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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망했다. 또 지각이다.
요즘 갑자기 생각할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오랜만에 편두통에 시달려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들어 일어나니 이미 한 시간 오버.
아파서 못 간다 하려 전화를 들었다가, 집을 나섰다.
오늘은, 총리허설이잖아. 이걸 지금보지 또 언제 봐.
두통약을 두 개나 먹고도 혹시나 싶어 약을 챙겨들고 나와 뛰었다.
이번엔 또 얼마나 까려나.
조명 팀 말고 다른 데로 뺑뺑이 돌리면 안 되는데.
입구 쪽에 가방을 거의 팽개치듯 내려놓고 들어갔다,.
사람은 많은데 분위기가 싸-하다.
그리고 또 누구 하나 잡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다.
조심스럽게 들어오니, 마구 손짓을 하고 욕을 섞어가며 화를 내는 감독님과 그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선,
남우현.....?
남우현이라고? 남우현?
주위를 둥그렇게 싸고 있는 스텝들을 헤치고 들어가니 진짜 남우현이다.
그리고, 성질내는 내용을 듣고 있으려니까 가관이다.
엄연히 남우현의 공연이 아닌가.
철저히 후원이나 협찬 없이 본인의공연이고, 그래서 기획에도 전적으로 참여한 것일 텐데.
가만히 앉아서 피아노나 치고 있지 네까짓 게 뭐냐는 둥, 이게 혼자 하는 공연인줄 아냐는 둥, 왜 너만 부각하려드냐는 둥.
그러면, 피아노솔로콘서튼데 뭘 하냐고.
전부터 생각을 한 건데, 뭔가 남우현의 공연을 빌미로 자신의 이름을 홍보할 목적이고,

자기능력을 중시하는데 더 혈안이 된 느낌이랄까.
왜 남우현은 이걸 듣고 서있는지.
애가 착한 건지 바보인건지.
안 그래도 답답한 속이 터질 것 같다.
내가 뭐라 간섭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그냥 보고 섰는데,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듣고만 있는 남우현에게서, 눈물이 몇 방울 뚝,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감독님의 손이 남우현의 머리를 툭툭, 건드린다.
한쪽 입 꼬리에 힘을 줘 웃는 표정으로.
아.....이러면, 곤란해질 텐데...
머리는 아직 이런 저런 계산을 덜 끝냈는데, 몸이 따로 논다.
제멋대로 움직여 푸들 녀석의 앞에 선다.
날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감독님.

 

 

"그만하시죠"

 

어이가 없다는 듯, 날보고 픽, 웃는다.
그래, 나도 어이가 없다. 지금 내가.
근데 일단, 결과가 어떻게 되던, 뭐 때문이든 같잖은 건 같잖은 거다.
날 보고서도 뭔가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여는데, 내가 먼저 입을 막았다.

 

 


"뭐가 그렇게 잘나셨는데요. 그래요, 감독님 연출, 기획 분야에서 알아주시는 거 다 압니다.
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죠. 여긴 감독님의 스테이지가 아니란 말입니다.

공연예술에만 집중하고, 그거 하나만을 목표로 사시는 분 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얻게 될 돈과 명성에 집착해 사람도 존중하지 못하고 인간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여섯 살 코찔찔이 유치원생도 자기보다 잘나고 어린애한테 질투는 안 해요.
이런 감독님과는, 얼마를 준다 해도 일 못합니다, 저는."

 

 

내가 말을 더 해가면 더 해갈수록, 감독님의 표정이 굳어간다 싶더니, 결국 내 말이 끝나자마자,

크고 두꺼운 손으로 내 얼굴을 후려쳤다.
어딘가가 터졌는데, 피부에 느껴지는 화끈함과 함께 피의 비린 맛이 느껴진다.
그러고도 내가 고개를 들어 감독님을 똑바로 쳐다보자, 간단한 한마디를 뱉으셨다.

 

 

"뭐하나, 안 나가고?"

 

 


/
킁, 훌쩍.
겨울이 오긴 하는지, 날이 점점 추워진다.
아, 이제 어떡하지.
보기 좋게 쫓겨날 거란 생각은 또 못했지…….
에이씨,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일단, 다른 알바를 찾아봐야 되나-.
아니, 학기 중인데 알바자리가 어디 있겠어, 상식적으로.
아, 상민이형얼굴은 또 어떻게 보지.
대타랍시고 소개시켜 줬는데, 지각하고 사고치고 깝치고 쫓겨나고.
답 없다 진짜...
뭘 하든, 어제 계단에 앉아 있을 건 아니지 일단.
미련은 없다. 아휴우.....
엉망이 된 머리를 다시 가라앉히며 일어서려는데, 볼에 뭐가 닿는다.

 

 

"아 뜨거!"
"아, 깜짝이야. 뜨거워요? 따뜻하라고 한 건데.."
"....너, 뭐냐?"
"한 시간 쉬자던데요?"
"....근데 왜 여깄냐고. 이건 뭐고."
"커피. 빨대도 달렸어요!...입안에 상처 났죠?"
"어? 어, 어...."
"그래서 약도 사왔어요! 먹어도 되는 거라던데- 음...."

 

 

제대로 묻지도 않고 냅다 사서 뛰어온 건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옆에 폴싹 앉아 연고케이스를 미간을 찌푸린 채 본다.

 


"간 김에 니 약도 사오지그랬어. 코맹맹이 소리 나는 거봐라"
"으음-...나야 뭐. 별로. 그냥두면나아요! 근데 이거 맞게 사온건지 모르겠는데-.."

 


내 상처야말로 그냥 침 묻혀두면 낫는데 말이야..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아예 케이스를 뜯어 설명서를 끄집어내는 걸 말렸다.

 


"이걸, 왜 날 줘?"
"네? 그거야, 아까 저 때문에...."
"아니, 그거 말고. 나한테 왜..."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하다가, 또 나를 빤히 보는 눈에 말을 흐렸다.
갑자기 방긋, 웃는다. 내가 무슨 좋은 말이라도 해 준 것 마냥.
그냥 보고만 있는데, 연고를 그냥 내 손에 쥐어 주고는 옆으로 밀어놓았던 핫초코를 집어 들어 마신다.

 

 

"예전에, 봤거든요"
"....?"
"그러니까. 웃는 게. 웃는데-"
"....뭐"
"웃는데. 이-렇게 웃거든요? 근데, 잘 안 웃잖아요."

 


뭐냐, 이 어색한 웃음은.
핫초코를 내려놓고 양쪽검지로 입 꼬리를 쭉- 끌어당겨 올리고, 눈이 보일락, 말락하게 눈웃음을 친다.
내가 언제 저랬어, 내가!
기가 막혀 이걸 얘한테 지금 뭐라고 해야 하나, 하는데 다시 손을 내리고 핫초코를 한번 쪽, 빨았다.
여전히 방긋방긋 웃고 있다.

 


"좀, 더,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커피를 마시던걸 멈췄다.
시선을 내리며 숙였던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이거 봐. 이게 좋잖아요."

 

 


/

C

 


히키코모리가 될 지경이다.
병결로 한교를 통째로 빠져먹은 게 며칠 짼지.
어제 새벽까지 혼자 질질 짜대서 그런가. 머리가 더 지끈거린다.
일어나기가 힘들어 밍기적 거리다가, 겨우 몸을 지탱해 앉았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섰다.
아주 눈앞이 빙빙 돈다.
화장실 잠깐 가기도 이렇게 힘드냐...
겨우겨우 거실로 나오니, 깔끔한 테이블이 보인다.
약을 어디 뒀더라― 여기어디 뒀었는데.
아, 이성열 칠칠이가. 또 지갑을 두고 가가지고는-. 그나저나 진짜 약봉투 어디 뒀지.....음...어?...지갑?

눈을 비볐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갑을 열었다.
이성열의 것이 확실하다.
왜, 왜 이게 여기 있지? 이성열의 지갑이.

 

 


'내가 너를 놓치면, 니가 잡아'
'그런 게 어디 있어-'
'놓아준 거 아니니까 도망가지 말고 나 잡으라고.'

 


이성열이 그랬었다.
입대전날, 둘 다 술에 진탕 취했는데도, 어쩐지 그 말만은 또박하게, 분명하게 말했고, 똑똑히 들렸다. 그랬었다.
무슨 농담이냐는 말에, 웃으며 그랬다.
자긴 겁이 많다고. 아주 많다고.
약봉투를 찾는걸 그만뒀다.
이성열의 지갑을 손에 든채, 신발을 구겨 신었다.
모르겠다, 민폐든 아니든 뭐든. 지금 봐야겠다.
이성열을 봐야겠다.
아니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너무 뜨거워서,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모르겠다,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이성열이 필요하다.

 

 

/

B

 


큰일이다. 지갑을 놓고 왔다.
놓고 오면, 알아서 가져다주니까 그렇게 습관을 들였던 게 잘못인가.
현관문을 나오며 신은 운동화를 보고 쉬었던 한숨을 다시 내쉬었다.
언제 몰래가서 도로 들고 나올 수 있을까 몰래.
아니면 김성규를 시켜 가져오라고 라도 해야지.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긴 하지만-..
복잡한 머리를 정리해가며 걷는데, 마침 김성규가 보인다.
아, 너 잘 만났다. 타이밍 좋네.

 

 


"김성규-"
"....."
"-선배."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네요"
"밥 안 먹고사냐. 얼굴 없어지겠다 조만간."
"잠을 못 자서 그래. 언제부터 안부 묻는 사이였다고. 아, 부탁 있어요"

 

 


나름 그래도 심부름을 시켜야 되는 입장이라 존댓말을 써주니 의외라는 표정이다.
하긴, 이 새끼를 알게 된 후로, 선배는 개뿔 반말에 욕을 말아줬었지 매번.
안 그럴 수가 없었다. 이성종 보는데서 흑심이 딱 보이는데 뭐.

 


"무슨 부탁. 니가 나한테?"
"성종이네에, 지갑을 두고 와서-. 좀 가져다달라고."
"언제, 왜?"

 

 

이 사람이랑 이렇게 오래 대화 해본 것도 처음이네 그러고 보니.
대화가 처음이라 그런지, 진짜 김성규가 이상해진 건지,

말을 섞을 때마다 대놓고 느껴지던 나에 대한 반감이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나따위 신경 안 쓴다 그건가.

 


"오늘. 성종이랑 마주치긴, 그렇잖아요"
"음...근데, 여기로 오는데?"

 

 

뭔 소리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웬 잠옷을 입은 성종이가 진짜 내 쪽으로 온다.
뭐지, 지금? 나 꿈꾸고 있는 건가?
내 생각엔, 내 경험상.
꿈일 확률은 적은데.
고등학생 때 나에게 안겨오던 이성종도, 내 스무 살 생일에 볼을 붉히며 나에게 고백해오던 이성종도,

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니.
꿈이라도 지금만은 어때.
깨면 그만 인거고, 현실이라 해도 괜찮다.
내게 뛰어오는 이성종에 또 찌질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눈에 힘을 준다.
진짜 내게 오는 게 맞는 걸까- 싶을 때쯤.
뭔가가 날아와 발아래 떨어졌다.
아, 내 지갑.

 

 

//

ㅠ^ㅠ,...열심히 수정중입니다!

곧 완결들고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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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
12년 전
유자차
아이 감사해요S2
12년 전
독자1
미트볼이에요! 어머 드디어 성규가 우현이위해서 뭔가를했네요!! 내맘에드는행동을했어ㅋㅋㅋㅋㅋ 그래 그렇게 친해지다가 뽈인럽 하고그러는거지뭐ㅋㅋㅋ 아이고 우현이 웃는거 따라한다고하는게 귀여워요ㅠ ㅜㅠㅠㅠㅠㅜ멍뭉이 같아가지고ㅠㅠㅠㅠㅜㅠㅠㅠㅠ그나저나 그감독님 뭐야-_- 괜히 우현이한테뭐라그래-_- 성규가 맞는말만했구만... 흥 아 그리고 열종이 드디어 풀릴기미가보여요!! ㅠㅠㅠㅠ 지갑ㅠㅠㅠㅠ어휴 지갑이참이뻐요 지갑이뭐라고ㅠㅠㅠㅠㅠㅠ 놓아준거아니니까 도망치지말고잡으라는 말 뭔가아련아련ㅠㅠㅠ 다음편엔드디어 행쇼하겠죠ㅠㅠㅠㅠ
12년 전
유자차
미트볼님반가워요!!!ㅠㅠㅠㅠㅠㅠ주무시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이제 수정을 마치고!!!ㅠㅠ완결올리러 왔습니다ㅠㅠㅠ엉엉...ㅠㅠㅠㅠㅠㅠ
세심한 감상 감사해요!!!!!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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