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붕괴.
머릿 속에서 적색 경보음이 울린다.
이중도 모자라 삼중 방어벽을 쳐놨는데, 그걸 뚫어?
"큰일 났는데?"
어쩌지, 발을 동동 굴렀다. 갑작스러운 바이러스 침투로 내가 꽤 공을 들인 프로그램들이 죄다 망가지고 있다니,
나름 전문가인데. 자존심이 상한다. 계속 오류가 뜨는 컴퓨터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어떤 새낀지는 몰라도, 짜증 나네.
나 혼자 끙끙 거리고 있으니 뒤에서 크리스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일단 3번째 방어벽부터 복원해. 그것마저 무너지면 끝나."
침착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 조용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아, 땡큐."
모니터에 얼굴을 박은 채 막 타 온거 같은 커피를 책상에 내려두는 김민석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쪽은 완료."
"우린 끝난지 오래거든?"
닥쳐, 둘 다. 깐죽거리는 스머프 같은 놈들에게 욕짓거리를 뱉으니 조용해졌다. 집중 좀 하자.
고요한 적막 속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섞이고,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일단 방화벽 복원 성공."
오류 창이 사라지고 다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을 보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역시 빠르네, 아까는 안절부절 해하더니 이렇게 쉽게 복구해내고 말이야.
모니터를 본 주위 사람들의 감탄 어린 칭찬에 부끄러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럼 이제 시작하자."
"흥분되는데?"
"야동 볼 때처럼?"
아, 저 스머프 새끼들이 입만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평화로울 거 같은데.
다들 둘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니, 입이 튀어나오며 '알았어. 지시나 내려.' 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뱉는다.
"일단 루한이랑 백현이, 둘이서 먼저 들어가. 박찬열 넌 키가 크니까 움직임이 눈에 띄어서 안돼.
경수는 건물 옥상에서 침입자들 견제하고 있어. 민석이는 000이랑 같이 여기 남아 있고.
갑자기 공격 당해도 당황하지 마. 밑에 애들이 알아서 싸워줄 테니까. 우리는 상대방의 윗사람들만 견제한다."
크리스의 지시를 받은 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물건을 챙긴다.
키 큰게 죄냐고 투덜거리는 박찬열과 그 옆에서 죄라며 놀려대는 변백현 빼고.
"너희들은 어디 놀러 왔냐?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 실수하면 끝이야."
예, 예. 누구 말씀이신데.
비꼬는 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등을 돌려 나를 쳐다본다. 나도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췄다.
키가 커서, 항상 목을 올리고 봐야 하니 불편하다.
"너가 할일은,"
"알고 있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그만큼 자신 있으니 걱정 마."
나 말고 다른 애들 먼저 걱정이나 해. 웃으며 당차게 말하니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나에게 등을 돌린다.
"가자. 건너편에서 심심하다고 신호 보낸다."
밖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귀를 막았다. 항상 듣던거지만, 너무 귀아파.
나만 그런게 아닌지, 다들 인상이 약간 굳어있다.
총 쏴대는 새끼들, 손부터 분질러서 저 소리 좀 안 나오게 해야겠네. 라고 중얼거리며.
문이 열리고, 다들 손에 무기 하나씩을 쥐고 조용히 걸어 나간다.
아까까지만 해도 목소리로 꽉 차있던 작전실이, 나와 민석이만 남으니 정적만 남게 된다.
작업에 몰두한다고 마시지 못한 커피잔을 들었다. 식지 않았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아, 커피 냄새 좋네.
그들을 나간 곳을 쳐다보다 다시 몸을 돌려 모니터를 봤다. 아직, 마지막 벽은 못 부셨구나.
"기왕이면 얼른 끝났으면,"
좋은 일은 아니니까.
민석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항상 잘하던 애들이니까.
잘하고 와. 까불다가 죽지는 말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안 뚫리는데,"
몇 시간째 붙들고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며 애궃은 자판기만 내려치는 그의 얼굴엔 짜증이 묻어나 있었다.
"저쪽 보안이 엄청난 실력자인가 보죠? 아니면 그쪽이 실력이 없는건가."
비꼬는 말에 안 그래도 짜증 나있는 인상이 더 찌푸려진다.
워, 진정하고 다시 해봐요.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남자의 행동에 정말 정떨어진다는 듯이,
오세훈 누가 좀 죽여줘. 라고 말하자 남자는 그저 웃으며 바라볼 뿐이다.
"거의 다 뚫었는데, 마지막 방화벽에서 막혔어."
"상대방도 당황했겠네, 갑자기 지가 보안해온 프로그램들이 다 털리고 하나만 남았으니까.
물론 그 남은 하나는 마저 못 터셨지만."
씨발 오세훈. 참다못해 일어선 남자가 오세훈의 멱살을 잡았다. 개새끼야, 니가 해보던가.
"둘 다 진정하세요. 준면씨는 마저 일하시고, 오세훈 넌 그만 깝죽대고 준비나 해."
갑자기 들어온 한 남자로 인해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김종인 넌 왜왔어. 재밌는 tv 프로그램에서 이제 막 웃음이 터질려고 하는 부분인데
실수로 누가 tv 전원을 꺼버렸을 때처럼 아쉬운 표정을 하고 짜증을 내는 오세훈을 보며
김종인이라는 남자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오세훈의 팔을 강제적으로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너 끌고 나올려고 들어왔다, 김준면씨 그만 좀 괴롭혀. 라고 신경질을 내며.
"그럼 수고하세요,"
투덜거리는 오세훈을 끌고 나가는 김종인을 보고 김준면은 네, 그쪽들도.라는 딱딱한 인사를 하고 컴퓨터에 마저 집중한다.
보안 더럽게 철저하네, 미친놈들.
여전히 인상을 쓰고 욕을 중얼거리면서.
"우리는 먼저 선공을 합니다."
"먼저 공격해봤자, 저희 손실이 더 클거 같은데요."
지금 파일 쪽으로 엿을 먹였으니, 그쪽이 먼저 공격하게 도발할 수 있는 좋은 상황 아닌가요.
귀찮은 듯이 풀린 눈을 비비는 다크서클이 짙은 남자의 말에 종인이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현재 저쪽은 갑작스러운 시스템 붕괴로 혼란스러울겁니다. 괜찮은 척 하지만,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상태이니,"
지금만큼 뒤를 치기 좋은 타이밍은 없죠.
그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할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하고 웃어버리는 그다.
"치는 김에, 보안 쪽 사람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영 해결이 안되네요, 10명이 협공하는 건지. 방안에 처박혀 있었던 준면이 아까처럼 인상을 쓴 채로 방을 나오며 말을 꺼낸다.
"그러니까 실력이"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시비를 걸려는 오세훈의 말을 가로채고 다리를 꼬집어 버린다.
왜 꼬집어, 아파.
안 그래도 올라간 눈매가 더 올라간다.
왜 그런지 모르나, 저 병신은. 한숨을 쉰 종인이 다시 얼굴을 굳히고는 말한다.
"다들 항상 긴장한 상태로, 물론 너무 긴장하신 마시고요.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닐 테니, 평소대로 하죠."
상대방 기 좀 죽여야죠?
장난스러운 목소리다. 그냥 친한 친구들끼리, 게임을 하며 노는 것처럼. 편하게.
괜히 여기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때,
종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목표는 보스. 그를 사살하는 겁니다."
epsode 1 : 맞물리다
ardito(아르디토);대담하게, 장인적으로.