진 머리와 옷을 정리해주고는 눈높이를 맞추고 쭉 나를 바라본다.
" 가만히 있어. "
그는 그렇게 당부하고 방을 잠시 나갔다. 스탠드 옆에 있던 꽃병은 이미 없었다. 눈 앞에 형체가 아른하다 사라졌다. 애써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가 분명히 당부했지만 어겨도 큰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난 그렇게 믿어버리고 부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방 문턱을 넘었다. 짧은 복도를 지나 넓은 거실과 부엌이 보였다. 밤새 사람이 닿지 않은 방 밖에는 한기만 돌고있었고, 온기가 잠시 느껴지는 곳은 그가 방금 지나간 곳이리라 생각했다.
커텐이 굳게 드리어진 베란다 사이로 옅은 빛이 들어오는 듯 했다. 난 잠시 망설이다 차가운 방바닥을 지나쳐 갈색 빛의 커텐을 걷어내려 손을 내밀었을 때. 그가 나타나 내 손을 콱 잡았다.
" 가만히 있으라 했지. "
나는 잘못을 뉘우치는 아이처럼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응? 하고 되묻는 목소리에도 대꾸하지 않고 내가 걷으려 했던 커텐 틈이 살짝 벌어져 밝았다. 내 시선이 더 꽂히려 하자 그는 내 어깨를 잡고 내 몸을 아예 창문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깊은 한숨을 푹 내쉬는 그는 날 껴안았다. 괜히 마음이 나른해지는것 같았다.
" 널 어떡하면 좋아. "
그는 그렇게 말하며 팔에 힘을 꽉 줘 안았다가 다시 풀었다. 깊은 목소리에는 그 속에 많은 걸 담고있었다.
" 너랑 같이 있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는데.. "
말 끝을 작게 흐리는 그는 애꿎은 내 등만 두드렸다.
" 니가 너무 슬프잖아. "
그 말에 진짜로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눈을 크게 뜨고 다른 생각을 하려 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니가 너무 슬프잖아. 난 너무 슬프다. 그는 잠시 몸을 떼더니 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등을 두드리던 손으로 머리를 천천히 쓸었고,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자신의 눈에 담았다. 오늘따라 축 처진 듯한 눈매가 내 눈동자에 어렸고, 이내 그의 입술도 내 입술에 조용히 맞닿았다. 까칠하면서도 따뜻한 것이 내 입술에 가득 닿아왔고, 그의 혀도 내 입술 안쪽을 조심히 훑다 사라졌다.
마음이 너무나 진하게 다가와서 내 볼 위로는 이미 옅은 눈물 자국이 나있었다. 이 자국이 내 감정인지, 그의 감정인지도 모를 정도로 아팠다. 혼란 속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나는 다시 품에 안겼다. 그는 나도 잘 안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몇개의 단어가 귀에 들어오는 듯 했으나 사라졌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다 그제야 내가 느낄 수 있는 말을 꺼냈다.
" 차라리.. "
세 글자는 이어지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았다. 또 눈시울이 뻘개져감을 느꼈다.
" ..미안해. "
말은 이어지지 못했고, 그가 꺼낸 다른 말은 세상의 모든 죄명을 쓴 듯한 목소리었다. 그와 동시에 난 울음이 터졌다. 그의 어깨에서는 괜히 더 슬퍼지는것 같았다. 끅끅. 하는 소리에 그는 나를 소파에 데려가 앉혔다.
그는 나를 달래 주었지만, 나보다 더 슬픈 표정이었다. 푹 젖어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버릴듯한, 그런 표정을 애써 꾹 삼키고 있었다.
" 너도 날 사랑한다면 좋았을텐데. "
모르는척해줘요 |
다음이 마지막화에요. 시험이 더 다가오기전에 끝내버리려고... 이번편은 좀 짧은데, 다음편은 어떻게될지 모르겠네요..? 마지막화인데.. 너무 이야기가 어물쩡하게 될까봐... :( |
작은 댓글도 못난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